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눈빛
<여신님이 보고 계셔>의 순호는 순수한 소년이지만 전쟁의 트라우마를 가슴 깊이 새겨둔 다층적인 캐릭터다. 또한 드라마의 열쇠를 쥐고 있는 중요한 인물이기에 이 작품에서 가장 주목받는 역할이기도 하다. 2년 만에 다시 돌아온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순호 역의 네 배우 모두가 새로운 캐스트로 눈길을 끈다. 그중 정휘는 맑은 이미지와 특유의 순수함이 순호 캐릭터와 잘 맞아떨어져 기대를 모았다. “사실 이 작품을 맡기 전부터 순호 역에 어울리겠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이미지에서 닮은 부분이 있나 봐요.” 그렇다면 실제로 순호를 마주하게 된 정휘는 어떤 인상을 받았을까? “제가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다 보니 처음에는 순호의 트라우마를 깊게 공감할 순 없었어요. 실제 성격도 저와 다른 부분이 많았고요. 제가 순호처럼 귀엽거나 여리여리하지는 않거든요. 그래도 장난기가 많은 건 좀 비슷했어요.” 점차 캐릭터와 가까워지면서 정휘에게 순호는 하나의 ‘연결고리’ 같은 인물로 다가왔단다. “남과 북을 하나로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순호가 하고 있거든요. 언젠가 우리나라에도 순호 같은 역할을 해줄 사람이 나타나면 얼마나 좋을까요?”
초연부터 큰 관심을 받아온 창작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 정휘는 요즘 소문으로만 듣던 작품의 매력을 몸소 체감하고 있다. “첫 느낌은 아프면서도 참 따뜻했어요. 인물 하나하나의 사연이 6·25 전쟁 당시 실제로 있었을 법한 일 같아 가슴이 아팠죠. 그러다 어느새 무인도 안에서 남북한 병사들이 정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더라고요.” 정휘는 바로 이 따뜻함이 작품의 힘이라 이야기했다. “연습 내내 배우들이 정말 많이 울어요. 한 번은 마지막 장면을 연습하다가 모든 배우가 눈물을 뚝뚝 흘린 적이 있죠. 영범이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숫자를 하나씩 세는 순간, 너무 슬픈 거예요. 전쟁이란 상황 속에서 나눈 전우애와 정. 그 당시 사람들은 어땠을까 생각하니 뭉클해지더라고요. 그리고 캐릭터를 넘어 배우로서도 특별한 감정이 들었어요. 막내부터 최고 선배까지 나이 차이가 꽤 나는데도 배우들끼리 정말 친해졌거든요. 그래서 서로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더 슬픈 거예요. 다들 아이처럼 엉엉 울었죠. 제가 원래 눈물이 많은 사람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이 작품은 사람을 울리게 하는 그런 힘을 갖고 있더라고요. 이런 순간 자체가 이 작품의 색깔인 것 같아요. 연기하면서 처음 겪어보는 느낌이었죠.”
<여신님이 보고 계셔>의 또 다른 매력은 바로 음악. 정휘 역시 지금 그 매력에 한층 빠져 있는 중이었다. “노래가 진짜 다 좋아요. 그러다 보니 좋아하는 곡도 계속 바뀌어요.(웃음) 처음에는 ‘꽃봉오리’가 참 좋았거든요. 연습실에서 악보만 놓고 다 같이 부르는데, 눈물이 날 것 같더라고요. 멜로디도 가사도 예쁜 곡인데, 각 인물들의 사연을 떠올리니 가사가 슬프게 다가오더라고요. 그러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 또 ‘그저 살기 위해 리프라이즈’도 좋아하게 됐죠. 물론 그중 최고를 뽑으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순호의 노래 ‘그대가 보시기에’가 아닐까요?(웃음)” 사실 ‘그대가 보시기에’는 순호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곡이지만, 그 감정을 풀어내는 배우 입장에서는 마냥 부르기 쉬운 곡은 아니다. 물론 그 역시 그랬을 터. “처음 연습할 땐 진짜 힘들었어요. 순호라는 역할이 이 정도로 해맑을 수 있을까? 그러다 살기 위해, 또 모두의 행복을 위한 순호의 본능이 담겼다고 생각하니 이 곡이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아픈 장면이기도 하죠.”
어린 시절부터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다는 정휘. 고등학교 때 연기의 매력을 접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연기와 노래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뮤지컬 무대를 꿈꾸게 되었단다. 이후 그는 2013년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뮤지컬에 데뷔해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 <블랙메리포핀스>, <신과 함께 가라>, <꽃보다 남자 The Musical>로 차근차근 자신만의 매력을 알리고 있다. “특히 <신과 함께 가라>는 잊을 수 없는 작품이에요. 뮤지컬이 이렇게 재미있는 것이구나! 몸소 깨닫게 해준 작품이에요. 함께했던 배우와 스태프 들도 서로를 아껴준다는 느낌이 컸어요. 그래서 공연하던 순간들이 정말 소중하게 느껴졌죠. 그래서 첫 공연 후 처음으로 눈물을 흘린 작품이에요. 또 <꽃보다 남자 The Musical>은 또래 배우들과 공연하는 것이 재밌어서 기억에 남아요. 학교 친구들과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F4 배우들끼리 지금도 친하게 지내고 있어요. 그만큼 많은 것을 얻은 작품이죠.”
또한 지난 8월 막을 내린 연극 <모범생들>도 정휘의 새로운 매력을 엿볼 수 있었던 무대. 그 스스로도 새로운 변신들이 즐겁다고 행복하게 이야기한다. “<모범생들>로 연극 무대에 처음 올랐거든요. 연극의 매력을 한층 더 느끼게 됐어요. 특히 민영 역은 지금까지 해온 역할과는 결이 다르거든요. 평소 악역을 맡아보고 싶었는데, 그 바람이 충족됐던 무대였죠. 다른 역할들과 팽팽하게 기싸움을 하는 과정들도 참 좋더라고요.” 앞으로도 이런 새로운 시도들을 계속 이어 나가고 싶다는 정휘. 도전의 순간들을 기다리는 그의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나는 건, 그만큼 연기를 향한 소중한 열정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제 안의 가능성을 무궁무진하게 열어두고, 많은 도전을 해볼 생각이에요. 연기를 할 수 있다면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도전을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이 배우는 뭔가 새로운 걸 보여주지 않을까? 10년 후에는 이런 믿음과 기대를 전해 주는 배우가 되어 있다면 참 좋겠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9호 2017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