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어 더 뮤지컬> 오승훈·정휘·문성일·임준혁
서로를 찾아낸 닮은꼴
불안한 청춘들의 성장담. 2년 만에 돌아오는 <베어 더 뮤지컬>은 초연 이후 줄곧 캐스팅에 뜨거운 관심이 쏠리는 작품이다. 보수적인 가톨릭계 고교생들을 찾아온 혼란의 소용돌이 그 중심에 있는 피터 역의 오승훈과 정휘, 제이슨 역의 문성일과 임준혁은 각각 동갑내기라는 사실. 첫인상은 서로 다르지만 알고 보면 닮은 부분이 더 많다는 네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한 작품에서 만나기까지
<베어 더 뮤지컬>(이하 <베어>)은 어떤 점에 끌렸나요.
정휘_ 저는 세 번째 시즌부터 참여했지만, 초연과 재연을 모두 챙겨 봤어요. 제가 생각할 때 <베어>는 사람들의 가치관에 영향을 주는 작품이거든요. 관객 입장에서 공연을 보다 직접 참여해 보니 작품이 지닌 메시지가 더욱 크게 다가와서 정말 좋아하는 뮤지컬이 됐죠. 동성애를 자극적인 소재로 소비하는 게 아니라, 깊은 감정을 다루면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는 점이 좋아요.
임준혁_ 이 작품의 뮤지컬 넘버가 지닌 힘이 정말 크다고 생각해요. 각각의 인물들이 부르는 노래 안에 그들이 느끼는 감정이 다 녹아 있거든요. 사실 지난 시즌 공개 오디션 공고가 떴을 때만 해도 뮤지컬 경력이 한 작품뿐이었던 터라 감히 제이슨 역에 지원해 볼 엄두를 못 냈어요. 킹카 주인공에 도전하는 것은 제가 생각해도 염치없이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지 못한 큰 역을 맡게 된 거죠. 제이슨이 성장통을 겪으면서 느끼는 혼란 때문에 지난 시즌에 공연하는 내내 몸과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그럼에도 또다시 참여하는 이유는 힘들었던 기억을 뛰어넘을 만큼 너무나 사랑하는 작품이기 때문이에요.
이번 팀에 합류한 배우들 가운데 의외다 싶은 멤버가 있었나요.
문성일_ 승훈이는 지금까지 계속 연극만 했잖아요. 저도 한동안 연극을 많이 했으니까 언젠간 같이 공연하겠지 했는데, 이렇게 뮤지컬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그리고 휘도 다른 의미에서 의외의 인물이에요. 이 세 사람 중에서 휘랑 오며가며 많이 마주치기도 했고, 이전에 얘가 공연하는 것도 꽤 많이 봤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같이 작업을 해보니까 성격이 저랑 비슷하더라고요. 서로 코드가 잘 맞는다고 해야 하나. 그게 저한테는 의외였어요.
정휘_ 성일 형이 제 공연을 은근히 많이 봤더라고요. 감동! 전 형만큼 공연을 챙겨 보진 못 했지만, 대신 인상적인 기억이 하나 있어요. 연극 <모범생들>에서 형이랑 다른 시기에 같은 역할을 한 적이 있거든요. 그때 우연히 유튜브에서 형이 나온 연습 영상을 보게 됐는데, 제가 서민영이란 역할에서 표현하고 싶었던 걸 딱 보여주는 거예요. ‘이 형 뭐지?’ 싶었죠. 근데 이번에 작품을 준비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눠보니 왜 그랬는지 알겠더라고요. 서로 비슷한 점이 너무 많아요. 이야기를 하다 보면 쉽게 공감대가 형성되죠.
승훈 씨는 첫 뮤지컬 도전이라 대부분 예상 못한 캐스팅일 것 같은데, 예전부터 뮤지컬을 하고 싶어 했다고 들었어요.
오승훈_‘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은 엄연히 다르잖아요. 근데 그걸 알면서도 자꾸 뮤지컬에 마음이 가는 거예요. 그 마음을 확 키워준 게 <베어> 공개 오디션 소식이었고요. 노력하다 보면 언젠간 기회가 올 거란 마음으로 이미 그 전부터 노래 레슨을 받고 있었거든요. 저하고 휘는 연극 <에쿠우스>를 하면서 친해졌는데, 이번 오디션을 준비할 때도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오디션 공고를 보고 휘한테 전화해서 내가 이 작품에 지원해도 될지 물어봤더니 자기 일처럼 오디션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더라고요. (문성일_ 휘, 힘이 있구나? 임준혁_ 알고 보면 큰손?) 아니, 그게 아니라….
정휘_ 말을 이상하게 와전시키지 마세요. (일동 웃음) 승훈이가 <에쿠우스> 때부터 뮤지컬을 하고 싶단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그 마음을 아니까 오디션 결과가 어떻든 일단 한번 지원해 보라고 한 거죠. 뮤지컬이 하고 싶어서 노래 레슨을 받는다더니 실력이 진짜 많이 늘었더라고요. 연습실에서도 점점 실력이 느는 게 눈에 보이고요. 얼마 전에 연습하다 “승훈아, 너 노래 진짜 많이 늘었다” 그랬더니 그 이야기에 눈물을 확 터뜨렸는데, 그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으면 이럴까 싶어 마음이 짠했어요. 연습실에서 저 좀 그만 귀찮게 했으면 좋겠지만요. (웃음)
제이슨 역 두 분도 연습실에서 서로 많이 귀찮게 하고 있나요?
문성일_ 저희는 연습실에서 가까이 붙어 있지 않고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요. 연습실 거울로 반사해 보면서 ‘저놈이 지금 뭐하고 있나’ 서로 상태 체크를 하는 식이죠. 혹시라도 상대가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이면 얼른 가서 ‘오구오구’ 해주고요. 제가 아까 휘랑 닮은 점이 있다고 했잖아요? 준혁이랑도 성격적인 면에서 비슷한 부분이 있어요. 얘가 첫인상은 쾌남도 그런 쾌남이 없는데, 알고 보면 섬세하고 부드러운 사람이에요. 상대에게 무슨 말을 하려면 수백 번 생각하고 말하는 타입이죠.
그런데 네 사람은 신기할 정도로 그동안 작품에서 만난 적이 드물어요. 꾸준히 공연하다 보면 한두 번쯤은 만나기 마련인데 말이죠.
임준혁_ 저는 성일이랑 작품을 해보고 싶었어요. 배우들 중에 은근히 동갑내기가 많지 않거든요. 이번 <베어> 팀에 성일이가 있다는 걸 알고 동갑 친구 한 명 얻을 수 있겠다 싶어 기뻤죠. 저희가 예전에 곱창집에서 마주친 적이 있는데….
문성일_ 서로 공통적으로 아는 지인이 있어서 둘이 곱창을 먹고 있을 때 잠깐 인사를 나눴어요. 그러고 나서 1~2년 만에 <베어> 프로필 사진 촬영장에서 만났는데, 준혁이가 저를 보자마자 반말로 “야, 성일아, 우리 진짜 오랜만이다!” 그러는 거예요. 되게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저는 당황해서 “네…?” 그랬죠. (일동 웃음) 나와는 다르게 친화력이 굉장히 좋은 타입인 듯싶어 부러웠어요.
서로 다른 곳에서 꿈을 이뤄온 시간들
십 대들의 이야기를 다룬 공연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옛날 생각이 떠오를 것 같아요. 지금까지 살면서 잊지 못할 성장통을 겪었던 시기는 언제인가요.
오승훈_ 제 십 대 시절은 농구에 대한 기억밖에 없어요. 초등학생 때 시작해서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쭉 농구를 했거든요. 단순한 취미 활동이 아니라 이걸 직업으로 삼겠다는 마음으로요. 그런데 고등학교 때 잦은 부상을 당하면서 네 번이나 수술하게 됐고, 앞으로 선수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결국 스물한 살 때 농구를 그만두게 됐는데, 그 결정을 내리기까지 일 년이 너무너무 힘들었어요. 제가 있었던 체육계가 무척 엄격했던 탓에 그때까지만 해도 습관처럼 뭐든 혼자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주위에 도움을 청할 줄 알았다면 그렇게까지 힘들진 않았을 텐데. 돌이켜보면 학창 시절의 저는 행복하지 못했지만, 힘든 시기를 겪었던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임준혁_ 저도 고3 때가 제일 힘들었어요. 그때 처음 연기에 대한 꿈을 갖게 됐는데, 부모님이 무척 심하게 반대하셨거든요. 그런 꿈을 꾼다는 것 자체가 용납이 안 되는 것처럼요. 이전에는 집에서 말썽을 피우는 아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부모님 입장에서는 자식이 일시적인 사춘기를 겪는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계속 배우를 하고 싶다고 고집을 피우면서 아버지와의 갈등이 점점 깊어졌죠. 저도 아버지도 자기 뜻을 굽히지 않아서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았고, 저는 스무 살이 되자마자 집을 나와 숙소 생활이 가능한 곳을 찾아다녔어요. 그게 제가 살면서 유일하게 아버지의 뜻을 거스른 건데,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배우가 됐다는 사실은 조금 뿌듯해요.
짧은 시간에 강렬하게 배우의 꿈에 사로잡힌 셈이네요.
오승훈_ 과장하는 게 아니라 제가 학교를 다니던 때까진 체육계가 무척 엄격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농구를 시작했으니까 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깨닫기 전에 강한 사람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됐죠. 십 대 시절 내내 보고 듣고 느꼈던 감정들을 마음속에 꾹꾹 눌러 놓고 살았어요.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고 제 자신을 속이면서요. 농구를 그만두고 나서 체육계를 아예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에 근처 연기 학원에 가게 됐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연기가 제 탈출구가 되어줄지는 몰랐어요. 근데 다양한 배경을 지닌 인물들의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는 게 누구보다 제 자신한테 위로가 되더라고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하게 됐죠.
제작사 공식 SNS에 올라온 ‘똑딱똑딱 초터뷰’를 봤는데, ‘어떤 학생이었나요’라는 질문에 정휘 씨만 인기 많은 학생이었다고 답했던데요?
문성일_ 휘는 진짜 네 자신을 많이 사랑하는구나. 5초 안에 그렇게 대답하기 힘든데.
임준혁_ 혹시 그랬던 건가. 하교 후에 애들이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든가, 밸런타인데이 때 일 년치 초콜릿을 받았다든가.
정휘_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아이참.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하긴 민망하지만,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면 어렸을 때 자만심이 강했어요. 제 잘난 맛에 사는 학생이었달까. 도시에서 떨어진 지역에 있는 예고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당시 학교 환경이 저를 좀 자만하게…. (문성일_ 그럼, 그럴 수 있어, 그럴 수 있지.) 선생님들께 항상 칭찬받고, 후배들이 멋있다고 해주니까 제 자신이 되게 잘난 줄 안 거예요. 나중에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깨닫고 나서 성장통을 겪었죠.
임준혁_ 저는 학창 시절에 휘랑 완전 정반대였어요. 자존감이 높지 않았거든요. 특히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했어요. 고3 때 키가 한 번에 확 자라면서 이목구비를 되찾게 됐는데(웃음), 그 전까지는 남들의 주목을 끌었던 적이 없었어요. 누군가 저한테 먼저 다가와서 말을 걸어주는 게 신선하게 느껴질 정도였죠. 한창 타인의 시선에 예민한 시기에 저보다 상대의 기분을 먼저 살피는 게 습관이 돼서 그런지 지금도 여전히 그래요. (문성일_ 넌 그냥 성격이 착해서 그런 거야.) 넷 중에 내가 제일 착하긴 하지. (일동 웃음) 제가 이번 <베어>를 공연하면서 바라는 건 사실 하나예요. 공연이 끝날 때까지 어느 누구의 마음도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다른 분들도 이번 공연에서 바라는 게 있다면 뭘까요.
문성일_ 준혁이가 연기하는 제이슨은 피터를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느낌이 있어요. 얼마 전에 준혁이가 런스루를 돌았는데, ‘얘는 연기에 자기 성향이 묻어나는구나’ 싶더라고요. 초연 때 제가 본 제이슨과는 굉장히 다른 느낌이라 새롭게 다가왔어요. 저랑 같은 역할이라 무대에 같이 설 일은 없지만, 준혁이가 연기하는 제이슨이 많이 기대돼요. 저 역시 관객들의 기대에 어울리는 제이슨을 만들어냈으면 좋겠고요.
정휘_ 준혁 형이 피터를 많이 사랑하는 제이슨이라면, 성일 형은 피터에게 쉽게 공감해 주는 제이슨이에요. 미묘하면서도 큰 차이가 있죠. 이번 시즌은 공연 기간이 꽤 길어서 중간에 아무 사고 없이 잘 마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번에 함께할 제이슨들에게 제가 어떤 피터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지난 시즌보다 깊어진 감정을 보여주고 싶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01호 2020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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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베어 더 뮤지컬> 오승훈·정휘·문성일·임준혁, 서로를 찾아낸 닮은꼴 [No.201]
글 |배경희 사진 |배임석 2020-06-12 9,552sponsored adv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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