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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OVER STORY] <웃는 남자> 박강현·양준모 [No.178]

글 |안세영 사진 |심주호 스타일링 | 정연주, 헤어 | 김우준, 메이크업 | 박수연 2018-08-01 15,010

<웃는 남자> 박강현·양준모

운명의 저울 위에서

 


 

EMK뮤지컬컴퍼니가 <마타하리>에 이어 야심차게 선보이는 두 번째 창작뮤지컬 <웃는 남자>.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에는 항상 웃어야 하는 남자 그윈플렌과 절대 울지 않는 남자 우르수스가 등장한다. 부자들의 낙원, 가난한 자들의 지옥 속을 나란히 헤매는 두 사람은 오직 유랑 극단의 무대 위에 설 때만 달콤한 박수갈채를 맛본다. 그윈플렌과 우르수스를 연기할 배우로 이름을 올린 건 최근 대형 뮤지컬 주연을 줄줄이 꿰차고 있는 무서운 신예 박강현과 언제나 작품의 무게 중심을 든든하게 잡아주는 배우 양준모. 두 배우가 함께 그려갈 <웃는 남자>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박강현, 두려움 없는 질주

늦은 저녁 연습을 마치고 촬영 현장에 도착한 박강현의 양 볼에 빨간 립스틱 자국이 선명했다. 원인을 묻자, 캐릭터에 이입하기 위해 립스틱으로 찢어진 입을 그리고 런을 돌았다는 해명이 돌아왔다. <웃는 남자>의 주인공 그윈플렌은 어린 시절 범죄 집단에 납치당해 입이 귀까지 찢어진 인물. 그래서 그의 얼굴은 늘 속마음과 상관없이 웃고 있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만들어낸 이 모순적인 이미지는 훗날 <배트맨>의 조커를 비롯한 다양한 캐릭터의 모티프가 되었다. 박강현이 그윈플렌 역으로 오디션을 본 것도 이 강렬한 캐릭터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영화배우 잭 니콜슨이 연기한 조커를 좋아하거든요. 그윈플렌이 조커의 모티프가 된 캐릭터라는 걸 알고 마음이 갔어요. 이 작품이 지닌 어둡고 음울한 분위기에도 끌렸고요. 제목은 <웃는 남자>인데 그 안을 들여다보면 누구도 행복한 사람이 없는 이야기에요.” 
 

이 짧은 대답은 두 가지 점에서 놀라웠는데, 우선 젊은 배우가 히스 레저의 조커가 아닌 잭 니콜슨의 조커를 좋아한다고 말한 점이 독특했고, 언제나 담담하고 낙관적으로 보이는 박강현이 음울한 이야기에 끌린다는 점도 뜻밖이었다. 이어서 그가 자신과 그윈플렌의 공통점으로 내면의 그늘을 언급했을 때에는 박강현에게도 ‘웃는 남자’처럼 드러나지 않은 이면이 존재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혼자 있는 시간을 즐겼어요. 우울함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고 몸을 맡기는 편인데, 그러면서 파생된 생각이나 감정 안에서 많이 느끼고 배우거든요. 그윈플렌도 상처 때문에 외부인과의 접촉을 피하면서 상당히 외로운 시간을 보냈을 거란 말이에요. 마음속 어딘가에 항상 어두운 면이 있다는 게 저와 그윈플렌의 공통점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하지만 뮤지컬 <웃는 남자>의 그윈플렌에게는 <노트르담 드 파리>의 콰지모도나 <오페라의 유령>의 팬텀과는 다른 점이 있다. 캐릭터 소개에도 명시되어 있듯 그는 ‘기형이지만 관능적인 청년’으로, 친남매처럼 함께 자란 순수한 소녀 데아와 매혹적인 귀족 여인 조시아나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성인이 된 그윈플렌은 데아에 대한 감정이 과연 사랑일까 아니면 단순한 남매간의 우애일까 혼란스러운 상태예요. 그러다 난생처음 귀족 여인 조시아나를 만나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죠. 다른 사람들이 그윈플렌의 얼굴을 비웃는 것과 달리 조시아나는 그의 얼굴에 매력을 느껴 다가온 사람이에요. 덕분에 그윈플렌은 자신도 남들처럼 행복해질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에 부풀어요. 하지만 그와 동시에 처음으로 데아를 저버렸다는 죄책감도 느꼈을 거라고 생각해요. 결국 조시아나와의 만남을 통해 그윈플렌은 자신이 진짜 사랑한 이가 데아였다는 걸 확신하게 돼요.” 눈 먼 데아는 그윈플렌의 흉측한 얼굴이 아닌 깨끗한 영혼을 봐주는 유일한 인물. 박강현은 “그 깨끗한 영혼도 사실 데아에게서 받은 것”이라는 견해를 덧붙이며 두 사람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에 대한 기대를 심어줬다.

그윈플렌을 선택의 갈림길에 올려놓는 건 비단 사랑뿐만이 아니다. 가난한 유랑 극단의 어릿광대였던 그는 뒤늦게 태생이 밝혀지며 새로운 운명을 맞는다. “2막의 환상 신이 큰 터닝 포인트예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사랑받았던 어린 시절의 환상,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웃는 얼굴을 팔며 살아온 지난 시절의 환상. 두 가지 환상을 보고 난 그윈플렌은 자신이 누구인지 고민해요. 그리고 자신이 클랜찰리 공작임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여전히 그윈플렌임을 잊지 않겠다고 마음먹죠. 자신이 얻은 힘을 이용해 부자만이 아닌 모두를 위한 세상을 만들겠다고요. 그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빠른 전개 안에 표현하는 게 쉽지 않아요.” 그윈플렌의 양아버지 우르수스가 불공평한 세상을 증오하면서도 주어진 운명은 바꿀 수 없다고 믿는 인물이라면, 그윈플렌은 그럼에도 자신의 운명을, 세상을 바꾸려는 의지를 지닌 인물이다. 박강현은 그윈플렌의 이런 개척자적 면모가 자신과 맞닿은 점이 있다고 말했다. “누군가 ‘내가 해봤는데 이건 아니더라, 그러니까 너한테도 아닐 거야’라고 얘기하면 잘 안 듣는 편이에요. 나에게 어떨지는 내가 겪어봐야 안다는 주의거든요.” 



 

새로운 경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박강현에게 지난 1년은 그야말로 도전의 연속이었다. JTBC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팬텀싱 어2> 출연을 필두로 각종 콘서트,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에 얼굴을 내밀었고, 동시에 뮤지컬 <칠서>, <광화문 연가>, <킹키 부츠>에서 연달아 주연을 맡았다. 이번 무대 역시 만만치 않다. 막대한 자본이 들어간 초연 창작뮤지컬의 주인공, 게다가 그와 같은 역할로 캐스팅된 건 가수 박효신과 수호다. 강력한 티켓 파워를 자랑하는 대중 스타와 비교되는 게 부담스럽지는 않을까? 분명 지겹게 받는 질문일 듯해 물을 생각까진 없었는데 대화 도중 박강현이 먼저 캐스팅 얘기를 꺼냈다. “박효신 형님이나 수호 씨가 공연하는 회차는 표를 구하기 힘드실 거예요. 그러니까 <웃는 남자>가 보고 싶으면 절 보셔야죠. 절 보러 오실 수밖에 없어요!” 특유의 나른한 말투로 아무렇지 않게 농담을 던지는 그의 모습에 바라보는 이의 마음도 상쾌해졌다. 그가 이런 일로 쉽게 위축되지 않는 배우란 걸 알았으니, 이제 그의 말대로 마음 편히 박강현의 ‘웃는 남자’를 즐길 일만 남았다. 

 


 

양준모, 뚝심 있는 전진 

“배우들끼리 우르수스를 부르는 말이 있어요. 츤데레, 경상도 남자, 욕쟁이 할머니. 어떤 느낌인지 딱 알겠죠?” 뮤지컬 <웃는 남자>의 내레이터이자 유랑 극단의 단장 우르수스는 염세적이고 쌀쌀맞은 면과 유머러스하고 다정한 면을 동시에 지닌 복잡한 캐릭터다. 이 차갑고 잔인한 세상에 동정 따윈 기대하지 말라 외치면서도, 눈보라 속을 헤매는 입 찢어진 꼬마 그윈플렌과 눈먼 아기 데아를 외면하지 못하고 거둬들이는 게 바로 그다. 양준모는 이 따뜻하고 인간적인 캐릭터에 끌려 <웃는 남자>에 참여했다. “이중적인 면을 지닌 인물이지만 표현하는 데 크게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아요. 제 성격 자체가 우르수스와 닮은 면이 있거든요.” 그의 말대로 쉽게 다가가기 힘든 인상과 달리 2014년부터 NGO단체 ‘기아대책’의 홍보대사로 활동해 온 양준모의 훈훈한 이력은 우르수스와 겹치는 점이 있다. 
 

이뿐인가, 양준모의 전작을 아는 관객이라면 의붓아들과 딸을 데리고 유랑 공연을 펼치는 이 괴팍한 남자에게서 모종의 기시감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아버지와 갈등을 빚던 아들이 떠나고 눈먼 딸만 아버지 곁에 남는 장면에서 말이다. “저도 모르게 <서편제>의 유봉 연기가 튀어나오더라고요. 특히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는 그윈플렌과 말다툼을 하는 장면에서는 자꾸 <서편제>의 ‘철없는 혈기’라는 넘버가 떠올라서 속으로 ‘생각하면 안 돼!’ 하고 되뇌어요.” 하지만 이번 작품의 초점은 가족 간의 갈등과 화합이 아닌 그윈플렌의 색다른 사랑 이야기에 있다고 양준모는 못을 박았다. “<웃는 남자>는 그윈플렌이 자기가 진정으로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깨닫는 이야기예요. 그 과정이 관객에게 잘 전달되길 바라요.”
 

<웃는 남자>가 양준모에게 던져준 한 가지 난제는 다름 아닌 눈물 연기. 스스로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절대 안 우는 남자’라고 소개하는 우르수스 탓에, 양준모는 연기 도중 문득문득 솟구치는 눈물을 꾹 참아야만 하는 고충에 시달리고 있다. “몰입해서 연기하다보면 계속 눈물이 나서 그걸 조절하는 게 힘들어요. 극 중 우르수스가 우는 장면이 딱 하나 있는데, 그 장면을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도 고민이에요. 우르수스가 그냥 눈물 많은 사람처럼 보이면 안 되거든요. 배우가 관객이 울 몫까지 다 울어버려도 안 되고요. 감정 조절이 관건일 것 같아요.” 
 

평소 눈물이 없는 편이라는 그가 무대 위에서 눈물이 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내려놓은 건 <영웅>에 출연하면서부터다. “안중근 의사의 감정이 제게 스며들면서 자연스럽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공연을 하면서 한 회라도 거짓으로 운 적이 없어요.” 표면적인 연기가 아닌 진정성 있는 연기가 배우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라는 건 지금도 양준모의 굳은 신조. 2005년 데뷔 이래 쉬지 않고 무대에 설 수 있었던 비결을 묻는 질문에도 그는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가끔 저도 궁금해요. 왜 제작진과 관객이 계속 나를 찾아줄까? 아마도 그건 제가 유별나게 잘나서가 아니라, 무대 위에서 진정성 있는 연기를 보여주려고 노력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과거에는 선배들이 연기가 막히는 부분을 붙들고 끝까지 고민하면서 연출과 싸우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면 이해가 안됐어요. 근데 지금은 왜 그랬는지 알겠어요.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제 안에서 어떻게든 답을 찾아야 해요. 그래야 진심으로 연기할 수 있거든요.” 


 

양준모는 올 하반기부터 오랫동안 꿈꿔 왔던 오페라 활동에도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그 첫걸음으로 오는 11월 예술의전당에서 세계적인 연출가 아힘 프라이어가 연출하는 오페라 <라인의 황금>에 출연한다. “성악을 전공했기 때문에 오페라에 대한 목마름이 남아 있어요. 6~7년 전부터 다시 오페라 무대에 서기 위한 목소리 트레이닝을 해왔죠. 사실 <웃는 남자>를 끝내고 오페라를 공부하러 미국 유학을 갈 생각이었는데, 경험 삼아 본 오디션에 붙으면서 바로 커리어를 쌓을 수 있게 됐어요.” 2005년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이후 양준모가 오페라 무대에 돌아오는 건 무려 13년 만이다. 그는 이번 무대가 사실상 자신의 오페라 데뷔라고 여기고 있다. “바그너 오페라는 다른 오페라에 비해 연기력을 많이 요구해요. 여타 오페라가 드라마를 음악으로 표현한다면 바그너 오페라는 음악을 드라마로 표현한다고 할 수 있죠. 제가 뽑힌 이유도 아마 그래서일 거예요. 하지만 앞으로 다른 오페라에 계속 출연하려면 더 노력해서 소리를 만들어야 해요. 11월 공연이 끝나면 뉴욕으로 거처를 옮기고, 현지에서 레슨을 받으며 활동을 이어가려고요.” 
 

물론 뮤지컬과 오페라를 오가며 활동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장르에 따라 소리를 내는 방식, 감정을 표출하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준모는 길이 험하다 해서 꿈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주저할 시간에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향해 차근차근 나아갈 뿐이다. “유럽에서는 간혹 오페라 가수가 자신이 소속된 극장의 뮤지컬에 출연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뮤지컬 전문 배우가 오페라를 겸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어요. 색다른 도전이죠. 여태껏 두 장르를 병행하기 위한 소리를 만들어왔지만,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거예요. 얼마가 걸릴지는 모르지만 해볼 겁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8호 2018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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