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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PEOPLE&PEOPLE] 이룰 수 없는 꿈을 잡은 이들 - 임현수.김승필.김대원 [No.84]

글 |이민선 사진 |박인철 2010-09-13 7,870

 

첫 번째 질문,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 두 번째 질문,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두 질문의 대답이 같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많은 이들이 경제적인 문제로, 재능이 없다는 핑계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탓으로 꿈에서 점점 멀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을 증명하듯 꿈을 향해 돌진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나도 도전해 보고 픈 용기가 생긴다. 무대에서 만난 뮤지컬 배우가 전혀 다른 일을 하다가 배우의 꿈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당신에게도 용기가 생길까? 뒤늦게 시작한 만큼 다른 이들보다 더 뜨거운 열의와 의연함으로 무대에서 제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뮤지컬 배우 3인을 만나본다.

 

 

배우의 전력을 소개합니다


기자> 세 분은 뮤지컬 배우 이전에 특이한 이력을 갖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김승필>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대학 진학을 원했는데 입시에 떨어졌어요. 학교에서 쌍용자동차 기술 연구소에서 몇 년 일하면 대학에도 보내준다고 추천해서 우선 기술 연구소의 정보 분석 팀에 들어갔죠. 차를 완전히 분해해서 그 정보를 설계 팀에 넘겨주는 일이었는데 무쏘와 체어맨 같은 차를 분석했어요. 그 다음에 한 일이 테스트 드라이빙이에요. 쌍용그룹에 쌍용양회라는 시멘트 회사가 있어요. 시멘트 공장에 축구장 네다섯 배 면적의 평지가 있는데, 고르지 못하고 트랙도 없는 곳에서 신차를 시험 운전하는 거죠. 비포장도로, 완전 오프 로드인데, 일명 ‘쇼바’라고 부르는 완충기가 파손되거나 타이어가 터져야만 멈출 정도로 무조건 달립니다. 타사의 경쟁 차량을 가져와서 최고 속도나 내구성 등을 테스트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5년간 근무했는데 어린 나이에 명예퇴직을 당했죠. IMF 사태가 터졌거든요. 이후 새벽 시장, 김치 공장, 수건 공장 등 정말 많은 곳에서 일해 봤죠.


기자> 그럼 배우가 되겠다는 결심은 어떻게 하신 건가요?
김승필>
뮤지컬이 꿈이었다기보다, 중학교 때 국악예고에 진학해서 소리 공부를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가족들은 평범하게 공부하기를 바랐기 때문에 예고 진학을 말리셨죠. 저는 공부 안 하겠다고 우겨 공고에 입학했고요. 사실 고등학교 졸업반 때 예대 시험도 몰래 봤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어요. 자동차 회사를 나와서 수없이 많은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나중엔 친구와 동업해서 PC방을 운영했어요. 당시 PC방 붐이 일어 장사는 꽤 잘 되었지만 교대로 13시간씩 일하는 생활을 하다보니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엇을 해야 할지 늘 기도하며 물었죠. 그러던 어느 날 제 기도에 대한 응답이라고 느껴지는 일이 있었는데, 중학교 때부터 저의 끼를 보아온 친구가 뮤지컬 관련 정보를 알려주면서 이거 어떠냐고 하더군요. 저도 ‘아, 이거라면 좋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아카데미를 다녔어요. 발레도 배우고 보컬 레슨도 받고요. 내가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것이 이거라고 깨달았죠.


김대원> 저도 어릴 때부터 막연하게 연기가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초등학교 2학년 때 야구를 시작해서 17년간 쭉 운동만 했으니 내가 이걸 안 하면 어떡하나, 관두기 무서웠죠. 고등학교 때 방황하며 가출도 했지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고요. 야구를 그만둘 타이밍을 계속 찾고 있었달까요. 청소년 대표와 대학 야구팀을 거쳐서 한화 이글스에 들어갔는데, 2년간 활동하고 그만두었어요. 그때가 스물다섯 살이었는데, 서른이 되기 전에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늦은 나이에 입대를 하고, 연기를 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 책을 읽었어요. 뭐든 배우자는 생각으로. 군대에서 207권을 읽었어요. (기자> 그걸 다 기억하세요?) 책을 읽을 때마다 작가, 내용 등을 독후감처럼 써뒀거든요. 아직 집에 보관해두고 있습니다. 수필, 여행서, 연기 이론서 등 종류를 막론하고 읽으면서 공부하고, 또 소리 내어 읽는 연습도 했지요. 그리고 제대 후 2006년에 연극영화과 전공으로 다시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임현수> 저는 성악을 전공했어요. 하지만 성악과를 선택한 것도 재수를 결심하면서부터예요. 어릴 적 꿈은 사회복지사와 회계사였고 평범하게 공부해 경영학과에 진학할 계획이었죠. 경영학과 면접에서 교수님이 왜 여기 지원했냐고 물으시는데 할 말이 없더라고요. 중학교 때부터 스스로 굳혀온 꿈이지만 그것이 돈 벌기 위한 수단 중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면접을 마치고 나오면서 형님(김승필) 말씀대로 이건 아니다 싶어서 고민을 시작했죠. 좀 더 의미 있게 살았으면 좋겠고, 내가 조금이라도 가진 게 있다면 그걸 나눌 수 있는 일을 하자고 생각했어요. 그때 제가 가진 게 있다면 그나마 노래하는 능력이라 생각해서, 한 해 동안 운명인 듯 우연인 듯 만난 선생님께 가르침을 받고 성악과에 들어가게 됐죠.
성악과를 졸업하긴 했지만 그다지 열심히 수학하지는 않았어요. 왜냐하면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걱정하다가 군대에 가서는 어릴 적에 꿈꾸었던 회계 공부를 시작했어요. 회계 관리, 원가 관리 등의 책을 쌓아두고 공부했죠. 지인의 도움으로 독일계 투자회사에서 일하게 되었고요. 자본가들이 건축산업, PF사업 등으로 투자하는 것을 도왔습니다. 몇 백억, 몇 천억 원의 돈이 오가는 일을 하다보니 딴 세상에 사는 듯한 느낌도 들었고 허무했어요. 이후에는 투자 자본 회사에서 자산 관리사 일도 2년 정도 했는데 아침 7시 출근에 새벽 1시 퇴근, 일년 365일 휴일도 없이 일했어요. 음악을 향한 끈을 마음속으로 붙잡고 있었지만 시간이전혀 나질 않았어요. 다시 이 일을 왜 하나, 회의가 들었죠. 봄바람 부는 17층 빌딩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이건 아니라고 서너 달 고민하다가 정리하고 나왔죠. 그게 불과 2년 전이에요.

 

뮤지컬 첫 경험


기자> 첫 뮤지컬은 어떻게 만나게 되셨나요?

임현수> 회사를 나와서도 뭘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던 차에, 우연히 아는 누나가 부탁해서 행사 공연에서 듀엣곡을 부르기로 했던 남자 가수의 대타로 무대에 서게 되었습니다. 엉겁결에 간신히 외워서 뮤지컬 넘버 세 곡을 부른 것을 시작으로, 여러 차례 행사 공연을 하게 되었죠. 무대에 대한 감도 익히고 뮤지컬 배우들 만날 기회도 생겼고 어떻게 오디션을 볼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죠. 처음엔 뭐든 하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내리 너덧 번의 오디션에서 떨어지고, 다음 해 봄에 <로미오 앤 줄리엣>에 합격했어요. 그게 제 첫 뮤지컬이었죠.


김승필> <블루 사이공>이 첫 작품이었는데, 저 역시 좋은 인연을 만난 덕이었어요. 제가 다닌 학원에 잠깐 동안 보컬 수업하러 온 음악감독이 아르바이트로 무대 스태프 일을 도와달라고 해서 갔어요. 그 공연에서 만난 스태프가 후에 <블루 사이공>의 조감독을 맡게 되었는데 병사 역을 해보라고 해서 오디션을 받았죠.

김대원> 저는 연극영화과에 진학했지만 뮤지컬 전문 수업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뮤지컬에 대해선 잘 몰랐죠. 졸업하고 연극을 먼저 시작했어요. 노래나 춤이 부족해 뮤지컬을 할 자신이 없었죠. 연극 무대에 서다보니 연기에 조금 자신이 생겨서 뮤지컬 오디션을 볼 용기도 생겼어요. 작년에 첫 뮤지컬 <삼총사> 오디션에 합격해서 노래의 비중은 작고 얼굴은 가면으로 가린 채 연기하는 역할을 맡았어요. 끝까지 얼굴은 안 나왔죠.(웃음) 뮤지컬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춤과 노래를 배우다보니 정말 힘들었어요. 제 실력이 부족해서 군무와 합창에서 배제되면 굉장히 속상했고요. 하지만 열심히 했고 조금씩 나아졌어요. 그다음에 참여하게 된 작품이 <모차르트!>였고, 거기서 (임)현수도 만났죠. 이 친구도 경력이 많지 않은 터라 서로 공감하고 힘이 되었죠. 제가 조언도 많이 구했고요.

 

김승필 ⓒTHEMUSICAL

 

기자> 뒤늦게 뮤지컬을 시작해서 어려웠던 점이 많았을 것 같아요.

임현수> 제게 가장 어려운 것은 연기예요. 노래를 하면 충분히 무대에 설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연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가장 커요. <로미오 앤 줄리엣> 오디션에 붙어서 출연 계약하고 연습을 하러 간 첫날, 저는 사기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엄청 혼났어요. 하지만 첫 작품에서부터 김진태 선생님, 강효성 선배님, 김문정 음악감독님, 최인숙 안무가님 등 정말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분들이 저를 일깨워주신 덕분에 많이 배웠죠. 특히 김진태 선생님께서는 정말 아버지처럼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셨어요. ‘지금 네가 서 있는 무대에 서고 싶어 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 네가 여기 와서 이렇게 해서 되겠냐’고 다그치시며, 늦은 시간까지 남아서 저의 얼마 되지도 않는 대사를 반복 연습 시켜주시곤 했어요. 그분이 뭐가 아쉬워서 저를 붙잡고 그러셨겠어요. 정말 감사하죠.

김대원> 제가 지금은 따로 트레이닝을 받을 금전적 여유도 없지만, 공연 연습을 하는 것이 가장 큰 공부라는 생각이에요. 스스로가 인정할 만큼의 실력을 쌓아놓고 오디션을 보는 것도 좋겠지만, 저로서는 일단 공연에 투입되어서 좋은 음악감독과 안무가에게 배우는 편이 더 빠르고 효율적이라서 쉬지 않고 공연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승필> 저는 첫 작품 이후에 <미녀와 야수>, <벽을 뚫는 남자>, <이블 데드> 등 계속 새로운 작품에 참여하게 되면서 조금 자만해지지 않았나 싶어요. ‘나 같은 캐릭터 흔치 않으니 공연은 계속하게 된다’ 싶었죠. 그러다가 작년에 참여했던 작품이 계획보다 일찍 막을 내렸고 공교롭게도 그땐 오디션을 봐도 계속 떨어지더라고요. 본의 아니게 쉬게 되었죠. 많이 힘들었어요. 그러다가 올해 <미스 사이공> 무대에 다시 오르면서 오랜만에 뭉클한 느낌을 받았어요. 입장 준비를 하고 있는데, 나 같은 사람이 무대에 선다는 데서 굉장히 감사한 마음이 들었거든요. 제가 나가야 하는 장면만 아니었으면 정말 울었을 거예요.

임현수> 뮤지컬을 하기 전에도 무대에 설 일이 꽤 있었는데 떨린 적은 없었어요. 첫 공연의 막이 오르기 10분 전까지도 역시 떨리지 않다가 등장을 준비하며 대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복받쳐 오르는 거예요. 떨리는 수준이 아니라 정말 눈물이 나오려고 했어요. ‘내가 지금 여기 서 있구나! 그것도 정말 대단한 배우들과 함께.’ 첫 대사는 거의 울먹이면서 했어요. 전혀 그런 대사도 아니었는데.


김대원> 야구할 때 보통 관객이 만 명에서 2만 명 정도인데, 제가 그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시합도 치렀는데 무대에 선다고 떨릴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내가 숨을 들이쉬는지 내쉬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어요.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겠더라고요. 운동할 때도 안 그랬는데 창피하게 왜 그러지 싶었지만, 긴장되거나 두렵기보다 흥분되었어요. 관객들이 나를 보는 게 아닌데도 모두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았어요. 무대에 등장할 때 제 발소리가 되게 크게 들리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소리 내며 걸어가는 그 길이 무척 행복한 거 있죠.


김승필> 뮤지컬하면서 힘들었던 점이 있는데요. 추석이나 설이 되면 다들 집에 선물 세트 하나씩 들고 가잖아요. 그런 날엔 공연 끝나고 귀가할 때 뭐라도 사가야 하나 싶어요. 그런 생각들 때면 ‘맞아, 나 직장 생활 했지’ 새삼 깨닫게 돼요. (웃음) 내가 공연 제작을 한다면 나는 꼭 선물 나눠줄 거야. 참기름이라도. (일동 웃음)

 

뮤지컬은 나의 길


기자> 이전에 하던 일을 그만둔 것처럼 배우를 하면서도 이 길이 맞나 고민하지는 않으세요?
김대원>
그런 고민을 할 만큼 나태해질 시간이 없어요. 배우를 버리면 갈 데가 없다는 배수진을 치는 거죠. 17년 동안 하던 일을 버리고 여기 왔잖아요. 저를 야구 선수로 키우신 부모님과 오랜 제 터전을 등지고 뒤늦게 배우가 된 것은 정말 큰 모험이었거든요. 가끔 내가 왜 이렇게 못하나 하는 생각은 하지만, 연기가 내게 맞지 않는다는 생각까진 못해요. 저 스스로 그런 생각을 차단시켜요. 왜냐하면 그런 회의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 제겐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거든요. 배우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더 지배적이어서 그런 고민 따위는 안 하게 돼요. 생각하지 않게 된 것이 많아져서 오히려 마음이 편하죠.


임현수> 수없이 혼나고 욕먹고 스스로 위축되기도 하지만, 그 사실만으로도 감사하고 즐겁습니다. 내가 남들 앞에서 노래하면서 사람들에게 뭔가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이루고 있으니까요. 고생한 만큼 발전하겠죠. 힘들이지 않으면 한순간에 무너진다는 것을 투자회사에서 일하면서 배웠어요. 적지 않은 분들이 한 방에 이루었다가 한순간에 망하더라고요. 차곡차곡 개미같이 쌓아 가신 분들은 시간이 좀 걸리긴 하지만 오래 가고요.


기자> 과거 전혀 다른 분야에서의 경력들이 정말 무시 못할 큰 경험이죠?

임현수> 그럼요. 저는 저의 20대를 암흑의 10년, 발전이 없는 10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방황하면서 나열할 수 없는 엄청난 경험을 했더라고요. 또 하나, 제 철칙 중의 하나는 실패라는 것은 포기하지 않으면 오지 않는다는 거예요. 포기하지 않으면 실패하지 않을 거예요.
                                          김대원 ⓒTHEMUSICAL
김대원> 너 멘트 준비해왔구나. (일동 웃음)                          

 

김승필> 저도 뮤지컬 시작하기 전에 워낙 직업을 많이 바꾸니까, 부모님이 ‘과연 쟤가 배우 한다고 얼마나 버틸까’ 하고 생각하셨던 모양이에요. 그런데 2년간 꾸준히 레슨 받으니 기특하게 보셨죠. 부모님이 <블루 사이공> 공연을 보러 오셨는데, 알고 보니 아버지가 극 중에 등장하는 맹호부대 출신이시더라고요. 아버지가 눈시울을 적시며 공연을 재밌게 보셔서 정말 뿌듯했어요. 저는 이제 배우 아니면 없어요. 어린 나이도 아니고 다시 뭘 하겠어요. ‘이거 아님 말고’ 라는 생각으로 뮤지컬을 시작한 것도 아니고요.


김대원> 전 야구 그만두고 나서 아버지랑 몇 년간 이야기를 안 했어요. 아버지가 저를 야구 선수로 키우시려고 노력 많이 하셨거든요. 배우 되기보다 더 어려운 프로야구 선수까지 됐는데 그걸 그만뒀으니 속상하실 만도 하죠. 제가 연기 시작하고 5년째 되는 올해에 처음으로 <모차르트!> 공연을 보러 오셨는데, 굉장히 긍정적으로 바뀌셨어요. 아버지와 전화 통화도 거의 없었는데 가끔 제게 전화 거세요. ‘어디냐?’, ‘지방 공연 왔습니다’ 하고 답하면, ‘술 먹지 마라, 목 상한다’ 이런 얘기도 해주시고요. (웃음)

얼마 전에 ‘특이 이력 배우’를 소재로 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한다고 제작팀이 저희 집으로 인터뷰하러 왔어요. 아버지가 많이 속상했다고 말씀하시면서 우시더라고요. 저도 화장실에서 벽을 잡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저한테는 야구를 했다가 연기를 하는 것이 특이한 일이 아니라 굉장히 큰 삶의 변화예요. 예전의 시간까지 헛된 것으로 만들지 않도록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하려고요.

김승필> 그런데 저는 다시 태어나면 야구 선수 하고 싶어요. (일동 웃음) 뮤지컬 야구팀도 만들려고 했는데 참가 인원이 없어서 접었거든요. 포지션이 뭐였어요?


김대원> 대학 때는 내야수였고, 프로 팀에는 투수로 입단했어요. 저는 지금 연예인 야구팀에 속해 있는데, 정말 나가기 싫습니다. (일동 웃음)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들이 있어서 팀을 버릴 수는 없는데 야구는 정말 하기 싫어요.


기자> 김승필 씨는 <미스 사이공>에 참여하고 계시고, 김대원 씨는 <몬테크리스토>에 이어서 연극 <연애희곡>를 공연하며, 임현수 씨는 <피맛골 연가>에서 홍생 역할을 맡으셨지요. 세 분 모두 최근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신데, 배우로서 각자가 가진 강점이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임현수> 강점이라고 말할 만한 것은 없죠. 아직은 그저 연명하고 있는 상태니까요. 그나마 제가 가진 소리 하나 때문에 뮤지컬 배우로 설 수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해요.


김대원> 오디션 원서 쓸 때마다 특기 난에 쓸 게 없어서 비워둬요. 그런데 저, 그런 건 있어요. 다른 배우들 모두 그렇겠지만 어떻게 해서든 무대에 서고자 하는 열의가 있어요. ‘너네 둘이 여기 서기 위해 싸워보라’고 하면 뭘 해서라도 이길 것 같아요. 아마도 오디션 볼 때마다 제게서 그런 마음이 읽혀서 뽑히는 것 같아요.


기자> 김승필 씨는 감초 같은 연기로 관객들에게 각인되어 있어요.


김승필> 그런 점이 제가 가진 좋은 점인 것 같아요. 조연이든 앙상블이든 저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하려고 하고요. 하지만 너무 획일화되지 않도록 잘 이어나가야겠지요. 예전에 <미녀와 야수> 공연할 때 성기윤 선배가 ‘모든 작품에 너의 역할은 있다’고 하셨어요. 아, <모차르트!>에는 없는 것 같아요. (일동 웃음) ‘그러니까 오디션 때 너의 캐릭터에 맞는 연기와 노래를 준비하라’고 조언해주시더라고요. 지금도 항상 잊지 않고 있는 얘기예요.


김대원> 형님도 말씀하셨지만 자기 캐릭터를 찾는 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처음 연기했을 때는 멜로 주인공을 맡았어요. 난 이런 게 맞나보다 생각했는데, 제가 연기하는 영상을 보니까 ‘나 미쳤구나’, 왜 이런 걸 했나 모르겠더라고요. (일동 웃음)

                임현수 ⓒTHEMUSICAL


기자> 앞으로 맡고 싶은 역할은 어떤 것인가요?

김대원>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역할은 악역이예요. <모차르트!>의 콜로레도 대주교나 <몬테크리스토>의 몬데고처럼요. 악역이지만 연민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역할. 그리고 액션이 있는 연기도요. <조로>나 <삼총사>처럼 스포티한 역할은 운동을 했던 제가 좀 더 유연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김승필> 저는 <레 미제라블>의 떼나르디에, 꼭 한번 해보고 싶어요. <미스 사이공>의 엔지니어 역할은 매번 마지막 오디션에서 떨어져요. 당연히 제가 부족한 탓이지만 앞으로 또 도전할 것입니다. 아, 지금까지는 뮤지컬만 하고 연극은 못 해봤는데, <레인맨>의 형 역할도 정말 해보고 싶어요.


임현수> 전 예전엔 솔직히,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사람은 따로 있고 나머지는 꿈을 꾸기만 할 뿐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나이 서른에 뮤지컬을 하기로 마음먹고 <맨 오브 라만차>를 보았는데 ‘The Impossible Dream’이 정말 제 가슴을 후벼 파더라고요. 감동이 이루 말할 수 없었죠. 꼭 돈키호테가 아니더라도 꿈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기자> 그 꿈, 지금 이루고 계시잖아요.

임현수> 아, 그렇죠. 그래서 매일매일이 행복합니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4호 2010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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