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2018 국립극장
레퍼토리 시즌 개막
국립극장이 2017-2018 레퍼토리 시즌 개막을 알렸다. 올 시즌은 해오름극장의 리모델링이 본격화됨에 따라 외부 공연장으로 무대를 확장해 공간적 변화를 시도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지난 다섯 번의 시즌이 전통에 시대적 변화를 입히는 작업이었다면, 이번 시즌은 제작과 운영에 깊이와 정교함을 더해 전통에 기반을 둔 작품들의 예술적 완성도를 높이는 데 주력했다. 9월 6일부터 내년 7월 8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시즌은 국립극장 전속 단체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신작 및 레퍼토리, 그리고 NT Live, 마당놀이 등 총 44편의 작품이 무대에 오른다.
국립창극단, 한국적 소재의 힘
국립창극단은 가장 한국적인 소재로 판소리 본연의 맛을 담아낸 신작 두 편을 공개한다. 첫 번째 작품은 사실주의 희곡의 걸작으로 꼽히는 차범석의 <산불>(10월 25~29일)이다. 최치언이 극을 쓰고, 인간에 대한 치밀한 해석을 보여주며 극단 백수광부를 이끌고 있는 이성열이 연출을 맡는다. 국악앙상블 비빙을 이끌고, <곡성>, <마스터> 등 영화음악 작업까지 전천후로 활약 중인 장영규 음악감독의 첫 창극 도전이다. 또한 지난해 <오르페오전> 이후 1년 만에 선보이는 대극장 창극이자, 리모델링되기 전 해오름 무대에 마지막으로 오르는 창극이다.
또 한 편의 신작은 우리나라 최초 여류 명창 진채선의 이야기를 담은 <진채선(가제)>(2018년 4월 25일~5월 6일)이다. 판소리가 남성만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시절 웅장한 성음과 다양한 기량으로 왕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국창으로 거듭난 여성 소리꾼 진채선의 이야기를 그린다. 배삼식이 대본을 쓰고, 손진책이 연출을 맡아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오른다. 이번 시즌 국립창극단의 또 하나의 도전은 ‘新창극 시리즈’(2018년 2월 28일~3월 4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다. 두각을 나타내는 젊은 예술가들과 합작해 새로운 스타일의 창극을 제작하는 프로젝트다. 그 첫 주자는 이자람으로, 그녀가 극본을 쓰고 연출을 맡아 새로운 스타일의 창극을 선보인다. 이후 연극 연출가 김태형, 전인철, 박지혜 등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예정이다.
지난 시즌 사랑을 받은 두 편의 창극이 다시 돌아온다. 그중 <트로이의 여인들>(11월 22일~12월 3일)은 싱가포르 연출가 옹켄센이 연출, 판소리의 거장 안숙선 명착이 작창, 배삼식이 극본, 최근 영화 <옥자>에 참여해 화제를 모은 정재일 음악감독이 작곡을 맡은 작품이다. 또한 이 창극은 이번 시즌 싱가포르와 영국, 2개국 3개 도시 해외 투어에 나서 눈길을 모은다. 고선웅 연출과 이자람 음악감독이 협업한 <흥보씨>(2018년 6월 27일~7월 8일)도 재연한다. 형과 아우가 뒤바뀐 설정, 외계인 중의 등장 등 대담무쌍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국립무용단, 전통의 진화
이번 시즌 국립무용단이 선보이는 첫 작품은 신작 <춘상(春想)>이다. 한국무용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안무가 배정혜의 <춤, 춘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묵향>과 <향연>으로 세련된 미장센을 보여준 정구호가 연출을 맡는다. 패션 디자이너에서 공연 연출가로 변신한 정구호가 극 형식의 무용 작품에 도전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야기는 고전소설 『춘향전』을 현대로 옮겨와 청춘의 사랑 이야기로 새롭게 그린다. 영화 <올드보이>, <건축학개론>의 작곡가 이지수가 음악감독으로 참여한다. 안무가 신창호의 신작 <맨 메이드(Man-Made)>도 이번 시즌 기대작 중 하나다. 인간과 인간이 만든 매체가 공감한다는 주제로 무용수의 움직임을 현대적으로 그린 작품. 강렬한 군무의 에너지를 선보이는 신창호 특유의 안무가 국립무용단과 만나 어떤 색깔로 표현될지 기대를 모은다.
국립무용단의 대표 레퍼토리 <묵향>과 <향연>도 이번 시즌을 풍성하게 채운다. 윤성주가 안무, 정구호가 연출을 맡은 <묵향>은 울산 문화예술회관(11월 3일), 해오름극장(11월 10~12일)을 거쳐 베트남 호아빈 극장(11월 16일)에도 오른다. 조흥동이 안무, 정구호가 연출을 맡은 <향연>은 현대적 감각을 입힌 전통춤과 세련된 무대 미학으로 평단의 호평을 받은 작품. 올 연말 해오름극장(12월 14~17일)에서 공연한 후 내년 6월 예술의전당과 대전 예술의전당에 차례로 오른다.
국립국악관현악단, 전통의 소통
올 시즌 국립국악관현악단의 화두는 소통이다. 그에 따라 각각 클래식과 국악계를 대표하는 두 거장 지휘자 임헌정과 박범훈이 이번 시즌 대형 연주회를 이끈다. 2015년 ‘임헌정과 국립국악관현악단’으로 국립국악관현악단과 인연을 맺은 임헌정은 이번 공연을 통해 국악의 또 다른 혁신을 보여줄 예정이다. ‘2017 마스터피스-임헌정’은 9월 28일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한다. 2018년 공연하는 ‘베스트 컬렉션Ⅳ-박범훈’(6월 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박범훈이 직접 선택한 자신의 음악과 이번 공연을 위해 작곡한 신작을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자리다.
각기 다른 개성의 작곡가 5인이 자신이 고른 판소리 다섯 바탕을 새롭게 해석한 공연 ‘다섯 판소리’(11월 17일, 해오름극장)도 눈길을 끈다. 강상구, 서순정, 이지수, 이용탁, 황호준, 5명의 작곡가가 참여해 판소리의 새로운 세계를 보여줄 예정이다. 40대 상주 작곡가 최지혜와 더불어 국악과 양악의 접점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젊은 작곡가 김보현, 니키 손이 함께 ‘리컴포즈X상주작곡가’(2018년 3월 23일, 달오름극장)에서 선보일 독창적인 음악 세계도 주목해 보자.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7호 2017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