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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PHOTO LETTER] 사진으로 떠나는 여행, 이정수의 쿠바 여행기 [No.200]

글 |이정수 사진제공 |이정수 2020-05-30 3,681

사진으로 떠나는 여행

 

전 세계에 퍼진 코로나19로 한 달 넘게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되고 있는 지금,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배우들이 언젠가 여행지에서 담아온 풍경을 공개합니다. 자유롭게 어디론가 떠날 수 있는 그날이 다시 오길 바라며. 

 

질문과 답을 찾는 순간

이정수의 쿠바 여행기

 

 

#1

이런저런 이유로 쿠바에 왔다. 멀고먼 중남미에 위치한 미지의 나라. 어릴 적 보았던 다큐멘터리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과 체 게바라의 나라. 몇 시간을 고민하다 왕복 티켓을 끊었고, 부랴부랴 이틀간 준비를 하곤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멕시코시티에서의 7시간 환승 대기를 포함해 25시간 정도가 걸렸다.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치는 여행을 할 때면 생각하게 된다.

“대체 왜 거길 가려 하지?”

하지만 여행 중 그 답을 찾는 순간을 만나기도 한다. 

“아! 이걸 위해 내가 여길 왔구나!”

내가 최고라 부르는 여행의 기쁨은 이러한 자각의 순간이다.

 


 

#2

어느 날, 해질녘에 카메라를 들고 말레꼰 해변을 걸었다. 해변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뛰는 사람, 술을 마시는 사람, 낚시꾼, 가족과 연인들. 그중 한 남자와 여자를 만났다. 남자는 은퇴한 선원이었고 여자는 그의 이웃이라 했다. 어설픈 스페인어와 영어를 섞어 신나게 대화를 하던 중 여자가 말했다.

“음악 좋아해?”

“어 당연하지”

“우리 집에 갈래, 음악 듣고 춤추러?”

“아…”

고민했다. 안전할지 아닐지 알 수 없었고 뭣보다 이 먼 타국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을 무턱대고 따라간다?


 


 

#3

따라갔다. 십 여분 걸어 도착했고 곧 그녀의 남편이 왔다. 그리고 남편의 형님은 음악을 선곡해 틀었다. 우린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추고 어설프게 노래를 따라 불렀다. 식탁에 홀로 앉아 그녀가 차려준 저녁밥을 먹는데 아무래도 음악의 볼륨이 너무 컸다. 혼자 생각했다.

‘이러다 싸움 나는 거 아닐까?’

아니나 다를까 흥분한 이웃 사람이 찾아왔다. 같이 춤을 추러. 신나게 놀다 숙소로 가려는데 그녀의 남편이 말했다.

“내일 우린 해변에 놀러 갈 거야. 같이 갈래?”

“어? 어, 그래.”

난 얼떨결에 알겠다고 했고 우린 다음 날 아침 8시에 만났다. 그들이 잡은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택시를 타고 40분쯤 걸려 해변에 도착했다. 

아! 카리브의 해변!

해변엔 아직 사람이 없었다. 우린 아침 9시부터 해변에 누워 럼과 콜라를 섞어 쿠바 리브레를 만들어 마셨다. 이윽고 양옆으로 빼곡히 해수욕객들이 찼다. 그들은 저마다 자신의 방법으로 태양과 바다를 즐겼다. 음악을 좋아하는 쿠바인들은 아예 스피커를 들고 다니곤 한다. 누군가 틀어 놓은 음악을 들으며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려 춤을 췄다. 아! 이토록 흥나는 남미의 해변이라니. 내 생애 최고의 물놀이였다.


 


 

#4

몇 주 동안 쿠바의 다른 도시를 여행하다 마지막 날 밤 다시 그들을 만났다. 소리를 지르며 끌어안고 반겨주었다. 그들은 음식까지 준비해 가며 날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그 집에서 음악을 듣고 춤을 추었고 헤어짐의 섭섭함을 고백했다. 그녀가 말했다.

“네가 다음에 다시 올 땐 우리 집이 더 근사하게 바뀌어 있을 거야.”

지극히 불안정한 세상에서, 내게는 가장 불안정한 여정에서 만난 이들이 다음을 말하고 있다. 어떤 약속보다 빈약하고 무의미하지만 가장 따뜻했다.
 

 


 

#5

그간 여행을 하며 수많은 약속을 나누었다. 사실 그중 지켜진 것은 몇 없다. 우린 서로 알고 있다. 우리가 나눈 약속의 빈약함을. 그렇다고 그것이 무의미하진 않다. 친구들과 함께했던 짧은 시간 동안 “아! 이걸 위해 내가 여길 온 거구나!”라고 자각한 수많은 순간들을 만났다. 

나는 그 순간을 기쁨이나 희열이란 말로 간단히 적을 수 없다. 내 삶 전체가 뒤바뀌는 것 같은 엄청난 순간들이었다.

그들에게 물었었다.

“왜 나에게 집에 가자고 권한 거야?”

“넌 특별해 보였거든.”

난 사실 그 말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 특별하다는 말이 가진 허술함과 남루함을 잘 안다. 세상 뭣도 특별하지 않다. 이와 동시에 세상의 모든 건 다 특별하다. 나도 그들에게, 그들도 나에게 특별해졌다.

“무차스 그라시아스 미 아미고스!”

찍은 사진을 인화해 보내줘야겠다. 부디 쿠바에 안전히 도착할 수 있길.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00호 2020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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