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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OVER STORY] <타이타닉> 송원근·조성윤·서경수

글 |배경희·안세영 사진 |표기식 진행 | 안세영 스타일링 | 김성희 헤어·메이크업 | 이창은 2017-11-03 6,874

운명의 항해 앞에서


1912년 영국에서 출항한 호화 선박 ‘타이타닉’이 빙산에 부딪혀 북대서양에 가라앉은 비극적인 실화는 영화 <타이타닉>을 통해 잘 알려져 있다. 영화보다 앞서 만들어진 뮤지컬 <타이타닉>은 로맨스에 초점을 맞춘 영화와 달리 5일간의 항해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과 인물의 모습을 그리는 데 초점을 맞춘다. 오는 11월 한국 초연을 앞둔 <타이타닉>의 승선 리스트에 송원근, 조성윤, 서경수가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1등실에 탄 배의 설계자부터 3등실에 탄 아일랜드 이민자, 배의 최하층에서 일하는 화부까지 계급도 성격도 제각각인 인물을 연기한다. 세 배우는 저마다 어떤 기대를 안고 이 타이타닉호에 올랐을까?




후회 없는 간절함으로 조성윤


조성윤은 지난 5월 인생에서 큰 변화를 맞았다. 바로 동갑내기 탤런트 윤소이와 행복한 웨딩 마치를 올린 것. 결혼 소식으로 한동안 공연계 밖에서도 이름이 회자된 그는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품위 있는 그녀>에서 주인공의 조력자 구봉철 역으로 출연해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그런 그가 뜻밖에도 지난 9월 윤소이와 함께 소속되어 있던 제이에스픽쳐스를 나와 에이프로엔터테인먼트로 소속사를 옮겼다. 이유는 다름 아닌 공연 활동에 몰두하기 위해서. “이전 소속사는 드라마 제작사였기 때문에 공연을 잘 아는 회사로 옮겼어요. 새로운 분야에서 다시 시작하기보다는 제가 잘하는 일을 더 잘하고 싶었거든요. 제 남은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이 오늘이잖아요. 지금 무대에서 패기 넘치는 모습을 보여드리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더라고요.”


소속사를 옮기며 무대에 대한 갈망을 다진 조성윤은 차기작으로 뮤지컬 <타이타닉>을 선택했다. “처음에는 막연하게 제목이 주는 감흥에 끌렸어요. 중학생 때 영화 <타이타닉>을 보고 배우의 꿈을 키웠거든요. 일주일 동안 잠도 못 잘 만큼 벅찬 감동을 느꼈죠. 하지만 대본과 음악을 받은 뒤에는 일반적인 뮤지컬과는 다른 이 작품의 독특한 플롯에 빠졌어요.” 특정한 주인공 없이 여러 계급, 여러 인물의 이야기가 고르게 펼쳐지는 <타이타닉>에서 출연 배우 대부분은 일인다역을 맡아 쉴 새 없이 무대를 누빈다. 조성윤도 물론 예외는 아니다. “말하자면 이런 느낌이에요. 한 사람이 짠 하고 등장했다가 다음 사람에게 극을 토스해요. 그리고 들어가서 쉬는 게 아니라 뒤에서 그 사람이 빛날 수 있게 계속 도와주는 거죠.”



수많은 등장인물 가운데 조성윤이 주로 맡는 역할은 화부 프레드릭 바렛. 다른 승객들이 꿈에 부풀어 호화 여행을 즐기는 동안 바렛은 배 밑바닥에서 용광로에 석탄을 공급하는 일을 한다. “바렛은 계급 사회에 반감을 지닌 인물이에요.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자기 일에 대한 책임감도 강하죠. 열심히 일해 사랑하는 여자와 행복하게 사는 게 그의 꿈이에요.” 배가 침몰하는 급박한 상황에서 바렛의 책임감은 빛을 발한다. 그는 마지막까지 승객들의 탈출을 돕고 자기 대신 승객인 짐 파렐을 구명보트에 태워 보내기까지 한다. “바렛은 봉급을 받고 일하는 자신보다 승객을 먼저 내보내는 게 당연하다고 말해요. 그건 낮은 계급의 희생이 아니라 직업 정신에서 나오는 희생이거든요. 실제 타이타닉에서도 화부들이 침몰 직전까지 발전기를 돌린 덕에 승객들이 불빛 속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고 해요. 바렛의 캐릭터에는 그들의 희생정신이 반영돼 있는 셈이죠.”


조성윤이 배우 생활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것은 ‘후회하지 말자’다. 후회할 선택은 추호도 하지 말자는 뜻이 아니라 지금 선택한 삶을 사랑하자는 뜻이다. “어떤 선택을 하고 나서 후회할 때가 있잖아요. ‘에이, 아메리카노 말고 라떼를 먹을걸!’하고요. 그런 순간이 오더라도 아메리카노를 맛있게 먹기. 그랬을 때 내게 주어진 것들이 더 간절하게 다가와요. 배우는 간절함이 배어날 때 제일 멋있는 법이거든요. 늘 그런 간절함으로 무대에 서고 싶어요.”



새로 쓰는 프롤로그 송원근


올겨울 첫 출항을 앞두고 있는 ‘타이타닉’호의 최종 승선 명단에 이름을 올린 사람은 모두 스물일곱 명. 소유주부터 설계사, 선장, 항해사 등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한 다양한 인물군 가운데 송원근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은 의외의 위치다. 전작 <키다리 아저씨>에서 부잣집 도련님 제르비스로 설렘주의보를 발동시켰던 그가 이번에는 정반대 지점에 있는 이민자 캐릭터를 맡았으니 말이다. <타이타닉>의 짐 파렐은 아메리칸드림을 품고 더 나은 삶을 찾아 미국 이민길에 오르는 인물. “제르비스-제루샤로 호흡을 맞췄던 (임)혜영이를 이번 작품에서 또 만났거든요. 혜영이는 2등실 승객인데 저는 3등실 승객이 돼서 팬들이 우스갯소리로 그런대요. <키다리 아저씨> 후일담으로 제루샤는 성공하고, 제르비스는 망했다고요. (웃음)”


스스로도 이런 변화가 재미있는지 기분 좋게 웃는 그에게 1등실 승객이 되고 싶진 않았는지 짓궂게 묻자 진지한 답변이 돌아온다. “다른 때와 비교해 보면 역할의 비중이 크진 않아요. 어떻게 보면 현저히 적다고도 할 수 있죠. 하지만 역할의 크기와 상관없이 이번 팀의 일원이 되고 싶더라고요.” 난생처음 대본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출연을 결정했다고 하니, 이쯤 되면 이 작품의 어떤 점이 그를 이토록 강렬하게 잡아당겼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주위에서 에릭 셰퍼 연출(지난해 재공연된 <스위니 토드>의 진두지휘를 맡아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은 미국 연출가)에 대한 좋은 얘기를 진짜 많이 들었어요. 다른 것보다 배우들이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잘 이끌어주신다고 하더라고요. 배우로서 많은 공부가 될 것 같은데, 언제 또 뵐지 알 수 없는 분이니까 이번 기회를 잡자 싶었죠.”



생애 첫 초연 라이선스 대작에 원 캐스트로 참여한다는 점도 그의 마음을 끌었다.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원 캐스트로 공연해 본 적이 없더라고요. 요즘은 워낙 멀티 캐스팅이 대세잖아요. 한 번쯤은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공연을 책임져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이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는 점인데, 뮤지컬에선 운이 좋아 데뷔작부터 큰 역할을 맡을 수 있었어요. 그 이후로 자연스럽게 비중 있는 역할들이 들어왔고요. 그런데 이번 <타이타닉>은 재미있는 게 모든 출연진이 각자 자기가 맡은 메인 역할 외에 앙상블로 무대에 등장하는 장면들이 있어요. 짐 파렐 외에 또 어떤 역을 맡는지는 아직 말씀드릴 수 없지만, 아마 꽤 바쁘게 움직이게 될 것 같아요.”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가기에 앞서 혼자 열심히 캐릭터를 고민하고 있다는 송원근. 그가 짐 파렐을 연기하는 데 중요하게 생각하는 키워드는 ‘열정’이다. “제 생각에 짐 파렐은 사교성도 뛰어나고 항상 에너지가 넘칠 것 같아요. 위험에 처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 부류의 사람일 것 같달까. 나이는 스물 셋 정도로 잡고 있는데, 그 연령대의 청춘만이 가질 수 있는 뜨거운 열정이 있잖아요. 그걸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려고요. 벌써 서른여섯인 제 나이를 생각하면 쉽지 않은 일이지만요. (웃음)”


거대한 흥행을 기록한 영화의 명성을 지우고 오롯이 뮤지컬만의 매력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없을까. “물론 많은 분들이 ‘타이타닉’ 하면 배 위에서 두 팔을 벌리고 하늘을 나는 것 같았던 두 남녀를 먼저 떠올리실 거예요. 뮤지컬은 그에 비해 훨씬 어둡고 무거운 작품이지만 그 가운데 희망이 있어요. 그리고 저희 작품은 출연진만 봐도 신선하지 않나요? 뮤지컬에서 이렇게 많은 배우들이 우르르 나오는 일이 거의 없잖아요. 저희 팀은 연령대도 무척 다양한데, 김봉환 선생님이나 이희정 선생님께서 항상 그러세요. 우리 작품은 어느 누구 한 사람의 작품이 아니라 모두가 주인인 작품이라고요. 우리는 한 배를 탔다고 그러시죠. 무대에서 전체가 하나가 되는 느낌을 느껴보는 것, 그게 제가 이번 공연에서 바라는 거예요.”



함께의 힘 서경수


2006년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앙상블로 데뷔해 지난 10년간 차근차근 경력을 다져온 서경수. 헌칠한 키와 시원한 가창력을 자랑하는 그는 어느새 어엿한 대극장 뮤지컬 주역으로 발돋움했다. <인 더 하이츠>의 베니, <뉴시즈>의 잭, <오! 캐롤>의 델, <시라노>의 크리스티앙에 이어 이번에는 <타이타닉>의 앤드류스로 문종원과 더블 캐스팅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정작 서경수는 이런 생각이 낯설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가요? 사실 저는 실감을 못해요. 연기할 때는 소극장이든 대극장이든 큰 차이가 없거든요.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무대 위에서 서로 진실되게 소통하는 거니까요. 투게더! 혼자할 수 있는 건 없잖아요.”


 어떤 무대에서건 ‘함께’ 호흡하는 게 첫 번째라고 믿는 서경수. 그가 <타이타닉>에 기쁘게 승선한 이유도 바로 이 함께함의 미학 때문이다. “합창을 중심으로 모든 배우가 하나되어 나아간다는 게 이 작품의 매력이에요. 보통 노래 연습을 하면 각자 스케줄에 맞춰 연습을 하고 합창이 필요할 때만 따로 모이거든요. 그런데 <타이타닉>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연습하니까 더 단결력이 생겨요.” 합창이 많은 작품의 특성상 배우들은 드라마 연습에 앞서 2주간 음악 연습에 매진했다. 서경수는 <타이타닉>의 음악이 지닌 힘에 대해서도 자랑을 아끼지 않았다. “굉장히 클래식하고 풍성하고 마음을 울리는 음악이에요. 노래를 부르기 전부터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죠. 그만큼 부르기도 어렵지만, 이렇게 음악 연습을 마치고 나니 첫 단추를 잘 꿴 기분이 드네요.”



서경수가 연기하는 토마스 앤드류스는 타이타닉의 설계자로, 배의 개선 사항을 점검하기 위해 첫 항해에 함께한다. 실제 타이타닉의 설계자였던 동명의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한 캐릭터다. “실존 인물과 저는 열 살 정도 나이차가 있어요. 하지만 나이보다는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고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생각하는 앤드류스는 완벽주의에 자부심과 포부가 넘치는 사람이에요. 그는 자신이 설계한 배가 결코 침몰하지 않을 거라 믿죠. 그래서 타이타닉이 침몰할 때 큰 충격에 휩싸여요.” <타이타닉>은 주인공이 따로 없는 작품이지만, 앤드류스는 출항 직전과 침몰 직전의 솔로곡을 담당하며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두 곡이 양극단의 감정을 담고 있어요. 자신이 설계한 ‘세계에서 가장 큰 배’가 2천 명의 승객을 태우고 출항하는데 얼마나 설레고 자랑스러웠겠어요. 그 자부심의 크기만큼 침몰에 대한 죄책감도 컸을 거예요. 배에는 끝까지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목숨을 건지기 급급한 인물도 있지만, 앤드류스는 자신의 오만함과 안일함에서 비롯된 이 비극에 큰 죄책감을 느껴요. 실제로 타이타닉이 침몰할 때 앤드류스는 피할 생각도 않고 흡연실에 남아 생각에 잠겨 있었대요. 그때 그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 많은 상상을 하게 돼요.”


연습을 하면서도 몇 번이나 가슴이 뜨거워졌다는 서경수는 이 감동을 관객과 함께할 날을 고대하고 있다. “타이타닉의 침몰은 참담한 사고지만 그 배에 탄 사람들이 품고 있는 소망과 그들이 그려내는 관계는 정말 뜨겁고 사랑스러워요. 여기에 아름다운 선율이 공기를 채우면 심장이 터질 듯 벅차오르죠. 이 감정을 관객들에게도 꼭 전해 드리고 싶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9호 2017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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