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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PERSONA] <리틀잭> 김히어라의 줄리[NO.168]

글 |박보라 사진제공 |HJ컬쳐 2017-09-22 4,530

고요한
사랑의 선율



얼마 전 영국 사우스웨스트의 오래된 클럽 마틴에서 특별한 공연이 열렸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첫 연주를 시작했던 리틀 잭의 컴백 무대였는데요. 낡은 기타를 맨 잭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노래가 된 애틋한 사랑을 털어놨습니다. 낭만적이고 아름다웠던 사랑의 주인공이자 이제는 세상을 떠난 한 소녀, 줄리가 <더뮤지컬>에 마지막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 이 글은 줄리 역을 맡은 김히어라와의 대화를 토대로 작성한 가상 인터뷰이며, 작품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처음 잭과 노래 불렀을 때를 기억해요?
어…, 마치 가슴이 ‘뻥’하고 뚫리는 느낌이었어요. 전 그동안 아버지 뜻대로 살았거든요. 내가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것들도 제대로 할 수 없었죠. 사실 전 딱딱한 클래식 곡만 쳤거든요. 자유롭게 연주하고 싶었는데 속으로만 생각했죠. 그런 음악을 쳐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게다가 사람들은 제 피아노 연주와 잭의 노래를 들으며, 우릴 보고 있었죠. 살아 있는 걸 느낀 순간이었어요. 잊을 수 없는 감동이었죠.


왜 잭을 사랑했어요?
어떤 이유를 꼬집어 말할 수 없어요. 잭을 처음 봤을 땐 호기심과 떨림을 느꼈어요. 두 번째 만났을 땐 잭은 저를 움직이게 했어요. 전 모든 것에 닫혀 있는 사람이었거든요. 인생에서 탈피라고 부를 만한 사건은 밴드에 잠깐 놀러 간 게 전부일 정도로. 그랬던 저를 정말 많이 변화시켰어요. 내가 스스로 그렇게 변하는 걸 느끼는데, 그런 나를 사랑해 주는 잭의 존재가 다가왔어요. 이렇게 천천히 잭을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됐어요.


두 사람은 어떤 추억을 가지고 있어요?
‘데이트’라고 부를 만한 대단한 건 없었어요. (웃음) 사방이 깜깜한 밤에 별 하나 떠 있는 곳에서 나란히 앉아 있던 게 기억나요. 서로의 숨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고요한 곳에서요. 첫 키스도 그때 했어요. (웃음) 아버지를 피해 다니기도 했고요. 아버지와 일하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몰래 가본 동굴이랑 해변에서 놀았던 게 정말 재미있었어요.


맞아요, 당신의 아버지가 잭을 심하게 반대했다고 들었어요.
네, 그래서 저와 잭은 몰래 만났어요. 제 방 창문 아래에서 잭이 휘파람을 불면 나갔죠. 잭을 기다리다가 휘파람 소리를 환청으로 들어 헛걸음을 한 적도 많아요. (웃음) 엇갈린 적도 많았죠. 어느 날은 아버지가 잭을 초대하기도 했는데, 그전부터 아버지가 꾸준히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우린 우리만의 언어를 써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어요. 아, 맞다. 사실 잭과 도망가려고 노래를 하면서 돈도 벌었어요. 하루하루 쌓여가는 돈을 보면서 어디로 가면 좋을지 상상하면서 행복해했죠.


잭과 헤어지게 된 계기를 들었어요, 당신 아버지의 지시로 잭이 폭행을 당했다면서요?
그 이야기를 듣고 화가 났어요. 그런데 아버지에게 화가 난 것보다도 저 자신에게 정말 많이 화가 났어요. 아버지가 하는 일은 제가 막는다고 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요. 힘이 없는 제가 미웠죠. 아버지는 그동안 나를 이해하고, 잭을 내 친구로 인정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모두가 거짓이었어요. 당장 잭에게 달려가 사과하고 싶었지만, 잭이 또 괴롭힘을 당할 것 같았어요. 당장 해결하는 것보다는 조심스럽게 잭에게 갈 궁리를 했죠. 나에 대한 원망, 잭에 대한 미안함이 뒤섞인 상태로 며칠을 보냈어요. 이기적이지만 모든 건 내 뜻이 아니라는 걸 잭이 알았으면 좋겠고 절 미워하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어요.


결국 잭과 헤어지고 미국으로 돌아갔죠. 미국에서 생활은 어땠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시체처럼 살았어요. 어쩔 수 없이 손을 놓고 있는 현실이 앞에 있으니 ‘멍’해지게 되더라고요. 6년 정도 미국과 영국을 오가면서 잭을 사랑했으니까요. 그런데 갑자기 잭에게 편지를 쓸 수도 없고, 어떤 이야기도 들을 수 없고. 무엇보다도 잭은 오해를 품고 있었을 테니까요. 편지라도 보내고 싶어서 주변 사람에게 부탁했지만, 헛수고였어요. 언제는 몰래 나가려다 아버지에게 들켜서 외출 금지도 당했어요. 그렇게 미국으로 돌아오고 나서 2~3년 정도는 정말 저조차도 어디로 튈지 몰랐어요. 하루는 잭에게 편지라도 보내고 싶어 밖으로 나가려고 발악했다가도, 또 하루는 아버지의 말을 잘 들으면서 자유로워질 기회를 엿보기도 했죠.



잭의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어요?
그럼요, 얼마나 많이 갔는데요. 몸이 허락하는 한 빠짐없이 갔어요. 맨 뒤에서 노래하는 잭을 지켜봤죠. 처음 잭의 노래를 들었을 땐, ‘잭도 날 그리워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치 제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노래로 부르는 것 같았죠. 그래서 노래를 들으면서 우리의 사랑과 추억이 생각났고, 미안한 마음에 엄청 울었어요.


왜 잭에게 달려가지 않았어요?
제가 잭에게 가도 지금의 상황을 책임질 수 없었으니까요. 음…, 마치 내가 잭 앞에 나타나면 그의 미래를 막을 것 같았어요. 잭이 가수로 많은 인기를 얻으면서 아버지가 끔찍한 협박을 했거든요. 잭의 노래를 듣거나 공연을 보러 가는 걸 보면, 넌지시 ‘저 친구를 한 번에 끝장낼 수 있어’라고 말한 적도 많아요. 그래서 달려가고 싶었지만 참았고, 기다리고 싶었지만 마음을 다잡았고…, 많은 고민을 했죠. 그리고 어쩌면 잭이 나 없이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전 조용히 지켜봤어요.


잭이 공연을 망쳤다는 소식도 들었겠네요?
늦은 후회가 몰려왔어요. 내 선택이 또 잭의 미래를 망쳤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잭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나 자신도 원망스러웠어요. 한편으로는 이기적이게도 날 잊지 않았다는 것에 아주 조그마한 고마움도 있었어요. 잭이 그렇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결심했어요. 내가 불행해도 잭이 행복하다면 괜찮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모든 걸 참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결국엔 잭도, 저도 모두가 불행했어요.


남아 있는 잭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요?
우린 그동안 너무 많이 엇갈렸어. 다음엔, 우리가 다음에 만났을 땐 꼭 아름답게 항상 함께했으면 좋겠어. 사랑해.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7호 2017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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