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핏파이어 그릴>
어둠을 물들이는 빛깔
안녕, 일라이. 지난번 편지를 받고 답장을 쓰기까지 꽤 오래 걸렸네요. 이해해 주세요. 그동안 조금 마음이 복잡했거든요. 내가 항상 꿈꿔 온 길리앗, 당신이 보여 준 천국의 빛깔, 한나가 선물해 준 몸과 마음이 쉴 수 있는 작은 집, 언제나 따뜻하게 날 비추는 셸비… 비로소 내 인생이 희망으로 가득 찼다고 생각했어요. 다 좋아질 거라고요. 그렇지만 평온한 나날 속에서도 불현듯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괴로웠어요. ‘내가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제 답은 언제나 이랬죠. ‘아니, 나는 행복할 수 없을 거야. 난 행복하면 안 되는 사람이야.’ 스스로 이런 마음을 통제할 수가 없었어요.
어제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날이었어요. 그런데 조를 보자마자 울음이 왈칵 쏟아졌어요. 그에게 내 인생은 어둠뿐이라고 말했어요. 내 어둠이 당신을 삼켜 버릴까 겁이 난다고. 불행해진 당신의 모습을 보면 더는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고요. 그런데 조가 웃으며 나를 안아 줬어요. 나는 조금 의아했어요. 자기는 그런 사람이 아니래요. 힘든 일은 금방 잊어버린대요. 그러면서 앞으로 펼쳐질 날들을 즐거운 일로 채우자고 했어요. 내 옆에서 항상 함께할 거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더 목 놓아 울어 버렸어요.
일라이, 아직도 난 의문투성이예요. 여전히 겁이 나고요. 하지만 다시 한번 희망을 되찾은 기분이에요. 꿋꿋하게 살다 보면 우리에게도 어느새 좋은 기억이 나쁜 기억보다 많아지는 순간이 오겠죠? 그럼 그때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조가 소유한 땅 일부를 농장으로 만들기로 했어요. 그곳에서 직접 농사를 지어 보려고요. 직접 수확한 농작물은 스핏파이어 그릴의 식재료로 쓰일 수도 있겠죠. 잘 운영해서 마을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제부터는 정말 바빠지겠죠? 한나에게 안부 전해 줘요. 당신과 한나가 너무 보고 싶어요.
(!) <스핏 파이어그릴>은 깊은 상처를 지닌 퍼씨가 작은 마을 길리앗의 유일한 식당 ‘스핏파이어 그릴’에서 일하면서 마을에 변화를 가져오는 이야기다. 이 글은 퍼씨 역을 맡은 이예은 배우의 상상을 바탕으로 한 가상 에필로그로, 스핏파이어 그릴이 새 주인을 찾은 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09호 2022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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