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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도그파이트> 손호영 [No.177]

글 |박보라 사진 |황혜정 2018-06-08 5,313
철없는 소년의성장 일기
 
한국에서 <샌프란시스코에서 하룻밤>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던 영화 <도그파이트>가 뮤지컬로 우리를 찾는다.  작품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게 된 버드레이스가 동료 해병들과 ‘도그파이트’라는 내기를 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가볍고 철없는 해병 버드가 시간이 지나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 과정을 솔직하게 그린다. 손호영은 섬세한 감정을 무대 위에 펼쳐낼 주인공 버드로 일찌감치 이름을 올렸다. 다양한 작품에서 밝고 호탕한 모습을 보여준 손호영. 그가 보여줄 버드의 이야기는 어떤 매력을 풍길까.
 


 
시간이 지나면

<도그파이트>에 참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일단 원작 영화 <샌프란시스코에서 하룻밤>을 알고 있었다. 작품에 참여한다고 했을 때, 다시 한 번 찾아봤다. 영화를 보고 대본을 읽으면서 작품 자체에 밴 정서가 더 와닿았다. 이런 정서를 좋아한다. 사실 작품은 특별한 이야기가 없고, 단순하다. 그 연령대의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그 상황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 잔잔하게 표현된다. 그래서 <도그파이트>의 공연 소식을 들었을 때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뮤지컬 넘버를 들어보고 확신이 들었다. 지금도 푹 빠져 있다.

작품의 매력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인물에 감정을 이입해서 보면 더 좋을 거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친구들이 서서히 무언가를 깨달아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이들은 몰랐던 감정을 조금씩 느끼고, 큰 전쟁을 겪으면서 성숙해진다. 물론 ‘도그파이트’라는 제목과 소재를 들으면 마치 싸우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데 작품은 굉장히 섬세하다. 또 시작과 끝의 시점이 같은데 이 부분을 통해 전하는 감정도 분명 있을 거다. 여러 가지 이야기 속에 다양한 메시지가 숨어 있다. 세심하고 아기자기한 표현을 전하고 싶은데, 이렇게 넓은 무대에서 어떻게 표현할지 많이 고민하고 있다. 

좋은 음악으로 유명하다. 연습하면서 좋아하게 된 뮤지컬 넘버가 있나.  
맞다. 정말 좋다. 특별히 어느 한 곡을 꼽을 순 없지만, 일단 첫 넘버인 ‘날 감싸줘’는 음율 자체가 굉장히 아름답다. 그리고 연습할수록 내게 잘 맞는 느낌도 든다. 사실 이 곡뿐 아니라 다른 노래도 센치하게 만드는 멜로디가 많다. 노래를 통해 감성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함께하는 버드 역의 배우들이 모두 아이돌 출신이다. 1세대, 2세대, 3세대 아이돌이 모였는데 어떤가. 
아니, 난 작품만 하면 매번 이렇다! (웃음) 사실 그런 부분은 생각하지 않는다. 띠동갑들이랑도 작업해 봤는걸. 사실 나이 차이를 특별하게 느끼지 못한다. 내 나이를 잘 모른다. (일동 폭소) 그래도 <삼총사>에서는 거의 막내급이다. 

손호영의 버드가 지닌 매력은 무엇인가. 
글쎄다. 이런 부분을 말로 설명하기 참 어려운 것 같은데… 내가 곧 나만의 버드이지 않을까. (그럼 다른 버드들은 어떤가.) 아마 각자의 매력이 드러날 거다. 그런데 이창섭의 버드는 정말 풋풋함이 있다. 지켜보면서 버드랑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본인은 아닌 척하지만 어쩔 수 없이 보이는 어린 날것의 무언가가 있다. 사실 그게 연기로 표현하기는 힘든 건데, 자연스럽게 나오더라. 이창섭의 버드를 보면서 귀엽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난 아마 그런 부분은 연기로 표현해야 할 거다. (웃음)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도그파이트>는 굉장히 가벼워 보이면서도 여러 상황을 보여준다. 내용도 상당히 강하다. 어린아이가 군인이 돼, 사람의 죽음을 가볍게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걸 알아야만 한다. 그 당시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과 분위기가 있기 때문에, 무조건 이들을 나쁘다고만 할 수 없다. 스무 살의 버드는 전쟁에 참전하고, 그곳에서 친구들이 다 죽는다. 그리고 구사일생으로 몇 년 후에 돌아왔는데, 그곳은 떠날 때의 샌프란시스코가 아니다. 특히 자랑스러운 군인으로 전쟁에서 돌아오면 영웅이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사회는 변하지만, 버드의 입장에서는 세상이 완전히 뒤바뀐 거다. 이런 부분을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이야기에 실린 감정이 많이 와닿았다.



사실 ‘도그파이트’라는 내기로, 작품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작품은 절대 ‘도그파이트’라는 내기가 좋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또 그렇게 하라고 보여주는 부분도 없다. 사실 작품 속에서 버드도 ‘도그파이트’가 나쁘다는 걸 깨닫는다. 이것이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다. 그리고 ‘도그파이트’도 한 장면으로 끝난다. 단지 ‘도그파이트’로 모든 이야기가 시작될 뿐이다. 난 <도그파이트>가 성장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조심스럽지만 이런 부분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다양한 남성들의 모습이 나온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
지금의 내 나이에서 보면 귀엽다. 분명 입에서는 거친 욕이나 말을 하고, 여성을 향해 말도 안 되는 추파를 던지는데, 난 이들이 이게 뭔지 몰라서 그러는 걸 안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귀엽다고 할 수 있는 건, 내 어린 시절이 기억나기 때문이다. ‘중2병’이라고 하지 않나.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척하고,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났고. 또 그 맛에 지내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성장할수록 그런 마음과 행동이 잘못됐다는 걸 알게 된다. 맞다. 잘못된 거다. 그런데 그땐 모른다. 학교에서 지식을 배우듯 인생도 배워야 한다. 작품에서는 인물들이 인생을 배워가는 과정이 그려진다. 물론 버드를 비롯한 이 친구들이 인생을 조금 더 배운다면 분명 달라질 걸 아니까, 이런 철없는 모습이 웃기고 재미있다.

남성들이 주로 나오는 만큼 거침없는 대사들도 강렬하다. 
맞다. 대본에 거침없는 대사와 욕이 있다. 버드와 이 친구들은 거칠고 어린 남성들이 모여 있는 집단에 속해 있다. 그리고 전쟁이라는 분위기도 있고. 거친 대사들은 하나의 표현 수단이지, 관객을 향한 건 아니다. 사실 대본을 읽으면서도 걱정을 많이 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런데 이걸 작품으로 봐주고, 받아줬으면 좋겠다. 아마 무대에서 흐르는 장면이나 연기 그리고 음악과 함께 극을 보면 이런 대사들을 하나의 표현으로 생각할 수 있을 거다. 

작품 속에서 가장 드러내고 싶은 관계는 무엇일까. 
물론 버드가 로즈를 만나는 거다. 앞서 버드의 성장 드라마라고 말했는데, 그가 정말 조금씩 변한다. 버드는 처음엔 로즈를 사람이 아닌 내기의 수단으로 바라봤고, 그래서 그렇게 잔인하게 대할 수 있었다. 그런데 로즈의 한마디에 갑자기 그녀가 사람으로 보이는 거다. 맞다. 이 여자, 나랑 같은 사람이지. 이렇게. 그래서 ‘도그파이트’ 파티에 참석하는 걸 망설이게 된다. 완전히 한 방을 얻어맞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 같은 느낌으로 의구심이 드는 거다. 이게 시작이다. 계속 생각이 나고 마음에 걸리고 그래서 찾아가고. 아마 버드는 로즈와 헤어질 때까지도 확신을 못 가졌을 거다. 그런데 반복되는 생각 속에서 마음이 정리됐을 거라고 본다. 버드가 전쟁을 겪고 돌아와서 다시 로즈를 찾으면서 비로소 자신의 마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버드가 베트남 전쟁 중에 로즈에게 편지를 하지 않은 건가. 
정확하게는 로즈를 향한 감정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 거다. 로즈와 하룻밤을 보낸 뒤 다시 친구들을 만나, 전쟁터로 떠나면서 ‘다시 잊어. 생각하지 말자’ 이렇게. 그런데 전쟁이라는 끔찍한 상황에 처하고 친구들도 다 죽는다.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의 기억이 자꾸 떠오르고 생각나는데, 바로 그게 로즈다. 그래서 샌프란시스코에 가게 되고 그녀를 찾게 되는 거다. 

버드를 표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정말 섬세하게 버드를 표현해야만 한다. 지금은 버드라는 인물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인물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할수록 캐릭터에 잘 빠져들게 된다. 사실 버드의 분량이 정말 많다. 노래와 대사도 물론 많고. 그런데 머리로 대본을 암기하려 하니 안 외워지더라. 정말 죽어도. (웃음) 그런데 신기하게도 무대 동선을 밟으면서 상대 배우와 눈을 맞추면서 극에 빠져들어 가니까 대사가 나왔다. 이런 작품이다. 무작정 외우고 머리로 하는 작품이 아니라 정말 버드로서 이야기를 하고 감정을 가져야 된다는 걸 깨달았다.

작품은 전쟁에 대한 어떤 시각을 드러내고 있나. 
전쟁은 그 자체가 잘못됐다. 대사에서는 ‘총으로 해결하는 것이 낫다’면서 말보다는 행동이라고도 표현된다. 이런 부분이 어마어마하게 무서운 거다. 바로 조금 전까지 농담하면서 살아 있던 친구들이 갑작스럽게 사라진다는 끔찍한 상황을 무대에서 볼 수 있다. 연습하면서 버드가 살아남은 것도 기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허구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버드가 살아남은 것 같기도 하고. 또 버드는 멀쩡하게 돌아온 게 아니라 절름발이가 되어서 돌아온다. 시대나 환경도 참전 군인을 반겨주는 것이 아니라 살인자로 보고 있으니, 살아도 살아 있는 게 아니다. 이런 부분을 통해 전쟁이 주는 잔인한 부분을 느낄 수 있을 거다.




위험하거나 무겁거나

주로 대중적인 작품에 많이 참여했다. 작품을 고르는 기준이 있나. 
과거에는 밝은 작품을 많이 제안받았다. 또 내가 그걸 선호하기도 했고. 공연뿐만 아니라, 콘서트를 할 때도 항상 관객에게 즐거움을 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 역할에 빠지고 싶고, 평소에 할 수 없었던 걸 해보고 싶다. 거기에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이런 생각을 시작했을 때가 바로 <페스트>였다. <페스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이 무거워야만 했다. 사람이 계속 앞에서 죽어 나갔으니까. 또 작품이 호불호가 많이 나뉘기도 했다. 음…, 지금 스스로 평가하자면 서툴렀다. 그래서인지, 다시 하자면 정말 잘할 자신이 있기도 하다. 

처음 뮤지컬을 할 때와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이제 뮤지컬 무대에 오른 지 11년이 흘렀다. 많이 달라졌다. 가장 큰 변화는 어느 하나도 가볍게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 무게감을 많이 느끼고 있다. <도그파이트>는 특히 더 무겁다. 초연인 데다가 주변에서 위험한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워낙 많이 들었으니까. 그래서 오히려 더 괜찮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어떤 각오나 말보다, 작품에 열심히 더욱 집중하려 한다.

무대에서 행복한 순간을 꼽자면.
캐릭터에 푹 빠졌을 때. 나도 모르게 ‘빡’ 하고 빠져 있는 순간이 있다. 그 어떤 생각도 안 날 정도로. 사실 어떤 배우도 러닝타임 내내 한 캐릭터에 빠져 있지 못할 거다. 무대 등·퇴장도 있고, 옷도 갈아입고. 이런 현실적인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 자신이 되는 시간이 있다. 물론 무대에 올라가면 바로 캐릭터에 집중하지만 말이다. 난 무대에 올라갔을 때, 순간적으로 캐릭터에 확 빠져드는 그 느낌이 너무 좋다. 또 인사할 때도 참 행복하고. 매 공연이 끝나면 산 정상에 오른 느낌이다. 더욱이 객석의 반응이 좋으면 그것만큼 행복한 게 어디 있겠나. 

마지막으로 버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스무 살의 버드는 어떤 말을 해줘도 소용없다. (웃음) 생각해 봐라. 그 나이에는 어떤 조언을 건네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 다 잔소리로 들린다. 물론 스무 살의 버드는 무언가를 느끼긴 했겠지만, 충고를 들어도 달라지는 게 없을 거다. 돌아온 버드가 문제다. 정신을 차리고 로즈와 함께 험난한 세상을 잘 헤쳐 나갈 것인지 아니면 그대로 폐인이 될지. 그런데 큰 경험을 했기 때문에 아마 잘 해내지 않을까. 버드가 잘 살았으면 좋겠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7호 2018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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