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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ALON] 프로듀서 박용호, 배우 강필석 [No.101]

글 |배경희 사진 |심주호 장소협찬 | 전광수커피 (02-3672-0233) 2012-02-27 6,438

 

함께 간다는 것 

 

프로듀서 박용호와 배우 강필석은 5년 전 한 카페에서 처음 만났고, 그 후 세 작품을 함께했다.

무뚝뚝한 프로듀서와 배우는 매일 같이 시간을 내어 살갑게 일상을 나누는 사이는 아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단단한 강이 흐르고 있다.

 

 

우리들의 첫 만남


박용호 
필석이 넌 공연에서 보기 전에 이야기를 먼저 들었어. 류정한이가 <갓스펠>을 할 때 함께 출연한 배우라고 네 얘기를 했지. 네가 예수 역할이었지? 다행히 너하고 어울리는 옷을 잘 입었던 것 같아. 배우는 성인군자 역할을 맡으면 일단 뭔가 있어 보이는데 당시 너에 대한 칭찬도 좀 있어서 나도 네가 누군지 궁금했지. 그게 네 데뷔작이었나? 
강필석  아뇨, <지킬 앤 하이드> 2004년 공연이 데뷔작이죠. 제 역할은 프룹스였고요. <갓스펠> 할 때 절 처음 보셨어요?
박용호  공연은 안 봤어. 공연은 못 보고 사진으로 널 처음 봤다니까. (웃음) 내가 내 이름을 걸고 제작사를 차린 게 2004년 여름이야. 제작사를 차렸으니까 나도 배우를 찾아보잖아. 그때 허연 옷에, 거룩한 포즈 잡고 찍은 네 사진을 본 거지. 그 사진이 아주 훌륭했어. 그때 당시 필석 군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말랐고 야리야리했지. 그래서 예수님이 어울렸을 거야. 그리고 너는 성인군자 같은 이미지가 있잖아. 넌 선비나, 서자로 고생했는데 알고 보니 왕세자, 이런 역할을 맡으면 잘할 것 같아. 아, 스트레스가 풀린다. (일동 웃음)
강필석  요즘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시나 봐요. 이렇게 쉴 틈 없이 이야기를….(웃음) 그때는 많이 말랐죠. 지금 몸무게가 그때보다 7~8kg 정도 늘어난 거니까.
박용호  그렇게나 많이 쪘나? 난 아직도 <닥터 지바고>에서 너구리 모자(러시아 털모자)를 쓰고 나올 네 모습이 상상이 안 간다. 너구리 모자 쓰고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는 모습이 상상이 안 돼.
강필석  아니, 그런 장면은 안 나와요. 요즘 제가 무슨 말만 하면 “오케이, 너구리 모자” 라고 그러시는데, 저 군인 모자만 쓰고 나와요. 여기 오기 전에 낮 저녁으로 런 스루를 하고 왔는데 작품이 잘 나올 것 같아 스스로도 기대가 돼요.
박용호  벌써 런 스루를 해? 지금 연출을 누가 해? 오리지널 연출가 데스 맥아너프가 들어왔어? 데스 맥아너프는 너무나 유명한 연출이야. 라 호야 플레이하우스(La Jolla Playhouse)의 예술감독으로 한참 동안 재직했어. 거기서 작품을 만들어서 브로드웨이로 푸시하는 거지. 그렇게 브로드웨이에 올라간 <저지 보이스>가 최근 10년간 가장 크게 성공한 작품이야. 이번에 브로드웨이에서 올라가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도 맥아너프가 했고.
강필석  샤운 머피라는 협력 연출이 와서 연습했고, 데스 맥아너프는 이제 곧 들어와요. 물론 연출이 짜놓은 대로 연습하고요.
박용호  그럼 당연하지. 안 그러면 고소당해. 기억을 되짚다보니 생각이 난다. <김종욱 찾기> 초연에서는 스타 배우 (오)만석이하고 (엄)기준이를 캐스팅해서 흥행에 성공하고, 두 번째 시즌에서 김지현하고 김재범이라는 한예종을 갓 졸업한 친구들을 캐스팅했어. 사실 난 두 배우를 언더스터디라고 생각하고 지방 투어 공연을 보냈는데, 지방을 한 바퀴 돌고 왔더니 이 두 친구가 굉장히 성장해서 돌아온 거야. 그때 내가 배우를 믿어야 배우들이 성장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 엄마가 아이를 믿는 그런 믿음이라고 할까. 그리고 그 후부터 한예종 친구들과 작업을 많이 하게 됐고 그런 와중에 자연스럽게 너를 추천받게 된 거야. “아, <갓스펠>에서 그 허연 옷 입었던 친구구나” 하고 생각이 났던 거지. 좌우간 너 그 사진 아주 잘 찍었어.
강필석  제가 대표님을 처음 뵀을 때 인상이 워낙 좋으셔서…
박용호  인상이 좋다는 의미가 뭐야?
강필석  순하고 친근한 이미지잖아요. 외모도 곰처럼 귀여우시고. (웃음) 그때 놀랬던 건, 저하고 미팅이 끝나자마자 대표님이 대본을 들고 막 달려가시는 거예요. 아마 다음 미팅이 있었던 것 같은데, 보통은 그러지 않잖아요. 열정적이다, 그게 첫인상이었어요.
박용호  화장실 가고 싶었나 보지. 그리고 열심히 안 뛰어다니는 사람들은 제작에 관심이 없는 거야. 그런데 너하고 나하고 제일 처음 작업한 작품이 뭐였지?
강필석  <쓰릴 미>죠. (류)정한이 형이 빠지면서 제가 들어갔잖아요. 첫 파트너가 (김)무열이, (이)율이였고요.
박용호  소극장 작품, 특히 2인극은 배우 자체의 캐릭터가 중요해. 일단 관객들에게 자신의 아우라를 보여줘야 하거든. 그래서 어떻게든 캐릭터에 어울리는 배우를 찾으려고 노력을 하는 편이고, 너도 거기에 부합했기 때문에 뽑은 거 아니겠어. <쓰릴 미>가 널 성장하게 하고 관객들에게 네 이름을 알렸겠지만 그건 네가 실력을 쌓아오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야. 미진 후에 지진이 일어나듯이 배우에겐 터뜨리기까지 준비 기간이 있어야 해. 그런데 문제는 요즘은 기본을 쌓을 겨를도 없이 바로 대중 앞에 노출되고, 또 조로한다는 거지. 그건 배우에게 불행한 거야. 그런데 아이러니지. 배우가 공연 시장을 주도하는 데가 돼버렸으니. 공연계가 영화나 드라마 방송계처럼 돌아가고 있어.
강필석  무대는 배우의 예술이잖아요. 그러니까 배우 중심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거 아닌가요? 하하. 그런데 정말 뮤지컬 배우들이 시장을 주도할 힘이 생겼어요? 뮤지컬 배우들이 티켓을 파는 시기가 왔나요? 제가 뮤지컬을 시작할 땐 아무리 유명한 배우라고 해도 티켓 못 판다고, 작품을 잘 만들어야 관객이 온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아, 그때가 프로듀서의 시대였구나. 전 그런 변화는 잘 못 느껴요. 제가 티켓을 많이 못 팔아서 그런가 봐요. (웃음) 

 

 

순수한 열혈 프로듀서


박용호
  근데 어떤 카리스마가 있어야 배우들이 잘 따를까? 내가 배우들하고 친하게 지내지 않는다는 오해가 있는데, 일부러 거리를 두려는 게 아니라 솔직히 배우를 따로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없어. 내가 연극까지 포함하면 한 해에 여섯 작품에서 여덟 작품을 해. 죽어나는 거지. 근데 언제 배우를 만나? 너하고도 친하지만 사실 우리가 일 년에 몇 번이나 만나니. 아니, 자주 보지만 제대로 밥 한 끼 먹은 적이 없잖아. 주로 공연장에서나 만나고 안부 전화하는 정도지. 어쨌든 요즘은 술도 많이 마셔야 배우들하고 친해지나 보다 그런 생각은 들어. 그런데 억지로 친해지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야. 내가 이 사람에게 어떤 말을 하기 위해 맛있는 밥 먹으면서 “어떠십니까?” 하고 비위 맞춰주는 거, 난 이게 안 돼. 절대 안 돼. 그래서 오해도 많이 받지. 독고다이라고. 
강필석  독불장군이시죠. (웃음) 그런데 전 어떤 일을 하건 고집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무언가에 도전하려면 누가 뭐라고 하든 자기 소신대로 밀어붙일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 면에서 대표님은 정말 훌륭하시죠. 말로는 만날 “필석아 , 아휴, 힘들어” 하고 죽는 소리하시지만, 소신껏 하고 싶은 작품을 계속하시잖아요. 대표님은 화려한 쇼적인 뮤지컬만이 아닌 가슴을 때리는 작품을 많이 소개해주시려 했잖아요. 그 덕분에 우리나라 공연계가 다양해졌다고 생각해요. 어떤 작품을 두고 작품성이 있다 없다를 논하는 건 우습지만 작품성 있는 작품이 흥행을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죠. 작품성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이도 저도 아닌 게 되니까 작품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 더 욕심을 내시는 것 같고요. 그래서 뮤지컬해븐이 메이저 제작사로 빠르게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그나저나 대표님처럼 연습실에 자주 오시는 프로듀서도 없을 거에요. 아직도 기억나는 게 <쓰릴 미> 연습할 때 보러 오셔서 넌 짝다리 짚고 어떻게 노래를 하냐고 하체에 힘주고 불러라 그러고 가셨잖아요.
박용호  그건 야구 선수가 하체 힘으로 홈런 치는 것하고 똑같은 거야. 내가 노래에 민감하긴 하지. 근데 나는 노래를 잘 부르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라 저 배우가 이 노래를 이해하고 부르는 거에 더 관심이 있어. 어떤 배우들은 노래를 한국말로 하면서도 러시아말로 부르는 것처럼 부르니까.
강필석  대표님이 성악과 출신이라는 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래서인지 유독 노래에 민감하신 것 같아요. 공연 연습할 때면 노래 배워 오라고 대표님 친구들에게 레슨 보내고 그러시잖아요. 사실 그건 배우가 개인적으로 해야 할 일인데 감사하죠.
박용호  옛날엔 연습실도 자주 가고 그랬는데 요즘엔 공연이 많아지니까 점점 못 가. 그리고 일이 점점 커지니까 출장을 많이 가지.
강필석  아마 출장을 제일 많이 다니는 프로듀서일 거예요. 어쩌다 문자 메시지를 보내면 만날 뉴욕이시래. “나 뉴욕이야. 왜? 잠 좀 자자.” (일동 웃음)
박용호  내가 출장을 많이 가긴 하지. 뭘 봐야 알잖아. 그리고 작품들이 너무 궁금해. 이거 봐야겠는데, 보고 싶은데 못 참겠는거야. 그래서 한번은 지방에 가는 척하고 몰래 뉴욕에 갔다 온 적도 있어.
강필석  좋은 작품이라고 하면 무조건 보러 가시잖아요. 오프, 오프오프브로드웨이 작품까지 다 보시고. 대표님은 아이 같은 면이 있는 거 같아요. 순수하다고 해야 하나. 일적으로 그렇게 많은 작품을 볼 수 있겠어요. 우리나라에서 하는 작품도 거의 다 보시고. 첫 공연도 항상 보러 오시잖아요. 보러 오셔서…
박용호  살짝 격려하고, 비웃지. 내가 입 바른 소리를 못해.  
강필석  칭찬하는 걸 쑥스러워하시는 거죠. 그래도 전 작업을 했으니까 알죠. 투덜거리시면 잘 보셨구나, 그게 칭찬이겠거니 그렇게 받아들여요. “와, 정말 좋아!” 이런 얘기는 거의 안 하시니까. 만날 우리나라에도 휴 잭맨 같은 배우가 있어야 한다는 말만 하시고.(웃음)  외국에서 공연을 많이 봐서 그러신가. 하하. 사실 대표님이 외국인 스태프를 많이 고용하시고, 그래서 한편에서는 우리나라 스태프를 못 믿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대표님의 그 마음은 이해가 돼요. 홍보비를 줄여서라도 제작비에 쓸 만큼 작품을 수준 높게 만들려는 욕심이 대단하시잖아요. 흥행은 못해도 작품성은 인정을 받는 게 대표님의 목표라고 할까. 그래서 해븐의 작품을 배우들이 선호해요.
박용호  그런데 왜 이렇게 캐스팅이 어려워? 캐스팅하기 너무 힘들어. 너희들과 함께하고 싶어도 나이대가 안 맞아서 캐스팅을 못할 때도 있고. 너희들하고 <스프링 어웨이크닝>을 할 순 없잖아.
강필석  제가 음악을 듣고 반해서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어떤 역이 아닌, <스프링 어웨이크닝>이라는 작품을 하고 싶어 했을 때,(웃음) 대표님이 지나가는 말로 네가 다섯 살만 어렸어도, 그런 말씀을 하셨잖아요. 대표님이 그 부분은 진짜 냉정하세요. 마음에 드는 배우가 있어도 이 역에 어울리느냐 안 어울리느냐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시죠. 그건 네가 하면 손해라고 충고해주시고.
박용호  요즘은 무너지고 있어.(일동 웃음) 근데 너 말 잘했어. 나는 너를 위해서 하는 소리야. 배우가 자기와 안 어울리는 역을 맡는 건 마이너스야. 
강필석  <스프링 어웨이크닝> 이야기를 하니까 생각나는 게 대표님이 <스프링 어웨이크닝>이 잘될 거 같냐고 물어보셨을 때 제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이 작품은 무조건 성공이라고, 이 작품은 안 되면 도리어 이상한 거라고 그랬잖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너무나 좋아할 만한 열정적이고 뜨거운 작품이라 안 될 수가 없다고. 그런데 흥행이 잘 안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괜히 죄송했어요. <스프링 어웨이크닝>을 좋아하는 한 관객으로서 안타깝기도 했고요.

 

 

지구력 강한 배우
박용호
  나는 <번지 점프를 하다>를 준비할 때 인우는 네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네가 한 역할 중에 너와 가장 잘 어울렸던 게 <씨 왓 아이 워너 씨>의 신부님하고, <번지 점프를 하다>의 서인우야. 난 그 두 역이 제일 마음에 들어. 너의 생각은 다르니?
강필석  저와 잘 어울리는 역할이었던 것 같아요. <김종욱 찾기>도 잘 어울렸던 거 같고요. (웃음) 특히 <번지 점프를 하다>는 저도 정말 좋아하죠.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 좋아요. 한마디 안에 여러 가지 의미가 있죠.
박용호  그 점은 정말 매력적이지. <번지 점프를 하다>는 특별한 작품이야. 사랑을 이루는 멋진 러브 스토리인데, 단편적으로 자살을 방조하는 작품이다, 게이 이야기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안타까워. 죽어서 이뤄지는 사랑 이야기, 그런 이야기 우리나라 전래 동화에 참 많아.
강필석  한 사람만 사랑한다는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은 불가능하다고 말하지만, 전 아직까지 가능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한 사람을 위해 산다는 이야기가 무척 공감이 돼요.
박용호  나이가 들어도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느껴진다는 건 아주 중요한 매력이야. 네가 할아버지가 돼서도 이 정도 순수한 매력이 있으면 그 동네는 난리 나는 거야. (일동 웃음) 
강필석  대표님도 마찬가지예요.(웃음)
박용호  너 자꾸 날 그런 식으로… 어쨌든 배우는 소중한 존재야.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만큼 배우들도 자신에 대한 애착을 다른 방향으로 갖지 않고 배우로서 자기애가 강했으면 좋겠어. 요즘 뮤지컬 배우들은 자기애가 왜곡되고 있어서 안타까워. 다들 마음이 급하니까, 영화 한 편을 놓치면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고, 그래서 안 되더라도 주변에서 계속 서성이고 있잖아. 영화 못하고 공연한다고 해서 뒤처지는 거 아니거든. 배우는 마라톤 경기를 해야 하는데, 단거리 달리기를 하고 있어. 그게 너무 안타깝지. 필석이 넌 그런 면에서 지구력이 강하다고 생각해. 이거 진심으로 얘기했어.
강필석  대표님께 칭찬이라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대표님이 그런 말씀을 앞으로 15년은 한참 더 할 수 있겠네. 처음 만났을 때 했던 이야기가 그거였어요. 이제 5년 지났네요, 대표님.
박용호  너도 늙었구나. 하하. 너처럼 공연을 사랑하는 배우들이 잘 되는 게 중요해요. 너 같은 배우들이 많이 나와서 후배 배우들의 귀감이 되어야 후배들도 따라 가는 거야.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1호 2012년 2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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