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정 공연 평론가가 매달 하나의 테마를 정해 뮤지컬을 깊이 있게 들여다 보는 칼럼을 연재합니다.

죄르지 리게티 'Requiem' 악보
음악극(music theatre)이란 무엇인가. 현재 음악극에 대한 명확한 규정은 없다. 한국에서는 장르의 경계에 있는 공연들을 광범위하게 칭하곤 한다. 사실 이러한 방식은 음악극의 열린 특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음악극을 범주화시키고 규정하는 것 자체가 중요해 보이지는 않는다. 빠르게 변화해 나가는 다원적인 장르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음악극 창작자들이 추구해 온 바를 보면, 중요한 특징들에 주목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음악 혹은 사운드가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 그리고 실험성을 지닌다는 점이다.
소리에서 시작하는
“실험적인 프로젝트부터 오페라하우스의 공연까지 아우르며, 음악이 필수적인 요소로 활용된 혼종적인 작품들을 포괄한다.” 국제음악극축제를 개최하는 MTN(Music Theatre Now)에서는 음악극을 이와 같이 정의한 바 있다. 광범위하게 보면 아시아 전통극과 그리스 연극, 브레히트의 서사극 모두 음악극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오페라와 뮤지컬도 범주 안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음악극’이라는 명칭을 쓰는 경우, 기존 형식을 계승하기보다 타파하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여기서 음악이 단지 내러티브를 보조하는 수단으로 쓰이는 것이 아니라 주도한다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음악극 작업은 창작 단계부터 소리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소리의 톤, 강도, 길이 등을 이미지나 움직임, 장면 등으로 변환하는 것이다. 관련하여 최우정 작곡가는 실험적 음악극은 “소리의 내재된 표현이 다른 예술 장르와의 결합을 통해 강화되거나 구체화된다”1)고 설명했다.
좁은 의미의 실험적 음악극은 1960년대 아방가르드 예술의 흐름 속에서 창작되기 시작했다. 오페라가 동시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지닌 작곡가들이 반오페라적 움직임을 형성하면서부터다. 여기에는 대자본을 기반으로 제작되는 오페라의 상업성에 대한 반감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내러티브가 아닌 비언어적 표현을 중요하게 활용했다. 당시 대표적인 작곡가인 죄르지 리게티는 구음이나 음향을 통해 감정을 환기시키고, ‘미크로폴리포니’ 같은 새로운 방식을 구현했다. 미크로폴리포니는 반음보다 간격이 좁은 음들을 포함한 수많은 선율이 한꺼번에 연주되면서 만들어지며, 시각적으로 비유하면 마치 하나의 그물망처럼 촘촘하게 얽힌 구조를 형성한다.
재현이 아닌 현존을 추구하며 비언어적 표현을 중시하는 경향은 20세기 연극과도 맥을 같이 한다. 아방가르드 연극 운동은 이성 중심의 서구 문화에 대한 성찰에서 촉구되었고, 전통과의 단절을 선언했다. 그중에서도 앙토냉 아르토는 문명이 자연과 괴리되고 원초적인 생명력을 잃어버린 상황을 언급하며, “신경과 심장을 깨우는 연극”2)인 잔혹극을 주창했다. 그는 논리적인 언어가 아닌, 감각에 작용하는 이미지, 제스처, 소리 등의 사용에 주목했다. 이는 하나의 생명은 다른 생명의 죽음을 전제하는, 자연의 필연성을 떠올리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배태된 20세기 후반의 실험적 연극의 경향은 포스트모던 연극, 포스트드라마, 퍼포먼스 등으로 이어진다. 실험적 음악극 역시 이러한 조류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전개된 것이다.

<공무도하> 공연 장면
<공무도하>, 시간의 흐름을 음악으로
12월 말에 성수아트홀에서 초연된 <공무도하>(신나라 작곡, 김성배 극작·작사, 신동일 연출)는 고전 설화를 실험적 음악극에 담은 작품이다. 배경을 우리 시대로 가지고 왔지만, 현대인의 일상을 구체적으로 재현하지는 않았다. 대신 시대를 관통하는 철학적 질문을 상징적인 가사와 음악으로 전했다. 이 작품은 서사적 성격을 지니기보다 심리적 풍경을 조명하는 서정시에 비유될 수 있다.
극은 퇴임한 후 상실감 속에서 강에 들어가려 하는 백수광부와 이를 말리는 그의 아내 금조의 갈등으로 시작한다. 금조는 결국 백수광부를 막지 못하고, 자신도 강물에 몸을 던진다. 젊은 곽리자고는 출근길에 부부가 실랑이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안 좋았는데, 퇴근길에는 남편을 잃은 금조가 강을 건너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집에 돌아와 아내 여옥에게 겪은 일을 얘기하자, 여옥은 신기하게도 그날 꿈에서 금조를 만났다고 답한다. 여옥은 금조의 영향으로 마음속에서 깨어나는 깊은 슬픔을 느낀다. 그녀는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강으로 가고, 곽리자고는 이를 말린다.
인물들의 이야기는 상징적인 노래로 연결된다. “길을 걸었네, 이유도 모르는 채. 어느 날 꽃이 피어나듯, 어느 날 바람이 불어오듯, 길을 걷고 있었네…” 이러한 가사로 시작하는 이 곡은 인간의 존재 조건에 대한 질문을 담고 있다. 이는 극 중 수차례 반복되며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멜로디와 가사는 같지만, 상황에 따라 편곡이 달라진다. 처음에는 반주 형태로 진행되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악기들의 선율이 드러난다. 마지막에 백수광부 부부가 합창할 때에는 모두 대등하게 연주되는 폴리포니로 발전한다. 이는 잠재되어 있던 감정들이 살아나는 모습이며, 죽음까지 포함한 삶의 생명력을 떠올리게 한다.
젊은 부부는 노부부의 과거 같기도 하지만, 꼭 그렇게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 이처럼 명시적이지 않은 애매모호함은 논리를 벗어나게 하며 사유를 넓혀준다. 여옥이 꿈속에서 금조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그렇게까지 감응하는 것은 곡이 지닌 상징성 때문이다. 우리 모두의 저변에서 파도치고 있는 근본적인 상실과 슬픔을 상기시키는 마음의 울림 같은. 이 곡이 귀에 감기며 관객의 마음을 꿰뚫는다면, 그 외의 음악과 음향은 대체로 낯선 화성과 음색으로 삶의 불가사의를 감각하게 한다.
한편, 노래의 감성은 산책이라는 움직임으로 형상화되었다. 여기서 산책은 인생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무대는 중앙의 강과 배우들이 산책하는 둔덕으로 미니멀하게 표현되었다. 한가운데 매달려 종종 배우들이 손으로 흔들게 하는 시게 추는 가장 중요한 소품이다.

<조지와 함께 한 공원에서의 일요일> 공연 장면. Credit: Martha Swope, via The New York Public Library for the Performing Arts
뮤지컬과 음악극
음악극 창작은 음악에서 시작하기도 하지만, 음악 이외의 요소에서 출발하기도 한다. 이야기의 흐름, 분위기, 캐릭터, 제스처 등을 음악적으로 표현하는 경우다. 물론 이때에도 음악은 보조적인 기능이 아닌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뮤지컬이라고 이야기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작품들도 있다. 한 예로 음악극 <섬: 1933~2019>은 ‘음악극’이라는 명칭을 달았지만, 이데일리 문화대상에서 뮤지컬 부문의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여기서 뮤지컬의 장르적 특징에 대해 환기해 볼 필요가 있다.
<씨왓아이워너씨>, <베르나르다 알바> 등의 작사·작곡·극작가인 마이클 존 라키우사는 2011년 충무아트홀에서 열린 제5회 국제뮤지컬워크숍에서 뮤지컬을 여러 종류가 결합된 생물에 비유한 적 있다. 연극, 오페라, 무용, 엔터테인먼트 등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융합 장르라는 점에서 그렇다. 더 나아가 생각해 보면, 그런 만큼 뮤지컬은 진화가 굉장히 빠르기도 하다. 말하자면 경계가 유연하게 열려 있는 생물과 같아서, 외부와 끊임없이 교섭하며 변화해 온 것이다.
관련하여 점묘법의 화가인 조르주 쇠라를 소재로 한 <조지와 함께 한 공원에서의 일요일>을 떠올릴 수 있다. 스티븐 손드하임은 쇠라의 붓 터치를 스타카토나 피치카토로 표현했다. 그리고 반복 속에서 미세한 변주가 이루어지는 미니멀리즘 음악 스타일을 활용했다. 이는 아방가르드 음악의 기법을 대중예술로 끌어들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 창작뮤지컬처럼 역동적인 흐름을 보여주고 있는 곳이 있을까. 판소리를 비롯한 전통연희 요소들을 활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EDM과 디제잉을 통해 관객과의 소통을 극대화하기도 한다. 그런 만큼 음악극과의 경계를 세우기보다 인접 장르를 흡수하며 외연을 확장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앞으로도 유연하게 미학적으로 나아가는 동시에 시대정신도 날카롭게 담은 작품들을 기대해 본다.
[1] 최우정, 「실험적 음악극 그 대안적 가능성」, 『ITI 공연예술저널』, 2012년 8월호, 49쪽.
[2] 앙토냉 아르토, 『연극과 그 이중』, 이선형 옮김, 지만지드라마, 2021, 153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