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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프랑켄슈타인> 박민성 [No.178]

글 |나윤정 사진 |심주호 2018-08-01 8,613

 

<프랑켄슈타인>박민성            
마음이 빛나는 시간


2007년 데뷔해 어느덧 10년 차 배우의 타이틀을 달게 된 박민성. 무대와 함께한 시간만큼이나 그는 한결같이 믿음을 주는 배우다. 그동안 그의 무대를 살펴보면 금세 느낄 수 있다. <밑바닥에서>의 배우, <벤허>의 메셀라, <홀연했던 사나이>의 사나이, <삼총사>의 아라미스 등으로 역할마다 묵묵하게 적재적소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배우로서 고유한 색깔을 성실하게 덧칠해 나갔으니 말이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프랑켄슈타인>에 도전한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매력이 있으니, 그가 이끌어갈 앙리/괴물 역이 사뭇 기대가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 그 기대를 한껏 채우며 단단한 배우로 한층 도약할 그의 무대를 반가이 맞이해 보자.



서서히 다가온 운명 
<프랑켄슈타인>의 앙리/괴물 역에 이름을 올려 눈길을 끌었어요. 이전부터 이 작품과 남다른 인연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언제 이 작품을 처음 만나게 된 건가요?
애증의 프랑켄슈타인이죠. (웃음) 너무너무 하고 싶었던 작품이거든요. 초연 때 제가 빅터의 ‘위대한 생명 창조의 역사가 시작된다’ 가이드 녹음을 했어요. 2013년에 한창 <잭 더 리퍼> 연습을 하고 있는데, 왕용범 연출님이 절 부르시더라고요. 그러곤 가이드 작업을 맡기셨는데, 노래가 너무 어려웠어요. 그런데 연출님이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 네가 해야 할 노래야”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열심히 불렀죠. (웃음) 이후에 초연 오디션을 앞두고 가이드 음원이 풀렸는데, 이슈가 많이 됐어요. 노래가 너무 어려운데 도대체 누가 부른 거냐고. 주변에서도 “네가 맞느냐”며 막 전화가 오더라고요. 그때부터 언젠가는 하겠지, 언젠가는 하겠지, 철석같이 믿고 기다렸죠. 

드디어 <프랑켄슈타인>에 출연하게 되었네요. 그런데 가이드 녹음을 한 빅터가 아니라 앙리/괴물 역을 맡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초연 때 공연을 보고 나니, 이 작품이 더 하고 싶었어요. 그때 (한)지상이와 (박)은태 공연을 다 봤는데, 둘 다 너무 잘하더라고요. 각자 다른 색깔로 자신의 매력을 이백 퍼센트 발산했어요. 남자가 봐도 정말 멋있는 역할이었죠. 그래서 연출님에게 “저 앙리를 해보고 싶습니다!”라고 했어요. 그때 제가 많이 어렸죠. (웃음) 그랬더니 연출님이 “아니야, 너는 빅터야”라고 하시더라고요. 앙리를 하려면 살을 좀 더 빼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거울을 보니 스스로 자극이 되더라고요. 이 역할에 도전하려면 먼저 몸을 더 탄탄히 만들어야겠다 싶었죠. 그리고 시간이 지나 <밑바닥에서>의 배우 역으로 힘들어할 때 연출님이 또 그러시더라고요. “네가 앞으로 해야 할 빅터는 이 역할보다 훨씬 더 힘들 거다.” 그래서 저도 언젠가 이 작품을 하게 된다면, 빅터 역일 거라 예상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연출님의 카톡 하나가 도착했어요. “머리를 기르자.” 앙리/괴물 역을 맡아야 하니 머리를 기르라는 의미심장한 말씀이었죠. 

연출님이 마음을 바꾼 이유가 뭘까요? 
막상 저도 걱정이 되었어요. 발성부터 시작해 이미지까지 모든 걸 싹 바꿔야 하는 만큼 많은 역경이 예상되더라고요. 그런데 연출님께서 이 역할은 나이가 들면 더 맡기 힘들지 않겠느냐고 하셨어요. 너에게도 큰 도전의 계기가 될 테니, 이번에 해보자고. 그 말씀을 듣고 나니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남자 배우라면 누구나 하고 싶어 하는 역할일 텐데, 배부른 소리 하지 말고 절실하게 담금질을 해보자! 사실 연출님도 모험을 하신 거라고 생각해요. 돌아보면 늘 그러셨어요. <잭 더 리퍼>의 앤더슨도, <조로>의 라몬도, <밑바닥에서>의 배우도, 쉬웠던 역할은 하나도 없었어요. 항상 제게 도전적인 역할을 주셨고, 그 경험들이 고스란히 득이 되었죠. 이번에도 그러한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해요. 배우로서 좀 더 치열하게 고뇌하고 자신을 채찍질하라는 의미에서 이 역을 맡겨주신 것 같아요. 그래야 고인 물이 되지 않고 계속 발전해 나갈 수 있을 테니까요. 

2013년 <잭 더 리퍼>를 시작으로 지금 <프랑켄슈타인>까지, 왕용범 연출과 많은 작품을 함께했어요. 첫 만남이 인상적이었을 것 같은데, 어땠나요?
안 그래도 요즘 ‘너의 꿈속에서’를 부를 때, 연출님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려 봐요. 집중이 좀 안 되면 항상 그때를 생각해요. 뮤지컬을 그만두고 싶었던 때가 두어 번 있었는데, 그 마지막 슬럼프 때 연출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이성준 음악감독님의 소개로 <잭 더 리퍼> 다니엘 오디션을 보게 됐거든요. 마지막 오디션이라고 생각하고, 정말 절실하게 연기했는데 연출님이 그 모습을 굉장히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지금도 제가 나태해질 때면 연출님이 그때의 절실함을 다시 찾으라고 말씀해 주세요. 물론 상황은 다르지만 그 당시의 순간이 ‘너의 꿈속에서’와 겹쳐지는 부분이 있어요. 그만큼 연출님과의 첫 만남이 저에게 큰 의미로 다가와요. 



앙리/괴물 역은 겉으로만 봐도 정말 힘들 것 같아요. 실제로 연기해 보니 어떤 점이 가장 어려운가요?
우선 체력적인 부분이에요. 격투장에서 격투를 하는 장면도 있다 보니 몸이 탄탄해 보여야 하잖아요. <삼총사> 공연 중에 식이요법과 운동을 병행했는데, 많이 힘들더라고요. 그렇다고 살을 빼기 위해 아예 굶어버리면 에너지가 없어서 노래가 잘 안 나와요. 원체 음악이 어렵다 보니 그에 따른 심적 부담감도 있거든요. 또 힘이 없어서 지쳐버리면 역할의 깊은 감정도 표현이 잘 안되더라고요. 앙리/괴물은 정말 많은 감정들이 담겨 있는 캐릭터거든요. 비교하자면 <밑바닥에서>의 배우는 단순해요. 술 먹을 때 행복하고, 술 못 먹으면 힘들고, 맞으면 아프고, 기억이 안 나면 울고, 힘드니까 죽어버리죠. 그런데 앙리/괴물은 여러 가지 감정의 집합체에요. 우정과 애정, 분노와 애증, 이런 복잡한 감정들을 다 표현해야 하니까 참 힘들어요. 빅터가 감정을 받는 쪽이라면, 앙리/괴물은 감정을 주는 쪽이기 때문에 그만큼 감정 소모가 많아요. 그런 만큼 감정에 대한 집중력을 한순간도 놓칠 수가 없어요.

<프랑켄슈타인>에는 인상적인 장면들이 많아요. 그중에서 어떤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처음 공연을 봤을 때 모든 장면이 충격적이었어요. 다 가슴에 남고, 머릿속에 각인되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를 뽑으라면, 괴물이 길 잃은 아이를 밀어버리는 장면이에요. ‘헉’하고 한동안 말을 못 이을 정도였죠. 그리고 ‘난 괴물’ 장면도 정말 인상적이에요. 자신의 창조주에 대한 괴물의 분노와 애증, 인간을 향한 화, 자신에 대한 연민, 이런 감정들이 깊이 다가왔어요.

이런 장면들을 실제로 연기할 땐, 어떤 마음으로 임하나요?
무엇보다 그 순간에 집중하려고 해요. 한번은 연출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그 감정들을 내가 먼저 느끼지 말고, 온전히 관객들이 느낄 수 있게끔 하라고요. 배우가 먼저 감동을 느끼고 그것을 전해 주려고 하면, 관객은 가져갈 게 없다는 거죠. 쉽게 말해서 슬픔을 담담하게 이야기해도 관객이 그것을 느낄 수 있으니, 너무 오버해서 과하게 감정 전달을 하지 말라는 뜻이죠. 그래서 제가 연기하는 캐릭터가 어떤 상황을 마주했을 때 느낄 수 있는 감정, 딱 그 감정을 오롯이 순수하게 표현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끝까지 함께할 무대 
2007년 <그리스>로 데뷔해 어느덧 10년 차가 넘는 배우가 되었어요. 그동안 무대에서 보낸 시간을 떠올려보면 기분이 어때요?
지금도 첫 무대가 엊그제 같아요. 아직도 설레고, 아직도 긴장되고, 아직도 목말라요. 여전히 부담되고, 긴장되고, 기대되고요. 또 관객들을 만나는 시간이 기다려지고 그러네요. 

10년 넘게 무대에 오르면서 다양한 작품을 만났죠. 그중에서 배우 박민성에게 터닝포인트가 된 작품 세 편을 꼽아본다면 무엇인가요?
첫 번째는 <피맛골 연가>예요. 작품을 2년 동안 쉬게 되면서 처음 슬럼프가 왔거든요. 그래서 뮤지컬을 그만두려고 했는데, 그런 저를 다시 무대로 이끌어준 것이 바로 이 작품이었어요. 두 번째는 왕용범 연출님을 만나게 해 준 <잭 더 리퍼>. 아마 제 평생 못 잊을 작품일 거예요. 그리고 세 번째는 <프랑켄슈타인>이 되었으면 해요. 이 작품이 저의 터닝포인트가 되어 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어요. 

클래식보컬앙상블 ‘유엔젤보이스’ 활동을 한 독특한 이력도 눈에 띄어요. 어떤 경험이었나요? 
2009년 연말에 클래식보컬앙상블 유엔젤보이스에서 뮤지컬 배우 출신을 뽑았어요. 꽤 많은 선후배 동료들이 지원했는데, 운 좋게 합격을 하게 됐죠. 사실 처음에는 생계를 위해 월급을 받으려고 시작한 이유가 컸어요. 그런데 활동을 이어가면서 점점 생각이 바뀌더라고요. 함께하는 성악가 친구들이 너무 잘했거든요. 성악에 무지했지만, 좋은 소리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고 그 소리에 녹아들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남성 오중창이었는데, 제가 바리톤 파트였어요. 그리고 테너나 바리톤 친구가 목이 안 좋을 때 그들의 역할을 맡았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제 소리도 단단해지고 발성도 강해지고 성량도 커졌어요. 음악적인 밑천이 많아진 거죠. 유엔젤보이스 활동을 안 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거예요. 정말 하늘이 주신 기회였다고 생각해요. 그로 인해 2년여 동안의 슬럼프가 재도전을 위한 기량을 갈고닦을 수 있던 계기가 됐거든요. 

2016년에는 일본 <미스 사이공> 공연에 참여하기도 했는데, 어떤 점이 가장 좋았나요? 
일본에서 6개월을 살았거든요. 보통 다른 나라에서 경험을 쌓으려면, 유학이든 배낭여행이든 내가 돈을 주고 가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저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었던 특별한 기회를 얻게 되었어요. 일본이 가깝다면 가까운 나라인데, 이 경험은 또 여행할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어요. 현지에서 체류하며 가까이에서 그들의 말과 문화를 보고 배울 수 있었죠. 진짜 생생한 그들의 삶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어요. 그리고 음식도 정말 맛있었어요. 특히 낫또가 저와 잘 맞더라고요. (웃음) 생맥주와 스시도 맛있고! 예쁜 옷도 참 많았죠. 

올 초 공연한 <홀연했던 사나이>에서는 전작들인 <벤허>나 <밑바닥에서>와는 확연히 다른 변신을 보여주었죠. 그만큼 의외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었어요. 
제가 생각한 것과 김태형 연출님이 생각한 것이 절묘하게 잘 맞아떨어졌던 것 같아요. 연출님이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고급스러운 소리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곤 첫 리딩을 했는데, 너무 좋아하셨어요. 그렇게만 하면 된다고! (웃음) 약간 외화 더빙 같은 느낌과 주성치 영화의 느낌을 살렸어요. 주성치 영화를 보면 배우는 정말 진지한데, 상황이 웃기잖아요. 저도 제가 먼저 웃기려고 하면 재미가 없어지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래서 상황을 웃기게 만들면서, 진지하게 노래를 했죠. 그런 모습이 작품 컨셉과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밝은 작품과 어두운 작품 중에서는 연기하기에 어떤 역할이 더 잘 맞는 것 같아요?
연기하기에는 밝은 것보다 어두운 것이 더 좋아요. 물론 밝은 작품도 즐겁고 좋아요. 하지만 에너지를 막 끌어올려서 관객들에게 넘겨줘야 하잖아요. 그게 육체적으로 정말 힘들어요. 반면 어둡고 슬픈 역할은 감정적으로 힘들면 되거든요. 제가 슬픈 작품을 보는 걸 싫어하지만, 연기하기에는 슬프고 다크한 게 심적으로 더 편하더라고요. 그래서 <잭 더 리퍼>가 저랑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여러 차례 슬럼프를 겪었음에도 결국 포기하지 않고 무대에 올랐어요. 그리고 지금은 하고 싶었던 작품 <프랑켄슈타인>을 앞두고 있죠. 계속 무대에 오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최근에 저희 딸이 노래를 시작했어요. 어린이 합창단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노래를 잘해서가 아니라 걸그룹 춤을 춰서 오디션에 붙었다고 하더라고요. 심사위원들이 아이가 너무 해맑고 웃겨서 뽑았다고! (웃음) 아직은 허점투성이지만, 점점 노래를 배워가고 있거든요. 그래서인지 공연장에서 아빠가 연기하는 것을 보고 더 자랑스러워하더라고요. 그런 것들이 굉장히 뿌듯했어요. 무대에 섰을 때, 부끄럽지 않은 배우 아빠가 되었으면 하는 게 첫 번째 원동력이에요. 그리고 두 번째는 무대를 기다려주시는 관객들이죠. 무대에서 빛나 보인다는 게 배우에게 가장 듣기 좋은 말이잖아요. 가까이는 우리 식구들, 그리고 관객들에게도 그런 배우로 기억되고 싶어요. 

앞으로도 다양한 변신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데, 배우로서 무대에서 또 어떤 도전들을 이어갈 생각인가요? 
하고 싶은 작품은 너무 많죠. <노트르담 드 파리>도 그중 하나였는데, 20대 때 너무 일찍 맡게 되어 뭐가 뭔지도 모르고 지나가버려 많이 아쉬워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역사적인 영웅인 안중근 장군을 연기해 보고 싶기도 해요. 공연을 앞둔 <프랑켄슈타인>도 정말 너무 하고 싶었던 작품이죠. 우선은 제가 지금 맡은 역할을 잘 해내는 게 첫 번째 바람이에요. 그것을 잘 해낸 뒤 그다음 목표를 이어가고 싶어요. 저는 계속 문을 두드릴 거예요. 그리고 여건이 된다면 제 이름을 걸고 편하게 노래할 수 있는 콘서트도 한번 해보고 싶어요. 판 벌리는 것에 소질이 없어서 걱정이 되긴 하지만, 동네 친구처럼 수다를 떠는 건 재밌게 잘할 수 있거든요. 그리고 무대에서 정말 끝까지 롱런하고 싶어요. 늙어 죽는 날까지 무대에 서는 것, 이게 바로 제가 이루고 싶은 마지막 목표예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8호 2018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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