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주목을 받는 신인 남배우는 많지만, 여배우는 흔치 않다. 대극장 뮤지컬에서라면 더더욱 그렇다. 오랜만에 만나게 된 신인 여배우는 얼마 전까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하 <베르테르>)의 ‘롯데’로 관객과 만나고, 이제는 <김종욱 찾기>의 첫사랑을 찾는 여자가 되어 돌아오는 최주리다.
작고 지극히 여성스러운 외모, 예쁜 목소리, 아련한 첫사랑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첫인상, 하지만 이는 최주리를 전형적인 예쁜 여자의 틀에 가두는 말에 불과했다. <베르테르>의 제작 발표회 때 알베르트 역의 민영기는 최주리에 대해 “롯데 자체”라 했고, 베르테르 역의 박건형은 우스갯소리로 “별명이 (리오넬) 메시”라 했다. 천상 여자라는 캐릭터와 넘쳐흐르는 에너지는, 전혀 다른 느낌의 표현이지만 실제로 만나 본 최주리는 두 가지 언급에 대해 모두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하는 사람이었다.
5살 때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태권도를 했던 태권 소녀의 미래는 스스로도 당연히 운동선수일 거라 굳게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춤 경연 대회를 보고 온 그는 춤의 매력에 쏙 빠져 교내 춤 동아리를 스스로 만들기에 이른다. “조용한 학생이었는데, 춤이 정말 추고 싶더라고요. 생각보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동기와 후배들을 모아 1년 정도 활동했지만, 스스로 ‘운동할 사람’이라 생각해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그러다 친구의 ‘예고에 지원해 보는 게 어때?’란 말에 무심코 예술고등학교에 지원했고, 덜컥 합격했다.
“예고 진학은 삶의 전환점이 된 사건이었어요.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었죠.” 운동만 하고 살아왔던 그는 처음 배우는 연기와 노래에 흠뻑 빠졌다. “2학년 선배들이 <브로드웨이 42번가>를 공연하는 걸 봤어요. 홀로 모든 걸 감당해야 하는 운동과 달리 많은 이들이 함께 하나의 공연을 올리는 문화가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재능 유무를 떠나 ‘나도 하고 싶다, 일단 노력을 해보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죠. 그때부터 노래와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1년 후, 그는 자신에게 처음 도전 의식을 심어줬던 뮤지컬 팀에 뽑혔다. 그리고 첫 뮤지컬 <페임>에서 ‘카르멘’을 맡았다. 재미있다. 천상 여자 같은 외모에 조근조근한 말투로 롯데나 엠마와 같이 전형적인 숙녀 타입의 배역으로 시작했으리란 예상과 달리 하루 빨리 스타가 되고 싶어 할리우드로 떠났다가 마약중독으로 생을 마감하는 카르멘이라니. “그때는 제 이미지가 지금보다 강했던 것 같아요. 의견도 확실히 내뱉는 스타일이었고, 친구들과도 활달하게 잘 지냈거든요.”
이후 특별히 자신의 길이 맞는지에 대한 의심 없이 앞만 보고 달린 이 길은 한예종 연기과를 진학하면서 쭉 이어졌다. 4학년 말 졸업을 앞두고, 친구가 출연한 공연의 음악감독과 연이 닿아 <색즉시공>의 오디션을 거쳐 주인공으로 2008년 데뷔했다. 이후, <스페셜 레터>에서는 홍일점, <김종욱 찾기>의 첫사랑을 찾는 여자, 그리고 지난 7월 DIMF에서 선보였던 <번지 점프를 하다>의 태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롯데까지 최주리는 스스로도 “운이 좋다”고 말할 만큼 주저 없이 걸음을 내딛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 ‘솔직한 감정을 관객과 나눌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그에게 롤모델을 물으니 故 장진영 배우란다. “그분은 굉장히 솔직하게 연기하셨던 것 같아요. 그분을 보면 예쁘고 화려한 장미보다는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들꽃이 떠올라요. 그 매력을 저도 닮고 싶어요.” 이런 의지 때문일까. 이전까지 아픔도 가지고 있지만 긍정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자 친구를 주로 연기하면서 쌓아온 솔직함의 내공이 시대를 조금 거슬러 올라온 <베르테르>에서 드러나면서 잠재력을 인정받고 있다. 한편, 대극장 무대에 처음 선 입장으로서 고민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극장에서 진심과 솔직한 감정이 관객에게 전달되려면 표현이 더욱 증폭되어야 하잖아요. 선배들의 공연을 다양한 좌석에서 모니터하다 보니 이제는 제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아요.”
매 공연을 통해 사람을 얻고, 인격적으로 모자란 것을 배우고 깨우친다는 최주리, 그는 최근 선배에게 들은 말을 가슴에 새기고 산다. ‘자신을 가져라, 네 무대엔 너만이 가지고 있는 드라마가 있다.’ 언젠가 선배로서 후배에게 이런 말을 해줄 수 있을 때까지 ‘진심’을 잊지 않고 무대에 서는 배우가 되길 기대해본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7호 2010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