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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프롬>, 브로드웨이를 향한 사랑의 노래 [No.185]

글 |여지현 뉴욕 통신원 사진 |Deen van Meer 2019-02-14 6,201

<프롬>, 브로드웨이를 향한 사랑의 노래

 


 

잠재력을 지닌 새로운 뮤지컬 코미디

‘새로운 뮤지컬 코미디’라는 광고 문구를 달고 지난해 11월 브로드웨이에 등장한 뮤지컬 <프롬>은 사실 특별해 보이지는 않았다. 미국식 졸업 파티인 프롬에 대한 기억이 없어서인지 글리터 효과로 반짝이는 포스터를 가득 채운 등장인물의 얼굴도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심지어 일자리를 잃은 브로드웨이 배우들이 자기들의 명성을 되찾아 보겠다는 이기적인 이유로 레즈비언 여학생이 프롬에 참석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이야기는 시류에 편승하기 위한 작위적인 장치처럼 보였다. 지난 몇 년간 새로운 이야기로 브로드웨이에 입성했던 코미디 작품들의 대다수가 성공적이지 않았던 것도 이렇게 기대치를 낮추는 데 한몫했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2019년 1월 현재, 원작 없이 새로 만들어진 작품 중에 브로드웨이에서 몇 년째 공연하고 있는 뮤지컬 코미디는 2011년에 오픈한 <북 오브 몰몬> 한 편이고, 원작이 있는 뮤지컬 코미디도 작년 오픈한 <민 걸스> 한 편뿐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주로 공식에 의존해서 만들어지는 브로드웨이식 뮤지컬 코미디가 잘 정착하기는 정말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북 오브 몰몬>이 거의 10년 가까이 브로드웨이에서 사랑을 받고 있고, <민 걸스>가 작년부터 호평 속에 공연하는 점을 짚어볼 때, <프롬>이 지닌 잠재력을 주목해야 한다. 큰 기대가 없던 이 작품의 성공적인 브로드웨이 진출은 <북 오브 몰몬>과 <민 걸스> 등에서 안무 겸 연출을 맡았던 케이시 니컬라우가 다시 한번 미국 뮤지컬 코미디를 이끌어 갈 연출가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됐다. 



 

백스테이지 뮤지컬 코미디의 특성

백스테이지 뮤지컬은 관객에게 보이는 무대와 그 뒤편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는 뜻으로, 브로드웨이 역사와 그 궤를 거의 함께한 오래된 형식이다. <브로드웨이 42번가>나 영화로 먼저 만들어졌던 <싱잉 인 더 레인>이 대표적인 작품인데, 이외에도 <카바레>, <오페라의 유령>, <드림 걸스> 등 많은 작품이 백스테이지 뮤지컬의 특징을 빌려 무대 위와 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이런 형식에서 얻을 수 있는 큰 이득은 인물이 노래해야 하는 상황이 자연스럽게 벌어져 더 다양한 노래를 삽입할 수 있다는 점과 무대 밖의 이야기가 관객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화려한 무대 위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다는 데 있다. <프롬> 역시 공연하는 사람들의 무대 안팎 이야기를 담았고, 극 중 인물이 노래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점에서 백스테이지 뮤지컬의 형식을 따른다. 한 가지 특징은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회적인 문제인 성 소수자 학생들이 겪는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는 것인데, 십 대들의 이야기가 좀 더 큰 사회를 담아내며 젊은 관객의 흥미를 자극한다는 데에서 2016년 화제작 <디어 에반 한센>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연결점이 없을 것 같은 두 이야기는 인물과 상황 설정, 극의 진심을 저해하지 않는 유머와 배우들의 찰떡같은 연기,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연출과 안무를 통해 탄탄하게 연결되었다. 



 

잘 꿰어진 첫 단추

<프롬>의 첫 10여 분은 관객들의 마음을 잡고, 거의 모든 인물로부터 공감을 자아내는 데 효과적이다. 설명하자면 이렇다. 미국의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부인인 엘라노어 루스벨트의 이야기를 담은 가상의 연극 개막일, 시파티가 열리는 파티장이 배경이다. 자아도취에 빠진 브로드웨이의 베테랑 중견 배우, 디디와 배리는 첫 곡 ‘Changing Lives’를 부른다. 이 곡은 관객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대단한 자신들에 대한 찬가로, 관객들은 디디와 배리의 모습을 통해 자기애로 가득한 셀럽을 비웃으며 마음을 열게 된다. 그러나 파티가 시작되고 이들에게 리뷰가 전달된다. 리뷰의 내용은 엘라노어 루스벨트의 이야기에 힙합을 끼워 넣은 설정에 대한 냉정한 비판과 무대 위의 배우들에 대한 혹평을 퍼부으며 공연을 보느니 목을 매는 게 나을 것이라는 것. 홍보 담당자가 이 사태를 수습해 보겠다고 자리를 뜨지만, 공연이 당장 막을 내리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 되고, 갑자기 끝난 파티장에 망연자실 앉아 있는 배리와 디디 앞에 일자리가 없어 파티장에서 웨이터를 하고 있었던 또 다른 배우 트렌트와 앤지가 나타난다. 사실 이들은 알고 보니 지나가다 어딘가에서 봤던 사이로, 자기들만 생각하는 끔찍한 나르시시스트라는 비판의 목소리를 없애고 작품을 홍보하기 위해  뭔가 좋은 일을 해보자고 결심한다. 이들은 트위터에서 미국 중서부 인디애나주의 작은 마을에 사는 엠마라는 고등학생이 여자친구를 올해 프롬의 파트너로 데려가려고 했다가 프롬 자체가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다 같이 인디애나로 가서 이들을 도와주기로 한다. 그것도 트렌트가 출연하는 <갓스펠> 투어 공연의 버스를 얻어 타고 말이다. 엠마를 도와주면 평판이 좋아질 것이란 기대에 부푼 이들은 이제는 뉘앙스가 조금 달라진 ‘Changing Live’를 다시 부르며 퇴장한다.
 

<프롬>의 첫 장면이 특별한 것은 뉴욕에 있는 인물과 인디애나에 있는 인물의 삶이 자연스럽게 무대 위에서 교차하기 때문이다. 뉴욕의 배우들이 본 적도 없는 고등학생에 대한 뉴스를 읽으면 무대 오른쪽에서 엠마가 등장하고, 무대 왼쪽에서는 엠마가 다니는 고등학교의 학부모 위원들이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며 등장한다. 디디와 배리, 트렌트와 앤지가 읽는 뉴스는 실시간으로 학부모 대표, 그리고 엠마 옆에 서서 엠마의 편을 들어주는 교장 선생님의 입을 통해 관객에게 전해진다. 프롬 파티에 동성 커플이 참석하는 것을 반대하는 학부모, 시민권 보장을 논하며 프롬을 진행한다는 교장 선생님, 이들 사이에서 불안한 엠마, 뉴욕에서 뉴스를 통해 이야기를 접하는 배우들은 한 무대 위에서 서로 다른 다짐을 하게 된다. 이 장면은 앞으로 이들이 어떻게 얽히게 될지 관객의 기대감을 높인다. 또 재미있는 점은 다른 상황에 있는 인물의 대화가 서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교장 선생님이 사람들이 화를 낼 거라고 말하면 바로 배리가 엄청 열 받는다고 이야기한다든가, 엠마가 일이 커지는 건 원하지 않는다고 외치면 배리가 태어나서 겪어보지 못한 큰 사건을 만들어 주겠다고 말하는 식이다. 이는 짧은 호흡으로 진행되지만 효과적인 유머를 잘 드러낸다. 
 

이렇게 잘 짜인 첫 장면이 끝나면 이후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인디애나에 도착한 배우들은 학교 운영위원회 회의에 쳐들어가서 예정대로 프롬을 진행할 것을 요구하고, 여러 사람의 노력 끝에 프롬이 열리게 된다. 1막 마지막은 배리의 도움을 받아 한껏 치장한 엠마가 프롬이 열리는 학교 체육관에 도착해 불 꺼진 체육관을 마주하는 장면이다. 다른 곳에서 프롬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안 엠마는 크게 실망한다. 이야기는 엠마의 여자친구인 앨리사가 사실은 학생 운영위원회 회장의 딸이고, 아직 엄마에게 커밍아웃하지 못해 엠마가 혼자 체육관에 있다는 상황을 알게 된 이후에도 그녀에게 가지 못하며 심각하게 진행된다. 2막에서 엠마는 용기를 내어 자신의 상황을 담은 노래를 직접 쓰고 불러서 유튜브에 올리고, 그 비디오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미디어의 관심을 받은 상황에 힘입어 배우들의 금전적인 지원으로 엠마의 고등학교뿐 아니라 엠마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초대한 프롬이 열린다. 앨리사도 엄마에게 커밍아웃하지만, 엄마는 충격을 받고 우려의 목소리를 전하며 진실을 회피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솔로 뮤지컬 넘버가 있던 모든 인물은 노래를 통해 전달한 원하는 것을 얻는 것으로 작품은 행복하게 막을 내린다. 


 

 

대화합의 메시지가 담긴 무대와 연출

뮤지컬 <웨딩 싱어>에서도 합을 맞췄던 극작가 채드 베글린과 작곡가 매튜 스클라는 이 작품에서 다시 뭉쳤다. 이들의 대본은 케이시 니컬라우의 신나는 안무와 코미디의 튼튼한 뼈대가 되어 주었다. 배우들이 다 같이 고등학교에 쳐들어간 이후 디디가 부르는 ‘It’s Not About Me’는 디디를 맡은 베스 레들의 카리스마와 시원한 가창력을 보여줬고, 제목과는 달리 시선을 집중시키는 존재감으로 유머를 더했다. 인디애나에 도착한 배우들이 미디어의 관심을 끌기 위한 행사에 참여해 부르는 ‘The Acceptance Song’은 극 중에서 무려 줄리아드를 졸업했다는 것을 끊임없이 주지시키는 트렌트의 노래로, 단순하고 말도 안 되는 각운의 가사를 붙여 트렌트의 캐릭터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계기가 될 뿐 아니라 코미디를 강조할 기회를 준다. 특히 이 장면에서 케이시 니컬라우의 유머가 담긴 안무와 연출이 잘 드러나는데, 리코더를 사용한다거나 의상을 통해 노리고 만든 코믹송이라는 것이 뻔히 보인다. 또 2막에서 트렌드가 부르는 ‘Love The Neighbor’는 편견이 남아 있는 학생들을 향한 곡으로, 노래를 통해 이들의 마음을 돌린다. 기독교의 반동성애적인 메시지를 믿는 아이들에게 가스펠 형식의 음악을 통해 기독교의 참된 의미를 가르쳐준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무대디자이너 스캇 파스크는 공연이 진행될수록 차별이나 부정적인 시선이 서서히 줄어드는 것을 시각적으로 잘 표현했다. 1막에서는 프롬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파트너에게 프롬을 같이 가달라고 부탁하는 ‘프롬 프러포즈’가 등장한다. 접이식 의자 걸이를 뒤로한 채 몇몇 남학생이 ‘Dance With You’를 부르며 여학생에게 프러포즈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프러포즈를 끝낸 학생들이 무대 뒤로 이동하는데 그 사이 앨리사와 엠마가 의자 걸이를 앞으로 끌고 나오며 같이 프롬에 갈 수 있게 된 것을 기뻐한다. 같은 공간에 존재하지만 니컬라우의 연출, 파스크의 무대, 그리고 나타샤 캇츠의 조명은 엠마와 엠마의 반대편이 나뉘어 극명한 대비를 이루고, 보이지 않는 벽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물론 갈등이 풀린 2막에서는 이런 무대 분할이 존재하지 않는다. 앨리사의 엄마가 무대 위에 없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등장인물이 세대, 지역, 그리고 성 정체성을 넘어서 화합한 해피 엔딩이 된다.




 

뚜렷한 장점이 지닌 매력

<프롬>의 가장 큰 장점은 유머를 만들어내는 요소가 뚜렷하다는 것이었다. 개막 후 부정적인 리뷰를 얻으면 곧바로 막을 내려야 하는 뉴욕 공연계의 문화, 자기애가 지나친 배우에 대한 자기 비판적인 유머, 그리고 뮤지컬을 향한 애정 어린 언급은 뮤지컬을 잘 알고 있는 관객과 눈높이를 같이하고, 그들을 작품에 끌어들이는 효과를 낳는다. 그뿐 아니라, 1막에서 교장 선생님이 디디와 저녁을 먹으며 브로드웨이의 매력에 대해서 노래하는 장면은 브로드웨이와 뮤지컬을 좋아하는 관객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브로드웨이 배우들이 그들의 철학과 예술, 그리고 브로드웨이가 전달하는 가치를 통해 미국 중서부의 작은 도시 사람들의 삶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는 작품 메시지도 공연을 사랑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관객에게 맞춤옷처럼 딱 들어맞았다. 
 

코미디에 인간미를 더하는 엠마와 배우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돋보이는 앙상블 배우들은 작품이 지닌 매력을 극대화한다. 특히 이 공연의 앙상블 멤버 중에는 한국인인 황주민도 있는데, 비보이 출신인 경력을 십분 활용해 에너지 넘치는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황주민을 비롯한 앙상블은 케이시 니컬라우의 재치 있고 역동적인 안무를 표현하며 중요한 역할을 잘 해주었다. 아주 평범한 여고생 엠마를 연기한 케이틀린 키누넨은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연기를 보여줬고, 디디 엘렌를 맡은 베스 리블과 배리 역할의 브룩스 애슈만스카스 역시 브로드웨이의 전형적인 인물을 뛰어난 노래와 연기로 사랑스럽게 잘 그려냈다. 
 

성공적인 뮤지컬 코미디가 드물게 올라오는 브로드웨이에서 이 작품은 21세기 관객이 필요로 하는 부분도 갖추고, 뮤지컬 코미디의 전통도 제대로 잘 따른 브로드웨이식 뮤지컬 코미디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보여준다. 물론 코미디 뮤지컬 특유의 낙관적인 시각으로 복잡하게 얽혀져 있는 현실의 문제들이 쉽게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프롬>은 관객들이 좀 더 힘을 낼 수 있다는 것 아니, 적어도 한껏 웃으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사랑스럽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5호 2019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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