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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FACE] <웃는 남자> 민경아, 운명을 만드는 과정 [No.179]

글 |박보라 사진 |표기식 2018-08-23 11,909

 

<웃는 남자> 민경아, 운명을 만드는 과정

 


 

“저는 정말 기대했어요. 이런 멋진 작품을 대단한 선배들과 같이 공연할 기회가 언제 또 오겠어요. 엄마와 아빠가 ‘가문의 영광이다’라고 했을 정도라니까요! (웃음)” 제작비 175억 원, 약 5년의 제작 기간을 거친 초연작 <웃는 남자>는 개막 전부터 많은 기대가 쏟아졌다. 국내 뮤지컬계에서 영향력 있는 제작사 EMK뮤지컬컴퍼니가 ‘칼을 갈고’ 준비한 작품이니까. 당연히 <웃는 남자>의 캐스팅에도 많은 사람은 궁금증을 숨기지 못했다. 그리고 민경아는 입이 찢어진 남자 그윈플렌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지고 그의 사랑을 받는 데아로 이름을 올렸다. 지금 그녀는 무대가 주는 행복에 푹 빠졌다. “따뜻해요. 모두가 가족이죠. 오랫동안 준비한 공연을 처음으로 선보이는데, 많은 감정이 올라오더라고요. 사실 마음도 지쳤고, 정신적으로 힘들었거든요. 첫 공연의 커튼콜에서 ‘공연으로 위로받는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감정은 처음이었죠.” 민경아가 느낀 따뜻함은 무대 위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전 ‘눈물은 강물에’라는 노래가 정말 좋아요. 주변에서 주는 에너지가 포근하거든요. 제 옆에는 항상 그윈플렌이 있었는데,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혼자 남겨져 겁탈을 당할 뻔해요. 이후에 유랑 극단의 언니들이 데아를 강가로 데리고 가 눈물을 씻겨주며 아픔을 털어내 주죠. 이런 모습이 마치 ‘우먼파워’라고 할까요? (웃음) 누군가에게 상처받았을 때, 친구들과 이야기하면 위로가 되잖아요. 제가 그런 편이거든요. 그래서인지 유독 이 장면에서 따뜻함과 희열을 느껴요.” 

 

데아는 앞을 보지 못한다. 볼 수 없어서 더 순수한 소녀다. 잔혹하게 입이 찢긴 그윈플렌의 비극적인 삶이 무대에 펼쳐지면, 곁에 있는 데아도 그의 삶에 휩쓸린다. 그렇지만 그녀는 무너지지 않는다. “데아가 그랬던 것처럼, 그윈플렌도 그녀를 통해 보지 못했던 것을 깨달아요. 사실 사람의 마음은 쉽게 변하기도 하고, 유혹에 넘어가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데아는 강해요. 비록 눈도 보이지 않고 심장도 약하지만요. 그윈플렌이 떠났다는 것도 알고, 자기가 죽을 거란 것도 알아요. 하지만 그윈플렌을 다시 만날 거란 걸 알죠. 그녀는 절대 슬퍼하지 않아요. 그래서 저도 데아를 단순히 슬픔에 빠지는 인물로 보여주고 싶지 않아요.” 눈이 보이지 않는 데아는 민경아에게 하나의 도전이었다. 배우라면 상대와 눈을 맞출 때 나오는 감정과 호흡을 중요하게 느끼니까. 그녀가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그윈플렌과 아버지 우르수스 그리고 또 다른 가족인 유랑 극단 사람들 덕분이다. “초점을 한곳에 맞춘 채로 시선을 고정해야 했어요.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지만 초반에는 자꾸 다른 배우들과 눈이 마주치는 거예요. 그럴 때면 모두가 ‘지금 내가 보여? 너 데아잖아!’라고 놀렸죠. (웃음) 이렇게 주변 배우들이 제가 데아로 완벽하게 스며들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셨어요.” 특히 암흑의 세상에서 그윈플렌이 들려준 목소리는 그 자체로 데아의 세상을 탄생시켰다. “그윈플렌의 목소리에 많이 기댔어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모든 걸 상상하려고 노력했거든요. 무엇보다 생각을 없앴죠. 제가 미리 앞서 나가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했어요.” 

 

누구나 운명적인 무언가가 있다. 민경아에게 운명적인 노래를 꼽으라면 <더 라스트 키스>의 ‘사랑이야’다. 대학 입시를 위해 처음 연습한 이 곡은 그녀가 마주한 중요한 순간에 늘 함께했다. 대학 입학 시험은 물론이고 용기를 내어 직접 지원서를 썼던 인생의 첫 오디션에서 ‘사랑이야’를 부른 것을 시작으로, 몇 년 후엔 <더 라스트 키스>의 마리로 이 곡을 직접 부르게 됐으니까. 사실 민경아의 오디션 에피소드를 듣고 있으면 ‘일이 이렇게 이어질 수도 있어?’라는 생각이 든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첫 오디션 탈락 소식을 듣고 집으로 가면서 우연히 <아가사> 오디션 제의를 받았고, 이것이 뮤지컬 배우로서의 시작이 됐다. 이후 그녀는 <햄릿> 오디션에서 <몬테크리스토>의 발렌타인 역으로 캐스팅이 됐다. 또 <더 라스트 키스> 오디션에서 처음엔 보기 좋게 탈락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웃는 남자> 오디션에서 ‘사랑이야’를 열창해 기어코 <더 라스트 키스>의 마리로 무대에 올랐다. 민경아는 복잡하지만 결국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 에피소드를 “운이 좋았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준비된 사람만 행운을 잡을 수 있다는 걸. “절대 안심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종종 작품과 인연이 닿지 않을 때마다 ‘이건 내 자리가 아니었을 거야’라고 마음을 다잡죠. 전 초심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많은 사람을 만나잖아요. 그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변했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을 거예요. 만약 그렇게 된다고 해도, 잘 헤쳐 나가고 싶어요. 진심은 언제든지 통하게 되어 있으니까. 이 마음을 잘 지켜 나가야죠.” 여전히 민경아는 행운을 잡을 준비를 하고 있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싶어요.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걸 다양하게 잘 소화해 내는 것이 목표죠. 뻔한 말이지만, 어떤 작품의 캐릭터든 그 인물로만 보였으면 좋겠고요. 또 ‘정말 민경아가 출연했다고? 민경아가 저런 것도 할 수 있었어?’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9호 2018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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