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에 좌우되지 않는 법
홍광호
20년간 누구보다 선명하게, 그리고 누구보다 커다랗게 자신만의 궤적을 그려 온 남자. 뮤지컬배우 홍광호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나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삶의 단순한 진리다. 노력으로 준비되어 있는 자는 결코 운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사실 말이다.
“뮤지컬에 대한 확신이 흔들린 적은 없어요”
올해 데뷔 20주년을 앞두고 있어요. ‘20’이란 숫자에 어떤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이렇게 말하면 김빠지겠지만 저는 기념일에 의미를 두는 편이 아니라 솔직히 큰 감흥은 없어요. 타고난 성격이 그런 것 같아요. 왜, 공연도 몇 주년 기념 많이 챙기잖아요? 제가 지금 참여하고 있는 <지킬 앤 하이드>를 예로 들면 15주년이었을 때 ‘아, 시간이 그렇게 흘렀구나…’ 하는 정도의 인상을 받았달까. (웃음) 데뷔 20주년이란 이야기에도 ‘내가 뮤지컬배우로 스무 번의 일 년을 보냈구나’ 새삼 실감했을 뿐이에요. 물론 그런 생각은 하죠. 이렇게 오래도록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배우 홍광호에게 무대는 고등학생 때부터 꿈꿔 온 일이니까, 데뷔 체감 시간은 20년보다 더 오래된 것처럼 느껴질 것 같아요.
맞아요, 사실 제가 생각하는 제 데뷔작은 98년에 공연한 <뜻대로 생각하세요>라는 연극이에요. 계원예고 1학년 때 참여한 첫 워크숍 공연이었는데, 아직까지 강렬한 경험으로 남아 있어요. 2학년 때 신입생 환영회에서 공연한 연극 <우리 읍내>도 생생하게 남아 있고, 고3 때 중앙대 연극학과에 특차로 붙으면서 첫 외부 공연을 하게 된 것도 잊지 못해요. 연말에 학교에서 졸업생들을 모아 소년원이나 양로원에 가서 공연했는데, 저는 대학에 미리 붙어서 거기 막내로 참여하게 됐거든요. 그때 공연한 작품이 <갓스펠>이었고, 제가 맡은 캐릭터는 순수한 청년 ‘라마’였어요.
학창 시절에 공연하면서 정말 행복하다고 느꼈던 때가 있어요? 행복이라는 게 손에 잡힐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요.
행복한 순간이라… 배우가 공연을 할 수 있다는 건 분명 행복한 일이에요. 그런데 예전에는 공연하는 동안의 행복보다는 공연이 끝났을 때의 공허함을 더 크게 느꼈어요. 학교 다닐 때는 한 작품을 준비하는 시간이 훨씬 길었으니까 그 공허함이 훨씬 컸죠. 몇 달 동안 한 작품을 분석하고, 연습을 반복하면서 지냈는데, 한두 번만 공연한다는 게 너무 허무했어요. 이렇게 열심히 오랫동안 준비한 걸 이제 못 한다고? 공연을 마치고 나면 며칠에서 몇 주 동안은 번아웃 상태가 됐던 것 같아요. 공연이 제 안에 큰 후유증을 남겼던 거죠. 공연하는 배우로서 필연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감정인데, 저는 그걸 학교 다닐 때 일찌감치 깨달았어요. 지금은 익숙해졌지만요.
그래도 학창 시절에 참여했던 공연들이 오히려 더 애틋한 면이 있죠? 대학생 때 했던 학교 공연 중에 가장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은 건 뭐예요?
대학교 1학년 때, 4학년 선배들이 졸업 공연으로 <카르멘>을 했어요. 그때 남자 주인공 돈 호세를 맡았던 사람이 하정우 형이에요. 당시 이름은 김성훈이었죠. 아무튼, 공연에 앙상블이 필요해서 1학년들도 참여했어요. 제가 맡은 역할은 광장 병사 1이었는데, 동기들 중 유일하게 서너 줄짜리 대사가 주어진 거예요. 한 줄도 아니고 몇 줄의 대사라니 그때는 엄청난 장문처럼 느껴졌죠. 지금 생각해도 아주 자랑스러운 일이에요. (웃음) 그리고 그 공연이 특별한 게, 제가 오디션에서 떨어진 <명성황후> 런던 공연 조연출 형이 리허설을 보러 왔어요. 알고 보니 형이 중앙대 졸업생이었더라고요. 후배들 응원 차 학교에 왔다가 저를 보시고선 <명성황후> 앙상블에 결원이 두 명 생겼으니까 학교 공연이 끝나면 연습에 참여하라고 하셨어요. 저는 당연히 좋다고 했죠. 그때 저랑 같이 팀에 합류한 다른 한 명이 임기홍 형이에요. 형이 저보다 일 년 먼저 데뷔했나? 둘 다 신인일 때라 가깝게 지냈어요. 런던에 공연하러 갔을 때는 둘이 숙소 방도 같이 쓰고. 형이랑 추억이 많죠.
대학생 신분에 데뷔작으로 해외 공연을 가게 됐으니 얼마나 설렜을까요? 런던에서 공연하는 매일매일이 신났을 것 같아요.
신났죠. 런던에서 처음 <라이온 킹>을 보고 나서 ‘나는 이다음에 커서 심바를 할 거야!’라는 꿈도 품고. 그때 매일 밤 ‘Endless Night 끝없는 밤’를 들었어요. (웃음) 근데 다른 것보다 제가 돈을 받으면서 공연한다는 게 제일 신났어요. 학교 공연은 어떻게 보면 제가 학비라는 돈을 내면서 공연한 거잖아요? 근데 이제는 공연할 때마다 개런티를 받는다는 거예요. 그때 제 개런티가… 오래전 일이니까 밝혀도 되겠죠? 1회 공연으로 받는 돈이 3만 5천 원이었는데 학생이었던 저한테는 그게 굉장히 큰 돈처럼 느껴졌어요. 세상에, 2회 공연을 하면 하루에 7만 원을 벌 수 있다고? 우와! 앞으로 평생 뮤지컬해서 먹고 살 수 있겠다 싶었죠.
벌써 반평생을 뮤지컬배우로 살고 있으니 그때 그 말이 진짜 이루어진 셈이네요. 지금 같은 뮤지컬배우가 될 거란 확신은 언제 처음 가졌어요?
고등학교를 다니며 일찌감치 뮤지컬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나는 뮤지컬배우가 될 거야, 뮤지컬이 내가 갈 길이야, 그렇게 생각했죠. 뮤지컬이 생소할 때였는데도요. 또래 애들보다 목적지를 빨리 정한 건데, 신기하게도 아직까지는 그 확신이 흔들린 적은 없어요. 앞으로 뮤지컬배우로서 제게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그날이 언제가 됐든 무대에 서는 동안에는 지금처럼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지킬 앤 하이드>는 제게 관객을 선물해 줬어요”
20주년 기념 화보 촬영을 위해서 인생작을 골라 달라는 어려운 숙제를 드렸어요. 답변이 도착하기 전까지 광호 씨가 과연 어떤 작품을 뽑을지 점쳐 봤는데, <지킬 앤 하이드>는 리스트에 있을 거라고 확신했어요. 이십 대에 쉽게 얻기 힘든 기회를 줬으니까요.
저는 <지킬 앤 하이드> 하면 군대에서 혼자 노래 연습을 했던 게 생각나요. 이십 대 초반에 일찍 군대에 갔는데, 군악대 소속이라 건물에 악기 연습실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하루 일과를 마친 군인이 누가 연습실에 가겠어요. 하지만 저는 언젠간 ‘지킬’을 할 거란 마음으로 연습실에 갔어요. 제가 기억하기론 <지킬 앤 하이드> 2008년 오디션 경쟁률이 꽤 치열해서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내가 정말 이걸 하는 건가?’ 실감이 안 났어요. 꿈에 그리던 작품을 하게 된 거니까 연락을 받자마자 너무너무 감사하다고 그랬죠. 돌이켜 보면 <지킬 앤 하이드>로 저라는 배우를 좋아해 주시는 많은 관객을 얻었어요. 참 감사한 일이에요.
신춘수 대표님이 나중에 별다른 말씀은 안 하셨나요? 예를 들면 지킬/하이드 역에 광호 씨를 캐스팅한 게 당시로선 엄청난 모험이었다 같은. (웃음)
아니요, 모험이 아니었을 거라. 하하. 농담이고요, 당시에 저는 작품 경험이 몇 편 없었는데 어떻게 그런 큰 결정을 내리셨는지 모르겠어요. 그저 감사할 따름이에요.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촬영에 <스위니 토드>를 빠뜨렸네요? 신 대표님이 저를 처음 보신 작품이 <스위니 토드>예요. 저희 소속사 송혜선 대표님이랑 같이 일하게 된 것도 <스위니 토드> 덕분이고요. 송 대표님께서 그 공연을 보시고선 바로 같이 일하자고 하셨거든요. 사실 저는 그때 ‘토비아스(고아 소년 역)’로 나름 파격적인 연기 변신을 한 거였는데, 당시 관객들 중 저라는 배우를 아는 분들이 거의 없어서 다들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웃픈 사연이 있어요.
얼마 전에 인터뷰 준비 차 다시 <지킬 앤 하이드>를 봤는데, 남자 배우가 좌중을 휘어잡는 퍼포먼스를 보여 주기에 최적의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연기하는 입장에선 어때요?
처음 <지킬 앤 하이드>를 봤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어요.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조승우 형이 지킬/하이드, 김소현 누나가 엠마, 소냐 누나가 루시로 나온 게 저의 첫 관극이었는데, 공연을 보는 내내 맘속으로 ‘와! 대단하다’를 외쳤어요. 심지어 코엑스 오디토리움은 뮤지컬 전용 극장이 아니라서 무대랑 객석 간의 거리가 상당히 멀었거든요. 근데도 무대에서 전해지는 에너지가 어마어마했어요. 그리고 그때의 강렬한 첫인상이 지금까지 이 작품에 대한 확신으로 자리 잡고 있어요. <지킬 앤 하이드>는 꽤 오랜 기간 참여했음에도 지금도 매회 공연 직전까지 긴장하고, 또 매회 기대감을 갖게 하는 신기한 힘을 가진 작품이에요.
그다음으로 뽑은 <오페라의 유령>도 세계 최연소 ‘팬텀’이라는 무거운 타이틀을 안겨 준 작품이죠. 1년이란 장기 공연에 출연하면서 한 작품의 두 남자 주인공을 차례로 맡았다는 것도 이례적인 일이었고요.
2002년에 <명성황후>를 끝내고 나서 처음 번 돈으로 다시 런던에 공연 여행을 갔어요. 그때 봤던 작품 중 하나가 <오페라의 유령>이에요. 당시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종류의 공연이었으니까, 학생인 제 눈엔 무대 연출이 얼마나 근사했겠어요.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음악도 정말 좋았고요. 사실 <오페라의 유령>은 2001년 한국 초연 오디션에 지원했는데, 당시 제가 오디션에 떨어진 수많은 작품 중 하나였어요. 그런데 그로부터 거의 10년이 흘러서 이 작품을 만나게 된 거예요. 그 기회가 너무나도 감사했죠. 특히 저한테는 첫 장기 공연이었기 때문에 많은 걸 배웠어요.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컨디션 관리를 할 수 있는지, 공연 전에 뭘 먹어야 하고 뭘 먹으면 안 되는지, 배우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자연적으로 습득하게 해 줬죠. 지구력도 얻었고요. <오페라의 유령>은 당장 제 계획에 없지만, 언젠가는 다시 참여할 마음이 있어요.
광호 씨는 일 년에 한두 작품만 하다 보니 가능한 한 새로운 작품을 선택하려는 걸로 알고 있어요. 한데 <맨 오브 라만차>는 지금까지 세 번이나 참여했더라고요. 이 작품에 담긴 ‘꿈과 이상’에 대한 메시지에 크게 공감하기 때문일까요?
저는 스스로 생활 방식이 보수적인 편이라고 생각해요. 일상에서는 도전보다 안전을 선택하려고 하거든요. 그런데 공연할 때는 그 반대가 되려고 해요. 최근 작품을 예로 들면, 지난해 봄에 초연한 <그레이트 코멧>은 저한테 엄청난 도전이었어요. 난생 처음 보는 악기를 처음부터 차근차근 배워야 했고, 이전에 보여 준 적 없는 모습을 끄집어내야 했으니까요. 아마 이런 도전을 하는 게 <맨 오브 라만차>가 제게 준 메시지 때문인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재연은 저한테 현실에 안주하는 것과 같은 선택인데, 그보다는 가슴 설레는 도전을 하자는 저의 이상을 따르고 싶은 거죠. 아, 그렇다고 재연이 쉬울 거라고 생각하면 오해예요. 절대 그렇게 생각하시면 안 돼요, 절대! 예전에 했던 작품에 다시 참여하게 됐을 때, 그 이전보다 발전된 실력을 못 보여 주는 것처럼 관객들을 실망시키는 일은 또 없는 것 같아요.
<맨 오브 라만차>를 처음 했을 때가 서른한 살이었으니까, 이 작품도 이른 나이에 빠르게 만났다고 할 수 있죠. 실제의 나와 극 중 인물의 나이 차에서 오는 어려움은 없었나요?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하는 게, <맨 오브 라만차>는 세르반테스가 극중극으로 괴짜 노인 돈 키호테를 연기하는 거잖아요. 극중극이란 장치는 사실적이지 않은 연기를 허용하기 때문에 연기하는 입장에서 오히려 더 재미있었어요. 물론 나이를 먹을수록 세르반테스를, 돈 키호테를 더 많이 이해하게 될 거예요. 배우가 나이를 먹고 경험을 쌓는다는 건, 무대에서 진짜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순간이 많아지는 거더라고요. 예전에는 어떻게든 캐릭터와의 접점을 찾으려고 애썼다면, 이제는 자연스럽게 겹쳐지는 점들이 많아요. 인생을 살아갈수록 삶에서 얻은 재료가 많아지니까 그런 거겠죠.
“언젠간 다시 해외 무대에 설 수 있지 않을까요”
이번에 광호 씨의 출연작을 찬찬히 되돌아보면서 참 드라마틱한 성장담을 가진 배우란 생각이 들었어요. 2006년 <미스 사이공> 공연을 생각해 보면 특히 그렇죠. 공연 도중 역할이 갑자기 바뀌었는데, 그 기회를 자기 걸로 만들었으니까요.
당시 저는 앙상블로 공연에 참여하면서 크리스 역 커버를 맡았잖아요. 어릴 때였으니까 내심 한 번 정도는 크리스로 무대에 설 기회가 있으려나 기대했어요. 하지만 마이클 리 형이 한 번도 아프질 않더라고요. (웃음) 그러다 폐막을 일주일쯤 앞뒀을 때였나? 1막 공연 중 스태프들이 저를 무대 뒤로 부르더니 갑자기 옷을 막 갈아입히는 거예요. 마이크도 바꿔 주고. 그리고선 이제부터 크리스를 하라는 거죠.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저한테 할 수 있겠냐고 물어봐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그렇게 정신없이 무대로 나갔던 그때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제가 생각해도 진짜 ‘극적’이었어요.
<미스 사이공>은 2014년에 웨스트엔드 진출이라는 새로운 길을 열어 준 작품이기도 하잖아요? 한국 배우로는 최초였으니까 특별한 경험이 아닐 수 없는데, 그 시간들로부터 어떤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 만약 누군가 저한테 유명 인사와 대화할 기회를 주겠다고 하면, 저는 캐머런 매킨토시(프로듀서)를 만나게 해 달라고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런던에 있는 동안 매킨토시랑 같은 극장으로 출근을 한 거예요. 한 번만 만나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사람이랑 같이 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다니 신기했죠. 물론 늘 그렇듯, 실제로 만났을 때는 제가 상상했던 것과 당연히 달랐지만요. (웃음) 그리고 <미스 사이공>을 탄생시킨 클로드 미셸 쇤베르그(작곡가), 알랭 부빌(작가)의 노트를 받으며 연습할 수 있다는 사실도 무척 특별했어요. 그들이 어떻게 작업하는지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이보다 더 값진 경험이 또 있을까 싶더라고요. 그때 하나 놀라웠던 점은 세 분 다 지긋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작을 개발하고 있다는 거였어요. 어디선가 꾸준히 워크숍 공연을 하면서. 이미 큰 업적을 거둔 대가도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사실에 놀라고, 관객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또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실감했어요.
그때의 경험으로 해외 활동에 대한 가능성을 생각하게 되진 않았나요?
사실 런던에서 돌아온 직후에는 다시 해외에서 활동하고 싶지 않았어요. 큰 기회였고 감사한 일이었지만, 이런 경험은 한 번으로 충분하다 싶은? (웃음) 심지어 25주년 공연에 참여한 거라 공연 실황 음반도 나오고 DVD로도 발매됐으니까 작품 하나로 경험해 볼 건 다 해 봤다 싶었죠. 그런데 시간이 흐르니까 조금은 그때가 그립기도 해요. 흔히 런던은 날씨가 안 좋다고 하는데, 저는 런던의 봄여름 날씨를 좋아했거든요. 집 앞 길 건너에 있었던 하이드 파크도 그립고, 로열 알버트 홀에서 공연도 보고 싶고, 요즘 코로나 때문에 해외여행을 못 가서 더 생각이 나는 건가? 하여간 언젠간 다시 그런 기회가 오지 않을까 기대해요. (어떤 작품으로 다시 가면 좋겠어요?) 글쎄요, <오페라의 유령>? <오페라의 유령>은 언젠가 본국에서 영어로 공연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레 미제라블>도 해 보고 싶고요. 그런데 일단은 코로나 이슈가 끝나야 가능하겠죠. 여행 한번 다녀오면 다시 해외 활동을 안 하고 싶어질지도 모르지만요. (웃음)
런던 활동 이후 국내 복귀작으로 선택한 작품은 <데스노트>였어요. 그래서 특별하게 남은 걸까요? 당시의 저에게는 연예 매니지먼트사가 제작하는 첫 번째 뮤지컬에 아이돌과 함께 투톱으로 출연한다는 점에서 신선한 선택처럼 보였어요.
제가 <미스 사이공> 런던 공연을 할 때 많은 제작자분들이 보러 오셨어요. 런던에 다른 공연을 보러 오신 김에 겸사겸사 들르신 거죠. 그럴 경우엔 보통은 저한테 미리 연락을 하고 오셔서 공연 전후에 따로 얼굴을 봤어요. 그런데 하루는 공연을 마치고 나갔더니 출연자 출입구 앞에 낯익은 얼굴이 있는 거예요. 원래 알고 있던 씨제스엔터테인먼트 직원이 대표님과 함께 공연을 보러 왔더라고요. 그날은 제가 선약이 있었던 터라 인사만 하고 바로 가야 했는데, 그 자리에서 <데스노트> 만화책 전권을 주면서 읽어 보래요. 이 만화를 뮤지컬로 제작한다면서요. ‘배우 소속사에서 뮤지컬을?’ 그땐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어요. 게다가 전 만화책을 별로 안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에 휴가를 나왔을 때 대본을 주길래 한번 읽어 봤더니 예상외로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흥미가 생겨서 만화책을 읽어 봤더니 만화도 재미있었어요. 음악도 좋았고요. 안 할 이유가 없겠다 싶었죠.
‘데스노트는 나에게 뭐다’라고 한 줄로 표현한다면 뭐라고 할래요?
나이가 더 들어서 못 하는 상황이 오기 전에 다시 한 번 해 보고 싶은 작품. 당시의 기억이 좋은 게, 씨제스엔터테인먼트에서 처음 뮤지컬을 제작하는 거다 보니 배우들 입장을 더 세심하게 배려해 줬어요. 예를 들어 제가 작품의 연출 방향이 뭔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뭔지 궁금해하니까 연습 전 일본에 가서 쿠리야마 타미야 연출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더라고요. 처음 만난 제작사라 낯선 부분도 있었지만 준비 과정에서 작품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해 줬죠. 그리고 작품으론 처음 만난 (김)준수와도 잘 맞았고요. 준수는 배울 점이 많은 친구예요. 작품에 대한 첫 기억이 좋아서 그런지 <데스노트>는 이전의 경험 한 번으로 끝내고 싶지 않아요.
오늘의 인생작 리스트 가운데 가장 예상하지 못한 작품은 <시라노>예요. 다른 작품들은 여러 번 출연하거나 기념비적인 이정표를 세워 줬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시라노>는 비교적 최근 출연작인 데다 뚜렷한 타이틀을 가져다준 작품은 아니니까요. 물론 출연 당시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는 이야기는 많았지만요.
그래요? 저는 오늘 촬영한 작품 중에서 뭘 제일 다시 하고 싶냐고 물어보면 <시라노>라고 답할 거예요. 그냥, 그 역할이 지닌 정서가 너무 좋았어요. 작품을 만드는 과정도 특별했고요. 라이선스 뮤지컬이었는데도 창작뮤지컬 초연을 올리듯 준비했거든요. 모든 배우와 스태프들이 대본과 음악을 가지고 이렇게 해 볼까? 저렇게 해 볼까? 장면을 넣다 뺐다 반복하면서 작품을 만들어 갔죠. 마치 학교에서 워크숍을 하던 때처럼요. 그래서 작품에 제 숨결이 많이 담겼다고 해야 하나. 초연 이후 재공연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시라노를 연기하고 싶어요. 아, 오늘 촬영 때 사용한 코 모형 실제 공연 때 썼던 거라는 거 아세요? 김성혜 분장 선생님이 기념으로 간직하라고 주신 거예요. 집에서 소중히 보관하던 건데 오늘 촬영을 위해 특별히 가져왔어요. (웃음)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으려면 계속 노력하는 수밖에 없어요”
배우 홍광호의 20년을 돌아보는 OST 앨범을 만든다면, 고민 없이 꼭 들어가야 할 뮤지컬 넘버로 뭘 꼽을 건가요?
아무래도 <지킬 앤 하이드>의 ‘지금 이 순간’을 빼놓을 수 없겠죠. 그런데 이번 시즌에 OST가 발매돼서 정말 기뻐요. 어렸을 때부터 제 목소리로 녹음된 <지킬 앤 하이드> OST를 갖고 싶었거든요. 솔직히 말하면 제가 언제까지 이런 소리를 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데, 목소리가 온전할 때 제 노래를 기록으로 남겨 둘 수 있어서 좋아요. 이번 OST가 성공해야 다른 작품들도 제작 가능성이 높아지는 거니까, 관객분들이 제작사 오디컴퍼니에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특히 우리 신춘수 대표님께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웃음) 그런데 빈말이 아니라 이번 <지킬 앤 하이드> OST는 꽤 기대하셔도 좋아요. 레코딩에 공을 정말 많이 들였고 오래 들어도 질리지 않을 법하게 제 나름의 노하우를 입혀 녹음했어요.
20년의 활동 기간 동안 절반 이상을 국내 대표 뮤지컬배우로 불리고 있어요. 때로는 의도치 않게 한 작품을, 더 나아가 한 장르를 대표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텐데, 그런 순간들이 버겁게 느껴지진 않나요?
저는 단순하게 생각해요. 어려서부터 뮤지컬배우가 되고 싶었고, 뮤지컬이 내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뮤지컬을 하고 있는 거예요. 무언가를 대표한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 같아요. 물론 후배들에게 가능성을 열어 주는 선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해요. 저처럼 앙상블로 시작한 뮤지컬배우가 무대에서 주연으로 활발히 공연한다는 건 뮤지컬을 꿈꾸는 많은 후배들에게 힘이 될 테니까요. 그래서 늘 한 걸음, 한 걸음에 신중을 기하려고 해요. 주어진 작품에 감사하고 그 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서. 결과는 하늘에 맡기고요. 그래야 오히려 쉽게 지치지 않는 것 같아요.
광호 씨가 배우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중 하나는 노력이라고 자주 언급했어요. 더 이상 노력해야 할 이유의 의미를 잃어서 힘들었던 적은 없을까요?
없습니다. 단호하죠? (웃음) 단 한 명의 관객에게라도 더욱 큰 만족감을 드리려면 계속 노력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노력해야 할 이유가 없어질 리 없죠. 저는 공연 전에 항상 기도를 하는데 그중 이런 기도가 있어요. 오늘 공연을 찾아 준 관객분들이 일생에 제 공연을 다시 한번 보러 오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돌아갈 수 있게 해 달라고, 그런 기적과 능력을 제게 허락해 달라고요. 그리고 그 기적이 20년째 일어나고 있어요. 아멘. (웃음)
우리가 이런 기획으로 다시 만난다면 몇 주년 때가 좋을까요?
30주년 때 다시 만나면 어때요? 그때는 사진 촬영을 세 편으로만 하고요. 오늘은 여섯 편이나 골라서 촬영이 너무 힘들었어요. (웃음) 아, 인터뷰를 마무리하기 전에 이 말을 꼭 하고 싶어요. 이번에는 촬영 콘셉트에 맞게 인생작을 몇 편만 골라야 했지만, 사실 모든 작품들이 제게는 다 대표작이나 다름없다는 말이요. 아까 말한 <스위니 토드>나 <그레이트 코멧>도 제게 엄청난 성취감을 느끼게 해 줬고, 따뜻한 기억으로 남은 <빨래>나 많은 사랑을 받은 <노트르담 드 파리>,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작품이 없어요. 제가 거쳐 온 모든 작품들 속에 제가 있는 거고, 저는 언제나 그 점을 잊지 않으려고 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08호 2022년 1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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