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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수어통역사 김홍남·최황순, 손으로 전하는 무대의 감동 [No.199]

글 |안세영 사진 |김호근 2020-05-04 7,600

장벽 없는 극장 만들기 

법정 기념일로 제정된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이 올해로 벌써 마흔 번째를 맞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39라는 숫자가 40으로 바뀌기까지 지난 일 년의 시간 동안 편견의 벽을 얼마나 허물었을까. 국내 공연계에서 장벽 없는 극장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는 남산예술센터와 0set 프로젝트, 수어통역사들의 이야기를 통해 ‘배리어프리’한 세상으로 한 발 더 나아가고자 한다. 

 

수어통역사 김홍남·최황순
손으로 전하는 무대의 감동

 

소리가 넘치는 세계와 소리가 없는 세계. 같은 땅을 밟고 있어도 다른 언어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청인과 농인. 그 두 세계를 잇는 자리에 수어통역사가 있다. 남산예술센터 배리어프리 공연을 비롯해 여러 연극 무대에서 활약해 온 김홍남, 최황순 수어통역사는 ‘무대 위에 한 발짝의 공간만 열어준다면 수어로 모든 세계를 보여드릴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한다. 


 

 

또 하나의 언어로 만나는 공연

 

처음에 어떻게 만나 함께 일하게 되었나?

김홍남_ 1997년에 민간 수화통역사 자격증 시험이 생겨서 최황순 통역사가 1기로 합격하고, 나는 1999년 3기로 합격했다. 서로를 처음 만난 건 그 사이였던 1998년 즈음이다. 각자 속해있던 수어 동아리가 함께 모이는 친목 자리에서 만났다. 이후 각자의 길을 걷다가 오랜만에 다시 만날 기회가 생겼는데, 수어 통역에 대해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까지 깊게 고민하고 공부해 온 게 느껴지더라. 그래서 2~3년 전부터 호흡을 맞춰 일하고 있다. 

최황순_ 우리 둘은 수어통역사로서 걸어온 길이 전혀 다르다. 김홍남 통역사가 청각장애인이 일하는 현장에서 부대끼며 통역을 해왔다면, 나는 대학원에서 학술적으로 수어를 배우고 선배 통역사를 쫓아다니며 통역을 시작했다. 그래서 수어를 통역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고, 통역에서 의견이 부딪히는 일도 잦다. 그럼에도 김홍남 통역사와 함께 일할 때가 가장 편하다. 이 정도로 치열하게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상대가 드물기 때문이다. 준비 과정이 치열한 만큼 무대 위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함께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공연 중 한 번은 김홍남 통역사가 맡은 파트의 대사를 내가 수어로 옮긴 적이 있다. 실수를 알아차리고 아차 싶었는데, 그 순간 김홍남 통역사가 알아서 빠져주더라.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내 파트의 대사를 수어로 옮겨주었다. 다른 통역사와는 이 정도로 호흡이 맞기 힘들다.
 

연극 무대에서 수어 통역을 시작한 건 언제부터인가?

김홍남_ 1998년 뮤지컬 <넌센스>에 출연했던 양희경 선생님이 청음복지관에서 수화를 배우셨다. 당시 양희경 선생님이 공연에 수어 통역을 도입하고 싶다고 말씀하셔서 처음으로 연극 무대에 올라 수어 통역을 했다. 그때 수어통역사가 배우에게 가야할 시선을 빼앗아도 되는가, 노래도 수어로 통역을 해야 하는가 같은 여러 난제에 부딪히며 공연 통역은 일반 통역과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이후 장애인 단체의 의뢰를 받고 여러 연극 무대에 섰다. 남산예술센터 배리어프리 공연은 배리어프리 영화 위원회를 통해 알게 된 강내영 화면 해설 작가의 추천으로 함께하게 됐다.

최황순_ 연극, 뮤지컬은 주류 수어통역사가 도전하려고 하지 않는 영역이다. 수어 노래 공연이란 게 있긴 하지만, 수어를 처음 배우는 초보들이나 하는 거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있다. 게다가 시적인 가사로 이루어진 노래는 직관적인 언어인 수어로 통역하기가 힘들다. 외국 시를 한국어로 번역할 때처럼 통역사에 따라 전혀 다른 수어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데, 대부분의 수어통역사가 이런 일로 능력을 평가받는 데 거부감이 있다. 그래서 과거에는 무대 공연을 통역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가끔 통역할 일이 생길 때면 김홍남 통역사와 비슷한 고민에 빠졌다. 같은 고민거리를 안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잘 맞았던 거다.
 

무대에 오르기 전 수어 통역을 위해 어떤 사전 준비가 필요한가? 

최황순_ 우선 대본 속의 표현을 어떻게 수어로 번역할 것인지 논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영국 극단 내한 공연이었던 <프레드>의 경우, 영어 대본과 한국어 자막 대본을 모두 받아서 비교해 보며 번역했다. 번역본만으로는 의미가 불확실한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산 도적>에 나오는 대사 ‘목이 아파? 모과차를 줄까?’처럼 발음을 이용한 언어유희를 어떻게 수어로 번역할 것인가도 고민이 필요한 문제다. 캐릭터의 성격, 목소리, 말투에 따라서도 수어 스타일이 달라진다. 배우 둘이 싸우는 장면에서 한 명이 더 강한 톤으로 연기한다면, 통역사인 우리도 합의해서 몸짓의 크기를 달리해야 한다. 이런 건 대본만 봐서는 알 수 없기 때문에 리허설 영상을 참고한다. 꼼꼼하게 준비하려면 신경 쓸 게 한없이 많다. 

김홍남_ 작가와 연출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수어통역사의 해석이 창작진의 의도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미심쩍은 부분은 일일이 물어보고 확인을 받는다. 연출가 입장에서는 귀찮은 작업이 될 수 있다. 배우들 역시 무대 위에 수어통역사가 존재하는 게 불편할 수 있다. 이분들이 얼마나 열린 마음으로 배리어프리 공연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느냐에 따라 통역의 질도 달라진다. 농인의 삶을 그린 연극 <트라이브스(Tribes)>의 경우, 우리가 제작 회의 때부터 참여해 연습 과정을 지켜보며 통역을 준비했다. 그런가 하면 대본조차 미리 주지 않아서 공연 직전 몇 시간 안에 급하게 준비해야 했던 작품도 있다. 
 

연극을 수어로 통역할 때 방송, 강연 등과 달리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점이 있을까? 

최황순_ 방송과 강연은 정보 전달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다. 반면 연극은 심리를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 방송과 강연을 통역할 때는 말하는 사람이 누구든 동일한 스타일의 수어로 통역한다. 아나운서가 일정한 어조를 지켜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연극 대사를 통역할 때는 말하는 인물이 누구냐에 따라 수어 표현이 달라져야 한다. 

김홍남_ 표면적인 내용 아래 어떤 의미가 깔려 있는지도 신경 써서 전달해야 한다. 때로는 대사 안에 복선이 숨겨져 있지 않나. 수화 통역을 할 때 농인 관객에게 미리 정보를 주지 않으면서 앞서 언급된 단어와 뒤에 나오는 이야기를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어렵다. 어휘 하나를 어떻게 수어로 번역할 것인가를 두고 둘이서 오랜 시간 토론하기도 한다. 
 

뮤지컬처럼 노래가 있는 공연을 수어로 통역하는 건 연극 통역과 어떤 차이가 있나?

김홍남_ 뮤지컬에서는 배우가 노래를 통해 감정을 표출한다. 그런데 이때 가사와 음악의 분위기가 상반되면 수어통역사는 딜레마에 빠진다. 트로트 음악을 떠올려 보라. 가사는 이별에 대한 내용이라 슬픈 표정을 지으며 수어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음악은 템포가 빠르고 가수는 웃으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면? 가사의 내용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 음악의 분위기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 이것은 단순히 어휘 번역의 문제가 아니라 극을 어떻게 조율할 것이냐의 문제다. 또 배우가 정적인 노래를 부르면 관객의 시선이 자연스레 액션이 있는 수어통역사 쪽을 향하게 되는데, 그때 내가 얼마만큼 시선을 끌어도 되나 하는 고민이 생긴다. 

 

배리어프리가 시민의식이 되려면

 

남산예술센터 배리어프리 공연은 처음부터 수어통역사의 위치를 염두에 두고 세트를 제작한다고 들었다. 무대에서 수어통역사의 위치를 정할 때 고려해야 하는 점이 있을까. 

최황순_ 우선 수어통역사에게 배우의 목소리가 잘 들리고 모습도 잘 보여야 한다. 배우의 목소리보다 효과음이나 배경 음악이 잘 들리는 스피커 근처는 되도록 피한다. 또 객석에서 봤을 때 수어가 잘 판별되는 위치여야 한다. 동선을 고려해 배우와 그 배우의 대사를 통역하는 수어통역사가 한눈에 들어올 수 있는 위치를 찾는다. 배우는 왼쪽에서 말하는데 수어는 오른쪽에서 하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김홍남_ 전회 수어 통역을 제공했던 <트라이브스>의 경우, 수어통역사의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연습 과정에서 세트 구조를 바꾸었다. 원래 배우가 무대 뒤로 들어가 목소리만 나오는 장면이 있었는데, 수어 통역을 전달하기에는 불편한 면이 있었다. 이에 대해 연출님께 말씀드리자 세트와 동선을 바꿔주셨다. 연출 의도를 해칠까봐 조심스러웠지만, 구자혜 연출님이 배리어프리가 시민의식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먼저 문제점은 없는지 여쭤봐 주셨기 때문에 나도 농인의 입장을 대변해 솔직한 의견을 드릴 수 있었다. 
 

남산예술센터와 이음센터(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배리어프리 공연은 문자 통역과 수어 통역을 동시에 제공한다. 두 가지 서비스가 모두 필요한 이유가 궁금하다.

김홍남_ 한국 수어는 음성 언어인 한국어와 문법이 전혀 다르다. 수어에는 조사와 어미가 없고 어순도 한국어와 다르다. 그래서 구화에 익숙하지 않고 수화로만 생활해 온 농인은 문자로 쓰인 한국어를 봐도 의미를 이해하기 힘들다. 청인이 일상적으로 들으면서 터득하는 한국어를 농인이 배우려면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문자 통역과 별개로 수어 통역이 필요하다. 
 

그동안 참여한 공연 가운데 특히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가?

최황순_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한 <7번 국도>는 수어통역사 입장에서 당황스러웠던 작품이다. 젠더프리를 표방하는 작품이었는데, 대본을 읽고 점잖은 남성의 목소리로 상상했던 역할을 여성 배우가 소리를 뻥뻥 지르며 연기하더라. 어쩔 수 없이 계획하고 있던 수화를 다 바꿔야 했다. 게다가 이 작품에서 배우들은 표정과 움직임을 최대한 절제하고 목소리로만 연기했다. 그런데 수어는 손짓과 몸짓, 얼굴 표정을 사용해 의미를 전달하는 언어다. 수어통역사로서 표정을 과장되게 지을 수밖에 없는 상황 때문에 연출님과 의견 조율이 어려웠다. 대한민국연극제에서 공연한 <만주전선>은 공연 중 김홍남 통역사한테 뺨을 맞아서 기억에 남는다. (웃음) 공연 특성상 수어통역사가 교대로 무대에 올라야 했는데, 중간에 효과음으로 나오는 비 소리 만큼은 둘이 함께 표현하는 게 더 효과적일 것 같았다. 문제는 효과음이 끝나면 나 혼자 무대를 내려가야 하는데 그 타이밍을 잡기가 애매했다는 거다. 마침 효과음이 전환되는 타이밍에 맞춰 여자가 남자의 따귀를 짝 때리는 장면이 나오기에, 나도 김홍남 통역사에게 따귀를 맞고 무대를 내려가는 걸로 연출가와 합의했다. 작품의 코믹함을 살린 묘안이었다.

김홍남_ <만주전선>을 공연한 극단 소울씨어터의 남호섭 대표님은 시각장애인으로 이 작품에 직접 출연도 하셨다. 공연은 그가 이동하기 편하도록 배우들이 퇴장하면 무대 밖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 무대 앞에 앉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시각장애인 배우가 충분히 제 역할을 할 수 있게끔 동료 배우들이 협력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이런 게 진정한 배리어프리 공연이구나 생각했다. 게다가 남 대표님은 우리가 하는 수어를 볼 수 없는데도 뭐든 시도해 볼 수 있도록 믿고 맡겨주셔서 감사했다. 어린이 공연 <우산도둑>의 김예나 연출님도 기억에 남는다. 김예나 연출님은 수화 통역사가 극 바깥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극 안으로 들어가 배우들과 같이 뛰고 움직이게 만드셨다. 마치 또 하나의 배우나 소품처럼 말이다. 이렇게 유연한 사고와 열린 마음을 지닌 연출가 분들과 함께 작업한 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배리어프리 공연이 활성화되기 위해 어떤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느끼나? 

김홍남_ 문화예술계 인사가 대통령 초대로 예술의전당에 모여 만찬을 즐기는 자리에 통역을 하러 간 적이 있다. 당시 가수들이 무대에 나와 노래를 불렀는데 극장 측에서 나에게 노래는 통역하지 말고 사회자의 말만 통역하라고 했다. 그 자리에 초대된 농인 예술가는 다른 사람들이 노래를 듣고 박수를 치는 동안 가수의 벙긋거리는 입만 보고 있어야 했다. 또 어떤 공연은 2층 객석에 수백 명의 농인을 초대해놓고 대극장 무대 한 구석에 수어통역사를 덩그러니 세워뒀더라. 당연히 2층에서는 수어가 하나도 안 보였다. 이렇게 농인을 불러놓고 객석의 들러리처럼 만드는 공연은 없어야 한다. 공공극장인 남산예술센터의 선례를 보고 다른 극장들도 배리어프리 공연의 필요성을 인지하면 좋겠다. 

최황순_ 수어통역사들의 인식도 바뀔 필요가 있다. 일상적인 통역만 하던 분들이 연극처럼 전혀 다른 분야의 통역을 의뢰받으면 그에 따라 자신의 수어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연구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고민을 하는 수어통역사가 많지 않은 데다 마땅한 교육 기관도 없다. 수어통역사 자격증 시험이 도입된 지 어느덧 20년 이상이 흘렀고 그동안 많은 수어통역사가 양성되었다. 이제는 단순히 자격증이 있나 없나를 따질 게 아니라 각자 어떤 분야에서 더 전문성을 지니고 있는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럴 땐 이렇게 통역하면 더 좋다고 서로 조언하고 노하우를 나누며 함께 발전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좋겠다. 지금은 수어통역사끼리 서로를 평가하는 걸 금기시하는 분위기라서 안타깝다. 
 

‘잘함’이라는 수어 통역 회사를 설립한 건 어떤 목적 때문인가? 

김홍남_ 수어통역사도 나이를 먹으면 더이상 직접 통역하기 힘든 일들이 생긴다. 예를 들어 십대 아이들의 성에 대한 고민을 담은 청소년극을 우리 같은 어른이 통역하면 작품과 결이 맞지 않는다. 이럴 경우 극단에서도 이십 대 수어통역사를 찾기 마련인데, 이십 대 수어통역사는 이런 일을 소화할 만한 경험이 부족하다. 그런 후배들에게 우리가 지닌 노하우를 전수하고 훈련시킬 수 있는 단체를 만들고 싶었다. ‘잘함’이라는 회사 이름에는 ‘자람’이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최황순_ 우리는 경력이 오래된 만큼 인지도가 있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통역 의뢰가 들어오지만, 이제 막 자격증 따고 사회에 발을 내디딘 젊은 수어통역사들은 일자리를 얻기 힘들다. 하지만 그들을 필요로 하는 현장이 분명 있고, 그들도 현장에서 경험을 쌓아야 앞으로 더욱 성장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끌어주는 선배가 있어야 한다. 김홍남과 최황순이 아니라 ‘잘함’이라는 회사 이름으로 계약을 따면 우리 밑에서 공부하고 훈련한 수어통역사들이 함께 현장에 나갈 수 있다. 특히 연극에서의 수어 통역은 일상적인 수어 통역과 다른 점이 많기 때문에 현장 경험을 쌓는 일이 중요하다. 공연 전문 수어 통역사가 늘어날 때 연극계의 전체적인 수어 통역 수준도 높아질 것이다. 

김홍남_ 여전히 수어통역사의 수요가 많지 않기 때문에 기성세대가 일자리를 꽁꽁 쥐고 놓지 않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후배들에게 내어줄 수 있는 건 내어주고, 함께할 수 있을 때 함께해야 한다. 누군가에게 베풀음을 받은 사람은 다시 또 누군가에게 베푸는 일을 하더라. 그러한 선순환 속에서 수어통역사들이 다함께 성장하고 일자리도 늘어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9호 2020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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