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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FACE] <풍월주> 신성민 [No.124]

글 |나윤정 사진 |김수홍 2014-01-29 5,626

후회 없이 행복하게

 

신성민이 2012년 초연에 이어 <풍월주>의 사담과 재회했다. 사담이란 이름은 변함없지만 그를 바라보는 신성민의 눈은 한층 깊어졌다. 그간 다채로운 무대를 오가며 쌓아올린 시간의 크기만큼 말이다.

 

 

 

 

즐거움의 순간

최근 신성민의 무대를 보며 느낀 점은, 그로 인해 역할의 입체감이 더 극대화된다는 것이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의 순호, <쓰릴 미>의 네이슨 그리고 <풍월주>의 사담에 이르기까지. 그는 인물의 시작과 끝이 이루는 대립각을 크고 명확하게 그려냈다. 그로 인해 캐릭터의 반전 혹은 비밀이 더욱 생동감을 이룰 수 있도록 말이다. “어떤 인물이든 입체적으로 보이는 것이 더 매력적이더라고요. 그런 역할들이 저랑 잘 맞는 것 같고요.”

 

실제로 만난 신성민은 또래보다 좀 더 성숙한 느낌을 주었다. 신중하게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는 그의 모습에 가벼움은 없었다. 겸손하고 생각도 깊었다. 스스로를 배우라고 지칭하는 대신 “여전히 연기를 배우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고,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거창한 목표를 세우기보다 매 순간 주어진 것을 열심히 하겠다”라는 현답을 내놓았다. 말로 앞세우기보단 무대 위 연기로 자신을 보여줄 것이란 믿음직한 다짐. 이 한마디에도 의젓함이 느껴졌다.

 

신성민은 의외로 학창 시절 특별한 꿈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연기를 시작하게 된 순간을 “그냥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뭘 해야 즐겁게 살 수 있을까 생각하는데 문득 연기가 떠올랐어요. 어린 시절 영화 보는 걸 좋아해 어렴풋이 배우를 해보면 어떨까 생각한 적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삶의 방향을 연기로 전향하겠다는 확신을 세우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경희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했어요. 학교 생활은 재밌었지만, 계속 고민했죠. 내가 과연 배우란 직업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 그는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서둘러 입대했다. 그리고 많은 생각 끝에 결론을 내렸다. “한 번 사는 인생, 행복하게 살고 싶었어요. 무미건조한 건 싫었죠. 어느 순간, 학교에서 무대 작업을 할 때 제가 가장 즐겁게 웃었단 걸 깨달았죠.”

 

 

 

 

 

매 순간의 노력
신성민은 스타 등용문인 <그리스>로 뮤지컬 신고식을 치렀다. 대학 졸업반이었던 2010년, 과 동기 이동하의 권유로 오디션을 보게 된 것이다. 그는 스윙으로 무대에 처음 섰고, 막 일주일 만에 공석이 된 소니 역을 맡았다. 많은 것을 배웠던 행운의 무대였지만, 그는 뮤지컬 배우로서 역량이 부족함을 절실히 느꼈다. 운명이었을까? 자신과 뮤지컬이 맞지 않다고 생각했던 찰나 <오! 당신이 잠든 사이>가 그의 마음을 두드렸다. “충격적이었죠. 춤과 노래가 어우러지면서도 이렇게 드라마가 강한 뮤지컬이 있다니!” 설레는 마음으로 오디션에 참여한 그는 닥터 리에 캐스팅됐고, 무대 위에서 무언가 할 수 있음에 자부심을 느꼈다. “무대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작품이었어요. 마음가짐을 새롭게 다잡고 뮤지컬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됐죠.”

 

이후 그는 마니아층이 두터운 작품에 연이어 출연하며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2012년 <풍월주>. 데뷔가 늦은 탓에 작품 경력이 적었지만, 그는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밝게 오디션에 임했다. 그 결과 주인공 사담 역에 낙점됐다. “사담은 작품 속에서 가장 성숙한 사랑을 하고 있어요. 외유내강의 캐릭터죠. 마음에 담아두고, 모든 걸 혼자 짊어지려 해요. 전 속에 있는 말은 다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래서 그가 더 가슴 아팠죠.”

 

깊은 내면을 지닌 사담을 충실히 표현했던 신성민. 다시 재연 무대에 오르게 된 그는 사담을 한층 더 세밀하게 들여다봤다. “처음엔 재연에 서면 제가 안주하게 될까봐 염려했어요. 그런데 오히려 더 넓은 시야로 작품을 바라보는 계기가 되더라고요. 장면 중에서 부인이 열의 목을 베려 할 때 운장 어르신이 여왕의 이야기를 꺼내며 그녀를 저지하는 부분이 있어요. 초연 땐 열이 죽음을 면했단 사실에만 안도했는데, 이젠 여왕에 관한 말이 마음에 남더라고요. 이런 차이들이 신기하고 재밌어요.”

 

그사이 신성민은 극과 극을 오가는 역할들을 거치며 큰 성장세를 보였다. <김종욱 찾기>, <여신님이 보고 계셔>, <쓰릴 미>. 작품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춘 이 세 작품에서 그는 자신의 개성을 가미한 안정된 연기를 선보였다. 특히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그의 색다른 면모를 발견할 수 있었던 작품. “처음 역할을 제안받았을 때 깜짝 놀랐어요. 제가 순호를요? 내 안에도 분명히 순호의 모습이 존재할 텐데, 처음엔 그 부분이 너무 작았어요. 그래서 그것을 찾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고, 또 그것을 극대화시키는 것도 어색했죠. 하지만 스스로 발견한 것을 펼쳤을 때 카타르시스가 컸어요.”

또한 <쓰릴 미>에서 그는 반전의 묘미를 드라마틱하게 잘 살려내는 강점을 드러냈다. “제가 반전을 좋아해요. 네이슨은 반전의 키를 쥐고 있으면서, 34년 전과 후를 오간다는 설정이 매력적이었죠. 리처드를 갖기 위해 어떤 집착까지 보여줄 수 있는가? 이런 부분들이 재밌더라고요. 그런데 그렇게 힘들 줄은 몰랐네요.(웃음)”

 

처음 연기를 시작하게 된 순간부터 <풍월주> 무대에 오르고 있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는 지난 시간들을 찬찬히 곱씹으며 “매 순간 행복했다”는 짧지만 강한 한마디를 전했다. 지금의 그를 있게 한 과거의 순간들. 그리고 이제 다시 새롭게 이어질 그의 시간들. 인터뷰를 마치고 그의 미래가 더욱 기대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계획을 따로 세우지 말자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오! 당신이 잠든 사이>를 할 땐 <풍월주>를 할 거란 생각을 못했고, <풍월주>를 할 땐 <김종욱 찾기>를 할 거란 생각을 못했거든요. 하나하나 최선을 다하다 보니 하나하나 주어지더라고요. 책임감을 갖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할 테니 지켜봐주세요. 말보단 무대에서 보여드리는 것이 정답인 것 같아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4호 2014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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