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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DATE] 조정은과 함께한 <색채의 마술사 :샤갈> - 스스로 확신을 얻게 된 시간 [No.91]

글 |김유리 사진 |심주호 2011-04-11 5,107

4개월째 <지킬 앤 하이드>의 엠마로 지내고 있는 조정은에게 데이트를 신청했더니, 금방 “샤갈전이 보고 싶다”고 답이 돌아왔다. 조정은과 샤갈… 묵묵히 샤갈의 곁을 지키며 예술 활동을 지지해 왔던 연인에 대한 사랑을 그림 곳곳에 새겨두었던 화가와 그의 연인의 이야기, 그리고 지킬의 의지를 신뢰하며 묵묵히 그의 곁을 지켰던 엠마와 지킬의 이야기는  어쩌면 한 장의 데칼코마니처럼 느껴졌다. 공연을 하루 쉬던 3월의 어느 날, 조정은은 완연한 봄을 느끼듯 화사한 주홍빛 색감의 원피스를 입고 서울시립미술관에 나타났다.

 

 

“사람도 동물도 떠 있는 그림이 많네요. 제가 꿈을 꿀 때 날아다니는 꿈을 많이 꾸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많이 꿔요.” 전시를 둘러보던 조정은이 자신의 꿈을 그림으로 표현해 놓은 것 같다며 신기해했다. 사전 지식 없이 편하게 볼 수 있는 전시가 많지 않아서 전시장을 자주 찾는 편은 아니지만, 샤갈전은 왠지 편하게 보는 대로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 꼭 보고 싶었다며 오랜만의 관람을 꽤 즐기는 듯 보였다.
조정은과 함께한 <색채의 마술사 : 샤갈>展은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러시아 태생의 프랑스 화가 마르크 샤갈(1887~1985)의 어린 시절과 사랑, 예술과 종교 등 그의 예술 세계를 이루고 있는 다양한 테마를 화려한 색채와 형상으로 접할 수 있는 전시로, 160여 점 이상의 대형 규모로 국내에서는 두 번째로 열리는 전시이다.
전시를 둘러보는 동안 조정은은 조용했다. 큰 그림은 가까이서 조금씩 뜯어보기도 하고, 멀찌감치 서서 전체적으로도 보고, 이따금씩 강렬한 색채가 쓰인 작품 앞에선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기도 했다. 전시를 쭉 둘러본 후 그녀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샤갈은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진 순수한 사람인 것 같아요. 동물이나 마을, 집 등 친근한 것을 그렸고, 다양한 색채를 썼는데, 굉장히 순수한 느낌이에요. 기교나 테크닉이 아니라, 샤갈이란 필터를 바로 통과한 순수한 색채를 보는 것 같았어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색을 물으니 “회색도 아닌 것이 하얀색도 아닌 그 색”을 이야기한다. 아마도 「도시 위에서」나 「비테프스크 위에서」의 그 색일 것이다. “그리 밝지도, 그리 어둡지도 않은 느낌인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꾸 보게 되요. 그 색에 공감이 되는 그런 느낌이랄까요. 샤갈이 마을에서, 사람들에게서 받는 에너지와 정서들을 색감으로 표현했을 텐데, 이렇게 다양한 색감들을 보니 얼마나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정서와 색감이 다양한가 싶어요.” 

‘나와 러시아 마을’, ‘성서 이야기’, ‘사랑과 연인’ 등 섹션이 나뉘어 있던 전시관의 벽엔 샤갈의 인생과 예술의 모토라 할 수 있는 글귀들이 새겨져 있었다. 조정은은 이 중 ‘우리 인생에서 삶과 예술에 의미를 주는 단 하나의 색은 바로 사랑의 색깔이다’ 라는 글귀 앞에서 머리를 끄덕였다. “색감이 굉장히 따뜻한데, 이래서였나 봐요. 일부러 따뜻하기 위한 게 아니라, 따뜻하고 순수한, 사랑의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느낌이었어요.” 워낙 ‘신랑신부’ , ‘연인’, ‘부인의 초상’류의 그림이 많이 알려지기도 했고, 그 색감이 주는 몽환적인 분위기에서 대중들은 낭만성을 찾기도 했지만, 실제로 화가의 곁에는 3개국에 걸친 망명의 시간과 그 어떤 미술 사조에도 속하지 않는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시간을 함께해 왔던 첫 부인 벨라와, 첫 부인과의 사별 후 후기 작품 세계의 버팀목이 되었던 바바 등 묵묵히 그의 곁을 믿음과 신뢰로 지켰던 여인들이 있었다. 이들과의 관계는 시대의 이단아였던 지킬과 끝까지 그를 사랑해 믿고 기다렸던 엠마의 관계와도 닮아있는 느낌이기도 했다.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기본적으로 믿음과 신뢰가 있죠.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이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해서 끊임없이 지지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거예요. 극 중 모든 인물들이 다 흔들려도, 엠마는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중심을 지켜야 하는 것처럼, 샤갈의 벨라나 바바 역시 그렇지 않았을까요?”


샤갈의 예술적 원동력이 사랑이었다면, 조정은의 원동력은 연기를 통해 자신과 대면하는 것이다. “역할에는 배우의 모습이 반영되잖아요. 꺼내고 싶지 않아도 꺼내봐야 하는 나의 기억이나 정서들이 있는데, 어렸을 땐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가리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런 것들을 대면하고, 인정하게 돼요. 이상하게 연기가 잘 안 풀릴 때 고민을 거듭하다보면 사실은 본능에 충실하지 않고 스스로를 대면하지 않으려고 한 데서 실타래가 엉켜있는 경우가 많았어요. 이런 걸 느낄 때 작품이 계속 제게 자극을 주는 것 같아요. 느끼는 대로 하라고요.”
늘 대중에게 신뢰를 받는 조정은이지만, <지킬 앤 하이드>는 워낙 크게 성공하며 계속 공연되어 왔던 작품이다 보니 부담감이 있었고, 개막 초반 당황스러웠던 기억도 있었다. 하지만 존재의 이유가 분명한 엠마가 되기 위해 4개월여 열심히 고민하며 달려왔다. “믿고 있는 것에 확신을 가지고 있을 때 집중력이 강해지고, 그때 존재감이 나오는 것 같아요. 발레리나 강수진 씨의 <오네긴>을 보면서 그런 존재감을 처음 느꼈어요. 그때의 기억을 되새기며 4개월간 ‘무대 위에서 나의 본능에 충실하자’며 달려왔어요.” 조정은은 샤갈의 세상에 대한 사랑과 순수함이 그의 그림과 색감을 통해 바로 자신에게 전달이 되는 걸 느끼면서 다시 한번 확신할 수 있었다 한다. “샤갈이 제게 확신을 주는 것 같아요. 그림으로.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게 맞아’라고요.(웃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91호 2011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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