지질한 이란성 쌍둥이의 탄생기
웹툰 <찌질의 역사>가 뮤지컬로 탄생된다. 다양한 방송 활동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김풍 작가가 글을 쓰고, 심윤수 만화가가 그린 작품은 20대에 접어든 청춘의 지질한 연애담을 적나라하게 그리며 폭넓은 인기를 얻었다. 웹툰과 뮤지컬, 서로 다른 두 장르가 보여주는 <찌질의 역사>는 어떻게 색다르게 태어나고 있는지, 원작자 김풍과 심윤수, 각색자이자 연출가인 안재승에게 탄생 과정을 들어보았다.
지질한 이야기의 탄생
웹툰 <찌질의 역사>를 바탕으로 뮤지컬 창작 제의를 받았을 때 어땠나.
안재승 에이콤 윤호진 대표가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시대상을 반영한 청춘의 성장이 중심인 작품을 만들어보자고 제안을 했다. 여러 가지 웹툰 중에서도 <찌질의 역사>에 우리가 담고 싶었던 내용이 많았다. 아름답게 사랑을 포장한 이야기가 아니라 청춘의 사랑을 솔직하게 까발리는 모습에서 다른 작품과는 차별성을 만들어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제작이 긍정적이라고 보나?
심윤수 뮤지컬이라는 이미지가 산뜻하지 않나. 그런데 <찌질의 역사>는 찐득하고 끈적하다. 심지어 ‘발암’이라는 말도 들었을 정도로 불쾌한 이야기다. 이야기 어떤 부분에 음악을 넣을 것인지도 상상이 안 갔다. 심지어 ‘이건 뮤지컬로 만들 수 있는 장르가 아닌데’라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제작 발표회 때 봤는데, 뮤지컬이 굉장히 재미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 풍 뮤지컬 제작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뮤지컬을 좋아해 더 기대가 없던 것도 있었다. 우리 작품이 크게 갈 수 있는 사이즈도 아니지 않나. 그런데 첫 미팅 때부터 트리트먼트를 비롯한 여러 가지를 준비해 들이밀더라. 보통은 이야기를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에서 움직이지만, 에이콤은 벌써 진행을 한 상태에서 이야기가 들어왔다. 이건 제품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거기서 큰 감동을 받았다. 또 일단은 대본 자체가 너무 좋았다. 원작자 입장에서는 더욱 냉정하게 보게 되는데, 초고가 정말 좋았다. 게다가 각색을 하신 분이 연출까지 한다고 하니까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권 문제를 떠나 뮤지컬을 즐기는 한 관객의 입장에서, 재미있고 좋은 창작 뮤지컬이 탄생하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방대한 스토리를 어떻게 축약 혹은 변형했는가?
안재승 사실 그 과정이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었다. 각각의 캐릭터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그마다 개연성 있는 스토리를 적절하게 배치해야만 한다. 관객의 반응을 가장 잘 이끌어낼 수 있는 부분을 스토리로 선택했다. 그 부분이 답답하거나 지질한 장면이든, 아름다운 사랑이 펼쳐지는 장면이든 말이다. 웹툰에 있는 댓글을 굉장히 많이 참고했는데, 언급되는 장면은 독자들의 모습이 가장 많이 투영되어 있어 댓글로 반응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캐릭터별 명장면들을 중심으로 극 전체의 구조를 짜는 작업에 고심을 했다.
웹툰에서 뮤지컬로 각색되는 과정은 어땠나?
안재승 뮤지컬은 김풍 작가가 잡아놓은 큰 틀은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2013년의 친구들이 오랜만에 모여서 과거의 여자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과거의 사랑을 추억한다는 전체적인 구조 안에서 개별적인 캐릭터의 사랑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들을 그대로 구조화했다. 워낙 웹툰이 재미있어서 명장면들을 배치하면 문제가 없겠지만 이건 뮤지컬이지 않나. 각각의 장면 안에서 어떻게 노래로 연결해야 하는지, 이 부분에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다. 각색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들이 바로 이거였다.
웹툰과 마찬가지로 뮤지컬에서도 여러 가지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모든 등장인물의 스토리가 펼쳐진다면 자칫 산만해질 수도 있는 문제점이 발생하지 않나.
안재승 각색을 하는 과정에서 전략적으로 감정의 고저를 염두에 두고 배치를 한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민기의 이야기 중에는 점차 사랑이 깊어져서 아름다움이 드러나야 하는 장면이 있고, 기혁의 이야기 중에서도 사랑의 아름다움이 드러나야 하는 장면들이 있다. 같은 감정이 반복되다 보면 지겨워질 수 있다. 그래서 각각의 사랑이 진전되는 과정 속에서 비슷한 정서로 연결하는 게 아니라 감정을 끌어올렸다가 적절하게 내리는 과정을 반복했다. 솔직히 말해 산만함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여러 캐릭터의 사랑 이야기가 전개되는 작품에서, 하나의 캐릭터에 집중하다가 다른 캐릭터로 넘어가는 부분이 특히 그렇다. 감정의 배치를 적절하게 해서 이러한 문제점을 최대한 없애려 했고, 넘버 배치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다.
뮤지컬로 각색 작업 중 가장 우려됐던 점은?
김 풍 연출의 의도와 관객이 받아들이는 의도가 달라질 때가 가장 우려됐다. <찌질의 역사>는 연애를 가장한 성장 이야기다. 연애 이야기를 읽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끝났을 땐 성장이라는 여운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웹툰은 시간적 제한이 없어서 세 시즌 동안 연재했는데, 약 4년 동안 독자들도 같이 고민하면서 성장했다. 그런데 뮤지컬은 시간적 제한이 있다. 짧은 시간 안에 과연 관객들이 연애에 대한 에피소드뿐 아니라 성장과 성장통을 잘 느낄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있다.
심윤수 웹툰의 캐릭터들은 동그라미, 세모, 네모 이렇게 전부 형태가 다르다. 예를 들어 기혁이는 역삼각형의 얼굴에 짱구머리, 입이 약간 튀어나온 모범생의 이미지다. 교과서적인 남자이자 한 여자만 바라보고 자기가 했던 실수를 바로 잡으려고 노력하며 홀어머니 밑에서 굉장히 성실한 캐릭터다. 이런 성격이 외모에 포함되어 있는데 캐스팅을 보니 배우들이 잘생기고 예뻐서 놀랐다. 그런데 ‘내가 처음이야?’ 이런 대사들은 누가 해도 밉더라. 처음엔 이런 행동 또한 외모에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웹툰이기 때문이다. 무대로 가면 배우들이 연기로 잘 해내줄 거라 생각해서, 이런 차이 때문에 더 멋질 것이라고 기대된다.
넘버 선정과 가사 작업은 어떻게 진행됐는가?
안재승 일단은 많이 듣는 게 우선이었다. 스토리에 어울리는 분위기도 찾아야 했고, 그런 분위기를 가진 곡 안에서 가사가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선별하는 작업도 해야 했다. 곡을 선정하고 가사를 작성하는 과정들, 이런 각색 작업이 제일 오래 걸렸다. 넘버 선정을 위해 대중가요를 한 200곡 정도 들은 것 같다.
웹툰에서도 배경음악이나 삽입된 곡들이 뮤지컬에서도 삽입되는가?
안재승 웹툰에서 나왔던 곡 중 두 곡이 있다. ‘Tabacco Lady’는 김풍 작가가 이한철 작곡가와 이야기해 <찌질의 역사>를 배경으로 만든 노래다. 이 곡은 작품과 너무 잘 어울려서 넘버로 확정했다. 또 한 곡은 델리스파이스의 ‘차우차우’다. 웹툰 안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사용되는 노래라 넘버로 선택했다.
전략의 정점
웹툰에서 임팩트가 강한 장면이나 대사들이 있다. 이러한 부분을 가사나 대사로 표현하기 위해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는가?
안재승 극의 전체 구조를 짜는 과정에서 전략적으로 배치를 해야 되는 부분이었다. 너무 강한 장면들이 계속 반복되다 보면 오히려 뒤에 나오는 강한 장면들의 효과가 떨어지는 부분들이 생기더라. 만약 민기가 지질함의 정점을 보여주는 대사를 쳤으면 다음 장면은 일부러 조금 부드러운 장면과 대사를 배치했다. 그리고 그렇게 흘러가다 또 마지막에 자연스럽게 강한 대사로 연결을 했다. 예를 들어 두 커플의 첫날밤을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처음엔 굉장히 아름답게 이들의 사랑이 펼쳐지다가 뒷부분에 가서야 ‘내가 정말 처음이야?’, ‘우리 그냥 좋은 친구로 지내자’라는 강한 대사들이 배치된다.
웹툰이 큰 인기를 얻은 건, 공감력이 뛰어나서라고 생각했다. 뮤지컬에서 공감대를 이루기 위해 특별히 추가된 설정은?
안재승 뮤지컬에서는 전체적인 스토리도 중요하지만 넘버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주크박스 뮤지컬의 특성상 기존 넘버가 지닌 정서들이 있다. 어떤 곡이 나오니까 이런 정서가 나올 것이라든가, 이 장면에서는 이런 분위기의 곡을 부를 것이라는 예측 가능한 부분들이 발생할 수 있더라. 그래서 관객들이 곡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정서들을 충족시켜주는 장면 구성과 오히려 색다른 넘버를 예상할 수 없는 장면에 배치해 신선함을 느낄 수 있도록 조정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스토리 면에서 배우들이랑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관객들이 정확하게 반응할 것이 분명하거나 기억하고 있는 대사는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고, 너무 강하다 싶은 부분은 순화했다.
만화적인 표현을 무대에 구상하는 것이 꽤 어려웠을 것 같은데 이러한 부분은 어떻게 만들어 나갔나?
안재승 웹툰 같은 효과들을 살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민기가 문자로 고백을 하는 장면에서는 실제 문자의 내용들이 영상으로 비친다. 여기에 조금 더 재미있게 느껴진 설정이 8시 20분에 고백을 해야 된다는 민기의 강박감이다. 그걸 표현하기 위해 연습할 때, 시계를 놓고 ‘1분 안에 그 대사를 쳐라’고 주문을 했다. 또 친구들이 민기나 기혁에게 조언을 하는 부분들이 있는데, 장면 전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조명을 바스트 컷으로 잘라 웹툰 컷처럼 주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을 구성했다.
뮤지컬에서만 새롭게 더해진 것들이 있다면?
안재승 일단은 전체적으로 시즌 1,2,3을 되도록 다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초고 작성 당시엔 시즌 3이 완결이 안 된 상황이어서 시즌 1과 2를 중심으로 구성했다. 이후 웹툰 시즌 3이 완결되고 나서 김풍 작가가 전체 스토리 안에서도 시즌 3의 이야기를 조금 더 반영해 보자는 의견을 냈다. 나 또한 그런 부분에 대해 공감하고 있던 터라 기혁과 희선의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또 시즌 1과 2의 경우는 1999년과 2002년 사이의 이야기지만, 시즌 3은 2013년 이후의 시점이다. 2013년에는 준석과 유라가 연애를 시작한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2002년으로 가지고 오는 과정에서 캐릭터 설정상 안 맞는 부분이 생겼다. 그때, 김풍 작가가 연상녀를 제안했다. 그래서 또 거기에 맞게 스토리를 구상했다.
원작자의 마음으로, 뮤지컬화가 진행되는 부분을 지켜봤을 때 심정은?
심윤수 나 같은 경우는 관여를 거의 안 했다. 갑자기 풍이 형이 ‘야, 네가 낳은 자식이야’ 이렇게 말해서 갑자기 만나게 된 기분이었다. 신기했다. 그런데 내가 낳은 아이는 아닌 느낌이다. 마치 풍이 형이 바람을 피워서 낳아온 아이를 본 느낌이다.
안재승 바람 피워서 낳은 자식을 제가 키우고 있다.
김 풍 바람을 피워서 낳은 자식이 딸인데, 딸이 이제 결혼식을 하는 거다. 품어서 낳은 자식이니까 보는데 울컥한다. 너무 예쁘고 아름답다는 느낌도 들고. 아직 미혼이지만 결혼 후에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결혼할 때 이런 기분일 것 같다.
뮤지컬과 웹툰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안재승 개인적으로는 감성적인 측면들이 많은 기혁과 희선의 스토리에 많이 신경을 썼다.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곡들이 유난히 기혁과 희선에게 들어가 있는 부분도 있다. 민기와 설하의 경우는 드라마로 강조되는 부분들이 많아서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노래로도 충분히 정서적으로 상승효과가 있다고 판단했고, 기혁과 희선은 정서적으로 울려줘야 하는 부분이 있었다.
김 풍 웹툰의 시즌 2 마지막 장면이 제일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다. 여자친구가 떠나서 막 울다가 여자가 뒤에서 지나가니까 쳐다보고 있는 장면. 사실은 이게 심윤수 작가 본인의 경험담이다.
안재승 뮤지컬에서도 그 장면을 볼 수 있다. 민기가 울면서 대사를 치면 모든 설하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설하가 지나간다. 그러면 민기는 쭈뼛쭈뼛 돌아본다.
뮤지컬에서 작품이 추구하는 메시지는 ‘성장’이다.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은 무엇인가?
김 풍 작품에서 콕 짚어 어느 장면에서 성장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왜냐면 웹툰에서는 정말 성장의 이야기를 곱게 갈아 넣었다. 엄청나게 큰 인생의 굴곡은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찌질의 역사>는 되도록 현실의 이야기로 봤으면 좋겠다. 사실 마지막에도 민기나 다른 친구들이 엄청난 성장을 했다는 느낌은 아니다.
안재승 극엔 클라이맥스가 있어야 된다. 성장의 이야기가 정점을 찍는 지점이 있어야 하는데, 김풍 작가랑 이야기를 하면서 ‘용기’라는 단어가 나왔다. 자기가 저지른 잘못을 반성하고 바로잡으려는 용기가 결국에는 <찌질의 역사>의 메시지다. 그 부분으로 친구들의 성장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에는 세 친구들이 다 같이 용기를 내서 자기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사과한다. 거기에서 성장의 정점이 찍힐 거라 생각한다.
웹툰 팬들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점도 어쩌면 부담이 될 수도 있겠다.
안재승 웹툰을 좋아하는 독자와 뮤지컬을 좋아하는 관객들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은 있다. 그래서 뮤지컬을 좋아하는 관객도 좋아하실 수 있는 작품, 웹툰을 보셨던 분들이 작품 안에서 웹툰을 되새길 수 있는 작품이 될 수 있도록 절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뮤지컬 <찌질의 역사>가 어떻게 기억됐으면 좋겠나.
김 풍 뮤지컬을 계속 보는 이유 중 하나는, 공연이 끝나고 남는 정서이다. <찌질의 역사>도 관객에게 건네는 정서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공연장을 나가면서 함께 본 이에게 ‘근처에서 소주나 한잔하고 가자’ 이렇게 여운을 줄 수 있는 작품이 됐으면 좋겠다.
안재승 이 작품으로 재미를 느끼면 가장 좋을 것 같다. 김풍 작가가 말한 것처럼 자기를 한 번 돌아볼 수 있는 작품이 됐으면 좋겠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5호 2017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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