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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REVIEW] <존도우> [No.175]

글 |정수연 뮤지컬 평론가 사진제공 |HJ컬쳐 2018-04-16 3,708
<존 도우>  
존 도우가 ‘존 도우들’이 되지 못한 이유 
 

 
‘이름 있는’ 뮤지컬
 
뮤지컬 제작사 HJ컬쳐의 작품에는 재미있는 공통점이 있다. 거의 모든 작품의 제목이 사람 이름이라는 사실. <파리넬리>, <빈센트 반 고흐>, <살리에르>, <라흐마니노프>까지 HJ컬쳐의 흥행을 이끌었던 작품 제목은 실존했던 사람의 이름이었다. 이름이 제목이 되면 일단 간결하면서도 분명한 서사를 기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름을 남긴 사람들은 살아온 이야기도 남기는 바, 그 이야기를 가져오는 것만으로도 극적인 서사를 만들기에 충분하니 말이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를 새삼스럽게 만들어야 한다는 면에서 보자면 오히려 이름을 가져오는 일은 어려운 선택일 수 있다. 삶을 재현하는 것에 집중하자면 잘 만들어야 본전치기가 될 가능성이 높고,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자면 자칫 근거 없는 상상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존 도우>는, 역시 이름을 제목으로 삼은 작품이지만, 전작과는 다른 방식의 이름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전작의 이름은 모두 실존했던 사람들인 데 비해 <존 도우>는 가상의 인물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존 도우의 이야기 자체가 할리우드 영화의 원작에서 온 것이기도 하거니와, 영화 속 존 도우 역시 실직을 면하기 위해 기자가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에 불과한 거다. 존 도우는? 없다! 존 도우라는 이름의 독특함은 그 이름이 호명하는 사람이 없다는 데 있다. 이야기는 정해졌다. 이름으로 압축된 삶을 풀어내는 이야기가 아니라 실체가 없는 이름에 삶을 직조하는 이야기. 한마디로 이름과 사람이 만나는 이야기인 거다. 재미있는 이야깃거리이다. 
 
이야깃거리가 많은 사람을 소재로 포착하는 HJ컬쳐의 감각은 이미 유명하다. 거세된 카스트라토와 불행했던 천재 화가, 영원한 2인자와 열등감에 사로잡힌 음악가 등등 HJ컬쳐가 선택하는 이야기 소재는 대중적으로 넓은 호응을 받으면서도 서사적으로 깊은 주제를 탐색할 수 있는, 한마디로 뻗어 나갈 길이 많은 이야깃거리이다. 하지만 뻗어 나갈 가능성이 많다고 해서 모든 행로가 길이 되는 건 아니다. HJ컬쳐의 작품에 가장 아쉬운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삶을 재현하는 데는 꼼꼼하지 못하고 새로운 상상에서는 비약이 많아서 결과적으로 볼 때 이야기의 시작은 창대했으나 그 끝은 언제나 미약했으니 말이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소재가 품은 이야깃거리는 넉넉한 서사의 틀을 갖추지 못한 채 과잉된 감성만으로 성급한 결론에 이르기 일쑤였다. <존 도우>도 그렇다. 


 
사람이 되지 못한 이름
 
<존 도우> 역시 소재로 보자면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이다. 존 도우는 대공황 시대의 사회적 모순을 고발하고 그에 항거하기 위해 자살을 예고한 사람의 이름이다. 물론 이런 사람은 없다. 실직의 위기에 놓인 기자가 신문의 판매 부수를 늘리기 위해 만들어낸 가짜 뉴스의 주인공일 뿐이니까. 존 도우라는 이름은 자살이라는 자극적인 선동을 해야만 분노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어려운 시대를 사는 힘없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일반 명사가 된다. 이 일반 명사가 의미를 지니려면 몇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먼저 그 이름이 구체적인 한 사람의 삶으로 집약되어야 한다. 그리고 가짜를 자처한 그 한 사람이 진짜로 변화해 가는 이야기가 펼쳐져야 한다. 가짜 존 도우를 자처한 윌러비의 삶이 구체적이어야 이 드라마는 비로소 시작될 수 있는 거다.  
 
그런데 이 작품의 서사는 ‘한 사람의 존 도우’를 그려내는 초반부터 삐걱대기 시작한다. 윌러비의 삶에서 존 도우를 연상시키는 삶의 교집합은 찾아보기 힘들다. 혹사당한 채 퇴출당한 야구 선수라는 사실? 인생의 억울함은 이거 하나밖에 없는데, 그나마 윌러비는 여기에 분노하지도 않더라. 분노하고 저항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순응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에 가까운 거다. 그런 그가 어떤 일을 겪으며 진짜 존 도우로 변화해 가는지가 이야기의 전개여야 하건만 이 작품의 서사는 거기에 도통 관심이 없다. 윌러비는, 가짜 뉴스를 쓴 기자 앤과 공놀이를 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자기 스스로에 대한 자각이나 자기와 비슷한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발견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거다. 1막의 마지막 장면, 그러니까 윌러비가 자기의 이름으로 존 도우를 선택하는 장면의 의미가 살아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무런 변화와 성장의 계기를 갖지 못한 주인공의 입에서 갑작스레 튀어나오는 ‘존 도우들’의 가치와 자긍심의 선언은 아무도 설득하지 못하는 미사여구에 불과하다. 이런 식의 허술한 인물 형상화는 윌러비뿐 아니라 앤과 캐시 등 주변 인물을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인물이 피상적이고 이야기가 축적되지 않을 때 극을 이끄는 건 사건이 아니라 대사이다. 하지만 그 많은 대사, 즉 존 도우가 사람들에게 전하는 연설로 압축되는 작품의 메시지는 작위적이기만 하다. 우리는 모두 ‘존 도우들’이니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 서로의 이름을 불러줄 때 우리는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 이 세상의 청년으로 세상과 맞서겠다, 피하지 않겠다 등등. 이런 말은 눈으로 볼 때 감동적인 가치이지 귀로 들을 때는 민망한 경구에 불과하다. 가짜 존 도우가 진짜 윌러비가 되어 사람들 앞에 서는 마지막 장면이 진짜 감동적이려면,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는 데서 어려운 시대를 통과하는 사람들의 희망을 찾으려면, 우선 ‘한 사람’의 이야기부터 탄탄해야 한다. 그래야 존 도우라는 이름은 비로소 몸을 입을 수 있고, 그때부터 극이 흘러갈 것이다. ‘존 도우들’이라는 말은 그다음에 나올 수 있다.   


 
재즈라는 과한 이름     
  
서사보다 더욱 아쉬운 건 공연의 만듦새이다. 의욕은 넘치는데 뭔가 조금씩 어긋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무대 전면에 ‘재즈 클럽’의 간판을 내건 것뿐 아니라 빅 밴드를 구성한 것을 보자면 이 작품의 음악 색채가 재즈임은 분명할 터다. 하지만 오프닝을 비롯한 소수의 뮤지컬 넘버를 제외하고는 이 작품의 음악은 재즈보다는 발라드에 가깝다. 이럴 거면 굳이 재즈 밴드를 무대 한가운데에 배치할 필요가 뭐 있나? 자살을 예고한 가짜 영웅의 소동극에 재즈는 블랙코미디를 가능케 할 음악적 거리 두기의 좋은 장르일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음악에 재즈의 지분은 지극히 사소하고, 사소한 만큼 음악은 거리 두기보다는 감정의 대리자로서 기능한다. 간판은 재즈인데 메뉴는 영 딴판인 거다. 
 
이런 면모는 연출에서도 드러난다. 무대 전면에 밴드를 노출시키고 ‘재즈 클럽’이라는 간판을 무대의 이름처럼 내걸었다면 극의 만듦새에도 ‘재즈다운’ 상상력이 배어 있어야 한다. 대공황 시대의 재즈 클럽이라는 설정이 분노한 서민의 영웅 존 도우의 이야기와 잘 어울리는 배경인지는 일단 접어두자. 하지만 무대화의 논리에서도 이 작품의 드라마와 재즈다움은 서로 잘 어울리지 못한다. 재즈다움에 기준을 둘 때 이 작품은 너무나 정통 드라마에 가깝게 흘러갈 뿐이다. 밴드에게 오픈했을 뿐 아니라 거의 비어 있는 공간에서 그저 이야기만 진행시키는 연출의 상상력을 성실함의 미덕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드라마라도 잘 흘러가야 하겠지만 막상 보면 그것도 아니다. 이야기는 드라마인데 장면의 분절은 마치 쇼처럼 구성되어 있어서 그냥 연결해도 되는 장면마저 끊겨버리는 경우가 적잖으니 말이다. 
 
1941년에 원작 영화가 개봉했을 때 평론가들은 이 작품의 해피엔딩, 즉 주인공이 사람들에게 설득당해 자살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하는 마지막 장면에 대해 가차 없는 비판을 날렸더랬다. 사회의 불공정함과 모순은 그대로 남아 있는데 고작 자기의 정체를 인정받았다는 것 하나로 모든 갈등을 마무리 짓는 결론의 안이함이 첫 번째 이유였고, 이런 안이함에 의존해서 희망을 이야기하는 근거 없는 낙관주의가 두 번째 비판의 이유였다. 그래도 영화는 재미가 있어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뮤지컬도 그럴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5호 2018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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