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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TRAVEL] <데스노트> 박혜나의 일본 공연 도전기 [No.198]

글 |박혜나 배우 사진제공 |씨제스엔터테인먼트, 호리프로 2020-04-01 8,732

<데스노트> 
박혜나의 일본 공연 도전기

 

2015년과 2017년 <데스노트>에서 사신 렘을 연기한 박혜나가 같은 역할로 일본 무대에 데뷔했다. 국내 공연 당시 박혜나의 연기를 인상 깊게 본 일본 제작진이 그를 초청한 것이다. 박혜나는 1월 20일부터 2월 9일까지 도쿄 토요시마 구립예술문화극장에서 공연을 마치고, 3월에는 시즈오카, 오사카, 후쿠오카에서 공연을 이어갈 예정이다. 일본에서 투어 공연을 앞두고 있는 박혜나가 그동안 새로운 도전에 나서며 느낀 바를 들려주었다. 


 

두렵지만 설레는 기회

2017년 겨울,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 출연하고 있을 때였다. 공연을 보러 온 호리프로 관계자가 그날 공연이 끝나고 내게 <데스노트> 일본 공연 출연을 제안했다. 당시 통역사가 함께 있지 않아서 대학로에서 다른 공연을 마치고 온 (진)태화가 통역을 해줬던 기억이 난다. 같은 공연에 출연하고 있던 남편 (김)찬호 씨도 옆에서 거들어주었다. 태화와 찬호 씨, 고마워요! 
 

사실 제안을 받고 처음에는 고민이 많았다. 공연에서 언어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내가 일본어로 노래와 연기를 잘 소화해 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데스노트>의 렘을 연기할 때 정말 행복했기에, 아끼는 작품과 캐릭터를 다시 만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한국 공연 당시 나를 믿고 이끌어주셨던 쿠리야마 타미야 연출님과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도 컸다. 연출님이 ‘모래’라는 한 마디로 렘의 캐릭터를 정리해 주신 게 내게 큰 도움이 되었던 걸 기억한다. 경험해 보지 못한 일본 무대에도 호기심이 생겼다. 그동안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진심으로 새로운 경험을 원하고 있던 터. 지금이 바로 그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출연을 결심했다.
 

그때부터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다. <데스노트> 한국 공연 당시 통역을 담당하셨던 김태희 선생님께 일주일에 한 번씩 수업을 받았다. 선생님과 일본어로 대화를 나누며 조금씩 일본어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선생님 감사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막상 출국 날짜가 다가오자 겁이 났다. 낯선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내 나이에 이런 도전은 어울리지 않는 게 아닐까? 자꾸 움츠러드는 자신에게 속지 않으려 애쓰며 속으로 되뇌었다. 이제 시작이야. 한번 해보자.

 

국적을 뛰어넘은 유대

일본에서의 연습 시작! 걱정과 설렘, 그리고 한국 공연 때와는 뭐가 다를까 하는 기대감에 가득 차 연습실로 향했다. 첫날은 대본 리딩을 했는데, 그 자리에 모인 모든 배우에게서 작품에 대한 순수한 애정과 해내겠다는 의지가 엿보여 두근거렸다. 모두의 눈이 반짝거렸다. 한마음으로 대본 리딩을 하는 동안, 일본은 무언가 한국과 다를 거라는 생각이 나의 섣부른 판단이었음을 깨달았다. 공연 앞에서 우리는 모두 같은 인간이고 배우였다.
 

난 이 프로덕션에 소속된 유일한 한국인 배우다. 한국 배우와 연기하는 건 일본 배우에게도 새로운 경험일 텐데, 그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외국어로 연기한다는 핸디캡이 있지만, 그렇다 해도 무대 위에서 부끄러운 배우이고 싶지 않았다. 환경과 조건을 떠나 배우로서 완벽한 공연을 보여주자는 마음으로 연습과 공연에 최선을 다했다. 다행히 이런 내 마음이 전해졌는지, 첫 공연이 끝나고 배우와 스태프 모두 나에게 먼저 기쁨의 인사를 건넸다. 울 생각은 없었는데 다함께 울면서 축하해 주는 바람에 나도 눈물이 나고 말았다. 
 

내가 이렇게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건 나 말고도 모두가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제일 많이 쓰는 말이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감동받았습니다’일 정도다. 한번은 미사 역의 사쿠라가 아파서 연습에 못 나왔는데, 다음 날 앙상블인 시이나가 미사의 노래, 대사, 동선을 하루 만에 다 외워서 나와 연습을 맞춰주었다. 더 놀라운 건 집에 가는 길에 다른 앙상블 댓페이와 하루나에게 그 얘기를 하니, 그들이 시이나의 연습을 도와줬다고 말한 것이다. 배우로서 잠재력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에 모두 열심히 도와줬다고 한다. 그들은 오늘 시이나가 대역을 잘 해낸 것을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있었다. 순간 가슴이 뭉클해져서 두 사람을 먼저 보내고 울었다. 정말 아름다웠다.

 

일본에서의 새로운 경험

일본의 렘은 한국보다 얇고 가벼운 분장을 한다. 피부 표현은 더 거친 느낌인데, 그게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렘과 잘 맞아떨어져서 좋다. 의상도 가볍고 레이스 등 디테일이 추가되어서 조금 더 멋쟁이가 된 느낌이랄까! 일본의 류크, 요코타 에이지 씨와도 즐겁게 공연하고 있다. 요코타 에이지 씨는 일본에서 셰익스피어 연극에 많이 출연했던 배우로 이번 <데스노트>가 그의 첫 뮤지컬이다. 그가 연기하는 류크는 조금 더 연극에 가까운 형식미를 보여주는데 덕분에 사신들의 서사가 잘 드러나는 것 같다. 함께 새로운 무대에 도전하고 있는 사이라 동지애가 느껴진다.

일본에 있는 동안 공연뿐 아니라 방송을 경험해 볼 기회도 생겼다. 1월 8일, 니혼TV의 인기 정보 프로그램 <스키리>에 초대받은 것이다. 이 프로그램에는 지금까지 에드 시런, 테일러 스위프트, 아리아나 그란데, 브루노 마스, 레이디 가가, 방탄소년단 등 이름난 해외 가수들이 출연했는데, 뮤지컬배우가 출연한 건 라민 카림루 이후 내가 처음이란다. 나는 이날 <데스노트>의 ‘어리석은 사랑’, <위키드>의 ‘Defying Gravity’, <겨울왕국2>의 ‘Into the Unknown’을 라이브로 불렀다. 아침 생방송이라 새벽부터 부지런히 준비하고 나갔는데 다행히 반응이 좋아서 기뻤다. 
 

어느새 도쿄 공연이 끝났다. 준비했던 기간에 비해 짧게 느껴질 만큼 눈 깜짝할 새 시간이 지나갔다. 일본에서 무대에 서고, 인터뷰에 참여하고,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니 지금의 한일 관계가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언젠가 양국이 서로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그리고 지금 내가 하는 일이 그날을 앞당기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제 일본에서의 다른 도시 투어 공연이 남아 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이곳에서 쌓은 경험을 통해 한국에 돌아가면 더 좋은 무대를 보여드리고 싶다. 다시 만날 때까지 저를 잊지 말아주세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8호 2020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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