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을 위한 도약
<빌리 엘리어트> 전강혁·이우진·주현준·김시훈
1년 6개월간 고된 훈련을 거치고 5개월간 <빌리 엘리어트>의 무대를 이끌어 가는 네 명의 빌리, 전강혁(14), 이우진(14), 주현준(13), 김시훈(13). 발레 수업을 통해 꿈을 찾고 날아오르는 빌리처럼, 무대 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성장하고 있는 네 소년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저 새들처럼 높이 날아오르듯
공연이 개막한 뒤에도 계속 ‘빌리 스쿨’ 수업이 이어지고 있다고 들었어요. 요즘은 어떤 훈련을 하고 있나요?
김시훈 요즘은 발레랑 아크로바틱 위주로 연습해요.
전강혁 발레 수업에서는 바워크와 센터워크로 기본기를 다지고요, 아크로바틱 수업에서는 평소에 하지 않는 어려운 기술을 연습하기도 해요.
주현준 그래서 지금도 계속 실력이 늘고 있어요.
이우진 공연에서 선보이는 안무도 더 디테일하게 수정하고 있어요. 매일매일 안무가 조금씩 바뀌어요.
본인이 공연하지 않는 날에도 극장에 나오는 거예요?
주현준 거의 매일 연습하러 와요. 연습 시간은 그날그날 스케줄에 따라 달라지는데 아무리 늦어도 오후 2시에는 시작하는 것 같아요. 무대에 서지 않는 날도 연습 끝나고 바로 집에 가는 게 아니라 극장에 남아 스탠바이(공연 당일 캐스트가 변경되는 긴급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대기하는 일)할 때가 많고요.
전강혁 스탠바이할 때도 그냥 가만 있는 게 아니에요. 스탠바이하면서 지난 공연 때 부족했던 점을 복습하거든요. 대체로 아침 일찍 극장에 와서 저녁까지 있어요.
오랫동안 함께 연습한 만큼 각자의 빌리가 어떤 개성을 지녔는지도 잘 알 것 같은데, 서로의 장점에 대해 얘기해 줄래요?
이우진 강혁이는 다리가 길고 몸선이 예뻐서 발레할 때 돋보여요.
전강혁 우진이는 저랑 다르게 힘이 세서 파워풀한 동작을 잘해요.
주현준 시훈이는 춤선이 부드럽고 턴도 빠르게 잘 돌아요. 그런 점은 저도 배우고 싶어요.
김시훈 저도 현준이에게 배울 점이 하나… 아니, 하나만 있는 건 아닌데, 아무튼 되게 중요한 게 있어요. 그게 뭐냐면… (일동 입을 모아) 텐션!
주현준 예에에! 전 나중에 <쇼미더머니>에도 나갈 거예요. 시즌 21쯤에!
이우진 시즌 21까지 할까?
전강혁 방송국에 전화해. 그때까지 해 달라고.
개막 전에 진행된 인터뷰에서 <빌리 엘리어트>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면을 꼽았잖아요. 공연이 시작된 지 세 달 가까이 지났는데, 그동안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 바뀌지는 않았나요?
이우진 저는 여전히 ‘Angry Dance’가 제일 좋아요. 제 안에 있는 에너지를 맘껏 표출할 수 있는 장면이거든요. 제가 가장 자신 있는 춤인 탭댄스를 보여 줄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고요. 공연하면서 탭댄스 실력도 많이 늘었어요.
전강혁 저도 그대로 ‘Dream Ballet’가 제일 좋아요. 제 장점인 발레 실력을 보여 줄 수 있는 장면이라서요. 잔잔하게 흘러가던 음악이 마지막에 웅장하게 커지면서 분위기가 바뀌는 것도 매력 있어요. 사실 처음 플라잉 연습할 때는 ‘너어무’ 무서워서 떨었는데 익숙해지고 나니까 그것도 재밌더라고요.
김시훈 저는 좋아하는 장면이 ‘Dream Ballet’ 말고 하나 더 늘었어요. 바로 ‘Electricity’예요. 이 장면을 공연할 때마다 가슴이 벅차요. 마지막에 관객들이 박수를 ‘쫘아악’ 쳐 줄 때 너무 뿌듯해요.
주현준 그때 딱 생각하죠. 아, 해냈구나! 투명하게 불태웠다! 저도 원래 ‘Angry Dance’랑 ‘Electricity’가 가장 좋았거든요? 근데 공연을 하면 할수록 빌리의 마음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되어서 이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장면이 다 좋아졌어요.
공연을 하면서 빌리에 대해 뭘 더 알게 됐나요? 빌리에 대한 생각이 처음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알려 주세요.
이우진 저는 <빌리 엘리어트>를 영화랑 뮤지컬 공연 실황으로 처음 접했어요. 우리나라 2대 빌리 형들의 공연도 봤고요. 그때는 빌리가 화가 많은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빌리를 연기해 보니 꽤 다정한 아이더라고요. 특히 할머니를 대할 때요. 할머니를 보는 눈빛, 할머니 손에 키스하는 모습에서 다정함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전강혁 저도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빌리가 세상 모든 게 다 싫은 반항적인 아이인 줄 알았어요. 근데 아니에요. 발레를 시작하고 발레리노의 꿈을 키우면서 점점 다양한 감정을 느끼거든요. 기쁘게 웃기도 하고, 슬프게 울기도 하면서요. 빌리가 여러가지 감정을 지녔다는 걸 알게 됐어요.
주현준 물론 사춘기 반항아 같은 면도 있지만, 보기보다 속이 깊은 아이예요. ‘Electricity’ 장면에서 심사위원에게 외면당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기 춤을 보여 주잖아요. 와, 그 의지가 진짜 대단해요. 가사를 들어 보면 표현력도 뛰어나고요.
김시훈 우진이 형 말대로 빌리는 알고 보면 다정하고 착한 친구예요. 화가 조금 많은 이유는 함께 사는 아빠랑 토니 형이 화를 잘 내는 편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만약 엄마가 옆에 있었다면 빌리도 지금과는 다르지 않았을까…….
주현준 (극 중 아빠의 대사 톤으로) 엄만 죽었다!
일동 아아악!
김시훈 이렇게 ‘Angry Dance’가 시작되는 겁니다.
무대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 때문에 아찔했던 순간도 있을까요?
이우진 있어요! 2막에 빌리가 마이클에게 ‘메리 크리스마스, 마이클’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마다 자꾸 발음이 꼬이더라고요. ‘메흐크흐마흐, 마이클’ 이렇게. 그래서 안 틀리려고 그 부분만 엄청 연습했어요. 그런데 거기에만 신경 쓰다가 아빠한테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말해야 하는 장면에서 ‘메리 크리스마스, 마이클’이라고 말해 버린 거예요. 그때 진짜 아찔했는데 아빠도 당황했는지 ‘그, 그래’ 하면서 얼른 퇴장하시더라고요. 그 후로 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공연하고 있어요.
주현준 저는 첫 공연 때 대사 실수를 했어요. 공연 초반에 ‘그래, 이따 봐, 마이클’이라고 말해야 하는데 실수로 ‘응, 메리 크리스마스, 마이클’이라고 말해 버린 거예요.
이우진 반팔 옷 입고?
주현준 그니까. 크리스마스가 오려면 한참 남았는데! 제가 말해 놓고도 황당했는데 다행히 다시 집중해서 잘 이어 갔던 것 같아요.
김시훈 저도 첫 공연 때 엄청난 실수를 하나 했어요. ‘The Stars Look Down’이라고 ‘살며시 날 안아줘요’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노래가 있는데, 제가 ‘살며시’를 한 박자 빨리 부른 거예요. 그래서 그냥 ‘살며시’를 두 번 넣어 불렀어요. 살며시~ 살며시~ 날 안아 줘요!
전강혁 이거는 매우 진짜 슈퍼 짱 아찔했던 순간이에요. 윌킨슨 선생님하고 화장실에서 대화하는 장면이 끝나면 제가 화장실 세트를 무대 옆으로 밀어야 하거든요. 하루는 화장실 벽을 미는데 갑자기 안에서 ‘우당탕탕탕 쨍그랑’ 하는 소리가 나는 거예요. 바닥을 보니 깨진 유리 조각이 쫙 깔려 있었어요. 그 순간 공연이 중단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전 최대한 침착하게 다음 장면을 이어 갔어요. 다행히 제가 ‘Expressing Yourself’ 춤을 추는 동안 무대 스태프분이 유리를 쓸어 담아서 아무도 다치지 않았죠. 그래도 혹시 남아 있는 유리 조각 때문에 다칠까 봐 그날은 ‘Angry Dance’ 장면에서 모두 반팔 대신 긴팔 옷에 장갑을 끼고 무대에 섰던 기억이 나요.
터져 나올 듯한 내 안의 또 다른 모습
지금까지 공연을 보러 온 사람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누구예요? 부모님은 빼고!
전강혁 제가 아주 어릴 때부터 아플 때마다 약을 지어 주신 약국 선생님이요. 예전부터 이 작품을 알고 계셨는데, 제가 빌리가 되어 무대에 선 걸 보고 놀라면서도 즐거워하셨어요.
이우진 저는 학교 담임 선생님이요. 제가 공연 때문에 학교를 빠져도 이해해 주시고 수업에 뒤쳐지지 않게 도와주셨거든요. 마치 <빌리 엘리어트>의 윌킨슨 선생님처럼요. 정말 감사드려요. 공연 잘 봤다고 잠바도 선물해 주셨는데, 그 옷 아직까지 잘 입고 다닌다고 기사에 써 주세요.
주현준 첫 공연 때 형이 보러 온 게 제일 기억에 남아요. 공연 연습을 하는 동안 엄마가 절 따라다니느라 형은 계속 혼자 밥 먹고 혼자 지내야 했거든요. 형한테 미안한 마음에서라도 더 열심히 해서 잘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어요. 공연을 보고 나서 형도 절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아서 되게 기분이 좋았어요.
김시훈 저는 <팬텀>에 함께 출연했던 이지혜 배우님이 제 공연을 보신 게 기억에 남아요. 오신 줄 몰랐는데 공연 끝나고 SNS에 멋진 공연이었다고 후기 올려 주신 걸 보고 뿌듯했어요.
만약 이 공연에서 다른 역할을 맡을 수 있다면 누가 되고 싶어요? 나이와 성별을 따지지 않고 고른다면?
김시훈 두 개 골라도 되나요? 발레걸이랑 스몰보이를 해보고 싶어요.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럽고 재미있을 것 같아요.
이우진 그러다 발레걸한테 잡혀간다. 널 발레걸로 분장시켜서 공연에 대신 세울지도 몰라.
김시훈 뭐, 난 자신 있어.
주현준 전 다 하고 싶은데, 그중에서도 빌리 형 토니 역할을 해 보고 싶어요. 토니가 어떤 시선으로 빌리를 바라보는지, 빌리에게 어떤 마음을 느끼는지 알고 싶거든요. 왜냐하면 제가 아까 저희 형 이야기를 했잖아요. 제가 토니가 되어 보면 형 마음도 더 잘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우진 저도 토니요. 예전에 연습실에서 시훈이가 빌리를 맡고 제가 토니를 맡아 연기한 적이 있는데, 그때 연출가 선생님이 “너한테 토니 역을 시켜야겠다”라고 말씀하셨거든요.
전강혁 전 나중에 좋은 발레 무용수가 돼서 성인 빌리로 돌아오고 싶어요. 3대 빌리였던 제가 성인 빌리가 되어 다음 세대 빌리들과 함께 춤춘다면 멋있을 것 같아요.
이우진 그럼 그때 내가 토니 할게.
주현준 내가 할 거야.
김시훈 난 스몰보이 하면 안 돼?
주현준 키 때문에 ‘스몰’ 보이 할 수 있겠어?
<빌리 엘리어트>를 통해 배운 건 뭔가요? 빌리가 되고 나서 어떤 점이 가장 달라진 것 같아요?
주현준 빌리가 되기 전의 제가 그냥 축구 좋아하고 장난기 많은 애였다면….
이우진 지금도 그런데?
전강혁 똑같아요, 똑같아.
주현준 아니에요, 무슨 말씀! 지금은 차분함과 침착함이 생겼다고요. 빌리처럼 의지도 강해졌어요. 연습을 하면서 제 한계를 넘어서고 또 넘어서는 경험을 했으니까요.
김시훈 빌리 스쿨에서 엄청난 노력을 한 끝에 발레, 탭댄스, 아크로바틱까지 많은 걸 배웠잖아요. 열심히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전강혁 확실히 끈기와 열정을 많이 배웠어요. 오늘도 인터뷰하러 오기 전에 빌리 스쿨에서 파워 필라테스를 하다 왔는데, ‘어제보다 1초라도 더 버티자’, ‘이 동작은 꼭 성공하겠다’라는 마음으로 했거든요. 뭐든지 쉽게 포기하지 않게 됐어요.
이우진 저는 원래 승부욕이 강하고 도전을 즐기는 편인데, 공연을 통해서 인내심을 배웠어요. 물은 100℃가 돼야 끓잖아요. 예전의 제가 99°C에서 이 정도면 됐겠지 하고 계란을 집어 넣었다면, 이제는 100°C까지 기다릴 줄 아는 성격으로 바뀌었어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서 빌리 오디션을 앞둔 자신을 만날 수 있다면, 무슨 말을 해 줄래요?
전강혁 충분히 잘할 수 있으니까 기죽지 말고 당당하라고, 두렵겠지만 한 번쯤 그 두려움을 이겨 내고 도전해 보라고 말해 주고 싶어요. 지금의 저한테도 해 주고 싶은 말이에요.
주현준 윌킨슨 선생님이 발레 스쿨 오디션을 앞둔 빌리에게 해 준 말을 그대로 전해 주고 싶어요. 너 자신을 위해 하는 거니까 다 잊고 즐기면 돼. 조금만 더 노력해서 너의 한계를 넘어서면 좋겠다. 힘내!
이우진 더도 덜도 말고 그냥 하던 대로만 하라고 말해 주고 싶어요. 더 잘하려고 생각할수록 긴장해서 못하게 되는 것 같거든요. 네가 하던 대로, 하고 싶은 대로, 그렇게 해.
김시훈 어떻게 다들 나랑 하고 싶은 말이 똑같지? 전 이렇게 말할래요. 시훈아, 넌 할 수 있어. 너 자신을 위해 하는 거잖아. 기죽지 말고 하던 대로 하면 돼. 포기하지 마!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08호 2022년 1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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