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을 가진 남자들
작품 수로 따지면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두 사람이 함께한 작업들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느낌이 왔다.
이제는 먼 길을 돌아서 거울 앞에 서 마주 보는 것 같은 두 남자가 속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는 무엇일까.
장소는 삼성동의 작은 카페. 신춘수 대표가 직접 고른 그곳은 영화 <멋진 인생>의 오프닝에서 두 사람이 마주했던 바로 그곳이다.
신춘수 내가 탤런트하고 같이 앉아있네? 아니다, 그냥 탤런트가 아니지. 뮤지컬 배우, 탤런트, 영화배우, 아빠, 타이틀이 다양해.
이석준 하핫. 감사합니다. 그런데 아빠가 직업인가요?
기자 퇴직이 없는 일이죠. 두 분 자주 술도 한잔씩 하고 그러세요?
이석준 형이 술을 잘 안 해요.
신춘수 아냐, 나 많이 늘었어.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더라. 세상이 힘이 들어…(웃음)
기자 두 분이 처음 같이 작업한 게 <안녕 비틀즈>였죠.
신춘수 저희 직원이 얼마 전에 정확하게 연도를 알려줬어요. 99년. 석준이랑은 그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그 작품이 제작자로서 내 데뷔작이에요. 겁 없이 첫 작품을 만들었을 때 주인공으로 생각을 했던 친구가 석준이었어요. 거슬러 올라가면, 나한테 두 배우가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데, 그게 석준이와 (서)범석이에요. 석준이에 대해서는 마음의 짐이 너무 많아요. 그리고 범석이는, 공식적으로 제가 출발을 하게 됐을 때 범석이가 정장 한 벌 사라고 돈을 줬어요. 집에 가면 책상 옆에 <안녕 비틀즈> 대본하고 그 정장이 걸려 있어요. 뮤지컬 프로듀서로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두 가지예요. 이 카페를 오늘 인터뷰 장소로 선택한 건 사실 우리 영화의 첫 장면이 여기서 석준이를 기다리는 거거든요. 석준이한테 말을 안 했지만 이 친구에 대해서는 어떤 마음들이 있어요. 굉장히 오랜 세월 동안 같이 좋은 작품을 하고 싶었던 배우가 석준이었고, 1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돌아서 같이 한 게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이하<스토리>)였어요. 석준이도 나도 지난 10년 동안 성장과 실패를 거듭했고, 이제 여기서 다시 만난 중요한 인연이죠. 나한테는 잊을 수 없는 배우죠.
기자 겁 없이 도전할 때 두 번 이석준 씨를 찾으셨네요. 뮤지컬로 한 번, 영화로 한 번. 왜 그때마다 이석준 씨를 생각하셨어요?
신춘수 <안녕 비틀즈> 때는 석준이가 적역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순수하게 시작했다가 상업적으로 변하는 음반 프로듀서 역인데, 솔직히 나는 그 작품이 부끄럽지 않아요. 창작뮤지컬이라는 말조차 언급되지 않았던 시절, 20대에 만들었던 작품이니까요. 그런데 제가 몰랐던 건 사회였고 나의 목표나 꿈이 다른 사람에게 굉장한 아픔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어요. 나는 작품이라는 게 만들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지 그렇게 책임질 일이 많을 거라는 걸 몰랐어요. 그 때 책임을 지지 못했던 것들이 마음의 빚으로 남아있는 거예요. 사회의 쓴맛을 본 첫 작품이었고 그런 부분들이 지금까지 오는 데 원동력도 됐어요. 과거에 진 빚은 묻어버릴 수는 있어도 없어지지는 않아요. 얼마 전에 그 작품의 작가가 십 몇 년 만에 제 앞에 나타났어요. 작가료를 못 받았다고. 그래서 제가 작가료를 지불하고, 대본을 다시 꺼내서 봤어요. 10년 만에 나한테 다시 다가온 원죄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석준이에 대해서도 그런 게 있어요.
이석준 실제로 그랬어요.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그때 당시에 그 작품이 참여한 배우들에게는 정말 큰 아픔이 됐어요. 형이 그때 굉장히 몸이 아팠어요. 우리는 공연을 해야 하고 제작자가 와서 해줘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나타나지를 않으니까. 내가 형이랑 전화로 정말 많이 싸웠어요. 그때 전화를 끊고 젊은 혈기에 내가 죽어도 이 형하고 다시는 작업을 안 한다고 결심을 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리고 그 작품 이후로 2년을 제가 굉장히 힘들게 살았어요. 그때 뮤지컬계 풍토가 어중간한 연예인들을 캐스팅해서 그 정도 유명세에라도 기대서 홍보를 하려는 게 있었어요. 지금 스타 캐스팅이랑은 또 달랐죠. 그걸 지켜보면서 굉장히 마음이 아팠어요. 화도 났고. 그래서 제 딴에는 ‘그럼 나도 방송을 해야겠다, 거기서 화려하게 컴백해야겠다!’ 생각하고 도전했다가 완전히 망했거든요. 정말 이것저것 많이 겹치니까 다 싫더라고요.
기자 세상이 다 밉고 싫을 때였군요.
이석준 네. 그때쯤 형이 <사랑은 비를 타고>로 재기를 했는데 저한테 전화를 해서 ‘석준아, 오디션 보러 와라’ 그랬는데 저는 ‘아유 됐어요, 나는 그냥 살고 싶은 대로 살 거야’ 그러고 끊어버렸어요. 형은 그렇게 빚을 갚고 싶었던 건데 난 마음이 아주 싸할 때였던 거죠. 그다음에 형이 잘된 후에도 마주치면 형은 내 얼굴 보기 힘들어하고 나도 형 얼굴 보고 싶어 하지 않고, 그게 10년을 갔어요. 내가 딱 한 번 이렇게 살 거면 죽어버려야겠다는 생각까지 한 힘든 시기였는데 나는 그 정점에 형이 있다고 생각을 했던 거예요. 그런데 10년이 지나고, 배우로서 어느 정도 연륜을 갖고 보니 내가 참 아이 같았다, 만약 형이 아니었으면 내가 그런 시절을 안 겪었을까 생각해보면 그건 아니었더라고요. 우연찮게 형이 거기 걸려있었던 거지. 당시에 저는 유명한 배우는 아니었으니까 작은 창작 작품이지만 저를 주연배우로 선택해 준 건 용감한 결단이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스토리> 대본을 처음 받아들었을 때… 사실 그 전까지는 형이 하는 작품은 오디션도 안 봤어요. 왠지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게 꺼려지더라고요.(웃음) 그런데 <스토리> 대본을 받았을 때, 이건 이유를 막론하고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러면서 형 사무실에 갔을 때 형이 처음 했던 말이 ‘옛날 일을 기억한다’ 였는데, 사실 그 말 한마디에 많은 것들이 녹았어요. 다른 건 물어볼 필요도 없었고 그냥 기억해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됐다 싶었어요. 그리고 제가 봤을 때 형은, 형이 속에 있는 이야기를 막 쏟아내면 그걸 처음 듣는 사람은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해요. 뭐? 이런 반응을 보이죠.
신춘수 내가 점프를 많이 해요. 시제도 막 왔다 갔다 하고.
이석준 어! 형, 그래! 그래서 따라가기가 힘들어요. 그런데 그날도 그랬어요. ‘옛날에는 이랬는데 나는 이랬고 앞으로 이렇게 할 거야’라고 하는데 ‘무슨 말이야?’ 싶으면서도 그 한마디가 들렸어요. ‘아직 안 잊고 있다’ 그리고 ‘잘해 보자.’ 그 ‘잘해 보자’가 ‘이제 풀 때가 됐어’로 다가왔어요. 그리고 내가 옹졸했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어차피 배우와 제작자가 풀려면, 술 먹는다고 풀리는 것도 아니고, 예전과 똑같은 형태로 형이 나를 선택하고 내가 형의 작품을 선택을 했으니까, 이 작품이 어떤 의미가 남게 된다면 새로운 시작을 하는 첫 단추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작품에 들어갔어요.
신춘수 나라는 인간은 그래요.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표현이에요.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고 못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어요. 여러 가지를 복합적으로 포함해서 말을 하니까 잘 전달이 안 되는 거예요. 설(도윤) 대표님 밑에서 일을 하다가 ‘나도 뮤지컬을 만들 수 있어!’라고 생각을 하고 나왔는데, 만들 수 있다는 생각 말고는 사실은 하나도 준비가 안 되어 있었던 거예요. 내가 그때 사회 경험을 처음 했다는 게, 내 딴에는 그때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했는데?’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프로듀서로서 경험을 쌓다보니까 책임을 진다는 게 뭔지 알게 된 거죠. 일단 작품으로서는 내가 얼마나 많은 아픔을 줬는지를 더 알게 됐고 그래서 더 마음이 무거워졌어요. 그런데 내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시작했을 때 두 번 다 석준이한테 부탁을 했네요.
이석준 으하하하 장난 아니야!
신춘수 나는 참 감성적인 거예요. 어쩜 그런지 모르겠어요. 연습을 하다가, 갑자기 영화를 하고 싶은 거예요. 우리 첫 대사도 그 연장이었고요. ‘석준아, 우리 작업 한번 하지.’ 둘이 이 자리에서 처음 만나서 ‘오랜만이다’라고 하는데 남들은 연기를 못한다지만 그게 나만의 표현이거든요. 자세히 알면 아주 내공 있는 연기인데.(일동 웃음) 정말로 사실을 기반으로 한 거예요. 결국은 <스토리>를 하면서 우리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예요.
이석준 그거 다큐였다고요, 처음에는. 다큐!
신춘수 배우들한테 부탁을 해서 같이 작업을 하면서도 나는 원망을 했어요. 도와주기로 했으면 옷 다 벗고 도와줘야지! 그런데 끝나고 생각해보니까 그들은 프로고 배우인데 준비가 다 안 된 내 작업을 도와준 거였어요. 나는 이 나이를 먹었는데도, 하고 나서 느끼는 거예요. 아우, 내가 잘못했구나. 아직도 난 이기적이게도 내 꿈이 먼저인 거예요. 어쩌겠어요. 석준이 아들 대학갈 때 등록금이라도 보태야죠. (일동 웃음)
이석준 형, 그때까지 잘되면 좋겠다.
신춘수 그러니까! 내가 그때까지 잘 돼야지. 석준이가 프로듀서를 해도 잘 했을거예요, 어떤 면에서는. 나는 프로듀서로서는 빵점일 때가 많아요. 사람들을 정말 잘 다독거려야 하는데 내 중심으로 해놓고 왜 이해 못하냐고 투덜거렸던 시절이 너무 길었어요. 그런데 얘는 리더십도 있고, 책임감도 있고, 또 부지런해요. 석준이가 프리 프로덕션에 기여하는 건 다른 배우 누구보다 많아요. 그리고 <이야기쇼>도 하고 있잖아요. 그건 마인드가 있는 거예요.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프로듀서를 하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아요. 상처 받을 일이 너무 많아요. 배우로서, 아빠로서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이석준 이게 프로듀서 신춘수의 양날의 검이에요. 이게 이 형을 이 자리까지 오게 만든 힘이기도 하고요. 사실 어떤 일을 저지르는 데 있어서… 대기업은 빚도 많잖아요. 빚도 재산이라고 하고. 그 빚의 크기도 그릇의 크기인 거 같아요. 왜 저렇게 저지르냐고 하지만 저질러야 사건도 생기니까요. 제작자는 그림을 그리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안정적인 노선으로 쭉 간다는 게 꼭 좋은 프로듀서는 아닌 것 같아요. 살다보니까 알겠어요. 왜 저 사람은 안정적으로 가지 못하냐고 걱정들을 하는데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만큼 지속적으로 내려가는 걸 많이 봤어요. 자기 고집을 가지고 밀어붙였을 때 바닥을 치는 것 같다가도 그 고집이 통하는 순간이 오면 누구도 그들을 막을 수가 없거든요. 제일 중요한 건 자기 자신으로부터 출발을 하느냐가 맞는 것 같아요. 배우도 마찬가지고요. 형은 그걸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어요. 주위에 미안하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그 미안함을 감수하면서도 밀어붙이는 게 있어요. 그리고 욕을 막 먹죠. 그런데 중요한 건 뭔가를 해내느냐는 거라서, 내놓은 결과물이 인정할 만하면 그동안 비난하던 사람들도 다 말을 접게 되거든요. 나는 형이 재미있는 제작자 같아요. 그래서 요즘은 형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언제까지만 해도 정말 최악이야!라고 생각했는데 저 무대포 정신이…
기자 그러니까 미워할 수 없는…
이석준 밉긴 해요. 미워할 수 없는 게 아니라 밉긴 한데…(웃음) 형은 누구에게 저 역을 시켰을 때 이만큼은 해내겠다는 걸 잘 알아요. 어떤 배우가 어떤 역을 만들어냈을 때 그를 믿고 끝까지 가요. 예를 들면 <지킬 앤 하이드>의 (류)정한이 형 같은 경우가 그랬죠. 류정한이라는 배우를 써서 그 배우가 어느 정도 위치를 차지하니까, 끝까지 밀어붙였어요. 다른 제작자들은 보통 그 정도 궤도에 올라가면 더 젊고 지금 막 치고 나가는 배우들로 바꾸려고 하거든요. 그런데 형의 방식대로 가니까 작품과 배우가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신뢰와 무게감을 주더라고요. 이 배우가 성공하게 되면 다른 배우들도 그렇게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게 되죠. 조승우, 류정한, 정성화, 그리고 또 많은 조연 배우들이 그런 모델이 아닐까요.
기자 배우 이석준의 공연 중에 어떤 작품을 좋아하세요?
신춘수 저는 <아이다>가 좋았어요. 그리고 주옥같은 대사가 있는 치밀한 연극을 좋은 배우가 하는 걸 보는 게 낙인데 석준이가 좋은 연극을 하는 걸 보고 싶어요.
기자 <스토리> 이야기를 하실 줄 알았더니.
신춘수 <스토리>를 어떻게 내 입으로 이야기해요! (웃음) 저는 석준이가 지금도 잘하지만 점점 더 그 작품을 잘하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저희가 지금 6개월 도전을 하고 있는데, 앞으로 더 석준이의 대표작이 되어갈 거라고 생각해요. 아까도 이야기가 나왔지만 저는 작품을 일정 부분 한 배우의 대표작으로 길게 가는 걸 좋아하거든요. 물론 작품이 쭉 가다보면 배우가 건너뛰게 될 때도 있지만 그건 버린 게 아니라 쉬고 돌아오는 거예요. 세월이 묻어나면서 더 잘하게 되는 배우들, 작품이 있어요. 오디에서 하는 작품 중에 <안녕 비틀즈>는 좋은 평가를 못 받았지만 <스토리>나 <미드섬머>는 점점 더 발전시키면서 계속 할 수 있는 석준이의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석준이가 캐스팅에 대해 이야기해줘서 고마운 게, 요즘 제가 스타 캐스팅 때문에 논란에 휩싸였기 때문에…(웃음) 뮤지컬 마니아들이 저한테 트위터로 감 사진을 보내셨더라고. 감 떨어졌다고. 아, 내가 얼마나 마음이 아팠냐면… 그런데 스타가 무대에서 빛나는 모습을 보여줬을 때의 파괴력이라는 게 있어요. <닥터 지바고>의 경우에는 좀 새로운 구성을 하고 싶었어요. 섬세한 연기를 하는 배우와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사실 리허설 장에서 저 굉장히 긴장한 상태로 체크하고 있어요. 제가 선택한 배우들이 잘하는지, 호주 연출자들 반응이 어떤지.(웃음) 그런데 지켜보면서 자신감이 많이 생겼어요. 물론 평가는 관객들이 하는 거지만.
기자 프로듀서로서 ‘눈치’를 보는 것처럼, 배우로서 눈치를 보게 되는 순간들이 있으세요?
이석준 음, 아니오, 그래본 적은 없어요. 그런데 제가 배우로서 큰 생각의 변화를 겪은 일이 최근에 있었어요. 한 후배가 주장하는 이야기를 듣다가 아, 하고 깨달은 거예요. 배우는 무대 위에서 자기를 드러내는 직업은 아닌 것 같아요. 사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왔거든요. ‘난 이런 스타일의 연기를 해’, ‘이 역을 나의 방식으로 보여주는 거야’. 이 배역은 내가 할 수 있는 나의 앨빈이었고, 나의 라다메스고… 그렇게 최선을 다했고요. 그런데 최근에 한 배우가 ‘아, 그런데 저는 원래 이렇게 하는 배우예요’라고 말을 한 순간 내가 탁 숨이 멎는 기분이 들었어요. 저 친구가 작품의 본질에서 벗어나서 자기만의 어떤 캐릭터를 만들었는데 그게 극 안에 들어가 있지를 못했거든요. 배우의 최우선 목표는 작품이 주고자 하는 역할을 얼마나 캐치하느냐에 달려있어요. 그 결과 그 배우가 얼마나 드러나느냐 묻히느냐는 관계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항상 순위를 매기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어디서나 내가 제일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은 거예요. 저는 사실 굉장히 잘 들이받는 사람이에요.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남을 설득하려고 들어요. 그런데 최근에 제가 바라는 건 나를 설득해 주는 거예요. 제발 누구든 내가 생각하는 이만큼을 내놨으니까 이걸 뒤집는 다른 생각을 이야기해줘, 라고 부탁을 하고 싶어요.
신춘수 그건 정말 좋은 변화야. 내가 아까 프로듀서로서 석준이한테 좀 더 이야기하고 싶은 건 그거야. 네가 비워두는 곳이 있어야 다른 누군가, 뭔가와 만나서 화학작용이 일어날 수 있어. 지금 10년째 이 일을 하고 있는데 그럼 전문가란 말야. 스스로 전문가라고 생각을 하면서 다른 걸 받아들이는 게 사실 쉽지 않아. 그런데 알면서도 비워둘 수 있게 되면, 그때는 다시 시작할 때처럼 빠른 속도로 더 성장을 하게 돼. 좋은 변화야.
이석준 저는 사족을 달지 않아도 될 만큼 지금이 좋아요. 이 나이가 좋고요. <그리스>를 할 나이는 지났지만 <그리스>를 하고 싶지는 않으니까.(웃음)
신춘수 <그리스> 원년 멤버가 나온 콘서트 영상 봤더니 진짜 재밌던데? 할아버지가 ‘그리스 라이팅’을 부르는 거야! 대박이야.
이석준 그런 게 재밌지. 여튼 전 아직까지는 우리나라에서 제 나이에 할 수 있는 뮤지컬이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작품이 없는 게 아니라, 그 배역이 젊은 친구들에게 가요. 앞으로는 좋은 방향으로 바뀌리라고 봐요. 내가 제일 바라는 건 50, 60살이 되고 장민호 선생님 나이가 되어도 출연할 수 있는 창작뮤지컬들이 하나씩 나와 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내 나이가 좋다는 건 지금 내 나이로서 할 수 있는 작품을 하나씩 다 해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고, 못한다고 해도 옆에서 박수를 쳐주고 싶어요. 다만, 내가 그 나이에 갖춰야 할 만큼을 갖지 못하고서는 투덜거리는 사람이 되면 어쩌나 걱정이 되고 자꾸 돌아보게 돼요. 저는 욕심이 많아서 후배들이 하는 걸 보면 ‘와, 잘하네’ 하고 박수 쳐주는 여유가 아니라, 내 작품이 아닌데도 식은땀이 확 나요. 내 것을 빼앗길 거라는 불안감이 아니라 내가 저만큼 할 수 있는가, 라는 두려움인 거예요. 하루는 그런 공연을 보고 나와서 차를 몰고 돌아가다가 그 연기를 따라 해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혼자 미친 듯이 웃었어요. 아, 나 진짜 천생 배우구나 생각을 했어요. 이런 열정이 남아있기 때문에 난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선배들을 바라봤던 시기와 후배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대가 다르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어렸을 때 30대를 봤을 때는 진짜 아줌마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전혀 아니잖아요. 지금도 같은 나이의 할머니라도 외국의 노인들이 젊고 세련되게 자존감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우리도 점점 그렇게 변해 갈 거라고 생각해요. 배우로서 우리 세대는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봐요.
신춘수 나도 역시 그런 것 같아요. 나이 들어서 좋은 게 뭐냐면, 브래드 피트가 한국에 와서 인터뷰에서 했던 말인데 현명해져서 좋아요. 성찰이 깊어지고 이해의 폭이 넓어져요. 그게 즐거워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지켜야 하는 것들에 대해 10년 전보다 생각이 많아요. 그때는 내 꿈밖에 없었거든요. 지금은 좋은 프로듀서로서 끝내고 싶어요. 그리고 인간으로서도.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내가 모든 것을 사회에 환원하는 사람은 못되더라도 돈이 안 되어도 작지만 좋은 작품을 무대에 계속 올리면서 폼 잡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마지막 바람은 석준이처럼 빨리 아빠가 되고 싶다는 거?(웃음)
이석준 얼마 안 남았어!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0호 2012년 1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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