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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TAFF] <빨래>, <굿모닝 학교> 추민주 연출가 [No.98]

글 |이민선 사진 |심주호 장소협찬 | 마음을 걷다(02-743-9700) 2011-11-07 5,207

오늘을 사는 우리가 더욱 살맛 나도록

 

빡빡하고 갑갑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눈을 들어 저 하늘의 별을 보며 빛나는 아름다움에 감탄하지만, 그 별에 닿을 수 없기에 바라보는 기쁨에 족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답답하고 힘들 때 내 손을 잡아주는 누군가의 손은 내게 온기를 전하며 말보다 더 큰 위로를 한다. 우리 몸과 마음에 닿아 있어, 잠시 반짝거리고 사라지는 대신 오래도록 따뜻함을 유지하는 이야기를 낳는 극작가 겸 연출가 추민주를 만났다. 그녀의 목소리는 진지하게 이웃을 끌어안았고, 해맑은 웃음은 여전히 꿈꾸는 아이의 것 같았다.   


 

 

 

극작과 연출을 겸하고 계신데, 학교에선 연출을 전공하셨어요. 글은 언제부터 쓰셨어요? 2002년에 뮤지컬 창작 수업을 받을 때, 선생님께서 작사, 작곡, 연출, 프로듀싱, 배우 등 할 수 있는 건 뭐든 다 해보라고 하셨어요. 그중에서 작곡과 노래는 못하겠고, 우선 할 수 있는 나머지는 다 했죠. 그때 처음으로 극작을 했어요. ‘아, 이거구나!’ 정말 재밌었어요. 그동안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시나 소설을 쓰는 건 괴로웠는데, 대화와 상상력으로 풀어가는 희곡이 저랑 잘 맞다고 느꼈죠. 내가 평소에 하는 말, 내 피부에 와 닿는 말을 쓰는 게 좋더라고요. 공연을 위한 대본을 쓴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난생 처음인데 무척 재밌더라고요. 그다음에 쓴 것이 <빨래>고, 이어서 여기까지 온 거죠.


‘엄마가 좋냐 아빠가 좋냐’ 같은 우스운 질문이지만, 극작과 연출 중에 뭐가 더 재밌나요? 친구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연출은 어떤 작품을 맡아도 쓱쓱쓱 하겠는데 글은 아무거나 맡겨주면 못 쓰겠다고. 친구들이 ‘너는 직업은 연출가고, 글 쓰는 건 아트로 생각해서 직업이 못 된다’고 하던데, 모르겠어요. (웃음) 그때그때 다르지만, 연출을 직업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 확실한 것 같아요.


글 쓰는 걸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신가봐요. 그걸 더 진중하게 생각하나봐요. 연출은 다른 스태프들과 함께하는 거라 저의 부족한 면을 다른 사람이 채울 수 있고 함께하면서 얻는 시너지 효과가 큰 일인데, 글은 혼자서 쓰는 거라 더 힘들더라고요.


어떤 이야기를 좋아하세요? 아무래도 사람이 잘 보이는 이야기가 좋아요. 배경, 이야기 구조와 디테일보다는 인물이 잘 드러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말은 이렇게 해도 시각적으로 눈에 띄는 것, 세밀한 표현, 이런 것도 엄청 좋아해요. (웃음) 하지만 중요한 게 뭐냐고 하면 사람 같아요. 지금까지 제가 주목하고 관심을 가진 인물들은 전반적으로 갖춘 이들이라기보다는…. 그러니까 남자보다는 여자, 사회적으로 약자인 사람들이었어요. 그들이 잘 살아주길 응원하는 마음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음, 그리고 판타지도 좋아요. 둘의 간극이 큰 것 같죠? 사람들은 만화적이라고도 하는데, 왜 갑자기 비눗방울이 날린다든가 세상이 어느 순간 멈춘다든가. 일상 속의 판타지, 공상 같은 거겠죠.


다른 사람이 쓴 작품을 각색하신 적도 있죠? 2006년에 함께 살던 룸메이트가 김달중 선생님의 제자였어요. 그 친구가 선생님이 이런 작품을 하신다는 이야기를 해줬는데, 제가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선생님께 제 의사를 좀 전해달라고 해서 <쓰릴 미> 각색을 맡게 됐죠. 그때는 사람들이 저를 잘 모를 때였을 거예요. 당시 각색의 정도는 높지 않았는데, 재밌었어요. 다양한 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있는데 드라마가 굉장히 매력적인 작품이었죠. 쇼 위주의 드라마가 아닌, 인간 내면의 심리와 갈등을 다루는 거라 제가 잘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젊음의 행진>에 참여했던 건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의외의 경력인데요? <젊음의 행진>의 경우, 제작사가 정말 재밌는 뮤지컬을 원했어요. 제작사의 목적에 맞춰 작업하면서, 큰 제작사에서 작품을 만들어가는 방식을 배워보고 싶었어요. 제가 뮤지컬을 처음 시작할 때 제안 받았던 건데, 이후에 창작을 경험하고선 더 큰 규모의 제작 과정을 배워보자는 생각으로 참여했어요. 그리고, 배웠죠. (웃음)

 


그 이후에는 메이저 제작사의 작품에 참여하신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아무래도 <빨래>가 커 나가는 과정이어서 그에 가장 몰두했고, 제가 연출뿐만 아니라 극작도 하다 보니 글을 쓰는 데 좀 더 집중했어요. 그리고 제작자가 작업을 제안했을 때, 제가 하고 싶은 작품이 없었어요. <빌리 엘리어트> 같은 작품의 연출 제안이 온다면 하고 싶지만, 아직 그런 제안은 못 받았고요. (웃음)

 

수년간 연출가로 활동하면서 연출의 변화랄까, 최근에 좀 더 시도하고 선호하게 된 스타일이 있나요? 아직까지 특별히 그런 건 없는데요. 제가 원래 관객의 피드백을 좋아했어요. 객석과 무대 사이에 제4의 벽을 세웠다가 없애기를 반복하는 놀이를 즐겼는데, 지금은 그걸 좀 더 과감하게 즐기게 됐다고 해야 하나. 작품에 대한 저 혼자만의 생각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무대와 객석에서 배우와 관객이 넘나들면서 극장 전체의 온도가 뜨거워지길 바라요. 제 작품은 대체로 일상을 다루고 있고 일상에서 불쑥 만나게 되는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보니까, 객석에 앉아 있는 관객도 공연을 보는 일상에서 불쑥 일어난 어떤 일을 경험한다는 데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음, 좀 더 광대 마인드가 생겼다고 할까요. 관객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요. 광대로서 충분한 기술을 갖추고 함께 놀아보자는 정신, 관객 위에 있기보다는 그들과 시선을 맞추면서 극장에 모인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자는 생각이에요.


배우로 무대에 서보고 싶은 생각도 있지 않으세요? 영화 <마더> 오디션을 보러 간 적이 있어요. 붙진 못했지만. 음, 살다보면 엉뚱한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잖아요. 다들 있을 텐데, 저도 그래요. 그 엉뚱한 일 중에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해보려고 카메라 앞에서 정말 열심히 연기했는데…. (웃음) 성기웅 연출이 저처럼 일상적인 마스크의 인물이 무대에 서야 한다며 출연을 제안하기도 했는데, 그땐 시간이 없어서 못 했어요. ‘포기하지 말고 다음에 출연시켜 달라’ 그러고 있죠. (웃음)

 

추민주 연출하면, 아무래도 <빨래>가 가장 소중한 작품이 아닐까 생각되는데요. 네, 고마운 작품이죠. 처음에는 제가 쓰고 연출한 작품이었지만, 이제 <빨래>는 제 작품을 넘어선 지 오래됐다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제 것이었다가 그 다음에는 프로덕션에서 함께 만든 명랑씨어터 수박의 작품이었다가, 이제는 관객과 함께하는 작품이죠. 더 거창하게 대한민국의 작품은, 아직 아니지만…. (웃음) 이제 제 손을 떠나서, 저뿐만 아니라 모두가 함께 키우는 자식 같아요. 왜, 아기는 엄마 혼자서 키우는 게 아니라 사회가 키우는 거잖아요. 동네의 나무도 아이를 키우고, 바람도, 지나가는 개도 아이를 키우니까요. <빨래>도 그런 것 같아요. 다 커서 제 갈 길을 척척 알아서 가고 있는 거죠.


그렇다면 추민주는 누가 키웠나요? 저도 마을이 키웠죠. 학교도 조금 키워줬고, 당연히 부모님도 잘 키워주셨고요. 엄마가 이야기꾼이세요. 어릴 때 산 밑에 살아서 엄마랑 종종 산에 올랐는데, 두어 시간 산을 타는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엄마가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예전에 살았던 반장 알지? 그 사람이 어떻게 됐고, 알고 보니 그랬더라. 이런 이야기부터 엄마 어릴 적 이야기까지요. 엄마가 어려서 바닷가에 살았는데, 거기서는 어떻게 고기를 잡는다, 할아버지가 이만한 문어를 건져 오셔서 그걸 팔았는데 어쩌고 등. 정말 이야기꾼이셨죠.

 


이야기꾼에게서 자랐군요. 연출님은 언제 이야기꾼이 되셨나요? 이야기를 지어내는 건,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해온 일이죠. 한 시간 정도 산을 타고 학교까지 걸어 다녔어요. 봄과 가을에 피는 꽃도 다르고 나무도 다르고, 소나기 내리면 무지개 뜨고, 별별 재밌는 상상이 다 떠올랐어요. 그럴듯한 거짓말을 지어낼 수 있는 환경에서 컸던 거죠. 학교에 가면 친구들에게 내가 지어낸 이야기들을 해줬어요. 어릴 때부터 그렇게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극단 학전의 <굿모닝 학교>를 준비 중이시라고요? 학전에서 기획한 ‘30대 연출가 시리즈’로 <그 자식 사랑했네> 공연을 마치고 뒤풀이 자리에서 김민기 선생님이 <굿모닝 학교>를 맡아보지 않겠냐고 말씀하셨어요. 예전에 <모스키토>라는 제목으로 공연된 작품인데, 지난 두 해 동안 <굿모닝 학교>로 제목을 바꾸고 재공연됐죠. 이번에 다시 각색을 거쳐서 전과는 또 굉장히 다른 작품으로 만들고 있어요. 현재를 사는 청소년들이 고민하는 바를 잘 담아보려 하거든요. 학생들 캐릭터 하나하나가 잘 드러나는, 재밌는 뮤지컬이 될 것 같아요. 지난 8월에 캐스팅한 배우들과 공동으로 각색하고 함께 장면을 만들고 있어요. 김민기 선생님이 가사 작업과 예술감독 역할을 해주시고요.


극단 학전과 추민주 연출은 결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에요. 지금, 오늘을 고민한다는 점에서 제가 추구하는 방향과 맞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가 좀 가볍죠. (웃음) 김민기 선생님께서 제 색깔을 가지고 잘 만들어보라고 하셔서, <빨래>의 파트너인 여신동 무대디자이너랑 윤지현 음악감독과 함께하고 있어요. 젊은 창작자들이 모였으니…. 지금 난리 났어요. 시끌벅적하죠. (웃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8호 2011년 11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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