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선은 현재 뮤지컬 연출가 중 가장 젊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인지도는 낮지 않다. 그가 쓰고 연출한 <스페셜 레터>가 성공하면서 이 작품으로 작년 한국뮤지컬대상에서 극본상을, 대구뮤지컬어워즈(DIMF)에서는 최우수 창작 작품상을 받고 딤프 수상의 특전으로 이번 뉴욕뮤지컬페스티벌에 참가하게 됐다. 중요 페스티벌에 참여하다 보니 매스컴의 관심도 따라왔다. 올해 초 옥주현, 류정한 등이 출연한 <몬테크리스토>의 협력연출을 맡게 되면서 그의 존재감은 더욱 커졌다. 그러나 막상 그의 프로필을 검색하다 보니 그의 경력이 쌓아온 이미지보다 많지 않다는 것에 당황했다. “제가 <햄릿> 조연출 생활을 하면서 로버트 요한슨과 친분이 있었는데 그가 저를 지목했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부담스러워서 조연출을 하겠다고 했는데 하는 일의 비중이 커지면서 제작사에서 협력 연출 타이틀을 준 거예요.” 박인선 연출이 뮤지컬계에 입문한 것은 2008년 <솔로의 단계> 극작을 통해서였다. 2009년 군대 이야기를 다룬 <스페셜 레터>가 호평을 받으면서 주목을 받게 되었고 그해 <점점>을 선보였다.
박인선 연출은 많지 않은 공연계 경력에 비해 자신에게 쏟아지는 큰 관심이 부끄러운 듯 겸손하게 말했지만 그의 아마추어 무대 경험은 이미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많다. 그는 영상원을 지원하는 친구를 따라 한예종에 갔다가 덩달아 연출과에 도전한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미인 대회에서는 흔한 에피소드지만 연출 전공자 중에는 그가 아마도 유일한 케이스일 것이다. 충동적으로 도전했던 연출의 길은 녹록치 않았다. 한예종 연출과에 들어와 보니 동기들은 이미 현장에서 어느 정도 경험을 쌓다 들어온 사람들이 많았다. 경험과 지식 면에서 열등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박인선은 장유정의 학사 동기이다. 그 위 학번에 <빨래>의 추민주 연출이 다니고 있었다).
1년을 마치고 의경으로 입대했는데 연극을 하라는 운명인지 지금은 배우 조승우로 인해 유명해진 호루라기 경찰단에 배치받게 됐고 제대할 때까지 본의 아니게 배우 트레이닝을 받았다. 연극원 학사 4년 그리고 전문사 3년 총 7년 동안 그가 참여한 작품 수는 대략 50여 편, 1년에 7~8편 정도를 했던 셈이다. 의경 시절에는 배우와 무대감독으로, 학교에서는 무대감독, 연출, 극작을 경험하며 자신만의 생각을 쌓아갈 수 있었다.
뮤지컬과의 인연은 연극원 학사 시절에 찾아왔다. 슬로바키아에서 열린 대학생 공연 페스티벌에 <김종욱 찾기>가 참가했는데 그때 그가 무대감독으로 동행했던 것이다. “뮤지컬을 많이 경험하지 못했는데 어떤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있었죠.” 학교 워크숍에서 만들어진 <김종욱 찾기>가 공연계에서 탄탄히 자리를 잡았듯이, <스페셜 레터> 역시 학교 졸업 작품으로 선보인 것이 대구뮤지컬페스티벌에서 좋은 반응을 일으키면서 이번에 뉴욕까지 다녀올 수 있었다.
<스페셜 레터>는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남녀의 이야기가 메인 스토리이지만 그보다도 에피소드처럼 엮이는 군대 이야기가 재미를 주는 작품이다. 군대를 갔다 왔든 그렇지 않든 군대라는 공간은 한국인들이라면 공유하는 판타지를 가진 장소이다. 그런 판타지를 유쾌하게 풀어낸 점이 <스페셜 레터>의 성공 요인이었다. 정말로 독특하고 한국적인 문화인지라 뉴욕 공연이 걱정이었는데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작품이 이렇게 한국적인 작품인지 몰랐어요. 공연하기 전에 기본적인 정서를 교육했어요. 암구호를 ‘레이디’, ‘가가’로 바꾸는 정도의 교체가 있었고요. 그리고 교민들이 많이 오셔서 이해에 그렇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어요.”
군대 문화를 소재로 한 <스페셜 레터>나 젊은이들이 관심이 많은 ‘점’을 소재로 한 <점점>, 연애 이야기인 <솔로의 단계>까지 트렌디한 소재를 잡아서 그것을 확장한 작품들을 만들어왔다. “아무래도 제가 연출 전공이다 보니까 소재에 관심이 많아요. 이거 재미있겠다 싶은 게 있으면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주고 반응을 살펴요. 정말 재미있겠다거나, 그걸 왜 하냐는 식의 격한 반응이 나오면 좀 더 발전시켜 보죠. 부정적인 반응이라도 격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에 관심을 갖게 돼요.”
이번 뉴욕에서 세 편의 뮤지컬을 봤는데 가장 관심이 갔던 것은 <멤피스>였다. 정확하게 다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장면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지 명확하게 그림으로 전달되었다. 그가 로버트 요한슨과 작업을 하면서 느끼는 것도 그런 것이다. 말의 전달력보다는 그 장면에서 전달하고픈 이미지를 그림으로 만들어내는 능력이 뛰어났다. 그래서 브로드웨이 뮤지컬들은 누가 봐도 쉽게 이해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연출 방식은 궁극적으로 그가 만들고 싶은 작품과도 맥이 닿는다. “한예종에 있다 보니까 다양한 작품들을 많이 해요. 굉장히 고차원적이고 어려운 작품도 많이 만들어요. 주위 분위기가 그러니까 저도 그렇게 해봤는데 이제는 못하겠더라고요. 전 누가 봐도 이해하고 즐겁게 볼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우리 엄마에게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들 거예요.”
그는 요즘 개사 작업에 재미를 붙이고 있다. <모차르트!>나 <몬테크리스토> 등 몇몇 개사 작업을 하다 보니 이에 흥미를 느낀 것이다. 또 시력이 약화되고 있는 틴틴 파이브의 이동우의 사연을 모티프로 한 연극 <오픈 유어 아이즈>를 쓰고 있다. 이 작품에는 이동우가 직접 출연한다. 시력을 잃지만 다른 능력을 부여받은 사람의 이야기인데 이동우 씨가 희망을 갖길 바라는 마음으로 즐겁게 작업하고 있다.
친구를 따라 공연의 길로 접어든 길이 어느덧 10년을 훌쩍 넘겼다. 우연이었지만 박인선 연출가는 그 길을 운명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6호 2010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