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물처럼
김경수의 최근 일정은 <인터뷰>부터 <리틀잭>, <사의 찬미>까지 빼곡히 들어차 있다. 그가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 알 수 있는 한 단면이다. 그에게 쇄도한 정말 많은 질문들도 그랬다. 그는 이 질문들에 고뇌한 흔적과 배려가 묻어나는 말들로 화답했다.
* 이 기사는 <인터뷰>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리틀잭>의 매력
THE MUSICAL 특별 공연으로 <리틀잭>에 참여하는데, 출연 회차가 적어 아쉽습니다. (spica0109)
김경수 저도 너무 아쉽습니다.
“<리틀잭>은 노래들이 좋아요. 다미로 작곡가가 썼죠. 용순 형. 처음에는 여성인 줄 알았어요.(웃음) 대단한 형이에요. 확 꽂히는 멜로디 라인을 정말 잘 써요. 개인적으로 마지막에 부르는 ‘마이 걸’이 좋은데 혼자 부르는 것 같다는 생각도 안 들고 줄리가 옆에 있는 것 같아서 부를 때 재밌어요. ‘너란 이유’는 굉장히 즐거울 때를 회상하면서 부르는 노래라 좋아해요.”
THE MUSICAL 잭 피셔를 볼 때 더 집중해 줬으면 하는 부분들이 있나요? (hiverl)
김경수 깔끔한 진행.
“공연은 시간이 흐를수록 편해지잖아요. 그러면서 관객분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한 거지만 애드리브가 늘어나면 담백함을 잃어가거나 들려줘야 할 이야기를 놓치게 될 때도 있어요. 이번에는 뭘 얘기하고 싶은지에 집중해서 잘 올리고 싶어요. <리틀잭>이 분위기를 많이 타는 공연이고 콘서트형 뮤지컬이라 호응이 많을수록 즐겁지만 영향받지 않으려고 해요.”
THE MUSICAL <리틀잭>을 다시 하게 되었는데 휘파람 연습은 좀 했나요? 이번엔 완벽한 휘파람을 볼 수 있겠죠? (rladidtns)
김경수 제 주특기입니다. 하하.
“줄리를 불러내는 신호로 휘파람을 부는데 제가 휘파람을 잘 못 불었어요. 그걸 어떻게든 무마해 보려고 애드리브를 하기도 했거든요. 공연 끝나고 ‘언젠가는 <리틀잭>을 또 하게 되겠지’란 생각이 들어서 다음 작품인 <라흐마니노프>에서 일부러 휘파람을 불어봤어요. 어떻게든 휘파람 소리가 나오게 하려고. 이번에는 어느 정도는 만든 것 같은데 그래도 모릅니다. 변수가 많으니까요.”
THE MUSICAL <리틀잭>과 다른 여러 공연들에서 악기를 많이 다루는데요, 특별히 배워보고 싶은 악기가 있나요? (hiverl)
김경수 제대로 비올라를 배우고 싶습니다.
<인터뷰>로 만난 다중 인격
THE MUSICAL <인터뷰>에서 싱클레어 고든을 연기하기 위해 참고했던 작품이나 배우가 있었나요? (romantic09)
김경수 빌리 밀리건.
“<인터뷰>를 하면서 다중 인격에 대해 처음 알게 됐어요. 영화나 미드를 주로 보는 편이라 <킬미힐미>를 못 봤는데 비슷하다고 많이들 얘기하시더라고요. 작품에서 인격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정해져 있지 않아서 전사를 만들었는데 빌리 밀리건이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THE MUSICAL 그동안 해온 작품들 중에서 가장 고민에 빠지게 했던 캐릭터는 무엇이었을까요? (soru1229)
김경수 지금 하고 있는 싱클레어인 것 같습니다. 다중 인격 너무 어려워요. 흑흑.
“다중 인격 캐릭터는 무대에서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최대한 전사를 많이 생각하고, 행동의 표현이나 톤을 바꾼다든지 하는 기술을 이용해요. 공연 중간에 인격들이 한 번에 몰려서 나오는 장면이 있어요. 표정 연기로 표현해 보고 싶었는데 뒷좌석에 계신 분들에게까지 설득력 있게 전달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어려워요.”
THE MUSICAL <인터뷰>에서 가장 표현하기 힘들었던 인물이 있나요? (hiverl)
김경수 우디와 앤입니다.
“이란성 쌍둥이인 우디와 앤은 제가 좋아하는 캐릭터이면서도 가장 해내기 힘든 캐릭터예요. 성인 남자가 목소리를 바꿔가면서 각기 다른 어린 인격을 연기하는 게 굉장히 조심스러워요. 관객분들이 보시기에 부담스럽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요. 둘이 겹치는 공통분모를 표현하고 싶은데 조금만 잘못해도 표현이 덜 되기도 해서 조심스러워요. 과격한 인격은 제가 비슷한 역할을 해봐서 상대적으로 접근이 수월해요. 대장인 노네임이란 인격도 전체적으로 이질감이 들지 않게 표현하는 건 쉽지 않지만 접근 자체는 쉬워요.”
THE MUSICAL 초연 때는 안경을 쓰고 재연 때는 안 쓰더라고요. 이유가 있나요? (eve222)
김경수 딱히 없습니다.
“안경을 끼는 건 혼자만의 선택이 아니라, 크리에이티브 팀과 얘기를 꼭 합니다. 작품을 봤을 때 그 캐릭터가 안경을 껴서 더 시너지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 껴요. <보도지침> 때는 실제 인물인 김주원 기자님은 안경을 착용하지 않으셨는데 기자니까 지적으로 보여야 할 것 같아서 단순하게 껴봤는데 막상 공연을 해보니까 불편하더라고요. 그래서 프로필 촬영과 첫 공연 때까지만 안경을 쓰고 이후엔 빼버렸어요.”
연기를 위한 노력
THE MUSICAL 배우를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다면요? (jenjung)
김경수 노래를 더 잘하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노래보다 연기가 더 좋고 훨씬 어렵고 끝까지 해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왕세자 실종사건>을 할 때 온전히 연출님께 모든 걸 맡기고 시키는 대로 했어요. 그때 처음으로 연기에 대한 좋은 평을 들었는데 다음 작품에서 그런 말들이 싹 사라졌어요. 그러면서 ‘좋은 연기를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뮤지컬에서 어떻게 하면 노래를 더 말처럼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시작됐고요. <빨래>를 할 때는 더더욱 그랬어요. 그때 노래 못한다는 얘기를 제일 많이 듣기도 했고요. 기술적으로 좋은 소리를 뽑아내기 위한 노력보다 말처럼 들릴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THE MUSICAL 작품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어요? (kmj1984)
김경수 대본과 크리에이티브.
THE MUSICAL 처음 연극에 도전했는데 어떤 점이 매력적이었나요? (poopooo)
김경수 연극의 매력을 떠나 대본이 너무 훌륭했습니다.
“넘버를 부를 때 너무 노래하는 것처럼 보이는 점이 힘들었는데 답은 결국 연기였어요. 뒤늦게 깨닫고 연극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어요. ‘어떻게 저렇게 연기하지?’란 생각에 많이 좌절했어요. 그만큼 좋은 작품들을 본 것이겠지만 자신감도 떨어지고 연극을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기회가 와도 겁이 나서 뮤지컬을 먼저 선택했고요. 그런데 <보도지침>은 <라흐마니노프>를 같이한 오세혁 연출님과 이진욱 작곡가님이 함께해서 어떤 텍스트여도 믿고 갈 수 있겠다 싶었어요. 같이 공연했던 박유덕 배우와 (안)재영이도 같이 했고. <보도지침>을 첫 연극으로 하게 되어서 굉장히 다행이고 감사했어요. 기회가 된다면 끊임없이 도전하고 싶어요.”
THE MUSICAL 공연을 여러 번 보다보면 캐릭터에 대한 디테일이 점점 많아지고 깊어지는 것을 보며 놀라게 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캐릭터에 녹아들어 생기는 결과물일까요? 아니면 치밀한 준비의 결과일까요? (soru1229)
김경수 매회 공연 전에 고민합니다. 안주하지 않으려고요.
“올해는 제가 좋아하는 공연에 다시 참여하고 있어서 행복하면서도 부담스럽고 위험하기도 해요. 직전 공연에서 보셨던 기억들을 훼손시키고 싶지 않거든요. 거기에 부응하는 연습량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틈날 때마다 참여할 작품들을 계속 모니터해요. 혹여나 공연에 다시 참여했을 때 잊지 않으려고 회사 직원분들께는 죄송하지만 공연 촬영해 둔 게 있으면 무조건 달라고 해요. 그리고 대본을 직접 써서 그 흐름을 다 적어놔요. 제 역할 대사만 따로 써놓으면 재밌는 걸 많이 발견해요. 이 사람의 화법을 알게 되고 잊지 않죠. 더 찾을 수 있는 것들이 있거든요. 그걸 최대한 활용해서 재공연에 임하려 하고 있어요.”
THE MUSICAL 여태까지 해본 배역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가 있나요? (sku3020)
김경수 초연을 한 캐릭터들은 모두 애착이 갑니다. 그리고 재연으로 참여했지만 <빈센트 반 고흐>를 너무 사랑합니다.
“제가 초연 작품에 출연한 지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어요. 이미 만들어진 작품에 합류를 하거나 라이선스를 하면서 제 힘으로 뭔가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중에 <사의 찬미>를 만났어요. 정말 열심히 연습했고 그 작품으로 제가 안경 캐릭터를 처음 만들었어요. 그 캐릭터가 많이 사랑받다 보니까 관객분들이 많이 기억해 주셔서 안경을 안 끼면 서운해하고 그러셨던 것 같아요. 창작 초연을 하면 희열을 느끼는 것 같아요. 다음에 재연, 삼연을 하게 됐을 때 다른 배우들이 표현하는 걸 보면서 쾌감도 느끼고 보지 못했던 부분을 발견하게 되거든요. 사람에 따라 너무 다른 해석과 표현이 나오기 때문에 너무 재밌고 창작은 무한할 수밖에 없구나 싶어요. 첫 공연에 제 이름을 올린다는 건 행복한 일 같아요.”
THE MUSICAL 작품을 볼 때마다 역할들의 감정이 극과 극을 빠르게, 많이 오간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평소보다 연기할 때 유난히 감정 폭이 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thehightime23)
김경수 그런 역할들을 맡아서이지 않을까요?
“극에 치닫는 상황을 겪는 역할을 많이 했던 것 같은데 밝은 역할도 (감정 소모는)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우울하거나 화를 내는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보다 즐겁고 밝게 해주는 에너지를 쓰는 게 더 어려워요. 저도 코미디를 두려워하고 어려워하지만 밝은 역할도 할 수 있으면 하고 싶어요. 그런데 모든 역할에는 밝음과 어둠이 공존하거든요. 어두운 상황에서 블랙 코미디를 하기도 하잖아요. 그런 게 좋은 것 같아요.”
THE MUSICAL <광염 소나타> 본 공연에 참여할 생각이 있나요? (romantic09)
김경수 그럼요.
“공연 기간에 이미 정해진 작품이 있어서 참여하지 못했어요. 무리하게 해서 작품에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거든요. 이 작품은 특히 고민을 더 해야 한다고 느끼기도 했고요. 작년 인큐베이팅 때부터 참여해서 애착도 많고, 맡았던 역할 말고 J 역도 할 계획이 있었거든요. 개연성이나 논리적인 부분도 더 정확히 짚고 싶고 특히 연주하는 부분은 실력을 훨씬 키우고 싶었어요. 천재 작곡가라는 역할에 걸맞지 않은 실력이라 생각했거든요. 역할에 훨씬 근접한 캐릭터를 만들고 싶어서 여유를 갖고 하고 싶었는데 이번엔 상황이 맞지 않았어요.”
THE MUSICAL 했던 캐릭터 중에서 가장 친구 삼고 싶은 캐릭터는 무엇인가요? (gn1010)
김경수 빈센트 반 고흐.
“고흐의 삶과 고뇌가 너무 아팠어요. 그 영향으로 유럽에 있는 그의 무덤까지 찾아갔거든요. 고흐의 그림을 보면 치유되는 느낌이 들어요. <빈센트 반 고흐>는 작품 자체가 매력 있었고, 인물이 주는 힘이 컸어요. 덕분에 그를 더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됐고요. 무엇보다 함께했던 배우들을 좋아해요. 하나같이 잘 맞아서 이 사람들하고만 공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어요. 그리고 고흐의 그림은 자체만으로도 살아 있는 것 같거든요. 강을 표현한 그림을 보면 강이 흐르는 느낌이 들고. 그걸 공연에서 영상 효과로 부각시켜 주니까 더 매력적이었어요.”
THE MUSICAL <사의 찬미> 때 찌그러진 쓰레기통 참사가 너무 웃겼어요. (dawool100)
김경수 제일 잊지 못할 참사 중 참사입니다. (신)성민아 미안해. 그리고 그날 제 모습을 아직도 잊지 못하시는 모든 분들께 죄송한 맘입니다.
“이상하게 무대와 소품과는 안 친한 것 같아요. 그 상황을 생각하면 정말 웃겨요. 제가 왜 그런 시도를 했을까…. 괴로워하면서 쓰러지는 장면에서 모르고 쓰레기통 위로 넘어졌는데 반으로 찌그러졌어요. 문제는 뒤에 사내 역할 맡은 배우가 그 안에 종이를 불태워 넣어야 하는데 육안으로 보기에 안 들어가겠더라고요. 쓰레기통이 철이라 찌그러진 만큼 또 펴질 것 같아서 원래대로 돌리려고 시도했는데 안 펴지는 거예요. 상황이 자연스럽게 흘러갔으면 좋았을 텐데 무대 위 돛대 쪽에는 신성민 배우가 저를 바라보며 노래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제 행위를 보고는 등을 돌리기 시작하더라고요. 저도 하면서 실소를 했고. 거의 절반 정도의 관객분들이 웃고 계시다는 걸 느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어떻게든 어느 정도 폈던 것 같아요. 나름대로 집중해서 했던 터라 순간 다 잊혀졌는데 이후에 굉장한 사건으로 남았어요. 심지어 만화로도 표현하신 걸 본 적이 있는데 덕분에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어요.”
머물지 않고
THE MUSICAL 요즘 많이 바쁜데 건강관리 비법이 있나요? (kmj1984)
김경수 꾸준한 운동. 하하.
THE MUSICAL 쉬는 날엔 주로 뭘 하나요? (seasalt)
김경수 주로 파주의 단골 카페에서 독서와 커피를…. 너무 가식적인가요? 하하.
“더 박학다식해졌으면 좋겠어요. 어떤 작품을 하게 되더라도 재미있게 만들 수 있는 역량을 키우고 값지게 만들 수 있도록 훈련이 많이 필요할 것 같아요. 경험을 바탕으로 표현했을 때 독이 되는 부분이 있거든요. 결국 어디선가 봤던 걸 테고, 뻔한 상황이 될 수도 있고 잘못하면 작품들이 다 똑같아 보이는 함정이 생겨요. 그래서 더 많이 열린 사고와 시야가 필요할 것 같아요. 거꾸로 생각해 보는 사고의 전환도 필요하고. 독서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THE MUSICAL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은 어떤 것이었나요? (onbi5771)
김경수 <유럽 블로그>를 통해 다녀왔던 이탈리아의 친퀘테레!
“여행은 시간만 나면 가려고 하고 있어요. 친퀘테레는 약간 경사진 언덕에 알록달록 집들이 붙어 있어요. 거기서 숙박을 했는데 테라스 바로 앞에 바다가 있어요. 바다를 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광경이 보이죠.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았어요.”
THE MUSICAL 30년 후 김경수는 어떤 모습일 거라 꿈꾸나요?
김경수 딸바보.
“아직 아기가 없는데 딸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고대하고 있습니다. 주변에도 딸 가진 동료들이 많은데 부럽기도 하고요. 여자 조카가 있는데 정말 좋아하거든요. 제 생일 때 ‘이모부 사랑해요. 축하해요’ 하면서 영상을 보내줬어요. 이 영상을 늘 들고 다니는데 보면서 <인터뷰>의 앤 역할을 공부하기도 했고. ‘(영상 보고 공부해서) 미안해!’”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6호 2017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