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양지원·홍승안, 빛이 힘을 잃는 밤
우리가 지닌 본성은 무엇일까. 여기 철학적이고 무거운 질문을 서늘하고 미스터리하게 던지는 뮤지컬이 있다. 매일 밤 아무도 모르게 사람들이 사라지는 세상, 젊은 부부의 집에 낯선 방문자가 방문을 두드린다. 국내 뮤지컬에서 쉽게 볼 수 없던 스릴러 장르로 독특한 분위기를 선보인 <미드나잇>이다. 작품은 12월 재연을 앞두고 양지원과 홍승안의 출연 소식을 전했다. 양지원은 음침하고 잔혹한 비지터, 홍승안은 아내를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는 맨으로 무대에 설 예정. 인터뷰가 진행되던 날, 두 사람은 잠깐의 틈이라도 생기면 대사를 맞춰보며 새롭게 바뀔 <미드나잇>을 향한 열정을 드러냈다. 함께 있으면 시간이 흐르는 것을 모를 정도로 코드가 잘 맞는다는 이들과의 시간을 전한다.
자정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얼마 전 함께 콘서트
양지원_ 솔직히 준비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어요. 공연을 하면서 다음 작품의 연습을 병행하던 시기였거든요. 그런데 승안이를 비롯해 좋은 동생들과 함께 출연해서 즐거웠어요. 특히 제가 춤을 잘 추는데 (일동 폭소) 오랜만에 아이돌 그룹의 춤을 추니까 스트레스가 풀리더라고요. 제가 댄스 캡틴이었거든요! 아마 승안이가 제일 못 췄지?
홍승안_ 아니야, 춤 실력은 다들 비슷비슷했어. 2시간 연습하면, 2시간 동안 수다 떨고, 이렇게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콘서트를 만드는 건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올해 지원 씨는 뮤지컬 <최후진술>로, 승안 씨는 연극 <트레인스포팅>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어요.
양지원_ <최후진술>의 초연과 앙코르 공연에 계속 참여했어요. 과분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고, 당연히 애정이 깊을 수밖에 없죠. 개인적으로도 특별하고 소중한 작품이에요.
홍승안_ 제게 <트레인스포팅>은 첫 상업 공연이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더블 캐스팅도 처음이었다니까요! (하하)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낯설고 어렵기도 했고요. 다행히 함께하는 형들이 많이 도와줘서, 재미있게 새로운 것을 배웠어요.
두 사람은 <천사에 관하여: 타락천사 편>(이하 <천사에 관하여>)에 이어 <미드나잇>에서 또 같은 작품을 하게 됐어요.
양지원_ 승안이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동생인데, <천사에 관하여>에서는 같은 배역이라 무대가 아니라 연습실에서 주로 함께했어요. 같이 무대에 서면 좋은 시너지가 날 것 같아 기대돼요. 그리고 제가 맡은 비지터는 승안이가 연기하는 맨을 괴롭히는 역할이거든요. 마음껏, 신나게 괴롭히려고요!
홍승안_ <미드나잇>의 출연을 결정할 때 지원 형과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과연 이 작품에 출연한다면 괜찮을까? 나한테 버겁지는 않을까? 혼자 이런 고민을 하고 있었거든요. 근데 지원 형의 합류 소식이 들렸고, ‘아, 지원 형과 함께라면 괜찮겠다!’란 생각이 들었죠.
양지원_ 아니, 승안이에게 전화가 온 거예요. “형! <미드나잇> 할 거야? 할 거지? 형이랑 같이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라고 애교를 부리면서! (웃음) 승안이와 앞서 호흡을 맞췄기도 하고 워낙 마음이 잘 맞는 친구라, 망설임 없이 선택하게 됐죠.
특히 <미드나잇>은 상대역으로 만나잖아요.
양지원_ 승안이는 영리하고 좋은 배우예요. 표현해야 할 부분을 정확하게 캐치해 내는 친구죠. 또 무언가를 알려주면 빨리 배우는 편이에요. 이런 친구와 같이 무대에 서면 당연히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물론 승안이뿐만 아니라 <미드나잇>에 출연하는 모든 배우가 그래요. 연습실에서 지켜보면, 작품 자체가 좋고 배우들의 합도 기대되죠.
홍승안_ 연습실에서 지원 형을 보면 늘 본인의 200퍼센트를 쏟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지원 형과 빨리 무대에 올라가고 싶어요. 관객과 함께 호흡하면 에너지가 달라지거든요. 특히 <미드나잇>은 액터 뮤지션이란 특수한 캐릭터가 있어서, 무대 위에서 우리가 어떤 호흡을 보여드릴 수 있을지 궁금해요.
본격적인 개막에 앞서 <미드나잇>은 미니 음악회를 준비하기도 했어요. 어땠어요?
양지원_ 사실 조금 걱정했어요. 초연부터 참여한 배우들은 이미 무대에서 관객을 만나봤잖아요. 경험을 바탕으로 관객의 반응을 예상하거나 드라마를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을 텐데, 저나 승안이는 이런 부분에서 어렵더라고요. 그런데 막상 미니 음악회가 시작하니까, 정말 신나게 공연하게 되더라고요!
<미드나잇>에 출연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홍승안_ <미드나잇>의 배경은 러시아 독재 정권이었던 스탈린 시대지만, 작품 속 인물은 지금과 전혀 다르지 않아요. 인간이 어떤 상황에서 결정을 내리고 책임져야 하는 부분을 주목하죠. 그래서 지금 이야기해도 가치를 전할 수 있는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양지원_ 개인적으로는 모든 인간은 죄인이고, 상황과 환경에 따라서 천사나 악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대본을 읽는데, 인간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작품의 메시지가 좋더라고요.
대본을 보고 느낀 첫인상은 어땠나요?
양지원_ 잔인하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가장 크게 들었죠. 안타깝게도 초연을 보지 못해서 텍스트를 읽고 상상해야만 했는데, ‘이 잔인한 걸 과연 내가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이 들더라고요.
홍승안_ 맞아요, 저도 그런 생각이 들었죠. 자세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끔찍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이 상황을 대하는 맨의 태도가 신기하기도 했고요. 맨을 알아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야겠단 생각도 들더라고요.
비지터와 맨은 둘 다 미스터리한 인물이죠. 각각의 캐릭터를 간단하게 소개해 주세요.
양지원_ 제가 맡은 비지터는 말 그대로 낯선 방문자에요. 쉽게 말하자면 우리는 살면서 선한 선택을 할 수 있고, 악한 선택을 할 수 있단 말이에요. 이런 선택을 내리는 마음의 소리라고 할까요. 더 깊게는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악한 죄의 본성을 드러내 줄 수 있는 매개체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비지터가 숨겨진 본성을 끌어내려고 노크하는 거죠.
홍승안_ 맨은 비지터와 상반되게 유혹을 받고 본성에 대해 선택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어요. 전 맨을 특별한 인물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평범한 인간이나 내 자신이라고 보게 되더라고요.
스스로 감옥을 쌓는 인간
작품은 윤리적인 딜레마를 다뤄요. 본인이라면 작품 속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 거라 상상하나요?
양지원_ 독재 정권이라는 상황은 사람을 극단적으로 몰아가는 것과 같아요. 어떻게 보면, 누군가의 앞에서는 웃으면서 안부를 물어도 뒤에서는 칼을 꽂는 거죠. 만약 누군가를 고발하지 않으면 당장 내가 끌려가서 잔인하게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 벌어지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이런 선택의 상황이 펼쳐질 때, 인간은 당연히 딜레마를 겪죠. 전 지금 이런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지 않기 때문에 ‘제 양심이나 신념을 지켜요’라고 말하고 싶지만, 막상 선택을 해야 한다면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많은 고민을 하겠죠.
홍승안_ <미드나잇>의 자세한 결말을 말할 수 없지만, 맨은 마지막에 어떤 행동을 선택해요. 저라면 맨처럼 행동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 행동은 회피라고 생각하거든요. 도망치는 것은 좋은 선택이라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해요.
<미드나잇>은 암울한 독재 정권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공감대를 어떻게 형성하려고 하나요?
양지원_ 전 이 작품에서 꼭 공감대를 느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많은 나라에 이런 암울하고 어두운 과거가 있어요. 물론 한국도 마찬가지고요. 이런 아픔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기 때문에 낯설지는 않으실 거예요. 다만 이런 정치적·시대적 배경보다는 인간의 선택 그리고 이를 통해 발생한 결과나 상황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홍승안_ 전 사실 지금도 <미드나잇>의 배경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봐요.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여전히 비슷하다는 거죠.
양지원_ 덧붙이자면 우리는 각자 무언가를 선택하면서 살잖아요. 여기서는 자신만 위해서 살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와 함께 살 수 있는 방향을 선택할 것인가. 이렇게 <미드나잇>은 인간의 본성을 주목하고 있어요.
<미드나잇>의 매력을 꼽는다면?
홍승안_ 액터 뮤지션의 등장이요. 외국에서 액터 뮤지션은 낯설지 않아요. 굉장히 많은 작품에 등장하기도 하고, 액터 뮤지션 스쿨까지 따로 있을 정도로 익숙하죠. 그런데 한국에서 액터 뮤지션은 쉽게 볼 수 없는데, 이걸 시도하는 것이 생소하지만 매력으로 다가올 거예요.
양지원_ 스릴러라는 장르도 독특하죠. 귀신이 등장해서 관객을 놀라게 하는 공연과는 달라요. 귀신보다 사람이 무섭다는 말이 있잖아요. <미드나잇>은 조금씩 사람의 악한 심리와 극단적인 선택을 결정해야만 하는 상황을 보여줘요.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접근하는 부분이 정말 무섭게 느껴졌어요.
홍승안_ 맞아요. 심리적인 부분을 건드려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각 캐릭터들은 여러 선택지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하고, 동시에 관객에겐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거냐’고 묻고 있죠. 이런 식으로 계속 긴장감을 이어가는 것도 매력적이에요.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나 노래가 있나요?
양지원_ 저는 비지터가 맨의 이중적인 면을 폭로하는 대사와 이어지는 ‘우린, 당신을’이라는 곡을 꼽고 싶어요. 대사가 굉장히 많고 템포도 빠른데 극에 반전을 일으키기 시작하는 부분이거든요. 맨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 알려지면서 우먼의 심리를 자극해요. 그런데 그때 비지터의 태도가 “당신의 남편이 이런 사람이야!”라고 사실을 알리기보다 이들을 툭툭 건드리며 둘의 관계를 위협하는 것을 즐기는 느낌이에요. 그러다 보니 비극적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유쾌한 분위기로 그려지죠.
홍승안_ ‘유토피아’라는 노래가 있는데, 이상에 대한 곡이에요. 맨과 우먼이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와 맨이 지키려 했던 신념을 노래하죠. 작품 전반적으로 맨은 상당히 불안하고 쉽게 흔들리는 인물이지만, 이 노래를 통해 그의 또 다른 모습이 보여요. 이게 마음을 움직이더라고요.
초연과 달라진 점을 꼽으면?
양지원_ 초연 무대를 영상으로 봤어요. 무대가 2층으로 나뉘었고 계단이나 사슴 같은 소품도 있더라고요. 재연 무대를 보시면 아마 깜짝 놀라실 거예요. 음, 살짝만 알려드리자면 ‘미니멀리즘’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초연과 극본, 음악은 같지만, 다른 공연이라고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홍승안_ 초연에 비해 등장하는 배우들도 늘어났죠. 저도 약간 힌트를 드리자면 이번 <미드나잇>에서는 현실적인 부분을 더 강조하려고 해요.
<미드나잇>을 기다리는 관객에게 전하는 한마디.
양지원_ 나는 어떤 인간일까. 나는 어떤 선택을 하고 사는가. 나는 매번 변하는 상황과 환경에 따라서 어떤 선택을 하고 있나. 그래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천사인가 악마인가. 이렇게 다양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고민할 수 있는 작품이 될 거예요. 열심히 잘 준비하고 있으니 기대해 주세요.
홍승안_ <미드나잇>을 통해 내가 하는 선택들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정말 매력적인 작품이니까 꼭 공연장에서 만나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3호 2018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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