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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INSPIRATION]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김경주 작가 [NO.173]

글 |김경주(작가) 정리 | 안세영 2018-02-08 4,586

김경주 작가의 영감 창고



                                                                                                  

                                                                                                   김경주 작가






아스트로 피아졸라 ‘Oblivion’

2011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서울신포니에타의 ‘피아졸라 탱고 드라마’ 정기 연주가 있었다. 그때 나는 아스트로 피아졸라의 탱고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결합한 음악극 대본을 썼고, 무대에서 연주에 맞추어 ‘Yo Soy Maria(나는 마리아)’를 직접 낭독하기도 했다. 피아졸라의 ‘Oblivion(망각)’은 오래전부터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중 서사시에 해당하는 ‘대심문관’ 편을 떠올리게 하는 음악이었다.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를 쓸 때도 ‘Oblivion’은 ‘대심문관’을 구성하는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정신분석 입문』

철학을 전공하던 대학 시절부터 정신분석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입문』은 인간에게 무의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관심을 갖게 해준 중요한 책이다. 그 때문인지 데뷔 이후 내 작업의 많은 부분은 인간의 잠재성을 찾아가는 데 집중되었다. 빙산이 물에 잠겨 있는 것처럼 인간의 정신세계도 겉으로 드러난 부분만 보고 파악하기는 힘들다.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를 작업할 때도 인물들의 본성에 다가가기 위해 의식과 무의식의 중간에 위치한 전의식(前意識, preconsciousness)적인 대사와 노래를 만들려고 형식적으로 고민했다.




누리 빌게 제일란 <윈터 슬립>

누리 빌게 제일란 감독의 <윈터 슬립>은 러닝타임이 3시간 반을 넘는 영화다. 터키 카파도키아 설원에 있는 작은 호텔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이야기에는 어떠한 자극적인 사건도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번 보면 지루할 틈 없이 전개되는 영화의 흡인력에 넋을 잃고 만다. 인물의 심리와 세계를 바라보는 감독의 성찰 앞에서 한편의 도스토옙스키 작품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영화를 볼 때마다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기분이다.




테일러 맥

2015년 공연 작업차 뉴욕에 갔을 때 본 은 그해 본 공연 가운데 가장 쇼킹했다. 대본을 쓴 테일러 맥은 브로드웨이와 오프브로드웨이를 오가며 활동하는 젊은 아티스트로, 동시대의 문제점을 간파하는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은 이라크 파병을 다녀온 주인공 청년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여자도 남자도 아닌 ‘HIR(HIM+HER)’로 정의하고 자신을 둘러싼 모든 인습과 관계를 바꾸어 나가면서 겪는 이야기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인간관계에서 폭력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여주는 빼어난 연출이 돋보였다.





지슬라브 백진스키

폴란드 출신 현대미술가 지슬라브 백진스키의 그림은 인간의 잠재성과 무의식에 깊이 맞닿아 있다. 얼핏 보면 초현실적이고 그로테스크해 보이지만 보면 볼수록 매우 사실적이고 아름답다. 이 사실성에는 ‘존재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일차적인 사실성을 넘어서는 의지가 담겨 있다. 특히 그의 초기 연필 드로잉은 흑색 가루로 빚은 또 하나의 그림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완성작과 다른 느낌을 준다. 어린 시절 전쟁을 겪은 그의 이미지는 때로 몹시 어둡고 스산하지만, 그 속에서 거의 꺼질 듯한 인간의 호흡을 발견할 수 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2호 2018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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