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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PERSONA] <너를 위한 글자> 정욱진의 투리, 한 사람을 위한 빛 [No.191]

글 |박보라 사진제공 |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2019-09-03 4,200

<너를 위한 글자> 정욱진의 투리
한 사람을 위한 빛

 

다양한 발명품으로 주목을 받은 발명가 투리. 특히 그의 대표 발명품인 타자기에 애틋한 사연이 담겨 있다고 알려져 화제를 모았습니다. 고향 마나롤라에서 첫사랑 캐롤라인과 재회하고, 알콩달콩한 사랑을 키워온 두 사람의 사연 말입니다. 영국에서의 활발한 연구를 마치고 고향으로 다시 돌아간 투리를 만나, 한 사람을 위한 발명가의 삶을 들어봅니다.

 

※ 이 글은 투리 역 배우 정욱진과의 대화를 토대로 작성한 가상 인터뷰이며,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투리 선생님, 소리에 예민하시다는 소문이 있더군요. 아, 그런가요? 이젠 그렇지 않아요. 어렸을 땐 홀로 고요한 적막 속에서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어요. 어린 시절 집에 있으면,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와 지저귀는 새소리만 들렸어요. 전 그 속에서 발명에 집중했죠. 매일 돌아가신 아버지의 사진을 보면서 우시는 어머니께 제가 발명한 무언가를 선물하면 그제야 웃어주셨거든요. 그렇게 발명에 빠져들게 됐어요. 그런데 캐롤라인이 옆집으로 다시 이사를 오면서 적막이 깨진 거죠. (미소) 갑자기 옆집에서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제 삶에 균열이 생긴 순간이에요! 돌이켜보면 그 균열로 인해 비로소 제 인생의 균형을 찾았어요. 사람은 서로에게 기대며 살 수밖에 없잖아요. 저는 캐롤라인으로 인해 그걸 알게 됐어요.
 

선생님과 캐롤라인 부인, 그리고 도미니코 작가님은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다고요.  맞아요. 전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어떤 것에 빠지면 쉽게 헤어 나오지 못했어요. 생각해 보면 캐롤라인은 늘 제가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했어요. 전 그냥 캐롤라인이 예쁜 옆집 친구라고만 생각했죠. 캐롤라인이 제게 건네는 끊임없는 말소리가 듣기 좋았어요. 아, 그때 도미니코가 캐롤라인을 좋아하고 있단 건 알았어요. 다른 사람에게 별 관심 없던 저도 캐롤라인 옆에 있던 도미니코가 기억나거든요. 
 

시간이 흘러 캐롤라인 부인이 마나롤라로 돌아왔죠. 그녀를 다시 만나니 어땠나요?  굉장히 반가웠죠. 그동안 정말 외로웠거든요. 그녀가 이사 온 날에도 추억이 있네요. 제가 캐롤라인 집의 녹슨 열쇠를 고쳐줬는데, 그녀를 제 집에 못 들어오게 하고 문밖에 기다리게 했어요.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나요?) 집 안에 제 발명품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어서 정신이 없었거든요. 무엇보다 누군가가 집 안에 들어온다는 것이 낯설기도 했고요.
 

그런데 마나롤라에서 캐롤라인 부인과 도미니코 작가님도 가까워졌다고요? 정말 화가 많이 났어요. 어렸을 때 도미니코가 캐롤라인 옆에만 있었거든요. 알게 모르게 도미니코를 견제하고 있었는데, 두 사람이 친해지다니! 물론 제가 고집불통에 화가 많다는 건 인정해요. 그렇지만 두 사람을 바라보는 제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어요. 흠흠. 심지어 목요일마다 이안 아저씨의 레스토랑에서 둘이서만 만나는 거예요! (흥분하지 마시고요.) 인정할게요. 전 도미니코가 싫어요! 안 맞아요! 약간의 질투심을 느낀 것도 사실이고요. 캐롤라인이 웃고 있는 걸 보니 신경이 아주 많이 쓰였…. 아니, 소설이 인생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삶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발명이 더 좋지 않나요? 저는 캐롤라인이 도미니코랑 가깝게 지내는 걸 정말 이해할 수 없어요! 
 

그럼 당신이 도미니코보다 멋진 세 가지는 무엇인가요?  외모, 두뇌, 성격. 
 

선생님께서는 캐롤라인 부인에게 언제부터 사랑을 느꼈어요?  우연히 캐롤라인의 글감 노트를 봤는데 어두운 걸 무서워한다고 쓰여 있었어요. 그래서 그동안 발명하고 있었던 빛나는 원을 선물했는데, 그녀가 그걸 받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너무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어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버튼이 탁 하고 눌렸달까요.
 

이후에 캐롤라인 부인이 아프다는 걸 알게 됐다고 들었어요.  그녀가 제게 말해 주기 전까지 정말 몰랐어요. 제가 캐롤라인을 사랑하게 됐을 때 하필이면 캐롤라인과 도미니코가 다정한 연인처럼 보여서 정말… 상처받았거든요. 전 혼자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했고, 심지어는 화도 났어요. 말 그대로 실연의 고통을 제대로 느끼고 있었죠. 게다가 캐롤라인이 절 찾아와서 우리의 빛나는 원을 돌려주는 거예요. 이 이야기는 어디 가서도 한 적이 없는데, 흠흠. 이렇게 솔직해도 되나요? 사실 2주 만에 캐롤라인을 보자마자 사랑이 더 커졌어요. 그리고 그녀가 어렵게 꺼낸 말을 들으니, 이제 캐롤라인 곁에 내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내 모든 걸 바쳐서라도 그녀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다짐했어요. 
 

그런데 당신은 영국으로 갔다고요.  캐롤라인을 위해서요. 그녀를 혼자 두고 영국으로 간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요. 캐롤라인은 혼자서도 잘 살기 위해 노력하겠다면서 제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고 했어요. 힘들겠지만 한 걸음 뒤에서 그녀를 지켜보는 것도 멋진 결정이라 생각했어요. 사실은 고민하던 제게 그녀가 “네가 넓은 세상에서 나와 같은 사람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라고 말해 줬거든요. 또 돈을 많이 벌어서 캐롤라인과 함께 살고 싶었고요! 
 

영국에 가서 받은 캐롤라인 부인의 편지에서 당신이 그녀의 첫사랑이란 사실을 알았더군요.  영국 생활은 힘들었어요. 캐롤라인을 향한 걱정도 많았고요. 그녀가 첫 소설과 함께 보내온 편지에서 제가 첫사랑이라고 하더군요. 아니, 이럴 수가! 나도 네가 첫사랑이었어! 편지를 품에 안고 외쳤죠. 종종 캐롤라인이 보내온 편지로 힘을 얻었어요. 전 시간이 날 때마다 마나롤라로 향했고, 그녀와 행복한 시간을 보냈죠. 
 

두 분은 지금 마나롤라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전 영국에서 돌아오자마자 캐롤라인을 위해 집을 리모델링 했어요. 그녀가 집에서 불편하지 않도록. 그리고 나서 우린 결혼을 했어요. 아, 제가 얼마 전에 새로운 발명품을 만들었답니다. 캐롤라인이 쉽게 집 안을 돌아다닐 수 있도록 저절로 움직이는 발판을 설치했죠. 지금도 우리 집엔 빛나는 원이 곳곳에 있고, 캐롤라인은 제 옆에서 소설을 써요. 이토록 행복한 순간이 또 어디 있을까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1호 2019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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