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환이 뮤지컬 무대에 섰던 모습을 기억하는 팬들에게 반갑고도 아쉬운 소식이 있다. 그가 뮤지컬 <카페인>에 출연하게 되었는데, 국내가 아닌 일본 무대라는 점이 그것이다. 브라운관과 스크린 너머에서 화사한 빛을 발하던 그가 <카페인>의 제작자로서, 또 배우로서 무대로 돌아온 것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았는데, 그의 바쁜 일정 탓에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었다. 대신, 도쿄에서의 첫 공연을 위해 일본으로 날아간 그가 이메일을 통해 소회를 밝혔다.
제작자로 돌아온 대학로
“오랜만에 무대로 돌아오니 마치 친정에 온 기분이랄까요? 신인 때로 돌아간 것 같아요.” 뮤지컬 무대로 복귀한 소감에 대한 강지환의 첫마디는 이랬다. 그가 배우로서 가장 먼저 이름을 알린 계기가 뮤지컬 <록키 호러 쇼>였으니, 무대에서의 첫 경험이 그에게 짜릿함으로 남아 있음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강지환은 영화와 드라마로 대중들을 만날 때에도 뮤지컬 무대에 서고자 하는 바람을 갖고 있었는데, 그 기회는 조금 특별하게 왔다. 한류 스타로서 그가 가진 인기 덕에 일본 관객과 만나는 무대에 서는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일본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그와 제작사 모두에게 좋은 기회임은 짐작 가능하지만, 그는 배우로 참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제작자 난에도 이름을 올려 뮤지컬 관객들을 의아하게 했다.
“<카페인>의 일본 공연 출연을 제의 받았을 때, 이 작품이 지난해 국내에서 앙코르 공연을 진행하던 중에 조기 종연되었던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초연 이후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는 창작뮤지컬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공연이 작품 내적인 요소가 아닌 외적인 요인으로 인해 막을 내렸다는 사실이 굉장히 안타까웠어요. 제작사 대표님을 설득해서 국내에서 공연을 올릴 방법은 없는지 여쭙고, 제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나서겠다고 의사를 표했죠. 다행스럽게도 기대보다 빨리 일이 진척되어서, 일본 공연에 앞서 국내 공연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국내 <카페인> 공연은 지난 8월 4일 대학로 아트원씨어터에서 개막하여 10월 3일에 막을 내렸고, 김태한과 김경수, 유나영과 우금지가 출연했다.)
자신의 데뷔 무대였던 뮤지컬에 대한 애착도 그의 결정에 영향을 주었겠지만 <카페인>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면 제작자로 참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남녀 단 두 명이 등장하는 <카페인>은 소믈리에 남자와 바리스타 여자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커피와 와인이라는 소재가 로맨스와 잘 어우러지며, 남자가 1인 2역을 하는 설정이 독특한 재미를 더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극 중 남자 주인공은 유머 감각도 있고, 여자를 능숙하게 다루는 바람둥이 기질도 다분한 캐릭터이다. 강지환이 이전에 드라마를 통해서 보여주었던 이미지와 어울리는 데가 있어서 그와 <카페인>의 인연은 더욱 고무적으로 보인다.
카페인 중독자
강지환은 국내 공연의 제작자로, 또 일본 공연의 배우로서 대학로 연습실과 공연장을 오가며 늘 <카페인> 곁에 있었다. 연습실에서 훈련하는 것만큼이나 다른 배우들이 실제로 공연하는 모습을 통해 배울 점이 많았기에 연습이 끝나면 으레 공연장을 찾곤 했다고 한다. 그가 대학로에 출몰한다는 소식을 접한 발 빠른 국내외 팬들이 <카페인> 공연장을 찾아 그의 인기를 실감케 해주었다.
관객으로서의 관극과, 같은 역할을 연기할 배우로서 공연을 보는 마음가짐은 다를 것이다. “국내 공연을 보면서 뮤지컬 무대에 여러 차례 섰던 배우들이 저보다 무대 발성도 안정적이고 동작의 유연함이나 관객 흡인력이 훌륭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는 상대 배우와의 호흡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도 깨달았죠.” <카페인>의 경우 2인극이라서 관객이 두 주인공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각자가 소화해야 할 대사와 노래의 분량이 많다는 점이 배우에게는 힘들다. 게다가 두 배우의 호흡이 맞지 않으면 공연이 지루하고 썰렁해지기 십상이다. 그런 이유로 강지환 역시, 상대 배우의 모든 것을 보고 배려하면서 서로 맞춰가야만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아, 연습하면서 또 하나 어려웠던 점이 있어요. 남자 배우가 1인 2역을 맡는데, 앞니 분장이나 안경 착용, 목소리 변환 등으로 180도 다른 인물로 변신하거든요. 낮에는 바리스타 세진이 좋아하는 젠틀한 남자 정민으로, 밤에는 세진에게 연애 코치를 해주는 소믈리에 지환 - 국내 공연에서는 남자 배역의 이름이 ‘정민/지민’이었으나, 배우의 이름과 비슷해서 일본 공연에서는 ‘정민/지환’으로 바꿨다 - 으로요. 완전히 새로운 두 인물과 마주하는 재미가 있지만 동작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변신이 쉽지 않았죠.” 연습 초반에는 실수가 많았다고 고백했지만, “이제는 빠른 변신이 가능할뿐더러 관객들이 보기에도 정말 재미있는 장면일 것”이라고 자신했다.
<카페인>에서 강지환이 추천하는 장면은 ‘칠판 전쟁’과 ‘사랑의 묘약’이다. 극 초반 세진이 신성하게 아끼는 칠판을 두고 지환과 미묘한 신경전을 벌인다. 세진이 칠판에 그녀만의 사랑의 정의를 써두었는데, 지환이 그것을 살짝 비틀어 고쳐 쓴 것. 지환은 세진의 반응을 보려고 정민이라는 이름의 손님인 척 위장해서 그녀를 만난다. 둘은 칠판의 문구를 두고 옥신각신하다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칠판 전쟁’ 후 ‘사랑의 묘약’ 장면에서 정민과 세진이 첫 커플 댄스를 선보이니, 강지환의 춤 실력도 감상할 수 있다. “제가 <카페인>에서 좋아하는 뮤지컬 넘버는 ‘와인과 여인’이라는 곡이에요. 극 중에서 지환이 소믈리에이다 보니 와인과 와인 잔을 여자에 빗대어 표현하거든요. 바리스타인 세진은 커피에 빗대어 남자를 노래하고요. ‘와인과 여인’은 멜로디 자체도 굉장히 경쾌하고 가사도 톡톡 튀어요. 남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재미있는 곡이죠.”
강지환과 호흡을 맞추는 여배우는 서울에 이어 일본 무대에서도 같은 역할을 맡은 우금지이다. 서울 공연과 일본 공연 연습을 병행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피곤한 내색 없이 파트너로서 큰 도움을 주었다며, 강지환은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했다.
일본에서 외치는 목소리
10월 16일에 일본 도쿄 글로브 극장에서 있을 첫 공연을 위해 강지환은 일찌감치 일본으로 날아갔다. 오랜만에 서는 뮤지컬 무대, 그것도 고국이 아닌 타국의 관객을 맞는 긴장감이 적지 않을 것이다. “사실 일본에 온 첫날은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어요. 저 무대가 내가 설 곳인지도 잘 모르겠고요. 그런데 공연장에서 마지막 리허설을 마치고 무대에서 객석을 바라보니 그제야 덜컥 실감이 나더라고요. 한국에서 공연한다면 실수를 하더라도 우리말로 재미있게 넘길 수 있을 텐데, 일본에서는 언어 전달에 제약이 있다 보니 걱정되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 연기를 보고 반응하는 관객들의 표정, 저를 응원하는 마음을 가까이에서 느끼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준비는 아주 잘되고 있어요!” 우리가 브라운관 너머에
서 익히 들었듯이 낭창하게 자신감에 들떠 파이팅을 외치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일본에서 강지환의 인기를 고려한다면 <카페인>의 성공 여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10월 16일부터 11월 7일까지 23회 공연에 단독 출연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9월 중순에 이미 전체 공연 2만여 석이 모두 매진되었다는 제작사의 전언을 통해서 검증된 사실이다. 이전에도 일본에서 한국 배우들이 뮤지컬 공연을 한 적이 있으나 <지킬 앤 하이드> 같은 외국 작품이었거나 <겨울 연가>처럼 한류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작품을 선보인 것이었다. 국내 순수 창작물이 일본으로 진출한 것은 이례적인 일인데,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강지환의 브랜드 네임이 주효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 역시 국내 문화 콘텐츠를 일본에 알리게 되어서 뿌듯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마치 문화 전도사가 된 것 같아서 영광입니다.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해외에서 한국 배우들이 활약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의 창작물을 알리는 기회가 생기면 더욱 좋겠죠. 지금 제가 그에 일조하게 된 것 같아 흐뭇합니다.”
일본 관객들에게 강지환뿐만이 아닌 <카페인>의 매력을 전하는 것이 그의 중요한 임무로 보인다. “일단 <카페인>의 남자 배우는 서로 다른 성격을 지닌 두 남자를 연기하게 됩니다. 한 명의 배우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 데서 오는 재미가 있어요. 제가 그동안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서 보여드린 모습은 거칠고 불친절한 남자였는데, <카페인>을 통해서 부드러운 남자의 면모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전부 일본어로 연기할 수는 없지만 일본 관객을 위한 공연이라 일부 대사 중 중요한 단어는 일본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처음에 소믈리에 지환이 등장할 때 관객에게 일본어로 인사를 하고요. 칠판에 쓰는 사랑에 대한 정의도 일본어를 사용해 친숙함을 드리려 합니다.”
일본에서의 첫 공연 결과는 어땠을까? “그동안 연습을 매일매일 했지만 정식으로 무대에 서니 정말 가슴이 터질 것 같았어요. 첫 공연을 무사히 마쳐서 기쁩니다. 팬들의 호응에 힘입어 커튼콜 후에 앙코르 무대도 선보였는데요. 관객들이 하나둘 일어나서 스탠딩 콘서트처럼 마무리할 수 있었죠. 하하.” 쑥스러운 듯한 말투였지만 여전히 그에게 벅찬 감격이 남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매일 무대에 오르기 위해서는 체력 관리가 필수라며 일본에서도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는 강지환이 마지막 공연까지 무사히 마치기를 바란다. <카페인>은 11월 7일 일본 공연을 마치면, 11월 24일부터 내년 1월 23일까지 서울에서 공연을 이어 간다. “한국 무대에서 관객을 만나지 못해 아쉽지만, 일본에서 남은 공연 멋지게 하고 돌아갈 테니 많이 응원해주시고요. 곧 개막할 공연에는 SS501의 김형준이 출연하니 많은 관심 가져주세요.” 서울 공연에서는 다시 제작자로 참여하는 강지환의 마지막 인사였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6호 2010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