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예은
기다리던 봄이 오고 있는데
안예은은 독특한 목소리와 뛰어난 작사, 작곡 실력으로 마니아층을 형성한 싱어송라이터다. 오디션 프로그램인
아지랑이 같은 사람
근원적인 궁금증이죠, 왜 가수가 되고 싶었나요?
어렸을 때부터 노래하는 걸 좋아했던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가수가 되고 싶었죠. 그런데 워낙에 노래를 못했어요. (웃음) 그럼에도 음악 말고는 다른 장래 희망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가수나 작곡가, 그것도 아니면 연주자. 이렇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정규 2집 앨범 발표 전에 ‘홀로봄’을 선공개했어요. 어떻게 이 곡을 만들게 되었나요?
제 성격과 연관 있기도 해요. 봄은 밝은 무언가가 찾아오는 시기잖아요. 그런데 저는 아직 봄을 맞을 준비가 안 된 거죠. 음, 혼자 있는 게 편하고 어두운 게 좋은. (웃음) 해가 뜨고 꽃이 피고 사람들은 떠들 준비를 하는데, 전 아직 그럴 수 없다는. 제 심정이 딱 그랬거든요. 이런 마음을 ‘홀로봄’에 담았죠.
선공개 곡은 정규 2집 앨범의 맛보기 같은 느낌이잖아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지난 정규 1집이나 미니 앨범, 심지어 드라마 <역적>의 OST를 늘어놓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카페에서 편하게 들을 수 있는 노래가 하나도 없더라고요. 이번 ‘홀로봄’과 정규 2집 앨범에서는 제 나름대로 사람들이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을 시도하고 싶었어요.
그럼 정규 2집 앨범은 어떤가요?
정규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나오는 앨범인 만큼 지난 1집보다 음악적으로 발전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제가 시도했던 장르보다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하고 있죠. 물론 많은 분이 좋아하는 사극풍의 노래도 들어가고요. 정규 앨범의 장점이 이것도 넣고 저것도 넣을 수 있는 거잖아요. 최대한 다양한 모습을 선보이려고 해요.
가장 유명한 곡 ‘홍연’은 영화 <왕의 남자>에서 모티프를 얻어 만들었다고 들었어요. 새로운 앨범에 들어가는 곡 중에서 특별히 모티프를 받아서 작업한 곡이 있나요?
음…, 조심스럽지만, 영화 <블랙 팬서>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들어가지 않을까 싶어요. 아직 확답을 드릴 수는 없지만 말이에요. 저는 <블랙 팬서>에서 티찰라와 킬몽거를 정말 좋아하는데, 두 사람의 관계에서 모티프를 얻어 이들의 이야기를 담으려고 해요. 또 <블랙 팬서>의 세계관에서 어떤 여성의 이야기도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새 앨범을 작업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을 받은 것은 무엇인가요?
책을 많이 읽으려고 해요. 자기계발서를 제외하고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읽거든요. 아무래도 책을 읽을수록 표현하는 폭이 확 넓어지니까, 꾸준히 읽는 게 도움이 되더라고요. 영감은 영화에서 받는 편인데, 직접적으로 이렇게 멋있는 캐릭터가 있다고 보여주니까요. 그 캐릭터를 빼 와서 생각을 해보는 거예요. 이 이야기 전에는 어땠을까. 혹시 다른 선택을 했으면 어땠을까. 만약 안 죽었으면 어땠을까. 이런 상상이요. (그럼 이렇게 영감을 받아 탄생한 곡이 어떤 건지 소개해 줄 수 있어요?) ‘달그림자’라는 노래요. 영화 <역린>에서 조정석 배우가 연기한 을수의 스틸컷을 봤는데, 흥미가 생기더라고요. 영화 속에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썼어요. 또 ‘미스터 미스터리’는 영화 <킹스맨>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앞으로는 여배우가 등장하는 누아르 영화를 보고 꼭 한 번 곡을 써보고 싶어요.
그렇게 되면 책이나 영화의 표현을 자연스럽게 모방하게 되지 않아요?
이 점이 제겐 장점일 수도, 단점일 수도 있는데, ‘이런 스타일의 노래를 만들고 싶어’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저는 그게 잘 안 됐어요. 제 친구들은 되게 잘했거든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지닌 성향이 강해서 저를 통해 나가면, 늘 다른 스타일이 되는 거죠. 모방하는 과정에서 배울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데, 저는 이런 모방 자체가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고민을 많이 하기도 했어요. 나는 왜 이렇게밖에 못 할까. 다른 것도 하고 싶은데, 따라 할 수도 없잖아. 이렇게요. 사실 이런 모방의 문제는 예민하고 조심하고 섬세하게 다뤄야 하는 부분이지만, 아직 무언가를 모방하게 되어서 생기는 고민은 없는 것 같아요. (다르게 말하면 특별한 거잖아요.) 맞아요. 이게 제겐 장점일 수도 있는데, 학교 다닐 때 정말 많이 고민했어요. (웃음)
독특한 목소리가 매력으로 꼽혀요.
저는 사실 노래에 자신이 없어요. 왜냐면 작곡은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쭉 전공으로 공부했고, 제가 어느 정도 노력을 하다 보면 될 거란 막연한 생각이 있었죠. 그런데 노래는 달라요. 정규 코스를 통해 노래를 배운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인지 최근 한계가 오더라고요. 노래를 어떻게 부르는지 모르니까 목을 쓰는 방법을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어떨 때는 목이 아프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목이 안 아프기도 하고. 얼마 전부터 노래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동안 굳어진 게 있어서 배우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래도 가수를 계속할 거잖아요.
저는 기회가 되면 작곡가로도 활동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물론 노래도 꾸준히 부르고 싶지만요. (다른 사람에게 곡을 주는 경우는 없었나요?) 어우, 그러면 정말 좋죠. 아직은 없어요. (웃음)
작사와 작곡, 노래까지 다 하는 싱어송라이터에요. 무언가를 창작한다는 것에 대한 어려움은 없나요?
음…, 혹시나 자기 모방을 하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있죠.
평소 곡 작업을 하는 스타일은 어때요?
제가 곡을 빨리 쓰는 편이에요. 장점은 한 번에 곡이 쫙 나온다는 것이죠. 그래서 몰아 쓰기도 해요. 단점은 그런 하나의 스파크가 없으면 6개월이든 1년이든 그냥 놀아요. (웃음)
안예은의 음악에는 스토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곡을 쓸 때면 혼자 상상하는 시간이 많아요. 홀로 이야기를 만들어서 펼쳐놓는 거죠. 뭐랄까 뮤직비디오를 만들어보는 거예요. 이야기는 가사가 되는 거죠. 글 대신 가사. 그래서 곡을 만들 때면 멜로디 없이 그냥 읽어도 말이 되도록 가사를 쓰려고 해요. 마치 하나의 단편 소설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주려고요.
낭만에 대하여
지난해에는 드라마 <역적>을 통해 처음으로 영상 음악 작업을 했잖아요.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는 작업이었어요. 굳이 제가 창작하지 않아도 이미 모든 건 있어요. 그래서 더 매력적이었죠. 탄탄한 스토리에 내가 음악을 만들어서 입혀주는 과정이요. ‘홍연’과 ‘상사화’는 원래 제가 발표한 곡을 적재적소에 사용한 경우고 ‘새날’과 ‘사랑이라고’ 등의 곡은 이번에 새로 썼어요. 작업할 땐, 연출님의 지령이 내려왔어요. (웃음) 이런 장면에 삽입될 노래가 필요하다거나, 어떠한 캐릭터를 설명해 주고 이 캐릭터의 테마송이 필요하다는 것과 같은. 대본은 물론이고 장면, 분위기 그리고 캐릭터에 대한 설명도 굉장히 자세하게 주셨어요. 이미 판이 다 깔려 있었으니까 저는 신나게 작업했죠.
과거에 선보였던 곡을 새롭게 작업하는 것도 색다른 기분이었을 것 같아요.
‘홍연’ 같은 경우는 이번 <역적>에서 새롭게 선보일 때 사극의 느낌을 많이 살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스트링 편곡의 도움을 많이 받았죠. 제가 아직 편곡 능력이 되지 않으니까 여러 사람이 도와줬는데, 딱 제가 원하는 느낌이 나왔을 때 기분이 좋더라고요.
마음에 들게 편곡된 곡을 듣고 있으면, 처음부터 이러한 분위기의 곡을 만들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그럼요. 매우 많이 있죠. (웃음) 그래서 천천히 공부하고 있어요. 저는 아직 전문용어나 디테일한 것보다 추상적인 단어로만 주문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편곡자에게 머릿속에 있는 걸 최대한 설명해요. 더 꼼꼼하고 정확하게 요청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안예은의 노래는 사실 밝은 분위기보다는 슬프고 우울하잖아요.
제가 밝은 노래를 부르려고 시도해 보지 않은 게 아니에요. (웃음) 그런데 유달리 밝은 노래가 어울리지도 않고 가사도 잘 안 나오고 곡도 이상하더라고요. 매번 그랬어요. 그래서 어차피 이럴 거면 이런 한스러운 분위기로 굳혀버리자는 마음을 먹은 거죠.
어쩌면 이렇게 슬프고 우울한 음악이기 때문에 듣는 사람에게는 위로가 되는 것 같아요.
제 노래가 위로가 된다는 말을 듣고 궁금했어요. 괜찮다고 어깨를 토닥여주는 노래가 아니라, 더 슬프고 쓸쓸하게 만드는 음악이잖아요. 그런데 사람은 슬프거나 외로울 때 펑펑 울면 시원해질 때가 있잖아요. 마치 제 음악도 그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사실 모든 노래는 삶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잖아요. 이런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안예은의 성격은 어때요?
굉장히 우울해요. 그래서 이런 노래들이 나오지 않았나 싶어요. 아까도 나온 표현인데 한스럽죠. 요즘은 이런 우울함을 떨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런데 문득 한 가지 걱정이 생겼어요. 제가 밝아지고 편해지면 이렇게 땅을 파는 노래가 다시 나올까. 이런 분위기의 노래를 좋아해 주는데. 이런 고민이요. (그런데 우울한 사람의 주변 사람도 우울해지지 않을까요?) 맞아요. 저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너무 힘들어했죠. 저 같은 경우는 우울한 건 기반으로 깔려 있고 너무 예민해서 언제 화를 낼지 모르니까 주변 사람들이 저를 못 건드렸거든요. 그래서 요즘엔 변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안예은의 노래를 듣다 보면 지독한 사랑을 한 것 같은 생각도 들더라고요.
네, 되게 별로인 사람들을 종류별로 많이 만나 고생을 했죠. (웃음) 이런 경험이 쌓여서 ‘그래!’와 같은 노래가 나왔어요. 이 곡은 ‘나는 이제 너네한테 모든 걸 안 쏟을 거야. 나는 이제 나를 사랑할 거야’ 이런 곡이거든요. 과거에는 (노래에) 울고불고 처절한 심정을 많이 담았는데 드디어 벗어났죠.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에 정신적, 육체적으로 무자비한 상황을 겪고 있는 친구들이 많이 있어요. 이런 힘든 상황을 겪은 친구들과 같이 힘내자고 이런 노래를 많이 만들려고 했어요.
평소 여성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더군요.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을 것 같은데요.
제 잘못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제 잘못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 있어요. 상대방에게 해준 것들이 무의미한 일이었고, 이렇게 힘들어하는 것도 자신에게 미안한 일이라는 걸요. 그때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거죠.
이런 영향을 본인의 음악에 녹여낼 생각은 없나요?
아직 회사에도 말하지 않고 혼자 구상하고 있다가 처음으로 말하는 건데 (웃음) 이번 앨범을 여성판 ‘킬리만자로의 표범’같이 만들고 싶어요.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나 ‘낭만에 대하여’ 같은 건 죄다 남성의 시선이잖아요. 여성의 시선으로 고독한 늑대, 탐정 아니면 뒷골목을 음악으로 표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어요. 맞아요, 누아르! 남성의 전유물로만 생각되는 장르를 여성의 시선과 목소리로 만들고 싶다는 소망이 있죠.
정말 많이 달라졌죠.
평소에 뮤지컬과 연극을 좋아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던데요. 최근 가장 인상 깊게 본 뮤지컬은 무엇인가요?
음…, 한 작품을 꼽기엔 어렵지만 <팬레터>요. 음악이 정말 정말 좋았어요. 뮤지컬 넘버들이 좋아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됐던 것 같아요. 특히 거울 앞에서 히카루와 세훈이가 부르는 ‘거울’이란 곡이 좋았고요. 작품엔 히카루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주도적이면서도 자신의 이야기가 있는 캐릭터죠. 그런데 히카루는 해진의 허상에서 나왔을 뿐, 실제 사람은 아니잖아요. 이런 관계에서 나오는 매력이 있어요. 이들을 바라보는 여러 의견을 봤는데, 그 의견 모두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인 적도 많아요.
마지막으로 이번 봄을 어떻게 보낼 생각인가요?
정규 2집 앨범 작업을 무사히 마무리하려고 해요. 지난 앨범보다 더 좋은 앨범을 들고 찾아가지 않을까요. 또 이번 앨범을 발매하면 콘서트를 할 것 같기도 해요. (웃음) 또 공부를 계속해서 음악적으로 발전을 많이 이뤘으면 좋겠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6호 2018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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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ULTURE INTERVIEW] 안예은 [No.176]
글 |박보라 사진 |표기식 2018-05-15 10,505sponsored adv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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