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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조풍래 [No.174]

글 |배경희 사진 |김호근 2018-03-07 6,712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향해
 
학창 시절 우연히 본 연극에 매료돼 배우의 꿈을 갖게 된 조풍래. 어느덧 데뷔 10주년을 바라보는 배우가 됐지만, 무대를 향한 뜨거운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처음과 달라진 게 하나 있다면, 백조가 우아하게 헤엄치기 위해선 쉬지 않고 발짓을 해야 하는 것처럼 무대에서 빛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점이다. 스스로 노력형이라고 말하는 배우, 조풍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믿음으로 함께한 긴 여정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는 지난해 리딩 공연부터 함께한 작품이에요. 처음에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요?
작년 초쯤 리딩 공연 출연 제의를 받았어요. 그동안 연극만 제작해 온 수현재컴퍼니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뮤지컬이라고 해서 관심이 갔죠. 그런데 당시 <로미오와 줄리엣>을 공연하면서 <윤동주, 달을 쏘다.>를 준비하고 있을 때라 좀 망설였어요. 스스로 가능할지 확신이 없었거든요. 근데 대본을 읽어 보니 극 중 인물들의 대화가 꼭 시인들의 대화 같은 느낌이었다고 해야 하나, 시구 같은 대사가 어떻게 말로 표현될지 궁금하더라고요. 그래서 한번 도전해 보자 싶었죠.
 
 
친부 살인 사건의 용의자 드미트리를 제안받았을 땐 어땠어요? 
사실 처음엔 조금 당황했어요. (웃음) 이 작품을 하기 전에 원작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어보지 않아서 어떤 캐릭터인지 자세히 몰랐는데, 방탕한 아버지로부터 호색한의 기질을 물려받은 첫째 아들이자 퇴역 장교라고 하더라고요. 과연 내 안에 별로 없는 폭력적인 성향이 강한 인물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싶었죠. 그런데 이번뿐만 아니라, 저는 실제 성격하고 비슷한 캐릭터를 맡아본 적이 거의 없어요. 최근에 한 <여신님이 보고 계셔>의 조동현도 그랬고, <모범생들>의 서민영이나 <풍월주>의 열도 실제 저와는 거리가 있었죠. 오히려 극 중에서 제 캐릭터와 많이 마주치는 역할들이 저랑 비슷한 경우가 많았던 것 같아요. 
 
 
혹시 실제 성격과 다른 캐릭터를 주로 맡게 되는 이유에 대해 고민해 본 적 있어요? 
예전엔 외형적 이미지 때문에 피해를 보는 건가 싶었어요. (웃음) 그리고 한때는 이런 고민도 많이 했어요. 가령 난 슬프다고 생각하고 연기했는데, 왜 사람들은 슬퍼하지 않는 걸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해 보니 제가 무대 위에서 어떤 감정으로 어떤 행동을 하든 정답은 제가 아니더라고요. 정답은 관객분들이 느끼는 거죠. 그렇게 생각을 바꾸고 나니까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미지가 어쩌면 저라는 배우에 맞는 답일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제가 할 일은 그 답을 찾아가는 일인 것 같아요.
 
 
 
 
드미트리의 답을 찾아가기 위한 출발점은 뭐였나요?
무언가 하나에 사로잡혀 그 하나밖에 모른다면 어떨까. 이 생각을 많이 했어요. 드미트리는 어느 면에서 경주마 같다고 해야 하나. 경주마는 기수가 떨어져도 못 멈추고 앞만 보고 뛰잖아요. 드미트리도 양쪽 눈 옆을 가리고 결승점을 향해 달려가느라 다른 건 아무것도 못 보는 상태 같아요. 앞면하고 뒷면만 있는 동전 같은 사람이죠. 그리고 주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도 신경써서 생각한 부분 중 하나예요. 드미트리는 아버지 표도르나 두 동생 이반하고 알료샤, 이 세 사람이 하는 말에 많은 영향을 받거든요. 그래서 세 사람이 자꾸 드미트리의 상태를 자극하는 말을 던지죠. 드미트리를 보고 있으면 전 자꾸 ‘웃프다’는 요즘 말이 생각나요.
 
 
도스토옙스키의 원작 소설은 인간 내면을 드라마틱하게 드러낸 작품으로 손꼽히잖아요. 극 중 여러 유형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중 가장 낯설고 새로웠던 인물은 누구예요?
지금껏 경험 못한 새로운 인물형은 없었지만 새삼 충격으로 다가온 점은 있어요. 좀 옛날 이야기인데, 제가 군대에 있었을 때는 정신 교육이라는 걸 했어요. 어떤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듣다 보면 그게 저도 모르게 제 안에 스며들죠. 근데 저희 작품의 사생아인 스메르쟈코프가 그래요. 이반의 사상을 따라 살인을 저지르게 되죠. 정작 이반은 스메르쟈코프가 자기의 영향을 받고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하고요. 그게 굉장히 강하게 와 닿았어요. 내가 별 뜻 없이 하는 말이나 장난삼아 계속하는 말들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앞으론 말할 때 신중해야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저희 작품에서 초점을 맞추는 부분은 누가 아버지를 죽였느냐가 아니라 누가 아버지를 가장 죽이고 싶어 했느냐 이거든요. 그 전엔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어떤 생각을 하든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그 부분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 보게 됐어요.
 
 
작년 쇼케이스 공연부터 정식 공연에 이르기까지 작품 개발 과정을 함께했는데, 그럴 수 있었던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는 제가 처음으로 리딩 공연에 참여한 작품이에요. 서울예술단 소속이었을 때는 외부 작품 개발 과정에 참여할 기회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리딩 공연에 참여해 보니까 한 작품이 여러 단계를 거쳐 완성돼 가는 과정을 함께하는 게 무척 보람 있는 일이더라고요. 그리고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팀 사람들이 정말 좋았어요. 만약 리딩 공연에서 누구 하나 트러블을 일으켰다면, 긴 시간을 함께해야 하는 이 작업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같이한 스태프들과 배우들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정식 공연까지 올 수 있었죠. 저는 작품 운도 그렇지만, 작품에서 만나는 사람 운이 진짜 좋은 것 같아요.
 
 
 
 
오랜 시간 품어온 꿈
 
오프닝 곡 ‘난 썩지 않을 거야’에서 드미트리가 평생 단 한 번도 미치지 않는 인생은 얼마나 따분할까라는 이야기를 해요. 지난날을 돌이켜 봤을 때, 무언가에 가장 미쳐 있었던 시기는 언제였던 것 같아요?
전 뭔가 할 때마다 항상 그 순간은 거기에 미쳐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좀 지나고 보면 덜 미쳐 있었구나 싶죠. 예를 들어, 지금 연기에 굉장히 빠져 있다고 생각하는데, 1~2년쯤 지난 뒤에 2018년 오늘을 떠올려 보면 ‘아, 좀 더 할 수 있었는데’라는 아쉬움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지 아직 한 번도 미쳐보지 못했단 생각이 들어요.
 
 
그럼 처음으로 배우의 꿈을 갖게 됐을 때 어땠는지 기억해요?
고등학교 때 연극반이었던 친구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어요. 그때 이런 세상이 있다는 데 약간 충격을 받았다고 해야 하나.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단 생각을 하게 됐죠. 근데 평생 이걸로 먹고 살아야겠다 이런 건 아니었고, 나한테 재능이 있으면 한번 해보고 아니면 말자 이런 가벼운 마음이었어요. 그러다 연극반 친구한테 물어봐서 연기 학원을 가게 됐는데, 거기서 선생님으로 박근형 연출님을 뵙게 된 거예요. 제가 밖에서 연극을 본 적이 없다니까 연출님이 본인 공연에 초대해 주셨죠. 그게 고수희 선배님하고 박해일 선배님이 나온 <청춘예찬>이었어요. 맨 앞줄에 앉아 50cm도 안 되는 거리에서 배우들 연기를 보는데, 이거 꼭 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아빠의 반대에 부딪쳐서 일반 대학에 들어갔다 제대 후에 결국 학교를 바꾸게 됐죠. 원래 아빠 말을 잘 들어서 포기하려고 했는데(웃음), 군대에 가서도 계속 연기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남들보다 시작이 좀 늦은 편이에요. 
 
 
대학 졸업 후 서울예술단 단원으로 배우 생활을 시작했는데, 그때의 경험이 어떤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서울예술단 입단 오디션이 제 생애 첫 오디션이었어요. 근데 첫 오디션에 바로 붙어서 정말 감사했죠. 햇수로 6년 정도 예술단에 있었는데, 한마디로 저를 성장시켜준 곳이에요. 씨앗 같은 존재였던 저한테 흙을 덮어 물도 뿌려주고, 햇볕도 쬐어주고, 바람도 쐬어주고 그랬던 것 같아요. 쉽게 말해 그 당시 전 무대에서 제대로 걸을 줄도 몰랐거든요. 근데 예술단 선배님들이 정말 많이 가르쳐주셨어요. 처음엔 대사 한마디 없이 무대에 올랐는데, 어느 순간 대사가 한마디 생기고 점차 하나씩 늘어가는 쾌감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한테 큰 힘이 돼주는 (박)영수하고 (김)도빈이도 예술단에서 만나게 됐고요. 
 
 
 
 
그런 서울예술단을 나오기로 한 데는 이유가 있었을 것 같아요.
예술단을 나온 게 2016년 11월이었는데, 사실 고민은 그 전부터 했어요. 그런데 쉽게 그만두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가 동료들이었거든요. 몇 년 동안 주 5일씩 봐왔던 사람들을 못 본다는 게 되게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근데 (장)승조 형도 나가고 (이)시후 형도 나가고 (임)병근이도 나가고, 친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예술단을 떠나니까 꼭 케이크가 한 조각씩 떼어져 나가는 것 같았어요. 한 명씩 나갈 때마다 커다란 판에 조각 케이크만 남아 있는 기분이 들어서 굉장히 우울했죠. 그러다 보니 예술단에 소속돼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도전을 한번 해보자고 마음을 굳히게 된 것 같아요. 나중에 사십 대가 되고 오십 대가 돼서 그때 도전해 볼걸 하는 후회는 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물론 그때 안 나갔어야 했는데 하고 후회할 수도 있지만(웃음),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단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겠다 싶었죠.
 
 
오는 3월에 서울예술단 절친 삼 인방의 콘서트 이 열리잖아요. 박영수, 김도빈, 조풍래 세 사람의 우정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음, 뭐라고 해야 하지. 하리보? (웃음) 저희는 꼭 다른 색깔 곰돌이 젤리 세 개가 한 봉지에 들어 있는 것 같거든요. 영수랑 도빈이, 저, 셋 다 성격이 조금씩 다르죠. 그러다 보니 배우로서 색깔도 조금씩 다르고요. 공통점은 일부러 멋있게 보이려고 안 한다는 거예요. 이번 콘서트에서는 남들이 생각하는 뻔한 걸 안 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 중인데, 어제도 새벽 두 시까지 연습했어요. (웃음)
 
 
올해 특별한 계획이나 목표가 있나요. 
제 목표는 항상 같아요. 어제보다 오늘 실력이 나아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항상 주변을 돌아볼 줄 알았으면 좋겠고요. 사실 서울예술단에서 외부 작품 활동을 막 시작하던 때에는 무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어요. 그래서 배우들하고 잘 어울리지도 않고 작품에만 매달렸죠. 그렇게 한두 작품을 하고 나서 알게 된 교훈은 혼자 연기를 아무리 잘 해봤자 소용없다는 거예요. 내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상대방이 채워줄 수 있고 서로 함께 맞춰가야 훨씬 더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죠. 그때부터 주위를 보게 된 것 같아요. 작품은 잃더라도 사람은 잃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죠.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4호 2018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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