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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그 푸른 날개를 펼 시간, <마마 돈 크라이> 허규 [No.89]

글 |김유리 사진 |김호근 2011-02-07 5,336

 

영화 <국가대표>에서 올림픽에 출전한 스키점프 국가 대표 차헌태(하정우)가 2차 시기 점프를 하던 순간, 배경에 흐르던 노래 ‘I Can Fly’를 기억하는지. 마치 끝없이 하늘을 가를 듯한 인간의 숨 막히는 활공에 신비감과 드라마틱함을 더한 군더더기 없이 맑고 깨끗하게 쭉 뻗는 미성의 고음, 허규의 트레이드 마크다. 듣는 이의 가슴 한복판을 겨냥하는 투명한 고음이 주는 초현실적인 느낌 때문일까. 데뷔 13년 차의 가수인 그의 노래엔 이별을 고하고 알 수 없는 곳으로 떠나거나, 하늘을 날아오르거나 유영하는 느낌의 제목이 눈에 띈다. 음반을 통해서는 순수한 목소리를 주로 느낄 수 있었다면, 최근 그가 참여한 뮤지컬 <마마 돈 크라이>에서는 그뿐 아니라 순수함 안에 감춰진 욕망의 목소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호리호리한 체구, 모성 본능을 자극하는 앳되고 깔끔한 외모, 피터 팬처럼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음색, 허규는 <마마 돈 크라이>의 프로페서 V가 지녀야 하는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한 듯 보였다. 유난히 수줍음 많은 성격의 프로페서 V는 첫사랑의 좌절을 극복하기 위해 시간 여행을 통해 뱀파이어와 만나 강렬한 눈빛과 폭발적인 에너지를 지닌 남자로 다시 태어난다. 의외의 두 모습은 허규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매력이었고 <마마 돈 크라이>라는 무대에서는 마력으로 작용한 듯 보인다. 입소문을 타고 연장 공연까지 성사된 걸 보면.

스스로도 프로페서 V와 닮은 점이 많다는 허규는 학창 시절, 극도로 소심한 학생이었다. 일상에서 친구들과는 쾌활하게 잘 노는 일반적인 학생이었지만, 남들 앞에서 가창 시험을 보거나 책을 읽을 때엔 가슴이 쿵쾅거려 친구들이 걱정할 정도로 떨었다고. 눈에 띄는 것에 극도로 수줍음을 보이던 그를 바꾼 건 바로 음악이었다.

“중 3때, 록 음악을 듣던 친구가 할로윈(Halloween)의 「Keeper of the Seven Keys」 음반을 선물해줬어요. 굉장히 충격적이었죠. 신세계였어요. 그렇지만 제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건 스키드 로우(Skid Row)죠. 보컬 세바스찬 바흐의 영향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보통의 남학생들보다 높은 음역을 가진 탓에 반주 음역에 맞출 수가 없어 가창 시험에서 양, 가를 받았던 그는 당시 아버지가 선물해주신 오디오로 해외 록 밴드의 노래 모창을 녹음하고 다시 듣기를 반복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높은 음역이 장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대학에 가면 꼭 ‘록 밴드 동아리 보컬’을 해야겠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그 작고 소박한 꿈은 생각보다 크게 이루어졌다. 록 밴드 동아리 활동 1년 만에 그룹 ‘피노키오’의 보컬로 발탁되어 앨범을 내고, 1년 후 당대의 이슈였던 천계영 원작의 애니메이션 <오디션> 공개 오디션에서 재활용 밴드 멤버인 황보래용의 보이스로 발탁되었다면 너무 드라마틱한 신데렐라 스토리일까. 어린 가수의 데뷔도 흔치 않았던 1990년대 말, 또래 누구보다 빨리 자리를 잡는 듯했으나, 이후 그를 찾아온 것은 경제 위기로 인한 음반 시장의 불황과 기획사와의 불화, 프로젝트 지연으로 인한 끝없는 기다림이었다.  


긴 기다림의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알아봐 주고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게 도와준 인연 덕분이었을 것이다. 애니메이션 <오디션>의 OST 작업에서 만난 김성수 음악감독은 2002년 록 뮤지컬 <포비든 플래닛>에 록 보컬에 드럼, 기타, 베이스를 연주할 수 있는 깡통 로봇 에이리얼 역할에 그를 캐스팅했다. “공연을 좋아하셔서 해외 뮤지컬의 오리지널 캐스트가 내한을 하면 꼭 보여주셨던 부모님 덕분에 뮤지컬은 친근했어요.” 남경주, 가수 박기영을 비롯해 오만석, 송용진, 김성기, 문희경 등 내로라하는 배우와 스태프가 참여했던 이 작품에 대해 그는 ‘같은 작품이라도 매일매일 새로운 공연이라는 가치를 알게 해준 작품’이라 말한다. 이후 7년 동안 앨범 활동을 하고 있던 그를 <오디션>을 통해 다시 뮤지컬로 이끈 건 작품과 그의 궁합을 알아본 동료 배우 주현종이었다. “<오디션>의 가사와 스토리는 정말 제 이야기였어요. 꿈을 향해 가고 있는데, 이젠 조금 지치기도 하는데, 꿈을 향한 내 엔진이 식기 전에 또 다른 내일을 만나고 싶다는 가사에서 눈물이 핑 돌았죠.” 1년 8개월간 병태이자 자신으로 살면서 연기에 대한 매력을 느끼게 해준 작품이라 더 의미가 깊다고. 이후 그가 선택한 작품은 <마마 돈 크라이>다. 뱀파이어라는 B급 소재에도 불구하고 <사춘기>의 작가와 연출, 그리고 주연 배우의 폭발적인 에너지로 기발한 작품이 나왔다는 입소문으로 매진 행렬을 기록했다. “저도 신기해요. 사실 공연 하는 내내 믿기가 어려웠죠. 대학로에서 입소문으로 잘될 수 있다는 얘기를 가끔 듣긴 했지만, 실제로 체험한 건 처음이었거든요. 제 인생에 처음 있는 기적 같은 경험이에요.” 공연이 끝난 지금도 어리둥절하면서도 기쁜 기색이 역력한 그의 말이다.


<포비든 플래닛>, <오디션>, <마마 돈 크라이> 단 세 편의 이력으로 관객에게 눈도장을 확실히 찍은 허규는 앞으로 뮤지션 겸 배우 김창완처럼 음악으로도 인정받고, 연기로도 인정받을 수 있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고 한다. 앞으로 꼭 하고 싶은 작품으로 제일 먼저 <헤드윅>을 꼽은 그는 이어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렌트>, 그리고 인터뷰 전날 인상적으로 봤다는 <라디오 스타>를  차례대로 말하며 설렘 가득한 미소를 짓는다. “제 목소리가 뮤지컬에서 일반적으로 쓰일 수 있을까 싶긴 해요. 다양한 작품에 참여하긴 어려울지라도, 제가 잘할 수 있는 작품, 제게 어울리는 캐릭터는 확실하게 하고 싶어요. 그래서 저라는 브랜드에 대한 관객의 신뢰도가 높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오랫동안 웅크려온 새가 날개를 움직이며 날아오를 준비로 숨을 고르고 있는 지금, 쿵쾅대는 가슴이 엔진이 되어 높이 날아오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9호 2011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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