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끔 마음을 울리는
옛사랑에 관해
최근 솔직하고 섬세한 연애 에세이로 주목을 받는 작가가 있습니다. 서른넷, 한국을 훌쩍 떠나 영국으로 간 서민기 작가가 그 주인공입니다. 그가 스무 살부터 겪어온 세 여자들과의 추억을 풀어놓은 이야기는 현실적인 사랑 이야기라는 평가와 지질한 남자의 변명이라는 극과 극의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더뮤지컬>이 서민기 작가와 솔직 담백한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 이 글은 서민기 역을 맡은 박시환과의 대화를 토대로 작성한 가상 인터뷰이며, 작품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민기 씨의 옛사랑 이야기가 공개되면서 큰 인기를 얻고 있어요. 14년 전에는 어떤 사람이었어요?
과거엔 생각이 짧았죠. 뒷일을 생각하지 못하고 그냥 ‘확’ 저지르는 불같은 성격이었어요. 심지어 잘못한 일을 수습하지도 못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똑똑해 보이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해요. 전 전혀 똑똑하지 않았거든요. (웃음) 평범했죠.
세 번의 사랑 이야기로 많은 주목을 받았어요. 차근차근 민기 씨의 옛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까요? 처음 좋아했던 권설하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계기는 여러 가지지만, 어렸을 땐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을 저도 모르게 좋아하게 되더라고요. 권설하가 풍기는 아름다움과 멋에 반했어요. 거짓말처럼 첫눈에 반했죠. 그녀는 내게 특별한 무언가를 해주지 않았지만, 친구로서 관심을 가져줬어요. 함께 있으면 ‘나한테 왜 이러지? 어, 설마…?’ 이런 생각이 저절로 들었거든요. 사랑에 관해 아무것도 몰랐던 제게 특별하게 다가온 사람이에요.
둘이서 델리스파이스의 공연을 보러 갔다면서요?
처음 공연장에 들어갔는데 너무 시끄러웠어요. 권설하와 함께 공연을 본다는 자체에만 의미를 뒀죠. 사실 둘이서 오붓한 시간을 가질 수는 없는 곳이잖아요. (웃음) 그런데 권설하가 제 손을 잡는 순간 덥고 시끄러웠던 공연장이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공간으로 바뀌더라고요. 처음으로 느꼈죠. 이렇게 누군가를 완벽하게 사랑할 수도 있구나.
권설하가 한국을 떠났을 때, 굉장히 마음 아파했다고 들었어요.
네, 그랬어요. 전 연애를 글로 배웠으니까요. (웃음) 돌이켜보면 제게 연애 상담을 해줬던 친구들은 재미로 이것저것 코치를 해준 것 같아요. 사실 문자로 고백하고, 거절의 말을 듣고도 계속 다시 고백할 때까지도 ‘날 싫어할 리가 없어’라는 생각이 컸거든요. 처음에는 몰랐던 거죠. 내가 저지른 실수들이 그녀에게 부담이 됐고, 결국엔 우리가 다시 볼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한 행동인 걸.
그렇게 권설하가 떠난 후에 연상의 여자인 윤설하를 만났죠.
사실 윤설하와의 시작은 (이루지 못한) 권설하를 향한 미련 때문이었어요. 연애하고 싶다는 마음도 컸어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어떤 사랑을 다른 사랑으로 위로받고 싶어 하는. 나중에야 알았어요. 윤설하가 참 좋은 여자였다는 걸. 중간중간 그녀가 떠나는 위기를 겪으면서 깨달은 거죠. 그때만 해도 전 감정대로 행동하는 성격이 강했어요. 매번 윤설하에게 실수를 저질렀고, 참다못한 그녀가 결국 이별을 고했죠.
윤설하에게 미안한 마음이 큰 것 같아요.
그녀와 만날 때마다 저는 계속 칭얼거렸어요. 아직도 고마운 것이 윤설하는 그런 못된 저를 늘 받아줬어요. 늘 재미있고 행복한 걸 제게 해주려고 했어요. 특히나 그녀에게 미안한 이유는, 함께한 추억이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상대방에게 서툴고 잘못한 사람은 기억하지 못하죠. 기억은 늘 미안하고 잘 해준 사람의 몫이에요. 제가 윤설하에게 준 건, 마음으로 준비한 생일 선물과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산 구두밖에 없었어요. 그러니까, 그녀를 향한 기억은 고마움이 전부죠. 구체적인 에피소드 없이.
윤설하의 결혼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마음이었나요?
뭔가 마음이 ‘찔끔’거렸어요. 결혼 소식을 듣고 집에서 술 한잔 마셨네요. 혼자서.
민기 씨의 마지막 여자친구죠. 최설하와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정말 연애다운 연애였어요. 당시엔 마음이 힘들었고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싶었어요. 그녀가 주는 에너지에 저도 모르게 혹했죠. 그러다 보니 점점 좋아지게 되는 거예요. 결국 사귀게 됐는데, 소유욕이 생기더라고요. 내 말에 따라야 한다는. 그래서 계속 잔소리를 퍼부었던 것 같아요. ‘내가 이렇게까지 좋아하는데, 얜 나한테 왜 이러는 걸까? 내가 이러는 것도 다 잘되라고 그러는 건데 왜 말을 안 듣지?’ 결국 헤어지게 됐네요.
사실 최설하라는 이름은 개명했다고 들었는데, 민기 씨가 ‘설하’라는 이름을 추천했다고요.
아, 맞아요. 최대웅이었어요. 최설하의 원래 이름이. 아마 전 앞으로도 대웅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을 것 같아요. 당시에 전 대웅이를 많이 좋아하지는 않았거든요. 정확하게 말하면, 이름을 추천할 때엔 그녀가 좋아지는 시기였죠. 솔직히 말하면 앞의 설하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어요. 설하라는 여자라기보다는… 두 번의 옛사랑에 대한 미련이요. 대웅이가 이름에 대해서 물어봤을 때, 아무 생각 없이 ‘설하’라는 이름이 튀어나왔고 바로 후회했죠. 솔직하게 말했어야 했는데, 그땐 대웅이가 진심으로 좋아지고 있는 시기라 차마 변명을 할 수 없었어요.
그럼 민기 씨에게 ‘설하’라는 이름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꼭 이루고 싶었지만 이루지 못한 사랑. 계속 후회로 남았어요, 그리고 계속해서 후회로 쌓여가고 있었죠. 조심스럽지만 대웅이에게 ‘설하’라는 이름을 이야기했던 건, 이번만큼은 사랑을 꼭 이루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민기 씨의 진정한 첫사랑은 누구였다고 생각하세요?
음…, 진정한 첫사랑이라. (웃음) 최설하요. 가장 많이 사랑을 배운 여자는 윤설하지만요.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줘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윤설하에게는 받기만 했고, 최설하에게는 많이 받고 많이 줬어요. 그래서 최설하와 헤어지고 나서는 정말, 굉장히 마음이 아팠어요. 그녀가 없는 내 모습에 겁도 났고, 미안했고, 나 자신이 부끄럽고. 헤어지는 그 순간에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갔어요. 심지어 저는 그녀에게 사과하러 갔을 때도, 사과하는 나 자신이 멋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상상했던 제 모습이 산산조각난 거죠. 그녀가 미안하다고 말하는데, 다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었던 내 모습이 너무 후회됐어요. 아직도 그녀만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7호 2017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