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윤은 배우로 살아온 20년의 시간을 오롯이 무대 위에서 보냈다. 1991년 서울예대 재학 시절 <캣츠>에 출연한 이후로 쉬지 않고 뮤지컬 무대에 올랐고, 서로 다른 캐릭터들 사이에서 자신의 매력을 끊임없이 변주해 왔다. 무대를 향한 우직한 노력과, 성실함이 더해진 실력으로 무장한 그는 이제 어떤 무대에서나 든든한 믿음을 주는 배우로 존재하고 있다. 천 회 공연을 앞둔 <맘마미아>에서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무대에 오르는 일이 그저 평범한 일처럼 받아들여지면 좋겠다는 배우 성기윤을 만났다.
배우 성기윤에게 2011년은 특별한 해로 기억될 것 같아요. <맘마미아> 천 회 공연을 기록하기도 하지만 뮤지컬 배우로 데뷔한 지 만 2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더라고요. 아, 그렇군요. 연말에 20주년 기념 콘서트라도 해야 하나요.(웃음) 늘 작품을 하고 있으니까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어요. 벌써 20년이나 됐다니…. 그러고 보니 <더뮤지컬>과의 인연도 정확히 10년 됐네요. <틱틱 붐> 할 때 처음 만났으니.
<맘마미아>와 인연을 맺은 지도 벌써 8년이 됐고요. 가장 오래 적을 두고 있는 작품이죠? 그렇죠. <맘마미아>는 제게 이전과는 다른 종류의 배움을 준 작품이에요. 일단 발상의 전환을 시켜줬죠. 40대 중반의 샘을 서른다섯에, 그것도 세 살 차이나는 딸과 두 살 차이나는 사위와 함께 시작했잖아요. 당시에는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과연 내가 그들의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근데 아버지가 되기에 앞서 그들을 그냥 자식으로 보니까 되더라고요. 자식이 아무리 나이 들어도 부모 눈에는 그저 어린아이처럼 보인다잖아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매년 작품을 할 때마다 그런 작은 노하우들을 많이 쌓았어요. 배역의 나이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전에 몰랐던 것들, 못했던 부분들이 꼭 다시 생겼고요. 지금까지 단 한번도 똑같은 연기를 한 적이 없어요. 매번 달랐죠. 아마 초연 때 제가 연기한 샘과 비교할 수 있다면 얼마나 많이 달라졌는지 알 수 있을 텐데. 그때 ‘아마 이렇겠지?’ 하며 상상했던 것들이 어느새 ‘이건 이런 거야!’라고 믿게 되는 시점이 오더라고요. 내년, 내후년에 공연을 하게 되면 그 느낌이 또 달라질 거예요.
매일 무대에 오르기 전에 하시는 작업이 있으세요? 분장실에서는 함께하는 사람들과 좋은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생활’을 해요. 언제나처럼. 제 연기를 위해서 하는 일은 무대에 오르기 1초 전에 무대 옆에서 숨을 쉬는 거예요. 샘이 그동안 쉬었을 그 숨을 만들어내는 거죠. 무대 위에 오른 후에는 다음 순간을 머릿속으로 계산하지 않아요. 그 전에 들이킨 숨 한번으로 모든 게 정리되거든요. 짧지만 강한 시간이죠.
오랜만에 공연을 봐서 그런가요, 이번 공연에서 샘은 처음 등장할 때부터 어딘가 모르게 심각한 분위기를 연출하더군요. 아주 오랫동안 도나에 대한 아픈 기억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는 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맞아요.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순수하게 찾아오는 샘이었죠. 모든 순간이 그저 신기하고 신선하기만 했어요. 근데 이번에는 70~80퍼센트는 초대장을 받고 어떤 의심을 품고 모텔을 찾죠. 나이 마흔이 넘은 사람이 무지한 상태에서 어떤 일을 겪는 게 오히려 이상하잖아요. 굉장히 잘 보셨어요. 보는 사람이 그걸 느낄 수 있게 연기했다는 거죠. 많이 늘었어. 훌륭하다, 성기윤!(웃음)
한 작품에서 혼자 천 회 공연을 책임지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에요. 트리플, 쿼드러플 캐스팅이 보편화되고 있는 뮤지컬계의 현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고요. 누가 그러더군요. 대단한 건 알겠는데 왜 그렇게 했냐고. 개인적인 사정 다 접고 무대를 지키는 건 제게 많은 배움을 안겨준 작품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이 땅의 문화 현실에 대한 반발심이기도 해요. 라이선스 공연을 할 때마다 느끼는 건데, 해외 크리에이티브 팀들은 자기네 작품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나요. 물론 자기네 작품이 최고라며 서로를 무시하기도 하지만(웃음) 그 바탕에는 10년, 20년이 되도 바뀌지 않는 작품에 대한 자긍심이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요. 재공연된 작품은 시상 후보에도 오르지 않아요. <남한산성>은 초연과 재공연에서 곡이 다른데도 같은 작품으로 평가받았죠. <맘마미아>를 천 회나 공연하고 있지만 제가 노미네이트 된 적은 없었던 것 같고요. 참 아이러니한 느낌이에요. 지금은 뭔가 특이하고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언젠가는 이게 제발 좀 평범한 일처럼 받아들여지면 좋겠어요. 창작이 됐건 라이선스가 됐건, 좋은 작품이면 이 땅에서 롱런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고, 배우들도 주인 의식을 갖고 일조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맘마미아>는 작품성을 떠나 중견 배우들을 한 무대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보기 좋은 것 같아요. 제 생각도 그래요. 전에 <로마의 휴일> 할 때 토호 공연 프로그램을 본 적 있는데, 아이스크림 가게 주인, 꽃 가게 사장 등의 역할을 맡은 배우들이 다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었어요. 참 부러웠죠. 저도 나이 들면 빨리 단역으로 돌아갈 거예요. 한 예순 정도 되면.(웃음) <맘마미아>는 모두가 다 자기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얘기잖아요. 삶에 대한 에너지가 충만하니까 그게 즐거움으로 연결되고, 나이 든 선배님들도 힘들지 않게 공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8년 전에 녹음한 제 목소리로 공연을 시작하면 어느 순간 끝나 있고, 화요일인가 싶으면 일요일이거든요.
최정원 씨를 포함해 지금까지 여섯 명의 도나와 호흡을 맞추셨죠.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여배우들과 함께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게다가 모두 성기윤 씨보다 나이가 많았어요. 지금도 (황)만익이를 제외하면 제일 막내예요.(웃음) 여섯 명의 도나는, 음, 한때는 뭔가 달라지는 걸 못 참았던 적도 있었지만요,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어요. 그들이 연기하는, 내 눈앞에 있는 여인이 바로 도나니까요. 실은 최근 2~3년 사이에 배우로서 저의 화두가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배우가 혼자 하는 직업이 아니다보니 부딪히는 게 많잖아요. 꽤 오랫동안 ‘나는 왜 상대 배우에게 불편함을 느낄까’ 하는 생각으로 힘들었는데, 이제는 상대 배우가 누구든, 어떻게 하든,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고, 그 사람과 함께 호흡할 수 있게 됐어요. 내 욕심을 버렸거든요.
뭔가 아쉬움이 느껴지는데요. 아쉬운 건 분명히 있어요. 어떻게든 붙잡아 보려고 그렇게 힘들어했는데, 움켜쥐었던 손을 조금만 펴니까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고요. 손에 걸리면 걸리는 거고, 빠져나가면 빠져나가는 거죠.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이기적인 욕심이었던 것 같아요. 무대 위에서 남보다 1초 더 보이고 싶은, 내가 이만큼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욕심. 어느 순간 깨달았어요. 무대 위에서 나는 요리의 재료 중 하나이지 전체 요리가 아니라는 걸요. 내가 과해지면 맛없는 요리를 내놓게 된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된 거죠.
무대에 선 지 20년 만에요.(웃음)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한 17년 만에? 그래도 주연에 대한 욕심은 꽤 빨리 버렸어요. 제가 주연한 대표작을 꼽으라면 <라스트 파이브 이어즈>랑 <더 씽 어바웃 맨> 정도인데 아쉽게도 흥행은 못했죠. 작품을 계속하다 보니까, 주인공이 갖는 매력이라는 게 있더라고요.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임팩트가 있는 배우들이 있어요. 그들을 옆에서 잘 받쳐주는 배우들이 있고. 스스로에게 냉정한 편이어서 그런지, 난 주인공으로 임팩트를 주는 배우는 아닌 것 같아요. 외모가 주는 이미지도 무시할 수 없고요. 제가 남들이 보면 여성스럽다고 할 정도로 섬세하고 예민하고 소심한 성격이지만 누가 거기에 맞춰서 배역을 주겠어요. <햄릿>과 <맨 오브 라만차>를 놓고 성기윤을 캐스팅하라면 당연히 <맨 오브 라만차>겠죠. 배우 스스로 자신의 그릇을 파악하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해요.
‘너 자신을 알라’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렌트> 초연에서 고든으로 출연할 때, 포스터에 남경주, 이건명의 이름만 표기된 거 보고 성질내던 시절에 그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빨리 나아가는 후배 부러워하고 ‘나는 왜 아직도 ‘외 다수’에 속할까’ 하며 아쉬워하던 그때. 덕분에 스스로를 깊이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죠. 그러다 <유린 타운>에서 경미 누나를 만나면서 연기에 대한 새로운 마음을 다잡았고요. 사실 그 전까지 저는 약속된 거 외에는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거든요. 경미 누나와 파트너를 하면서 약속 안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 알게 됐고, 무대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재미를 느꼈죠. 비로소 ‘작은 배우는 있어도 작은 배역은 없다’는 말을 확실히 깨달았던 순간이었어요.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배우 이경미가 무게감 있는 조역으로 멋지게 복귀하는 것도 본받을 일이었고요.
배우로서 한 계단 성숙해진 시기였네요. 생각해보면 무대 위에서 성기윤 씨가 돋보이기 시작했던 것도 그 즈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 이후로는 뭔가 새로운 것들이 보였던 것 같아요. 열심히만 하는 게 아니라 무대 위에서 뭔가를 만들어내는 배우가 됐죠. 새로운 배역을 만나기 전에는 늘 두려움이 앞서는데 <남한산성>에서 인조라는 인물을 만들어낸 후로는 순수한 설렘만 남았어요. 인조는 정말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게 했던 인물이었는데….
그래서 더 아쉬움이 남으셨나 봐요. 지난해 <맘마미아> 투어 공연에서는 빌 역으로 200회 넘게 무대에 오르셨어요. 오랜만에 이경미 씨와 호흡을 맞춰서 신나기도 하셨겠지만, 같은 역으로 무대에 서고 싶은 욕심도 없지 않았을 것 같아요. 맨 처음 빌 역을 맡으라고 했을 때는 꽤 충격이었어요.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 잘됐다 싶더라고요. 너무 오랫동안 샘에게 빠져 있었고, 빌, 해리와 호흡을 맞추면서 치기 어린 마음에 아쉬웠던 부분도 없지 않았거든요. 머리카락, 수염을 있는 대로 기르고 모텔에 도착하자마자 가부좌 틀고 앉아서 심호흡부터 했어요. 심각하지 않은 캐릭터라 정말 재밌었던 것 같아요.
참, <맘마미아> 한국 공연을 본 적은 있으세요? 그럼요. 초연 때 커버 배우 런 스루 하는 거 한 번 봤고, 얼마 전에도 커버 배우 런을 봤어요. 재밌던데요. 성기윤이 안 나와서 조금 아쉬웠지만.(웃음)
배우가 자신의 무대를 책임지는 모습은 참 멋지고 당연한 일이지만, 커버 배우 입장에서 보면 너무 욕심 많은 선배를 만나 아쉬울 것 같아요. <아이다> 할 때 (이)정열 형이 그랬어요. 성기윤이랑 같이 공연하는 거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말리고 싶다고. 8개월을 공연하면서 어떻게 한번도 안 아프냐면서 말이에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한 일인데 그런 얘기를 들으면 가끔은 아파줘야 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하지만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요. 늘 새로운 것을 쫓아다니는 것만이 좋은 일이 아니라는 거, 다른 방법도 있다는 걸요. 요즘은 기나긴 앙상블 시절을 거쳐 무대를 지키고 있는 배우가 흔치 않잖아요. 행사 같은 거 안 하고 온전히 뮤지컬만 하면서 가정을 꾸리고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큼의 여유를 누릴 수 있다는 걸 후배들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어요. 열심히만 해서는 안 되고 정말 잘해야 해요. 그래서 무대에 오르면 오를수록 더 떨리는 것 같아요.
<맘마미아> 이후 계획은 세우셨나요? 작품은 결정이 됐어요. 역시 제가 했던 작품 중의 하나가 될 것 같네요. 몸이 허락할 때까지는 계속 무대 위에 있을 것 같고, 15년 가까이 운영하고 있는 아동극 작업도 계속할 거예요. 아직은 막연하고 진짜 해도 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기회가 닿으면 연출을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9호 2011년 12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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