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안식처
돌 위에 쓰인 이야기는 오랜 세월 많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고 있습니다. 노트르담 성당의 꼽추와 보헤미안 집시의 순수한 사랑이 그 주인공인데요. 춤을 좋아하고 선한 마음을 지닌 집시 에스메랄다가 하늘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 왔습니다. 그녀는 노트르담에서의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 이 글은 에스메랄다 역을 맡은 유지와의 대화를 토대로 작성한 가상 인터뷰이며, 작품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에스메랄다, 당신은 어떻게 살아왔나요?
난 보헤미안이에요.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살았죠. 이런 떠돌이 생활이 너무 좋았어요. 행복했고요. 새로운 도시에서 춤을 출 때면, 그게 바로 행복이란 사실을 깨달았죠.
당신은 어머니와 빨리 헤어졌다고 들었어요. 어머니와의 추억은 어땠나요?
어머니는 안달루시아 이야기를 많이 들려줬어요. 지금보다 더 행복한 곳.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전 어머니에게 안달루시아에 대해 알려달라고 졸랐죠. 어머니는 내 옆에 함께 누워 안달루시아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해줬어요. 어머니는 그곳을 정말 아름답고 행복한 곳이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어머니가 갑자기 아프셨고, 제 곁을 떠났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클로팽에게 맡겨졌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여덟 살이 되던 해,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까. 그때부터 클로팽과 살았네요. 내게 클로팽은 아버지였어요. 말뿐이 아닌, 정말 좋은 아버지. 어머니의 빈자리를 못 느낄 정도로 많은 사랑을 주며 저를 아껴주셨죠.
그런데 당신은 그랭구아르와 부부가 되잖아요. 왜 그랬어요?
집시에게는 이런 룰이 있어요. 침입자가 들어왔을 때, 누군가와 결혼하지 않으면 처형을 당한다는. 그랭구아르와 결혼을 하라고 한 명령을 따랐던 건…, 전 누구도 죽지 않았으면 했어요. 모두가 행복하고 평화로웠으면 했죠. 그런 마음이 가장 컸어요. 그리고 부부가 된다고 해도 연인은 아니니까요.
당신은 페뷔스를 보고 사랑에 빠지잖아요.
그는 정말 멋있었죠. 키도 크고 잘생겼어요. 특히 제복을 입은 모습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춤을 추고 있었는데, 페뷔스를 보는 순간 ‘잘생겼다’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나도 모르게 그에게 다가갔죠. 호기심이었어요. 이 사람이 누군지, 어디서 왔는지. 알고 싶었던. 무엇보다 내게 애정 어린 눈길을 보여줬어요. 그 순간 저도 모르게 첫눈에 빠져들었죠.
페뷔스도 당신을 사랑한다고 했잖아요.
너무 좋았어요. 내가 첫눈에 반한 사람이 나를 좋다고 한다니. 그와 내가…,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했어요. 매 순간 내가 페뷔스를 사랑하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도 그럴 거라고….
결국 그에게 배신을 당했잖아요.
정말… 나쁜 사람이었어요. 아직도 정말 화가 나요. 심지어 그는 내 아버지, 클로팽까지 죽음으로 몰고 갔으니까. 나는 믿었는데, 정말로 믿었는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랬다니, 끔찍했어요. 그를 죽일 수만 있다면 죽이고 싶었어요.
그럼 콰지모도를 처음 봤을 때 어땠나요?
콰지모도를 처음 본 곳은 성당이었어요. 저도 모르게 성당 한구석에서 잠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인기척이 들려서 일어나보니 그가 제 앞에 있더군요. 잠결에 콰지모도를 보고 엄청나게 놀랐어요. 음…, 사실 조금은 무서웠어요.
당신은 서서히 콰지모도에게 마음을 열었잖아요.
성당에서 정말 깜짝 놀랐거든요. 그런데 콰지모도가 제게 “괜찮다”면서 성당 이곳저곳을 구경시켜주더군요. 그렇게 성당을 살펴본 건 처음이었어요. 정말 아름다운 곳이란 걸 알게 됐죠. 그런데 그때 저를 위해서 성당을 소개해 주는 콰지모도가 더 이상 무섭지 않았어요. 겉모습은 다가가기 어렵지만, 사실은 좋은 사람이구나. 이렇게 깨달았죠. 그는 마음이 참 따뜻한 사람이에요.
당신이 탑 안에 갇혔을 때, 그를 기다렸다고 들었어요.
그땐 페뷔스가 죽은 줄만 알았어요. 세상이 무너진 것 같았죠. 그리고 누명을 쓰고 탑 안에 갇혀, 너무 억울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콰지모도가 생각나더라고요. 그가 내게 베풀어줬던 마음, 우린 참 좋은 친구였으니까요. 콰지모도가 나를 이곳에서 꺼내 줄 거라고 그렇게 믿었어요.
그런데 콰지모도도 당신을 사랑했죠.
사실 살아 있을 땐, 콰지모도가 날 사랑한다는 걸 깨닫지 못했어요. 사람들이 콰지모도에게 심하게 장난쳤을 때가 생각나네요. 제일 흉측한 사람을 왕으로 뽑자고 놀렸거든요. 콰지모도가 왕으로 뽑혔고 제가 왕관을 씌워줬어요. 그러고서 그를 잠시 지켜봤는데, 그때 어렴풋이 그가 나를 사랑한다고 느낀 것 같아요. 그런데 진지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죠.
에스메랄다는 많은 남자의 사랑을 받았잖아요. 어떤 기분인가요?
제가 많은 남자의 사랑을 받았다고요? 그런가요…? 전 잘 모르겠어요. 종종 제가 춤을 추는 걸 보고 남자를 유혹하려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그건 아니에요. 전 남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 앞에서 춤추는 게 정말 좋아요. 제가 춤을 추면, 사람들이 저를 바라보고 좋아하는 눈빛을 건네거든요. 그걸 느끼면 저도 모르게 신이 나고 더 춤을 추고 싶어져요.
하늘나라에서 당신과 콰지모도는 어떻게 살고 있나요?
행복해요. 하늘나라에서 만났는데 그제야 알게 됐어요. 콰지모도는 나를 정말 순수하게 사랑하고 있다는 걸. 여전히 그는 예쁜 마음으로 날 바라봐 주고 있어요. 그와 함께하는 지금, 행복하다는 말도 벅찰 정도로 행복하네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7호 2018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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