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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ENSEMBLE] <시라노> 이은지,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 [No.193]

글 |박보라 사진 |배임석 사진제공 |CJ ENM 2019-10-30 4,699

<시라노> 이은지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

 

절로 어깨를 들썩이게 만드는 <맘마미아!>에 마음을 빼앗겨 뮤지컬배우라는 꿈을 꾸기 시작한 이은지. 공연에 최적화된 ‘저녁형’ 인간에, 무대에만 서면 최상의 컨디션이 솟아난다는 그녀는 밝고 활달한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다. 꿈에 그리던 무대에 오를 때마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게 행복하단다. 뮤지컬의 매력에 푹 빠진 지금, 그녀의 목표는 앞으로 계속 고민하고 무대에서 성장하는 배우가 되는 것. <시라노> 속에서 본인의 색을 강렬하게 뿜어내는 이은지를 소개한다. 



 

1막 1장 ‘연극을 시작해’ 중 피에로 역
 

피에로를 연기하면서 온갖 귀여움을 마음껏 보여주고 있는 중이에요. (웃음) 피에로로 무대에 설 때마다 살아 있는 느낌이 들어서 재미있어요. 피에로는 극장 스태프 중 한 명이라 연기와 노래는 물론이고 무대 세트도 정리하고 소품을 옮겨야 해요. 처음엔 상대 피에로와 똑같은 제스처를 해도 분위기가 달라 고생했는데, 둘이 정말 많이 연습했죠. 제가 이 장면과 캐릭터를 정말 좋아하는 이유가 따로 있어요. <시라노>의 오프닝에 이어서 피에로들이 극중극의 막을 올리는데, 그때 마치 ‘내가 <시라노>의 진짜 시작을 여는구나’라는 생각에 짜릿해요. 얇은 천 뒤로 관객을 볼 때마다 매번 처음 공연하는 것처럼 두근거리죠. 이 장면을 잘 시작해야만 공연이 끝까지 잘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부담감도 있고, 더 잘하고 싶은 욕심도 생겨요. 아, 앞뒤 양옆으로 큰 장식이 있는 모자 탓에 의도치 않게 툭툭 치게 되어서 사람들이 절 피하기도 해요. (웃음) 



 

1막 2장 ‘패스트리와 시’ 중 시인 역
 

피에로에서 시인으로 급하게 변신해야 하는 장면이에요. 의상과 가발을 바꾸는 것 외에도 메이크업 수정이 필요해 촉박하게 진행되죠. 제가 성격이 꽤 급해서, 이 장면에서는 마음이 더 조급해지는 것 같아요. 리허설하는데 소품을 못 챙겨서 허둥지둥한 적도 있었죠. 이제는 분장 팀과 의상 팀 스태프가 도와주셔서, 원활하게 퀵 체인지를 할 수 있어요. 저희끼리 한 팀이 되어 손발이 짝짝 맞는다고나 할까요. 시인이라는 캐릭터에는 실제 제 모습이 정말 많이 투영됐어요. 전 외향적이고 활달한 편인데,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함께 무언가를 할 때면 진짜 즐겁거든요. 이 장면 때가 딱 그래요. 덕분에 급하게 등장하지만 빨리 호흡을 고르고 연기에 몰입할 수 있죠. 저는 시를 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귀족 가문의 시녀에요. 전 당시의 시를 쓰는 사람들이 지금 시대의 래퍼들처럼 하고 싶은 말을 마구 쏟아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빵집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시를 배우면서, 마음에 담아두었던 귀족에 대한 불만을 말하고 있답니다. 



 

1막 4장  ‘가스콘 용병대’ 

2막 2장  ‘시라노 부대의 진지’ 

2막 3장  ‘영광을 향해’ 

2막 5장  ‘곧 가스콘 리프라이즈’ 중 가스콘 부대원 역

 

가스콘 부대원으로 처음 가발을 썼을 때, 모두가 박장대소했어요. 어수룩하면서도 갓 짧은 머리를 한 어색한 얼굴이었죠. 시간이 지나고 가발이 익숙해지니까 그제야 괜찮아 보이더라고요. 처음엔 가발 위에 모자를 쓰니, 감각을 쉽게 느낄 수 없었어요. 모자가 떨어져도 언제 떨어졌는지 알 수 없고요. 초반엔 모자를 사수하면서 연기를 하는 것도 많이 신경이 쓰였어요. 무엇보다 카리스마 넘치는 거친 가스콘 부대 소속의 군인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만만해 보이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가스콘 부대원 장면에서는 특히 힘을 주어 열심히 표현하고 있답니다. 일부러 큰 동작을 하는 게 아니라 남성들의 작은 습관을 표현해 내려고 했어요. 이상하게 이 장면에서 가발을 쓰면 계속 구레나룻을 만지게 되더라고요. 남성들이 왜 파마를 하고 구레나룻에 신경을 쓰는지 이해가 되던데요? (웃음) 



 

1막 5장  ‘록산의 집’ 중 하인 역

 

개인적으로는 정말 너무 아쉬운 장면이에요. 왜냐면 예쁜 의상을 입고 무대에 등장하는 시간이 정말 짧거든요. 앞의 가스콘 부대원에서 하인으로 퀵 체인지를 해야만 하는데, 사실 가스콘 부대원의 옷이 정말 더워서 후다닥 벗는답니다. 게다가 하인의 의상은 여름용 소재라 시원하거든요. 가발을 벗고 머리에 천 하나를 두르면 하인으로 변신 완료. 딱 한마디의 대사를 하는데, 무대에서 더 오래 있고 싶어요. 하지만 제가 더 오래 있으면 정말 ‘사랑의 훼방꾼’이 되겠죠? 하하.



 

2막 1장  ‘파리의 추억’

2막 5장  ‘가을의 나날들’ 중 수녀 역 

 

전 원장 수녀님 바로 뒤를 따라가는 수녀로, 이 수녀원에 온 지 얼마 안 됐어요. 왜냐면 원장 수녀님께 오늘따라 록산이 왜 이렇게 슬퍼하냐면서 묻거든요. 원장 수녀님께서 다정하게 그녀가 15년 동안 크리스티앙의 추모일을 챙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자, 록산을 위해 기도하죠. 이 마지막 장면을 위해서는 정말 빠르게 옷을 갈아입어야만 합니다. 특히 바로 앞 장면의 가스콘 부대원 옷이 여러 겹인 데다가 벗긴 힘든 신발이라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해요. 이 장면에서 유독 긴장하는 이유는 숨이 고르지 않은 상황에서 수녀 연기를 해야 한다는 것 때문이에요. 헉헉거리는 숨소리가 들리면 안 되잖아요. 슬픈 장면이라 많은 관객들이 울고 계시는데, 저도 눈물이 날 것 같아 최대한 먼 산을 보면서 걷고 있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3호 2019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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