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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FOCUS] 예술의전당 SAC on Screen, 스크린에 옮긴 공연의 생동감 [No.188]

글 |안세영 사진제공 |예술의전당 문화영상사업부 2019-05-16 6,833

예술의전당 SAC on Screen
스크린에 옮긴 공연의 생동감

 

지난 4월 3일 소월아트홀의 500석 객석을 꽉 채운 작품은 라이브 공연이 아닌 뮤지컬 <웃는 남자>의 공연 실황 영상이었다. 2018년 예술의전당 공연 당시 촬영한 영상을 무료로 상영한다는 소식에 아쉽게 공연을 놓친 이들은 물론, 공연을 다시 보고 싶었던 관객들도 몰려들었다. 객석에서 보기 힘든 고공 촬영 장면부터 클로즈업으로 잡아낸 섬세한 표정 연기까지. 생동감 넘치는 영상을 마주한 관객들은 실제 공연을 볼 때처럼 박수를 보냈다.


 

예술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하여

예술의전당은 2013년부터 ‘싹온스크린(SAC on Screen)’이라는 이름으로 공연이나 전시를 영상화하는 사업을 진행해 왔다. 싹온스크린의 공연 실황 영상은 단순한 기록물을 넘어 그 자체로 독립적인 문화 콘텐츠를 지향한다. 10여 대의 카메라를 동원해 다각도에서 촬영한 영상은 VIP석에서도 볼 수 없는 색다른 장면을 보여준다. 영상 품질 또한 4K UHD 고해상도, 5.1채널 입체 서라운드 음향이라는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이렇게 제작된 영상은 문화 예술 기반이 열악한 지방의 문예회관, 학교, 군부대 등에 배급되어 무료로 상영된다. 공공기관으로서 문화 소외 계층에게 문화 향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이 사업의 취지다. 매년 연초 전국 문예회관에 공문을 배포하고 상영 신청을 받는데, 작년에만 140여 곳에서 900여 회 상영되었다. 2013년부터 현재까지 누적 관람 인원은 40만 명을 돌파했다. 그동안 싹온스크린 영상이 상영된 장소에는 강원도 오지와 백령도, 울릉도도 포함되어 있다. 

문화영상사업부 신태연 PD는 사업 초창기에 겪어야 했던 고충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지방은 서울처럼 영상과 음향 장비에 대해 잘 아는 인력이 많지 않다. 그래서 초창기에는 우리가 직접 찾아가 상영하고 방법을 알려드렸다. 지금도 신규 상영처는 출장을 가서 정비를 해드리고 있다.” 지역 문예회관의 열악한 상영 조건 때문에 영상 품질을 낮춰서 상영해야 할 때도 많다. “4K 고화질로 촬영해도 상영처에 4K 프로젝터가 없으면 상영 자체가 불가능하다. 음향도 마찬가지다. 영화관에서 상영할 때는 5.1채널 사운드로 보내주지만, 대부분 지역 문예회관에서 상영할 때는 2채널 스테레오 사운드로 보내주고 있다.” 신태연 PD는 지방 상영처를 찾을 때마다 거주민들이 얼마나 예술에 접근하기 어려운지 깨달았고, 그렇기에 더욱더 싹온스크린이 활성화될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한다. “발레 <호두까기 인형> 공연 영상을 본 울릉도 소녀가 몹시 좋아하며 발레리나가 되고 싶다 말하는 걸 듣고 보람을 느꼈다. 서울 관객 열 명이 우리 영상을 보는 것과 울릉도에 있는 소녀 한 명이 보는 것은 그 가치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싹온스크린 영상은 해외에도 배급되어 한국의 공연 예술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 아랍어 등 다양한 언어로 자막을 제작해 배급 중이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배리어프리 상영용 자막 서비스도 제공된다. 대사와 함께 효과음, 배경 음악에 대한 설명을 더한 자막이다. 2016년 부산 배리어프리 영화제와 협업으로 제작한 오페라 <마술 피리>의 배리어프리 상연용 자막에는 악보가 함께 실리기도 했다. 제작비가 비싸고 자막 작업을 할 수 있는 전문가가 드물다 보니 모든 공연에 자막을 달지는 못하지만, 상영처로부터 요청이 들어올 때마다 자막을 제작하고 있다. 



 

멈추지 않는 새로운 시도

싹온스크린은 공연 실황 촬영 외에도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연극 <페리클레스> 실황 영상의 경우 무대 셋업 과정을 타임랩스로 촬영해 오프닝 영상을 만들었다. 아티스트 인터뷰나 리허설 현장, 인터미션 때 백스테이지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여주는 부가 영상을 제공하는 작품도 있다. 

2016년에는 <2016 교향악축제>와 음악극 <보물섬>을 360도 카메라로 촬영한 VR 영상을 제작했다. 극장에 VR체험존을 만들어 VR 전용 기기를 머리에 쓰고 이를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보물섬> VR 하이라이트 영상의 경우, 무대 가운데 카메라를 설치하고 동선을 바꿔서 촬영했다. 배우들이 카메라를 둘러싸고 노래를 부르게 하여 360도로 바라보는 재미를 더했다. 작년에도 연극 <인형의 집>과 서예 전시 <통일아!>를 360도 VR 영상으로 제작했다. 신태연 PD는 “VR 영상은 아직 수요가 많지 않고, 고해상도 영상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하드웨어가 더 개발돼야 한다. 하지만 언제 활용도가 높아질지 몰라서 기회가 될 때마다 조금씩 촬영해 두고 있다”고 말한다. 

올해는 공연 실황을 동시간대에 전국으로 생중계하는 ‘싹라이브(SAC LIVE)’를 확대할 계획이다. 신태연 PD는 “영상화 사업 자체가 원래 2013년 토요콘서트 실황 중계로 시작됐다. 그때는 광케이블 기반으로 송출이 됐는데 예산이 많이 들고 화질이 좋지 못해서 잠정 중단되었다. 그러다가 2017년부터 부활해 IPTV를 통해 송출하고 있다. 연 5~10회 가량 진행하는데 아직 유입 인원이 많지 않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올해는 관객 유입을 위해 대작들을 실황 중계할 계획이다. 예술의전당에서 올라가는 공연으로 대상을 한정짓지 않고 뮤지컬, 연극, 창극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실황 중계하고자 협의 중이라는 소식이다.

공연 마니아 사이에서는 싹온스크린의 공연 실황 영상을 DVD로 발매해주기를 원하는 목소리도 높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DVD 발매 계획이 없는 상황이다. 애초에 무료 상영용으로 제작사와 협의하고 제작한 영상이기 때문이다. 대신 오래된 영상은 VOD로 내놓는 방향을 염두에 두고 있다. 신태연 PD는 “넷플릭스처럼 공연 실황 영상 콘텐츠만을 위한 플랫폼이 만들어지면 어떨까 상상해 본다. 싹온스크린 뿐 아니라 국내외 공연 영상을 한곳에서 편리하게 감상할 수 있게 플랫폼이 생긴다면 좋을 것이다”고 말했다. 아직은 꿈같은 이야기지만 영국 내셔널 시어터의 NT LIVE, 미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라이브 등 공연 실황 영상에 대한 인기가 점점 높아지는 상황을 생각하면 전혀 꿈꿔보지 못할 미래도 아니다.
 

 

싹온스크린 영상 제작 과정

 

저작권 및 출연진 협의

내부 회의를 거쳐 촬영할 작품이 선정되면, 공연 제작사와 2차적저작물 작성권에 대한 협의에 들어간다. 예술의전당 기획 공연이 아닌 외부 제작 공연은 아무래도 개런티가 비싸고 요구 조건이 까다로운 편이다. 뮤지컬의 경우, 저작권료만 1억~1억 5천만 원 정도가 든다고. 또한 해당 작품이 공연하는 지방에서는 상영하지 말 것, 공연 개막 한 달 전부터는 상영하지 말 것을 계약 조건으로 걸기도 한다. 영상에 출연할 배우 또한 제작사와 협의하여 결정한다. 예술의전당 기획 공연은 아예 출연 계약 단계부터 배우에게 싹온스크린 촬영 계획을 알리고, 이에 따른 추가 개런티를 지급한다. 

 

촬영 팀 꾸리기

촬영 팀은 작품의 성격과 촬영 컨셉에 맞춰 매번 다르게 꾸려진다. 아직 공연 실황 영상을 전문으로 촬영하는 인력이 없기 때문에 주로 영화계나 방송계에서 활동하는 촬영 팀이 참여하고 있다. 영화계에서 유명한 촬영 감독을 섭외하기도 하고, 빠른 순발력이 필요한 작품의 경우 방송 중계 카메라 감독을 섭외하기도 한다. 

 

촬영 콘티 짜기

리허설 촬영이 따로 없기 때문에 사전에 공연 내용을 숙지하고 촬영 계획을 꼼꼼히 세운다. 영상 연출자는 공연을 여러 차례 반복해 관람하며 촬영 콘티를 만든다. 또는 풀샷으로 실황 영상을 찍어두고 그걸 보면서 콘티를 만들기도 한다. 어떤 카메라를 어디에 놓을지, 어떤 장면에서 무엇을 촬영할지 등이 이 콘티 작업 때 정해진다. 

 

공연 실황 촬영

촬영은 관객이 없는 상태에서 진행된다. 그렇다고 촬영 도중에 NG를 외치지는 않는다. 공연 시작부터 끝까지 끊지 않고 원테이크로 촬영하는 것이 원칙이다. 싹온스크린은 공연의 현장감을 전달하는 것을 추구하는데, 끊어서 촬영하면 공연의 흐름이 끊기기 때문이다. 

최근 제작한 <웃는 남자> 실황 영상 역시 원테이크로 촬영했다. 지미집 2대, 달리 1대를 포함해 총 13대의 카메라가 사용됐다. 카메라는 필요에 따라 많게는 20대까지도 사용된다. 이렇게 많은 카메라가 동원되는 이유는 첫째로 원테이크 촬영 시 피치 못할 사정으로 못 쓰는 컷이 나올 경우 이를 대체할 컷이 필요하기 때문이고, 둘째로 무대 곳곳에 카메라를 배치해 객석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앵글을 담아내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무대 측면에 카메라를 설치하기도 하고, 상부 배튼에 카메라를 걸어 탑 샷으로 내려찍기도 한다. 

지난해 촬영한 현대무용 <스윙>은 일부 장면을 스테디캠으로 촬영했다. 스테디캠은 무대 위에 들고 올라가서 단독으로 촬영해야 하는 탓에 잘못 찍을 경우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없다는 위험부담이 있다. 하지만 이를 감수하더라도 더 가까이에서, 더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하고자 했다. 또한 고속 촬영을 이용해 슬로모션으로 아름다운 동작을 놓치지 않고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때로는 촬영에 맞춰 배우의 동선을 바꾸기도 하고, 객석이 아닌 카메라를 향해 연기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윤동주, 달을 쏘다.>의 경우, 촬영을 위해 장면별 조명을 일일이 재조정했다. 조명이 너무 어두워서 카메라에 아무것도 찍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편집 단계에서 색 보정을 통해 조명디자이너의 원래 의도를 최대한 되살렸다. 

 

추가 촬영

영상에서 특별히 힘을 주고 싶은 장면이 있다면 원테이크 촬영이 끝난 뒤 추가 촬영을 진행한다. <웃는 남자>는 두 장면을 추가로 촬영했다. 침대 위의 그윈플렌을 찍은 장면, 데아가 죽어가는 장면은 무대 위에 지미집을 올려 촬영했다. 

소극장 연극은 카메라가 많이 들어갈 수 없는 탓에 3~4대로 여러 번에 걸쳐 촬영한다. 이때 문제는 그날그날 배우의 움직임과 감정이 바뀌어서 서로 다른 날 찍은 컷을 편집으로 이어붙이면 어색할 수 있다는 것. 그렇기에 적어도 3번 이상 촬영해서 장면이 최대한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는 컷을 찾는다. 또한 소품이나 헤어스타일이 이전 촬영 때와 달라지는 옥의 티가 생기지 않도록 촬영 전에 꼼꼼히 체크한다.

 

영상 편집

여러 대의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은 편집을 통해 하나의 영상으로 완성된다. 여러 각도에서 찍은 영상을 이어 붙였을 때 매끄럽게 이어지도록 만드는 게 핵심이다. 이와 더불어 영상과 오디오 싱크를 맞추고, 색감을 보정한다. 공연 사운드는 예기치 못한 음이탈 등의 사고를 대비해 최소 2회 이상 녹음한다. <웃는 남자>의 편집 기간은 두 달이었지만, 클래식 장르는 연주 동작과 오디오 싱크를 맞추는 작업이 무척 까다로워서 편집에 세 달 이상이 걸린다. 

 

내부 시사회

편집이 끝나면 세 차례에 걸쳐 시사회를 갖는다. 이때 공연 연출가를 초대해 영상에 대한 의견을 듣는다. 시사회 피드백을 바탕으로 추가 편집을 한 뒤, 최종 완성본이 나온다. 

 

용도에 따른 재편집

<웃는 남자> 실황 영상은 풀 버전과 일부 장면을 삭제한 ‘감독판’이 존재한다. 싹온스크린의 취지는 되도록 많은 사람이 영상을 통해 문화 예술을 향유하는 것인데, 공연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 대중은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부담스러워 한다. 그래서 러닝타임이 짧은 버전을 따로 제작해 상영처가 원하는 버전을 보내준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8호 2019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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