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의 찬미>, 새로운 세상으로
1931년 이태리 북부의 작은 도시를 여행했을 때, 우연히 동양인 부부가 하는 악기상에 발을 들였다. 때마침 축음기에서 조선의 소프라노 윤심덕이 부른 ‘사의찬미’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몇 해 전 신문을 뜨겁게 달구었던 현해탄 정사(情死)를 떠올린 나는 무심코 입을 열었다. “소문에 의하면 이 노래를 부른 사람이 배에서 뛰어내려 죽었다 하더이다.” 그러자 주인 여자가 묘하게 눈을 굴리더니, 자신이 들은 소문은 다르다며 이상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새벽에 배에서 뛰어내린 윤심덕과 김우진은 미리 준비해 둔 보트에 몸을 옮겼고, 바다를 떠돌다 이태리행 크루즈에 의해 구조되었다는 것이다. 안경을 낀 주인 사내도 미소를 띤 채 말을 얹었다. 이태리 시골 마을에 정착한 두 사람은 신분을 감추기 위해 양인처럼 머리를 노란색과 빨간색으로 물들였는데, 유난히 미(美)에 탐닉하였던 그들인지라 점차 미용의 세계에 빠져들어 나중에는 헤어숍을 차리기에 이르렀단다.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에 나는 부부가 한통속이 되어 나를 골리는가 싶어 기분이 상한 채로 가게를 나왔다. 그런데 이 짧고 황당한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늘어놓던 부부의 명랑한 목소리, 가게에 흐르던 구슬픈 노랫소리가 긴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돌이켜보니 아무래도 그들이 바로 윤심덕과 김우진인 것만 같기 때문이다.
<사의 찬미>는 1926년 소프라노 윤심덕과 극작가 김우진이 일본에서 부산으로 향하던 배 안에서 벌어진 실종된 사건을 모티프로 한 작품입니다. 이 글은 윤심덕 역 안유진, 김우진 역 정동화 배우의 상상을 바탕으로 한 가상 에필로그로, 두 사람이 배에서 뛰어내린 이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2호 2019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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