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를 찌르는 청년
훤칠하게 잘생긴 한 남자가 반쯤 의자에 누운 채로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반말은 기본, 한숨 섞인 심드렁한 대답에 어쩌면 당신은 당혹스러움을 느낄지도 모른다. “일단 여러분은 오시면 돼요. 제가 나오잖아요.” 이게 진짜 인터뷰라고? 설마, 그럴리가! 재미를 위한 페이크 인터뷰 영상을 통해 제대로 된 배우병(!)을 선보인 강동호의 새로운 모습은 그가 곧 합류할 <이블데드>의 ‘병맛’ 코드를 엿볼 수 있는 충분한 힌트다. 9년 만의 귀환을 알리는 작품의 열혈 팬임을 밝힌 강동호, 그가 좀비 떼들과의 한판 승부를 들려준다.
추억을 다시 만나다
<이블데드>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초연 당시 <이블데드>를 두 번 봤어요. 너무 재미있었죠. 당시 기억이 정말 좋고 재미있는 추억으로 남아 있었어요. 다른 작품들이 그렇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이블데드> 출연 제의가 왔을 때 ‘우와’ 했던 것 같아요. 9년 만에 공연되는 정말 좋아하는 작품에 내가 참여하게 됐구나! 이런 마음이었죠.
<키다리 아저씨>의 영향일 수도 있겠지만, 강동호의 이미지는 멋진 청년이죠. 그런데 <이블데드>는 B급 호러 코미디 작품이잖아요. 이 작품에 참여하는 것에 대한 주변 반응은 어때요?
제가 하나에 꽂히면 주변의 말을 잘 안 들어요. (웃음) 저는 이런 유쾌하고 재미있는 장르를 처음 한다는 것도 몰랐어요. 저는 제 나름대로 친숙한 이미지를 보여드린 것 같은데, 내가 <이블데드>를 하는 게 낯선가? 그래도 작품 속 애쉬는 누구보다도 바른 청년이거든요.
<이블데드>에 출연하면서 가장 고민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아무런 걱정 없이 연습을 시작했는데, 막상 대본을 펼치니까 일상적인 대사들이 아니었어요. B급의 매력, 일명 ‘병맛’을 확실하게 내야 하죠. 볼 때는 재미있었는데 제가 하려고 하니까 쉽지 않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그런 감각적인 행동이 낯설었어요. 또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점은, 군대를 전역하고 의도치 않게 2인극 작품만 했어요. <쓰릴 미>와 <키다리 아저씨> 그리고 또 <키다리 아저씨>의 재공연. <이블데드>는 8명 정도의 배우들이 출연하죠. 심지어 이 작품은 배우들의 ‘찰떡’ 호흡 말고는 기댈 수 있는 게 없어요. 배우들의 쫀쫀한 연기만으로 관객들에게 ‘우와’라는 말이 나올 수 있게 호흡이 진짜 잘 맞아야 해요. 그런데 전 오랜만에 많은 사람하고 하다보니까 좀 새롭게 느끼는 어떤 무언가가 있죠. 그래서 진짜 연습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블데드>에서 매력적인 부분을 꼽는다면요?
많은 분이 입을 모아 말하는 ‘병맛’이요. 허를 찌르는 포인트들이 작품 전체에 있어요.
‘병맛’이라고 하니까, 홍보 영상 중에 페이크 인터뷰가 있더라고요. 좀 색다르게 다가왔어요.
인터뷰를 그렇게 찍는다는 자체가 너무 웃겼어요. 그러니까 저기 멀리 사람이 점처럼 보이는데 인터뷰를 진행한다는 것 자체가 좀 이해가 안 가잖아요. 하지만 막상 해보니 너무 웃기고, 재미있어요. 그런 포인트의 내용이 작품에도 많아요.
해당 인터뷰 영상의 반응이 상당히 좋았어요.
제 본모습을 모르시는 분들은 재미있었다거나 실제로 그런 성격인 것 같다고 많이들 말해 주시더라고요. 처음에는 페이크 인터뷰 영상 속 제 모습을 보시고는 살짝 갸우뚱하셨대요. (웃음) ‘강동호, 정말 실제로도 저러는 거 아니야?’ 이런 생각도 드셨다고. 그런데 저를 아시는 분들은 예의 없는 그런 모습이 되게 어색했다고 하더라고요. 재미있게 보셨다면 전 성공했죠!
<이블데드>를 사랑하는 팬들이 되게 많죠. 팬들의 기대감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제가 봤을 때도 너무 재미있고 배우들이 정말 잘했어요. (류)정한 형, (조)정석 형도 그렇고 모든 배우가 너무 잘 만들어놨어요. 전 진짜 너무 재미있게 봤거든요. 당연한 말이지만. 초연 이상의 퀄리티가 나와야 한다는 부담감은 있어요. 사실 부담감을 잘 안 느끼는 편이거든요. 재연 작품이나 두 번째 같은 작품을 하더라도 그렇게 많은 부담감을 느끼는 성격은 아닌데 이번엔 좀 부담돼요. (웃음)
특히나 관객과의 호응이 중요한 작품이에요. 그런데 이 작품은 연습을 많이 해도 가늠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블데드> 팀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우리는 초연을 많이 본 사람들이 있고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했는지 알잖아요. 호응 포인트가 검증됐어요. 또 이번 공연은 내용이나 대사나 세부적인 것들이 크게 바뀐 건 없거든요. 연습을 하면서 기억 속에 ‘이 포인트에서 진짜 웃겼어. 또 사람들이 되게 많이 웃었어’라든지 ‘이 장면에서 사람들이 정말 많이 놀랐어’라는 포인트를 알고 있잖아요. 그런데 초연 배우들은 정말 아무것도 없었을 거예요. 말 그대로 굉장한 모험을 한 거거든요. 그래서 연출님은 초연 당시엔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배우들끼리 똘똘 뭉쳐서 정말 연습 많이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그렇게 연습을 한 결과 작품이 대박이 났잖아요. 이번에는 어떤 반응이 나올지 모르지만,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소스가 있어서 저희는 감사하게도 초연 팀에 비해서 수월한 것 같아요.
관객의 호응도를 끌어올리기 위한 팁이 있다면?
뭐라고 탁 집어서 말하기가 어려운데, 이런 건 머리가 아니라 감으로 해야 될 것 같아요. <이블데드>가 어려운 점이 ‘이렇게 웃길 거야’ 이러면 정말 하나도 안 웃겨요. 또 어느 부분에서는 ‘살짝 진지하게 해야지’ 하면 정말 지루할 정도로 진지해지는 거죠. 그래서 전 매우 진지하게 작품에 빠져 있으면서도 감으로 ‘톡’ 하고 꺾어주려 해요. 또 이것 외에도 <이블데드>에는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그리스> 이후로 연습을 하면서 땀을 이렇게 엄청나게 흘린 적이 없어요. 체력적으로 엄청 힘들어요. 계속 땀이 쏟아질 정도죠. 춤도 보시면 알겠지만 배우들이 죽어나요. (웃음) 계속해서 소리 지르고 빨리 뛰어다니고. 초연 배우들이 무대에서 말 그대로 죽어나는 게 보였죠. 미안한 말이지만 힘들어하는 배우들을 보는 게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최대한 열심히 발악하고 도망치고 싸우고 처절해지면, 관객들이 열심히 하는 모습에 박수를 쳐주시지 않을까요?
애쉬라는 캐릭터는 어떤가요?
페이크 인터뷰 영상 속에서 보인 것처럼 자신감 넘치는 남자라기보다는, 정말 전형적이고 누구보다도 바른 ‘교회 오빠’에요. 한 청년이 여행을 떠났는데 하필이면 내 여자친구가 좀비가 된 거죠.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죽이고. 여러 사건을 통해 상남자 혹은 마초로 변해 가는 인물이에요.
스스로를 상남자 혹은 마초라고 생각하나요?
보이는 외모나 말투 등이 그런 이미지랑 전혀 맞지 않는다고 하는데, 약간 좀 그런 기질이 있어요. 은근히 좀 남자 같은 기질이 있어요.
강동호의 애쉬는 어떤 캐릭터일까요?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많은 사람이 저에 대해서 말하는 ‘교회 오빠’라는 이미지를 부각하려고 해요. 예를 들어 애쉬의 대사는 이런 식이죠. ‘아니야. 셰럴. 괜찮아. 과연 내가 너를 데리고 오지 않았다면 참다운 여행을 할 수 있을까?’라는 대사를 정말 독특한 톤과 느린 속도로 말을 해요. 처음엔 이렇게 시작을 해서 굉장히 스펙터클한 사건들이 벌어지고, 애쉬가 변해 가거든요. 그런 모습을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내버려 두려고 해요. 알아서 미치고 성질도 내고 그러는.
강동호 하면 떠오르는 바른 생활 청년에 대한 부담감은 없나요?
하하, 부담감을 느끼지 않아요. 왜냐면, 이런 부분이 재미있는 것 같아요. <쓰릴 미>를 보셨던 분들은 <키다리 아저씨>를 한다고 할 때 상상을 못 하시더라고요. <쓰릴 미>에서는 굉장히 차갑고 시니컬한 사람이어서 <키다리 아저씨>를 한다는 게 상상이 안 된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이번에도 마찬가지예요. 전에 제가 했던 작품에 익숙하신 분들은 <이블데드>에서의 제 모습이 상상이 안 간다고 하실 거예요. 경험에 따라 선입견은 바뀌기 마련이죠. 그래서 그거에 대한 부담은 없어요.
작품에서 애쉬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초반에 여동생, 여자친구, 친한 친구, 친구의 여자친구 5명이 여행을 떠나요. 거기서 좀비로 변하기 전까지 모든 상황이 여동생을 대하는 애쉬, 여자친구를 대하는 애쉬, 제일 친한 친구와 그의 여자친구를 대하는 애쉬. 모든 면에서 애쉬의 성격이 많이 묻어나요. 작품의 초반에 캐릭터를 명확하게 살려낼 장치와 대사를 넣어 만들었거든요. 지나치게 ‘교회 오빠’를 연상시키는 장치들이 많아요.
<이블데드>에서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면?
와, 이 질문 정말 어렵네요. (웃음) <이블데드>는 제가 좋아하는 작품이라 그런가, 좋아하는 장면도 많아요. 그래도 꼽자면…, ‘슈퍼마켓 하모니’라는 넘버가 있어요. 린다와 애쉬의 사랑의 세레나데인데, 두 사람의 극적인 사랑을 표현하거든요. 슈퍼마켓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애쉬랑 린다가 연애하게 되는데, 애쉬가 린다에게 ‘나는 슈퍼마켓에서 이렇게 일을 하다가 너랑 사랑에 빠지게 될 줄은 몰랐어. 하늘이시여. 우리에게 왜 이런 사랑을 내리셨나요?’라면서 노래를 불러요. 두 사람은 진지하지만 상황이 웃겨요. 또 극적인 노래에 안무가 되게 많아서, 보시면 빵 터질 거예요. 또 여동생과 제 친구의 여자친구가 좀비가 되어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는데, 그 후에 애쉬랑 친한 친구랑 둘이서 부르는 '죠낸 퐝당해'라는 곡이 있어요. 그것도 너무 웃겨요.
강동호의 성장점
다양한 작품에 참여했더라고요. 작품의 선정 기준이 궁금한데요.
정말 모르겠어요. 감인 것 같은데, 일단 어떤 특정 장르를 선호하지는 않아요. 어떤 장르나 작품이든 완성도나 정서, 느낌이 뭔가 확 와 닿는 것이 있어요. 무의식적으로 그런 건 있죠. 제가 과거에 했던 작품이랑 비슷하면 피하게 돼요. 예를 들어 <쓰릴 미> 이후 차가운 느낌은 저도 모르게 피하게 되더라고요. <키다리 아저씨>가 들어왔을 땐, 따뜻한 작품을 할 수 있었고 이후에 <이블데드>는 재미를 위해 막가는 스토리를 선택했죠. 이렇게 되는 것 같아요.
드라마나 캐릭터 중 어느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나요?
어렸을 때는 확실히 캐릭터에 끌렸던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인가. 이게 조금 더 중요한 것 같았는데 요즘엔 드라마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딱히 내 캐릭터가 강한 개성을 가지거나 돋보이지 않아도 드라마가 좋으면 딱히 캐릭터가 튀지 않아도 선택하죠. 바로 그런 작품이 <키다리 아저씨>에요. 문자 그대로 키다리 아저씨는 키다리 아저씨 같은 거잖아요. 남성적인 면을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굉장히 웃기는 인물도 아니에요. 개성이 강한 캐릭터가 아니지만 <키다리 아저씨>의 이야기가 너무 좋았어요.
연기 인생의 전환점이 된 작품을 꼽자면?
시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2016년도의 <쓰릴 미>요. 군대를 갔다 와서 처음 한 작품이면서도, 되게 달라져 있는 제 자신을 발견했어요.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요. (웃음)
긍정적으로 변했다는 걸 느꼈나요?
네, 긍정적으로 변했죠. 제가 군대에서 특별히 연기 연습을 한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런 변화가 생겼어요. 연기는 열심히 연습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살아가면서 어떤 경험이 쌓이고 그 사이에 인간으로서 성장하는 모습이 투영되는 것 같아요.
과거의 자신을 판단한다면 어떤 배우였던 것 같아요?
과거를 거쳐서 저라는 사람이 있지만, 동시에 한없이 아쉬움이 남아요. 조금 더 치열하게, 더 잘해 볼걸. 그런 생각도 하고.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이런 생각도 들고. 물론 그 시간 동안 제가 얻은 것들에 대해 감사하지만, 그만큼의 아쉬움이 있어요.
스스로 성장했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나요?
연습실에 갔을 때, 동생들과 후배들이 훨씬 더 많을 때. 그리고 연습실에서나 무대 위에서 노련해진 나 자신을 발견할 때요. 스스로 ‘어유, 동호 많이 컸다’란 생각이 들죠. (웃음)
무대에서 가장 행복할 때는 언제인가요?
배우가 무대에 서는 이유는 나 자신이기도 하지만, 결국 관객이라고 생각해요. 가장 행복할 때는 바로 그때죠. 제 공연을 보시는 분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행복해요. 관객이 있어야 공연은 이어지니까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6호 2017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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