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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VIEW] <지하철 1호선>이 걸어온 길 [No.180]

글 |박병성 사진제공 |극단 학전 2018-09-05 12,013

<지하철 1호선>이 걸어온 길

 

독일의 레뷰 를 한국적 상황에 맡게 각색한 <지하철 1호선>은 1994년 5월 14일 첫 공연을 올렸다. 연변 처녀의 눈으로 서울의 맨얼굴을 바라보는 이 작품은 이후 2008년 12월 31일까지 4,000회 공연을 이어간다. 초연 당시 연변 처녀의 이름은 연순(이후 선녀)으로 세계적인 재즈가수로 유명한 나윤선이 맡고, 영화배우 방은진이 걸레로, 설경구가 철수 역으로 출연했다. 이후 신인 시절 황정민, 조승우 등이 거쳐가며 배우 사관학교로 불리기도 했다. 잠시 정차한 것으로 여겼던 <지하철 1호선>이 10년간 운행을 멈췄다. 오는 9월 재가동을 준비 중이다. 

 


 

신화를 쓰다

시작은 1991년 극단 학전의 탄생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음악극에 관심을 두고 해외 작품을 검토하던 김민기 연출은 독일 레뷰 를 발견한다. 브로드웨이 작품은 가공할 여지가 없었지만 이 작품은 변용할 여지가 있었다. 2년 동안 작품에 매달린 끝에 <지하철 1호선> 초고를 완성했다. 13장으로 구성된 원작을 한국적인 상황으로 각색하면서 10장으로 압축했다. 1994년 초연 이후로도 <지하철 1호선>은 시대를 반영하며 수정 발전해 왔다. 1995년 버전에서는 문민정권 이후 지식인들의 허무감을 반영해 안경을 가짜 운동권 학생으로 바꾸었다. IMF 이후에는 당시 경제 상황을 반영해 실업자, 비정규직, 대학 강사의 캐릭터를 추가했다. 시대와 호흡하며 발전해 온 <지하철 1호선>은 2000년대 이후 작품의 시간적 배경을 IMF 한파가 절정이었던 1998년 11월로 고정했다. 2000년대 이후까지 시대를 반영한다면 부분 개작으로는 불가능하고 새로운 작품이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금은 전설이 된 <지하철 1호선>이었지만 초연부터 흥행했던 것은 아니다. 1995년까지도 적자가 누적되어 작품을 접으려고도 했다. 한 해만 더 운영해 보자고 한 것인데 1996년 공연부터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시대를 반영하여 수정을 거쳤던 <지하철 1호선>에 30대 넥타이를 맨 회사원이 몰리면서 11개월간 평균 객석 점유율 104%, 유료 점유율 96%라는 신화적인 기록을 세웠다. 이를 토대로 장기 공연의 발판이 마련됐다. 2002년 3월 8일부터 학전그린에서 상시 공연을 이어갔다. 
 

<지하철 1호선>이 전설이 된 이유는 단순히 높은 객석 점유율 때문이 아니다.  <지하철 1호선>의 성취는 자본의 논리에 역주행하며 이룬 결과라 더욱 값지다. 채 200석도 안 되는 소극장에서 출연 배우 11명에 5인조 라이브 연주를 한다는 것 자체가 상식 밖의 시도였다. 출연자와 연주자 들이 각자 일정 지분으로 수입을 나누는 시스템을 유지하며 운영한 것도 유례가 없는 방식이었다. 김민기 연출은 특별한 의지가 있던 것이 아니라 수입이 크게 날 수 없는 구조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운영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같은 작품에서 배우들의 개런티가 많게는 수백 배까지도 차이 나는 현실에서는 놀라운 시도가 아닐 수 없다. 



 

독일 그립스 극단과의 우정

<지하철 1호선>은 장르상 번안 뮤지컬에 속한다. 번안 뮤지컬은 국내 창작자가 원작을 토대로 재창작한 작품을 일컫는다. <지하철 1호선>은 독일 그립스 극단의 를 한국적 상황에 맞게 각색해 원작자인 폴커 루드비히로부터 “원작을 뛰어넘는 각색”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김민기 연출은 원작자가 보고 나서 조금이라도 불편한 기색이 있으면 바로 막을 내릴 각오였다고 한다. 다행히 원작자에게 최고의 찬사를 받았고 2000년 1,000회 공연부터는 저작료를 면제받았다. 원작자인 폴커 루드비히는 단순히 금전적인 혜택을 선물한 게 아니라 <지하철 1호선>을 독립된 창작물로 인정해 준 것이다. 
 

이후 그립스 극단과의 교류는 지속되었다. 한국보다 늦게 1,000회 공연을 맞은 2001년에는 <지하철 1호선> 드림팀을 초청해 독일에서 공연했고, 2003년 2,000회 공연에는 독일 팀을 한국에 초청해 공연했다. 2,000회 공연 후 그립스 극단 배우들은 깜짝 이벤트로 김민기 연출의 대표곡인 ‘아침이슬’을 아카펠라 형식으로 편곡해 불러주었다. 이후에도 그립스 극단의 어린이 뮤지컬을 번안한 <고추장 떡볶이>, <슈퍼맨처럼>, <우리는 친구다>를 올리며 두 단체는 우정을 쌓아갔다. 2019년은 그립스 극단이 창단 50주년을 맞는 해이다. 그립스 극단의 초청으로 6월 베를린에서 <지하철 1호선>을 공연할 예정이다. 



 

배우 사관학교

서울의 가난한 사람들의 발이 되어주었던 지하철, 작품은 지하철 1호선을 이용하는 사람들이나 그 주변에서 생활하는 청소부, 노숙자, 신문팔이, 포주, 창녀 등 우리 사회의 밑바닥 사람들뿐만 아니라, 강남 아줌마, 정치인 등을 등장시켜 서울의 민낯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지하철 1호선>에 출연한 배우는 195명. 황정민, 설경구, 김윤석, 방은진, 오지혜, 장현성, 안내상, 조승우, 박혁권, 배성우 등 <지하철 1호선> 출신의 배우들 중 TV와 영화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배우들이 꽤 많다. 뮤지컬과 TV를 오가는 서범석, 배해선, 최재웅, 남문철, 최민철 이외에도 김재범, 이영미, 서지영, 전병욱 등 이루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배우들이 이 작품을 거쳐갔다. <지하철 1호선>은 한 번 캐스팅되면 원 캐스트로 5~6개월 동안 장기 공연을 하며 맡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선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7~8개의 역할을 연기해야 하기 때문에 연기 기량이 늘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기본에 충실한 연기와 발성을 중시하는 김민기 연출의 가르침으로 배우로서의 기본자세를 배우게 된다. <지하철 1호선>을 배우 사관학교라 불렀던 이유다. 

 

총 관객 수 73만여 명

4,000회 특별 공연을 제외한 3,950회까지 <지하철 1호선>을 관람한 관객은 70만 6천여 명이었다. 소극장 뮤지컬이 이룬 성과로 믿겨지지 않은 수치이다.

 

총 참여 배우 195명

<지하철 1호선>은 원 캐스트로 5개월 이상 장기 공연을 해왔기 때문에 4,000회를 넘긴 프로덕션치고는 출연 배우가 많지 않다. 가장 많이 참여한 배우는 2회 공연부터 참여한 배우 이황의로 전체 공연의 30%가 넘는 1,437회 공연에 출연했다.  

 

총 참여 연주자 52명

<지하철 1호선>과 함께한 5인조 록 밴드 무임승차의 연주자는 총 52명이었다. 그중 가장 많이 참여한 연주자는 초연부터 1,444회를 함께한 드러머 박진완이다. 

 

6회 해외 초청 공연

<지하철 1호선>은 2001년 독일 그립스 극단 초청 공연을 시작으로, 같은 해 중국(상하이, 베이징), 일본(도쿄, 오사카, 후쿠오카)에 초청되는 등 해외에 소개되었다. 2003년 홍콩 아트 페스티벌, 2005년 일본 오키나와 페스티벌, 같은 해 독일 그립스 극단 초청 공연 및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공연을 했다. 2019년 다시 독일 그립스 극단 50주년 기념 공연에 초청됐다. 

 



 

10년 만에 재가동하는 <지하철 1호선>

 

<지하철 1호선>이 잠정적 중단을 선언하고 4,000회까지 50회 동안 운행되었던 <굿바이 지하철 1호선> 공연. 원래는 11명의 배우가 90여 개의 역할을 연기하는 공연이지만 마지막 주간 공연은 11명의 배우 이외에 기존 출연한 배우가 멀티 역할 중 한 캐릭터로 등장해 총 등장 인원이 20~30여 명에 이르렀다. <지하철 1호선>의 배우들은 선녀를 제외하면 1인당 8개 정도의 역할을 맡는데, OB 배우들이 멀티 역 중 하나의 역할로 출연하는 방식이었다. 200석도 채 안 되는 소극장에서 황정민이 지하철에서 물건을 강매하는 깡패로 등장하고, 조승우가 지하철에서 고무장갑을 팔고, 장현성이 2막을 여는 노래 ‘지하철을 타세요’를 부르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까, 그러한 비현실적인 캐스팅과 장면을 가능하게 하는 작품이 <지하철 1호선>이다. 
 

10년 만에 다시 운행되는 <지하철 1호선>에 함께할 신예 11명은 지난 4월부터 3차에 걸친 오디션을 통해 선발됐다. 총 917명이 지원하였으며 세 차례의 오디션을 거쳐 85대 1의 경쟁을 뚫고 선발된 정예 멤버들이다. 이번 특별 공연에는 4,000회 공연 시즌과 마찬가지로 이들 11명의 배우들 이외에도 기존에 출연했던 OB 배우들의 참여로 공연의 색다른 재미를 더한다. 현재 참여가 정해진 배우는 방은진, 장현성, 김재범, 최재웅, 최덕문, 배해선 등 40여 명인데 학전 배우들의 의리를 생각하면 이후 참여 명단은 더 늘어날 것이다. 
 

<지하철 1호선>과 함께한 5인조 록 밴드 ‘무임승차’에도 변화가 있다. 학전과 오랜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정재일이 음악감독으로 편곡 작업에 참여해 기존 건반, 기타, 베이스기타, 드럼, 색소폰의 5인조 밴드를 건반, 기타, 베이스기타, 아코디언, 퍼커션, 바이올린의 6인조 밴드로 새롭게 구성한다.

 


 

새로운 지하철 승객 11명

8월 7일 연습이 한창인 학전 블루 건물 2층의 연습실을 찾았다. <지하철 1호선>의 음악이 흐르고 새롭게 참여한 배우들의 연습이 한창이었다. 새로운 배우들은 각각의 캐릭터를 다듬어가는 중이었다. 강렬한 기타 선율의 음악이 흘렀다. 오랜만에 듣는 <지하철 1호선>의 음악은 비록 음질이 좋지 않은 MR이었지만 익숙한 멜로디가 가슴을 울리며 옛 감동을 이끌어냈다. 

 

<지하철 1호선>을 본 사람이 있나요? 

장혜민(선녀) 2005년 고등학교 1학년 때 봤어요. 제 첫 뮤지컬이기도 했고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대학 입시 곡으로도 <지하철 1호선> 선녀 노래를 불렀어요. 저에게 너무 좋은 인상이 남은 작품이라 이번 오디션에도 지원했어요. 
 

10년 만에 하는 작품이라 한 분만 보셨나요? 그런데 어떻게 이 작품에 지원하게 됐죠?

박근식(문디) 학교에서 워크숍 공연으로 <지하철 1호선>을 많이 해요. 멀티 역이 많다 보니 많은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으니까. 저도 학교 공연으로 참여해 봤어요. 그때도 문디 역을 맡았죠.

김태영(제비) 선배들에게 작품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어요. 드라마가 주가 되는 작품이기도 하고 여러 배역을 소화해야 하는 역할이라 매력을 느꼈죠. 
 

오디션 때 기억에 남는 질문이 있나요?

손진영(땅쇠) “방송하지 왜 공연하려고 하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다 똑같은 마음일 거예요. <지하철 1호선>은 무대에 서는 배우든 방송인이든 꼭 거쳐야 하는 관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작품을 하면 연극, 뮤지컬의 기본기를 탄탄하게 갖출 거 같았어요. 
 

김민기 선생님이 연출 지도해 줄 때 어떤 말씀을 해주나요?

김태영(제비) 세종대왕을 사랑해라. 이런 말씀을 해주셨는데 한국말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신 것 같아요. 말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세요. 

윤겸(포인터) 배우들이 과장하거나 코믹하게 꾸미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세요. 기본을 바탕으로 감정을 조금씩 가미해 가라고 말씀하셨어요. 
 

 연습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는데. 어떤 게 힘든가요?

정재혁(철수) 이렇게 리딩을 길게 해본 적이 없어요. 하나하나 꼼꼼히 짚어가다 보니 리딩 기간이 길어졌어요. 내적으로 정서가 쌓이는 느낌이 들어서 좋긴 한데 힘들죠.
 

<지하철 1호선>의 제작 과정이 여느 뮤지컬과 다른 점이 있나요?

박근식(문디) 본격적인 리딩에 들어가기 전에 2주간은 1990년대 서울의 모습을 빠르게 이해하기 위해 광복 이후부터 IMF 끝날 때까지 근현대사를 공부했어요. 대사 하나하나에 시대적인 배경이 깔려 있는 작품이니까요. 

손민아(빨강바지) 독일 원작도 읽었어요.

이승우(날탕) 보통 다른 작품에서는 배역을 받고 연습에 들어가는데 저희는 선발하고도 배역을 정하기까지 3주가 걸렸어요. 시대 배경을 스터디하면서 배역을 바꿔가며 대본을 읽고 노래도 불러보면서 보냈어요. 한 달 넘게 연습하고 있는데 배역을 받은 지는 열흘 정도밖에 안 됐어요. 그러다 보니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배역을 받고 시작하면 그 역할에만 몰두할 수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모든 배우들이 극 전체를 보는 시각이 생긴 것 같아요. 그래서 서로를 더 아끼게 되는 것 같아요. 서로에게 조언할 때도 정말 많이 생각하게 되고요. 
 

공연이 끝나고 어떤 변화를 기대하시나요?

최새봄(곰보할매) 4개월 정도 원 캐스트로 끌고 나가야 하거든요. 워낙 팬들도 많고 출신 선배님들도 많은 작품이라 저희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을 거예요. 작품 준비하면서 제가 어떤 배우인지 발가벗겨지는 기분이었어요. 오디션보다 첫 리딩, 첫 노래가 더 떨리더라고요. 끝까지 해내고 나면 배우로서 정말 크게 성장해 있지 않을까요. 

이홍재(안경) 연극만 하면서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많은 걸 바라지 않거든요. 하루 두 끼만 먹더라도 연극만 할 수 있도록 다른 기회가 왔으면 좋겠어요. 

제은빈(걸레) 프로 무대 경험이 별로 없는데 김민기 선생님은 기본을 중요하게 여기세요. 대사 하나부터 노래, 발음 하나까지 기초를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기본에 충실한 연기를 배우고 있습니다. 

손진영(땅쇠) <지하철 1호선> 관련 기사를 보면 제2의 황정민, 제2의 김윤석이 나올 수 있을까, 이런 말씀을 하시는데요. 나옵니다. (웃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0호 2018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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