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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ULTURE INTERVIEW] <비너스 인 퍼> 방진의 [No.167]

글 |박보라 사진 |김영기 2017-08-10 5,921

<비너스 인 퍼> 방진의

에로틱한 권력의 맛




‘마조히즘’이라는 말을 탄생하게 만든 레오폴트 폰 자허마조흐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연극 <비너스 인 퍼>가 초연한다. 작품은 에로틱하면서도 코믹한 분위기로 권력이 갖는 힘을 솔직하게 풀어낼 예정이다. 특히 상대방을 지배하는 관계를 그릴 벤다 역에는 결혼과 출산 후 다시 무대에 서는 방진의가 캐스팅됐다. 그녀가 그리는 에로틱한 권력의 모습은 과연 어떨까.





권력의 승자

                     

오랜만의 무대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아이를 키웠다. 정말 집에서 아이랑만 있었다. (웃음) 무대에 너무 서고 싶었다. 아이를 키우는 와중에도 중간중간 무대와 연기 생각이 많이 났다. 그렇게 생각이 났어도, 온 힘을 다해 육아에 열중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두 가지 일을 동시에 못하는 편이다. 때를 기다리고 있다가 이제야, 무대로 돌아왔다.


<비너스 인 퍼>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비너스 인 퍼>는 전부터 대본을 봤던 작품이었다.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좋은 기회가 왔다. 처음엔 작품이 안개 같다고 해야 하나, 이미지는 어느 정도 알 것 같았지만 실체를 쉽사리 이해하기 힘들었다. 음, 몽환적이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 읽으니까 시선이 달라지더라. 싱글 때 읽었던 것과 다른 기분이었다. 연애를 하면서 느꼈던 파워 게임이 결혼을 하고 나서의 파워 게임과 다른 것 같다. 이런 차이를 알기에 이 작품이 더 궁금해졌다.


작품은 오디션 현장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오디션에서 절대 일어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장면이다.

처음에는 좀 당황했다. 벤다가 왜 오디션을 계속 보겠다는 거지? 벤더가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원작과 우리의) 정서 차이도 있는 것 같다. 지금은 벤다가 굉장히 이 배역을 하고 싶은 여배우라고 접근하고 있다. 작품이 끝으로 가면 약간의 반전이 있는데, 이해가 잘 가지 않았던 앞부분이 설명된다. 사실 나조차도 첫 장면에 들어가기 힘들었다. 그래서 ‘진짜 이 오디션을 보고 싶다’라고 계속 되뇌고 있다. 아마 실제로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전화해 못갈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고 포기할 거다. (웃음)


반전이 있는 작품이다. 반전이 주는 긴장감을 더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작품의 반전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굉장히 자연스럽다. 점점 사람을 스미게 만든다. 결국 상대방이 눈치챌 수 없는 새에 순식간에 권력이 뒤엎어지는 거다. 그러니까 ‘반전’에 집중하는 대신에 그냥 쭉 이야기를 따라가면 된다. 그래서 반전을 위한 특별한 준비는 없다. 다만, 작품을 위해서는 벤다와 토마스의 대화를 정리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처음에 안개와 같다고 느껴서, 우리가 완전하게 이해를 해야만 관객에게 던져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권력 관계가 엎어지는 과정이나 반전이 어떤 식으로 그려지나.

요즘엔 대본이나 연습을 본 사람들에게 작품이 어떠냐고 꼭 묻는다. (웃음) 사실 보고 말을 해주는 것이 가장 정확하니까. 우리는 작품에 푹 젖어있어서 (반전이나 권력 관계에 대해) 사실 잘 모른다. (웃음) 작품 속엔 또 다른 공연이 등장한다. 리딩 공연을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벤다와 토마스의 싸움이라는 걸 자연스럽게 알아차린다. 그리고 반전으로 치닫는 거다. 여기에 마지막엔 열린 결말로 마무리가 된다. 그래서 보는 사람마다 해석하기 나름이다.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의 해석을 관객에게 열어 놓은 걸 제외하고는 (작품이) 힘들지 않다고 하더라. 그래서 조금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것 같다.


극중극 형태로 진행된다고 들었다.

그래서 재미있다! 벤다와 극중극의 캐릭터가 만나는 부분이 아주 절묘하게 섞여있다. 자꾸만 자연스럽게 작품을 따라가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극중극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양식적인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걸 제외하면 딱 알아차리게 된다. 정말 (대본을) 잘 쓴 것 같다. 그러니까 극중극 캐릭터는 시대를 앞서가는 인물을 그리고, 벤다는 지금 현재의 나를 표현한다. 이 두 사람의 교차점에서 시대성이 살짝 묻어나면서 재미있는 매력이 발산된다. 사실 처음에는 극중극 캐릭터를 따로 연구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접근하니까 풀리지 않아서 애를 먹었다. 그러다가 두 캐릭터를 따라가 보니까 결국엔 만나는 걸 알아차렸다. (웃음) 워낙에 몽환적인 작품이라, 배우들과 연습을 하다가 머리를 맞닿을 때가 많았다. 마치 갔던 길을 또 다시 가는 기분이랄까.





사랑의 또 다른 형태

                     

벤다라는 캐릭터는 어떤 인물인가?

특이했다. 처음엔 자꾸만 나조차도 그런 생각이 드는 거다. 아니, 이 여자 왜 이래? 그런데 연습을 하면서 익숙해진 건지 (벤다가) 평범한 일상을 아주 살짝 건드리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메조히즘이라는 개념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다. 그런데 이게 살펴보면 우리의 이야기다. 작품은 사랑이 폭력성을 띄고 있다는 걸 알려주면서, 사랑을 하는 과정을 그린다. 그러니까 사랑이 시작되고 두 사람이 계속 맞지 않았다가 결국엔 폭력성을 드러내는 거다. 그러다가 마지막엔 여자의 승리로 끝나고. 이 과정이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마조히즘’이 변태적인 건 아니구나 깨달았다. 물론 폭력으로 인해 쾌감을 느낀다는 것에 관한 선입견이 있었다. 그런데 수면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본다. 벤다를 통해 차마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할 수 있게 됐다.


조심스럽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괴롭히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있는 것 같다.

맞다. 아이가 너무 예쁜데 울리고 싶을 때가 있다. (웃음) (또 나쁜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들도 있다.) 그것도! 그런 부분을 다 공감할 거다. 심지어 작품은 여자의 심리를 너무 잘 써놨다. 원작 소설에서도 그런데, 소설을 보고 ‘뭐야, 진짜 여자를 잘 안다’라고 감탄했다. 가슴에 팍팍 꽂힌다.


벤다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 점이 있나.

우선 연습실에서 쫄바지를 입는다. (웃음) 내게서 없어진 모든 섹슈얼리티를 끌어내려고. 사실 공연 자체는 대놓고 섹시함을 드러내지 않는다. 대사 속에서 상상을 하게 만든다. 물론 장치적인 건 있다. 몸의 실루엣이나 달라붙은 의상 그리고 제스쳐 등. 그래도 중요한 부분은 대사를 통해 귀를 간질간질하게 해준다. 이걸 잘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 한정적이었던 여성 캐릭터들이 매력적으로 변하고 있다. 그리고 벤다는 무대에서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캐릭터다.

처음에는 괜찮을까 걱정했는데, 속이 다 시원한 캐릭터다. 그래서 여자들이 벤다를 보면 통쾌하다고 느낄 수 있다. 사실 지금까지 여성 캐릭터는 딱 두 부류였지 않나. 섹시하거나 청순하거나. 그런데 벤다는 여전사의 분위기도 풍긴다. 여성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당당하게 내뱉는다. 고민했던 부분을 망설임 없이 뱉는다. 


벤다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개인적으로는 캐릭터를 처음 만날 때 나와 닮은 점을 찾는다. 벤다는 굉장히 솔직하다. 군더더기가 없다. 사람들은 잘 모르는 부분도, 잘 안다고 말을 하거나 혹은 이것저것 설명을 하게 된다. 그런데 벤다는 그렇지 않다. 핵심을 알고 있는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소주 한 잔을 마시면서 그런 핵심을 시원하게 말할 것 같다. 욕도 좀 하면서. (웃음) 그래서 벤다를 연기하면서 내 속이 다 시원할 정도다. 이 부분이 벤다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에서 좋아하는 대사나 장면을 꼽아달라.

때리는 장면! (정말 폭력적인 장면이 구현되나?) 어떨 것 같나? (웃음) 직접적인 장면은 없다. 그래서 사람이 미친다. 직접적인 장면을 표현하면 (작품이) 깨진다. 그래서 상상 속에서 펼쳐지는데, 정말 매력 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가 펼쳐졌을 때 드는 쾌감이 있다. 사랑하는 상대방을 굴복시켰을 때, 느껴지는 부분들. 예를 들어 연인 관계에서 갑자기 연락을 안 하거나 무시를 하는 것도 폭력성을 띄는 거다. 상대방에게는 미칠 노릇이지 않나. 사실 직접적으로 행하는 신체적인 폭력이 없지만 마음을 폭행한 거다. 근데 이때 느껴지는 쾌감, 집에 들어가서 절로 지어지는 미소. 이런 것들 말이다.


그런 부분에서 느끼는 승자라는 우월감도 있을 거다. 사랑의 크기를 확인할 수 있는.

그럴 수밖에 없다. 사랑을 하면서 동등한 적이 있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의 크기는 시소처럼 늘 움직인다. 내가 올라갔다고 생각했지만 갑자기 내려가고. 그 사람이 내려갔다고 생각했는데 올라가고. 그리고 결혼하면 이런 파워 게임이 다른 형태로 극명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웃음) 그래서 이 공연이 싱글 때와는 다르게 다가온다. 싱글 때는 어쩌면 사랑만으로 시소가 움직이는데, 지금은 조금 다르다. ‘아하! 이것만은 내가 질 수 없지’ 이런 마음도 들 때가 있다. (웃음)


쉽게 접할 수 없는 소재에 초연 작품이다. 배우들이 많이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

맞다. 이대 캠퍼스 잔디밭에 앉아서 이야기하기도 했다. 작품에 대해 찾아갈 때 고민한 부분도 있었지만 스태프들과 배우들을 믿으면서 만들어가고 있다. 2인극이기 때문에 호흡이 중요해서 파트너인 (이)도엽 오빠를 따라가는 것도 있다.


2인극이 사실은 가장 어려운 작품이지 않나.

두 사람이 한 시간 사십 분을 독대한다. 서로 우리 둘뿐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다행히도 도엽 오빠와 나는 작품에 대해 생각하는 것들이 잘 맞는다. 솔직하게 그런 생각이 안 맞을 경우엔, 함께 맞추는 데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참 좋다. 종종 몰입이 안 된다는 느낌이 들면 도엽 오빠를 바라본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순식간에 몰입이 된다. 참 좋은 파트너를 만났다.



작품 선택하는 기준이 있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점이 달라졌을 것 같기도 하다. 

더 심플해지는 것 같다. 재미있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다. 물론 재미는 내 기준이다. 그런데 보통 ‘이거 뭐지?’라는 호기심이 드는 게 내겐 재미다. 그런데…, 가리고 싶지 않다. 다 할거다. 경력 단절 안 된다. (웃음)


인터뷰를 하면서 경력 단절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참 현실적이다. 

맞다. 여자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경력 단절이 없을 수가 없다. 끈을 잡는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육아와 가사에 대한 끈도 참 괜찮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너무나 가치 있고 아름다우니까. 난 일과 육아, 가사라는 끈을 같이 잡고 싶다. 육아를 하면서 자꾸만 무대가 생각났다. 여기서 중요한 건 무슨 끈을 잡든 꽉 잡아야만 한다는 거다. 물론 주변의 도움의 손길 없이는 정말 힘들다. 그래서 요즘 감사함을 많이 느낄 때가 많다. 그런데 정말 어느 끈을 잡아도 어렵다. (웃음)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잘 모르겠는데, 주변에서는 분명 결혼 전과 후가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선은 과거보다는 현재를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만 든다. 나는 항상 배우를 꿈꾼다. 운명처럼 만나지는 배역이 있다고 하더라. 솔직히 말하면 전에는 이런 열망은 없었다. 계속 무대에 서야 한다는 강박을 느낄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젠 늘 꿈꾸게 된다. 한 발자국 떨어지니 그걸 알게 된 거다. 그런 운명 같은 배역을 만나려면 그냥 다 열심히 해야만 한다. 시켜만 달라. (웃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7호 2017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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