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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REVIEWERS TALK] <여명의 눈동자>, 혼란의 시대를 바라보는 시선 [No.187]

글 |안세영 사진제공 |수키컴퍼니 2019-04-08 3,701

<여명의 눈동자>, 혼란의 시대를 바라보는 시선 

 

1991년 방영한 동명의 인기 드라마를 무대화한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 투자 사기와 개막 연기, 객석 변동 등으로 시작 전부터 잡음이 많았던 이 작품이 개막 이후 예상 밖의 호평을 받고 있다. 그 이유가 뭘까? <더뮤지컬>이 뮤지컬 리뷰어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배출한 ‘더뮤지컬 리뷰어’ 5인이 <여명의 눈동자>를 관람하고 대화를 나눴다. 

 

※ 익명성을 위해 참여자의 이름은 뮤지컬 캐릭터로 기재했다.

 

전화위복의 무대

스위니_ <여명의 눈동자>는 제작사가 애초에 계획한 대로 구현되지 못한 작품이야. 투자 사기를 당해 제작비가 부족해지자, 처음 계획한 영상과 세트를 빼고 무대 양편에 객석을 올린 지금의 런웨이형 무대를 선보였어. 이 작품의 무대 활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마틸다_ 빈 무대가 뜻밖의 좋은 효과를 내서 놀랐어. 대극장 뮤지컬을 보다 보면 화려한 세트가 오히려 극에 집중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경우가 많았거든. 이 작품은 오롯이 배우의 에너지로 채워지는 무대가 큰 울림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어. 

스위니_ 동감이야. 난 무대석에서 공연을 봤는데, 지척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이 나와는 먼 일이라고 생각한 근현대사를 심정적으로 가깝게 느끼게 해주더라. 또 런웨이형 무대로 인해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격동의 시기를 거쳐 간 수많은 인물의 삶이 하나의 길 위에 펼쳐지는 느낌을 받았어. 

라피키_ 이 작품의 부제가 ‘STEP 1 길’이잖아. 고육지책으로 나온 무대지만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려고 한 것 같아.

롤라_ 하지만 처음부터 의도된 무대석이 아니다 보니 동선에 문제가 있었어. 무대석에 앉으면 배우가 잘 안 보이는 장면이 더러 있더라고. 또 어떤 장면은 일반 객석에서 잘 보이지 않을 것 같아. 아예 객석 쪽을 막고 무대석에 앉은 소수의 관객만 볼 수 있는 공연으로 만들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물론 현실적으로 그러기 어려웠을 테지만 말이야. 

마틸다_ 일반 객석에서 보는 공연도 나쁘지 않던데. 대극장의 높은 층고가 무대 위의 배우를 짓누르는 느낌을 주는데, 그 공기의 무게감이 시대에 짓눌린 사람들을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됐어. 

스위니_ 무대석에서 봤을 때도 배우들 너머로 펼쳐진 광활한 객석이 주는 독특한 정서가 있었어. 거대한 시대 상황 속에 놓인 작고 힘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 공간의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졌어. 

압축된 서사와 시공간

마틸다_ 대하드라마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여타 창작뮤지컬에 비해 <여명의 눈동자>는 방대한 서사를 잘 요약한 편이야. 하지만 장면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기보다는 중요한 장면을 따로따로 보여주는 식이야. 사이사이에 자막 설명까지 곁들여서. 말하자면 ‘출발! 비디오 여행’ 스타일이지. (웃음)

롤라_ 난 캐릭터에 이입해서 공연을 보는 걸 좋아하는데, 이 작품은 워낙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시공간이 휙휙 바뀌니까 그걸 따라가기도 벅찼어. 게다가 주인공들이 ‘왜’ 여기 있게 됐는가에 대한 설명이 생략되어 있어서 공감이 되지 않아. 그저 시대가 그랬으니까, 그들에겐 선택권이 없었으니까라고 짐작할 뿐이지. 

모리블_ ‘너희 이거 다 알지’ 하고 넘어가는 느낌이랄까. 세 주인공의 행동의 동기가 명확하게 보이지 않았어. 

롤라_ 그걸 설명하는 대사 한두 마디만 더 있어도 이야기가 풍부해질 것 같아. 지금은 그냥 역사적 사건을 나열한 걸로밖에 안 보여.

스위니_ 이 작품은 큰 틀에서 법정극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어. 여옥의 재판 과정에서 과거의 사건들이 하나둘 무대 위로 불려 나오는데, 수많은 사건을 정리하는 데 효과적인 각색 방법이었다고 생각해. 다만 <호프>나 <파가니니>를 비롯해 최근 창작뮤지컬에서 법정극 형식이 너무 자주 보이니까 슬슬 질려. 

마틸다_ 법정극의 마무리도 엉성했어. 여옥이 형을 선고받는 장면 다음에 바로 지리산에서 죽는 엔딩이 이어지잖아. 물론 그 사이에 자막으로 한국전쟁이 일어나 교도소에서 나왔다는 설명이 나오긴 하지만, 여옥은 대치가 지리산에 있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총은 왜 맞았는지, 대치와 하림은 갑자기 어디서 달려 나오는지, 원작 드라마를 못 본 입장에서는 알 수가 없어. 

라피키_ 드라마에서는 명장면이었는데. 

마틸다_ 여기서는 전후 맥락 없이 튀어나오니까 감동은커녕 황당하던데. 철조망 키스 장면도 되게 어색하지 않아? 여태 잘 넘어 다닌 고무줄 철조망을 왜 결정적인 순간에 못 넘느냐고. (웃음) 높은 철조망 세트를 만들라는 게 아니라, 그 철조망만은 못 넘어갈 만큼 높다는 걸 연출로 보여줘야 했다고 생각해. 

롤라_ 그나마 연출이 좋다고 느낀 부분은 여러 시공간을 넘나들면서도 장면 전환이 매끄러웠다는 거야. 한 무대 안에 여러 공간과 시간이 공존하도록 한 연출이 눈에 띄었어. 누군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무대 한쪽에서는 또 다른 상황이 전개되는 거지. 동시에 여러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연출이라서 좋았어. 

 

강렬한 앙상블과 음악

모리블_ 극적 완성도가 높지 않음에도 이 작품이 힘 있게 느껴지는 데는 앙상블이 한몫했다고 봐. 소극장처럼 객석과 가까운 무대에 대극장 규모의 앙상블이 쏟아져 나오니까 거기서 느껴지는 에너지가 남달랐어. 게다가 다들 열심히 하더라고. 

스위니_ 앙상블의 비중이 주연 못지않게 크더라. 그러다 보니 개인의 의지보다는 시대에 휘둘릴 수밖에 없었던 군중의 비극이 더 크게 다가왔어. 사실 세 주인공이 역사를 바꿀 만큼 큰 힘을 지닌 인물은 아니잖아. 그들도 시대의 비극에 휩쓸린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인 거지. 그걸 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앙상블을 부각시킨 게 아닐까?

마틸다_ 최대치는 이념 때문에 남로당에 들어간 게 아니라 밥 주는 쪽을 따라갔을 뿐이라고 말해. 대치처럼 당시 사람들은 제 각각의 우연한 이유로 좌익과 우익 중 한쪽을 선택했을 수 있을 것 같아. 뮤지컬은 이념 대립 자체보다는 거기에 멋모르고 선동되거나 희생당한 일반 군중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고 생각해. 제주 4·3사건도 비슷한 맥락에서 다뤄지고 있고. 

라피키_ 원작 드라마도 4·3사건을 비극적인 대량 학살 사건으로 다루긴 했지만, 뮤지컬은 당시 학살당한 사람들이 공산주의와는 무관한 양민이었다는 점을 더 부각시켰어. 시대가 흐른 만큼 변화된 관점을 작품에 반영하려고 노력한 게 느껴져.

모리블_ 그렇지만 2막이 4·3사건에 초점을 맞추면서 주인공들이 너무 주변부로 밀려나는 건 아쉬워.

마틸다_ 특히 여옥은 2막부터 아예 주인공의 지위를 상실해. 1막에서 여옥은 모든 인물과 사건을 잇는 연결 고리 역할을 했어. 또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기 목소리를 내고 정치적 활동까지 한 인물이야. 그런데 대치를 따라 제주도에 간 뒤로는 갑자기 하는 일이 없어지는 걸 납득하기 힘들었어.

스위니_ 음악은 어땠어? 

롤라_ 전쟁 영화 OST를 연상시키는 강렬한 음악이었어. 그런데 음악이 계속 강강강으로 이어지니까 나중엔 지치더라. 또 음악 스타일이 다 비슷해서 기억에 남는 대표 뮤지컬 넘버가 없어. 

라피키_ 송스루 뮤지컬이 아닌데도 음악이 끊이지 않고 나와. 배우가 대사를 치는 와중에도 계속 배경 음악이 흘러. 보여줄 게 없으니 음악이라도 꽉 채워야 한다는 창작진의 강박이 느껴졌어.

모리블_ 음악 자체는 좋았는데 앞서 말한 대로 강약 조절이 없고 쉴 틈이 없으니까 귀가 피로했어. 작곡가가 일부러 리프라이즈를 안 썼다고 하는데, 뮤지컬은 리프라이즈가 있어야 앞뒤 장면을 연결하는 묘미도 있고 여운도 느낄 수 있잖아. 좋은 음악을 더 효율적으로 쓰지 못한 게 아쉬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명의 눈동자>는 전반적으로 애쓴 티가 나는 작품이야. 엄청난 수작은 아니지만 최근 나온 창작뮤지컬과 비교하면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고 봐. 혹시라도 재연을 생각한다면, 초연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무대를 꽉 채우려고 하지 말라는 당부를 보태고 싶어. 

라피키_ 동감이야. 만약 어쩔 수 없는 상황 탓에 의도치 않게 좋은 결과물을 얻어낸 거라면, 무엇 때문에 좋은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의도적으로 좋은 점을 살려서 돌아오길 바라. 

모리블_ 뒷걸음하다가 쥐 잡지 말고 제대로 잡아줬으면 해!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7호 2019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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