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에 살아 있는 모든 순간
<빌리 엘리어트> 박정자
<빌리 엘리어트>에서 주인공 빌리의 할머니가 무대 위에 등장하는 장면은 많지 않다. 하지만 이 엉뚱하고 사랑스러운 할머니와 빌리의 티키타카는 단숨에 관객의 마음을 쏙 빼앗는다. 할머니는 발레리노가 되겠다는 빌리의 꿈을 반대하는 가족들 가운데 유일하게 춤의 매력을 이해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빌리가 후회 없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은근한 방식으로 인도한다. 바로 이렇게 노래하면서. “다시 태어난다면 춤추며 살 거야. 남자 없이 나 혼자!” 2017년 공연에 이어 두 번째로 빌리의 할머니를 연기하는 배우 박정자는 데뷔 60년 차의 연륜이 담긴 연기로 ‘그랜마 송’을 잊지 못할 장면으로 만들어 낸다. 지난 1월 열린 제6회 한국뮤지컬어워즈 시상식에서 우아하고 시원한 입담으로 공연계 대선배의 품격을 보여 주기도 한 관록의 배우. 시상식 며칠 뒤에 마련된 인터뷰 자리에서 그의 무대를 향한 변함 없는 애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상식 화제의 주인공
이번 한국뮤지컬어워즈 시상식에 파란 머리로 등장하신 선생님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와, 이렇게 힙하실 수가! 시상식 패셔니스타로 등극하셨는데, 파격적인 스타일을 시도하신 이유가 있나요?
그야 시상식 때문에 염색한 거지. 젊은이들 기죽이려고. (웃음) 사실 내가 꾸미는 거하고는 완전히 담쌓고 사는 사람이야. 메이크업도 잘 안 해. 오늘은 사진 찍는다길래 뭐라도 좀 바르고 나왔는데, 평소에는 맨 얼굴로 자유롭게 다녀. 하지만 시상식에서만큼은 격식을 차린 모습을 보여 줘야지. 왜 연말에 방송국마다 틀어 주는 연예 대상 시상식 보면 다들 요란하게 입고 나오잖아. 그래야 시상식의 권위가 사는 거거든. 간혹 겉옷도 안 벗고 나와서 상 받는 사람이 있던데 난 그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 배우가 아니라 스태프라 해도 수상 후보에 올랐으면 드레스업을 하고 와야지.
한국뮤지컬어워즈 시상식에 참여하신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시죠?
한국뮤지컬어워즈가 여섯 번 열리는 동안 세 번 참여했어. 2018년 제2회 시상식 때 처음으로 시상을 하러 갔고, 2019년 제3회 시상식 때는 오프닝 공연으로 ‘살짜기 옵서예’를 불렀지. 1966년 예그린악단이 초연한 <살짜기 옵서예>에서 패티김이 부른 노래인데, 이게 한국 최초의 창작뮤지컬이야. 그때 이 작품의 인기가 대단했어. 특히 최창권 선생님이 작곡한 이 ‘살짜기 옵서예’라는 노래는 지금 들어도 참 좋아. 그래서 당시 뮤지컬협회장이었던 이유리 (서울예술단) 이사장이 시상식에서 이 노래를 불러 달라고 부탁했을 때 흔쾌히 응한 거야. 올해 시상식에선 대상 시상을 맡았는데, 대상이라는 게 순서상 제일 마지막에 주는 상이잖아. 그런데 시상식이 3시간 넘게 이어지는 바람에 기다리느라 아주 혼났어. 힘들어서 더는 시상식에 못 오겠다 그랬지. 수상자로 불러 준다면 또 모를까. 나도 엄연히 현역 뮤지컬배우인데 왜 상을 안 주는 거야? (웃음)
그날 선생님과 함께 대상 시상자로 나선 문체부 정책관에게도 따끔하게 쓴소리를 하셨죠. “정책관님이 <빌리 엘리어트>를 못 보셨대요. 오늘 무슨 자격으로 여기 오셨습니까? 문화는 다리품을 팔아야 되는 겁니다. 사무실에서만 행정하시면 안 됩니다.” 물론 웃으면서 말씀하셨지만 선생님의 쓴소리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통쾌해했다는 거 아시나요? SNS상에 이 장면만 자른 클립 영상이 돌아다니기도 했어요.
나야 그런 걸 안 보니까 잘 모르지 뭐. 정확히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안 나. 다만 문화 행정가들이 극장에 와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 문화 행정이라는 게 책상에서 서류만 붙잡고 있어 봐야 소용 없거든. 현장을 알아야지. 솔직히 나는 이번 시상식에 장관님이 직접 오지 않은 것도 섭섭하더라고. 올해부터 한국뮤지컬어워즈 대상이 문체부 장관상으로 승격하는 뜻깊은 자리였는데 말이야. 아무튼 그러고 나서 내가 정책관님을 공연에 초대하려고 했는데, 본인이 직접 표를 사서 오겠다고 한사코 사양하더라고. 그러더니 진짜 표를 사서 공연을 보러 왔어. 이 얘기는 꼭 기사에 써 줘.
이번 시상식에서 또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으세요?
아마 중계 카메라에는 안 잡혔을 텐데, 내가 시상을 마치고 무대를 빠져나갈 때 내 앞에 앉아 있던 스무 명 가량이 쫙 일어섰어. 물론 사회자인 이건명 배우가 나를 소개해 주기는 했지만, 아무리 나이 많은 선배라도 같이 작업을 안 해 봤으면 그냥 모른 체할 수 있잖아. 근데 거기 있는 배우들이 다 함께 기립해서 박수를 쳐 주는 거야. 저 친구들이 누굴까 궁금했는데 경황이 없어서 차마 물어보지를 못했지. 그런데 다음날 내가 이사장으로 있는 관악문화재단 직원이 나한테 전화를 했어. 그날 자기도 시상식장에 있었는데, 내가 나가는 순간 객석에 앉아 있던 조승우 배우가 제일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더래. 그러니까 그 옆에 있던 친구들도 따라서 일어나더란 거야. 내가 <지킬 앤 하이드> 초연 때부터 조승우 배우의 연기를 눈여겨봤지만, 함께 작품을 하는 인연을 맺지는 못했거든. 그런데 날 위해 기립해 주었다고 하니 기뻤어.
무대 위의 영원한 연대
이번 시상식에는 선생님과 함께 <빌리 엘리어트>를 공연 중인 배우들도 참석했죠. 빌리들이 신인상을 받아 기쁘셨겠어요.
아이고, 나는 앙상블상도 우리가 받을 줄 알았어. 우리 <빌리 엘리어트> 앙상블이 진짜 최고거든. 요즘은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무대 위에 젊은 배우만 가득하잖아. 근데 인생엔 젊은 시절만 존재하는 게 아니야. <빌리 엘리어트> 무대에는 10대 빌리부터 80대 할머니까지 여러 세대의 배우들이 공존해. 그러니까 거기에 우리 인생이 다 녹아 있는 거야. 그게 진짜 드라마지. 삶을 보여 주려면 무대 위에 다양한 연령대의 배우가 함께해야 해. 아무튼 우리 <빌리 엘리어트> 배우들 팀워크는 최고야. 내가 뭐라도 챙겨 주고 싶어서 공연하는 동안 도시락을 일곱 번인가 돌렸어. 2월 8일에 역대 빌리들이 모이는 이벤트를 한다고 해서 그때 한 번 더 돌릴 생각이야.
그날 공연은 벌써 매진되었다는 소식 들었어요. 역대 빌리가 한자리에 모이다니, 공연이 끝나고도 작품에 대한 애정으로 끈끈한 연대가 유지되는 것 같아 뭉클하더라고요. 선생님은 지난 시즌 공연부터 참여해 오신 만큼 2대 빌리들을 다시 만나는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아요.
개막 첫 주에도 2대 빌리랑 마이클들을 초대한 내부 행사가 있었어. 아유, 걔들은 이제 고등학생이 돼서 변성기도 오고 징그러워. (웃음) 자기들도 멋쩍어서 어쩔 줄 모르더라고. 그래도 이런 이벤트가 있다는 게 참 좋지. 함께 공연을 만드는 사람들끼리 작품에 대한 신념과 애착을 나눠 갖는 건 중요한 일이야. 내가 끼고 있는 이 반지 보이지? 이 반지가 사실 공연 소품이거든. 빌리 할머니의 결혼 반지인데 잃어버릴까봐 평소에도 늘 끼고 있어. 물론 진짜 결혼 반지처럼 값비싼 건 아니지만, 나한테는 무엇보다 귀하고 소중한 거야. 작품과 나 사이의 결속의 증표니까.
<빌리 엘리어트>라는 작품에 대해서는 어떻게 처음 알게 되셨어요?
뮤지컬을 알기 전에 원작 영화를 먼저 접했어. 내가 영화를 보고 나서 비디오 테이프를 사는 경우가 거의 없거든? 지금까지 직접 산 비디오 테이프는 딱 두 개뿐이야. 하나는 쿠바 뮤지션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빌리 엘리어트>지. 영화를 보는데 아,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때는 이게 뮤지컬로 만들어질 거라는 생각도 못했어. 그런데 나중에 전수경, 최정원 같은 후배 뮤지컬배우들이 브로드웨이 공연을 보고 와서 나한테 빌리 할머니 역할을 꼭 해야 한다고 그러더라고. 마지막에 할머니가 튀튀 입고 나오는 장면이 끝내준다면서. (웃음) 신시컴퍼니 박명성 예술감독도 이 작품을 제작하기 전부터 나에게 그 역할을 추천했어. 그때마다 나도 꼭 하고 싶다고 말했지. 그러다가 2010년에 드디어 한국 초연이 올라간 거야. 그때는 내가 출연하지 않았지만 나도 객석에 앉아 공연을 봤어. ‘저 할머니 역할을 내가 꼭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본 거지.
2017년 신시컴퍼니가 제작한 <빌리 엘리어트> 두 번째 한국 공연에 참여하기 위해 간단한 오디션도 치르셨다고 들었어요.
사실 신시컴퍼니 측에서 처음엔 이렇게 말했어. “선생님은 오디션 안 보셔도 됩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해외 크리에이티브 팀이 왔으니 상견례를 하러 오라 그러더라고. 그래서 물 한 병 들고 털레털레 간 거야. 연출가인 사이먼하고 당시 안무 감독이 날 기다리고 있었지. 그들이 나한테 물어. <빌리 엘리어트>를 본 적 있느냐고. 물론이다, 원작 영화도 뮤지컬도 아주 좋아한다 대답했어. 그러니까 또 물어. 춤추고 노래하는 건 좋아하느냐고. 당연히 좋아한다 그랬지. 그랬더니 갑자기 종이를 딱 내밀면서 한번 읽어보라는 거야. 보니까 빌리하고 할머니의 첫 아침 식사 장면 대본이더라고.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오디션을 안 보는 척하고 수를 쓴 거야. 근데 그 자리에서 ‘나 안 해’ 이럴 수는 없잖아. 그게 그 사람들 방식이라면 따라 주는 것도 예의라고 생각해. 그리고 내 기분이 상한다고 그냥 나왔어 봐. <빌리 엘리어트> 하고는 그날로 끝났겠지. 그래서 ‘오케이’ 하고 그냥 읽었어. 다 읽고 나니 감사하다고, 만나서 정말 반갑다고 하길래 합격이라는 걸 알았지.
해외 스태프와 함께하는 연습 과정은 어떠셨나요?
연습하는 동안 굉장히 긴장했어. 뭐랄까, 허투루 보이고 싶지 않은 거야. 언젠가 해외에서 내한한 뮤지컬 공연을 보고 굉장히 불쾌했던 적이 있어. 배우들이 기계처럼 성의 없이 연기하더라고. 우리나라 관객 수준을 어떻게 생각하는 건가 싶어 화가 났지. 그에 비해 우리나라 배우들은 소극장에서든 대극장에서든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몰라. 해외 스태프들도 한국 배우들의 기량을 보면 굉장히 놀라. 우리가 또 가무에 능한 민족 아니겠어. 그런데 내가 우리 공연 팀의 최연장자로서 부족한 모습을 보이면 말이 되나. 내가 무대에서 쉽게 연기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매번 얼마나 긴장하는지 몰라. 공연이 폐막을 향해 가니까 이제야 비로소 긴장이 조금 풀리는 기분이야. 바로 이런 무대를 사이먼이 봐야 하는 건데! (웃음)
극에서 빌리의 할머니가 부르는 노래는 ‘그랜마 송’ 딱 하나지만, 이 장면의 안무와 연출이 너무나 완벽해서 공연을 보고 나면 잊히지 않아요. 프로그램북에 실린 인터뷰를 보니 이번 공연의 안무 감독인 톰 호지슨도 가장 좋아하는 장면으로 ‘그랜마 송’을 꼽았더라고요.
<빌리 엘리어트>는 안무와 연출이 정말 좋아. 어쩌면 이렇게 과학적일까! 세트와 배우가 끊임없이 드나드는데도 암전 없이 물 흐르듯 공연이 진행되잖아. 내가 주변 사람들한테도 말했어. 한 세 번쯤 와서 봐라. 처음 볼 때는 그냥 재미있다, 빌리들 대단하다는 생각만 들겠지만 세 번쯤 보면 연출이 얼마나 훌륭한지 보일 거다. 그러니까 이게 문화 상품이 돼서 외국에 팔려 나가는 거거든. 근데 <빌리 엘리어트>가 이렇게 한국에서 공연되는 게 참 반갑고 고맙지만, 그러기 위해 해외에 지불하는 많은 로열티와 외국인 스태프 인건비를 생각하면 내심 안타깝고 억울하기도 해. 우리 창작뮤지컬은 언제쯤 이렇게 될까 하고 말이야. 이제는 K-뮤지컬이 각성해서 세계로 나가야 돼. 지금처럼 한국 문화가 주목받을 때 나가야지. 더 이상 늦추면 안 돼.
한국 뮤지컬이 세계로 뻗어 나가려면 어떤 작품을 만들어야 할까요?
K-뮤지컬이라고 해서 꼭 우리 전통문화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어. 고전을 가지고 뮤지컬을 만들라는 얘기가 아니야. 소재야 뭐가 됐든 세계 시장에 내보낼 만큼 공연으로서 완성도가 높아야 한다는 거지. 그리고 이걸 기억해야 해. 문화는 대중을 리드해야 돼. 그래야 발전이 있는 거야. 대중의 비위를 맞추고 쫓아가서는 안 돼. 사람들이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하고 가려운 데만 긁어 주는 건 문화가 아니야. 그러니까 항상 긴장하고 대중과 함께 앞으로 나아갈 생각을 해야 돼. 그런 리더로서의 역할을 하는 게 문화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나는 생각해.
81세의 현역 배우
올해로 데뷔 60주년을 맞으셨다고 들었어요. 그 오랜 시간을 무대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연기하며 살아오시다니, 어쩌면 빌리 할머니가 원했던 마음껏 춤추는 삶을 살아오신 게 아닐까 싶어요.
시상식 때 이건명 배우가 내 나이를 공개해서 한마디 했지만, 사실 그건 농담이고 난 내 나이가 좋아. 누가 묻지 않아도 내 입으로 말하고 다니는 걸. 배우가 나이를 먹는다는 게 얼마나 축복인데. 연륜이라는 건 돈 주고도 못 사는 거거든. 젊은이가 머리에 흰 칠하고 허리 구부리고 나온다고 다 노역이 되는 게 아니야. 작년에 내가 80세 된 기념으로 연극 <19 그리고 80>을 <해롤드와 모드>라는 제목으로 다시 공연했어. 내가 연기하는 ‘모드’의 극 중 나이가 80세거든. 이 작품을 처음 공연한 게 2003년이야. 그 뒤로 여러 인터뷰에서 80세가 될 때까지 모드를 연기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작년에 일곱 번째 공연으로 그 목표를 이룬 거지. 주위에선 90세까지 계속하지 그러냐고 말하지만, 내가 나하고 약속을 했어. 극 중 모드의 나이인 80세까지만 하겠다고. 그 약속을 스스로 지킬 수 있었던 것에 만족하고 감사해.
혹시 최근 관람한 뮤지컬 가운데서도 도전해 보고 싶은 역할이 있으세요?
제3회 한국뮤지컬어워즈 때 <베르나르다 알바>가 소극장 뮤지컬상을 받았잖아. 그걸 보고 눈이 번쩍 뜨였지. ‘이게 뭐야! 이런 작품이 다 있었어?’ 하고. <베르나르다 알바>는 로르카의 희곡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을 뮤지컬화한 작품인데, 내가 로르카를 워낙 좋아하거든. 연극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과 로르카의 또 다른 작품 <피의 결혼>에도 출연했어.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에는 두 번 출연했지. 이화여대 연극반 시절 80대 마리아 호세파를 연기했고, 그다음 1990년 국립극장에서 공연할 때는 60대 베르나르다 알바 역을 맡았어. 이 작품이 뮤지컬로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공연이 끝난 뒤에야 알아서 애석했는데, 정동극장 측에서 재공연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초연 실황 영상을 보여 주더라고. 보니까 작품이 참 좋아. 내가 만약 저 무대에서 베르나르다 알바를 다시 연기한다면 어떤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을까 상상해 봤지. 실제로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작년에 재공연이 올라갔을 때는 나도 잊지 않고 보러 갔어. 올해 시상식 대상 후보에 올랐던 <포미니츠>도 관심을 가진 작품이야. 양준모 배우에게 동명의 음악 영화를 뮤지컬로 제작 중이라는 얘기를 듣고 미리 영화를 찾아봤지. 거기 교도소에서 60년간 재소자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온 크뤼거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뮤지컬로 만들어지면 그 역할에 도전해 보고 싶었어. 결국 다른 배우들에게 돌아갔지만 말이야. 공연이 어떻게 완성됐는지 궁금했는데 일정이 맞지 않아 초연을 보지 못한 게 아쉬워.
공연을 정말 부지런히 보시네요. 공연 보러 다니는 것도 체력을 요하는 일인데 힘들지 않으세요?
나는 뮤지컬, 연극, 무용 가리지 않고 많이 보러 다녀. 다른 사람 공연을 봐야 뭐가 좋고 나쁜지, 뭐가 넘치고 모자라는지 알 수 있거든. 나는 공연하는 사람들이 다 나처럼 많이 보러 다니는 줄 알았는데, 내가 좀 유별난가 봐. 이건 딴 이야긴데, 내가 30년 넘게 직접 차를 몰고 다니다가 4년 전에 차를 버렸어. 그 뒤로 쭉 대중교통을 이용 중이야. 지하철 7호선이 내 자가용이지. 그걸 타고 극장까지 출퇴근하니까. 일산에서 두 달 동안 <빌리 엘리어트> 연습을 할 때도 지하철로 출퇴근했어.
왜요? 무슨 계기라도 있었을까요?
집착을 내려놓는 훈련을 하는 거지. 이제 나한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스스로 버리고 덜어내는 훈련을 하며 살아야 돼. 얼마 전에는 극단 후배들을 불러서 내가 가진 공연 사진을 쫙 펼쳐 놓고 필요한 사진이 있으면 가지라고 했어. 그리고 오늘은 같이 소주나 마시자 하고 웃으며 시간을 보냈지. 그렇게 후배들을 돌려보낸 다음 남은 사진은 다 태워 버렸어. 그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아, 내가 살아서 내 장례를 치르는구나. 그동안 모아 놓은 공연 자료도 곧 예술자료원에 기부할 거야. 배우가 가지고 있는 자료라는 게 뭐 그리 대단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한테는 소중한 자료거든. 그런데 내가 죽고 나면 쓰레기밖에 안 되겠더라고. 이걸 어쩌나 고민하다가 예술자료원 문을 두드렸지. 며칠 전에 직원들이 우리 집에 와서 자료를 살펴보고 갔어. 거기도 수장고가 넉넉하지 않아서 공연 의상 같은 건 받기 힘든가 보더라고. 어쨌든 내 손으로 버리기는 힘드니까 가져가서 취할 건 취하고 필요 없는 건 버려 달라고 했어. 이제 다음 주면 짐을 싸서 보내는데 꼭 시집보내는 기분이야. 보내고 나면 속이 후련할 것 같아. 어차피 내가 그 모든 걸 저세상에 가져갈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래도 예술자료원에 보내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잘 됐지.
지난해 선생님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이틀간 공연이 중단되는 일도 있었잖아요. 소식을 듣고 놀랐는데 별 탈 없이 건강을 되찾으셔서 다행이에요. 코로나19 이후로 공연을 보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감수해야 할 게 많아졌구나 하는 생각에 착잡해지더라고요.
2021년을 참 뻑적지근하게 보냈지. 그래도 계속 극장을 찾아 주는 관객분들이 계셔서 정말 감사해. 커튼콜 때 다 같이 나와서 인사를 하잖아. 그때마다 우리 앙상블이 하는 말이 있어. “고맙습니다.” 객석에서는 안 들리겠지만 그게 우리 진심이거든. 코로나19 때문에 관객들도 객석에서 환성을 못 지르고 박수만 치는데, 그래도 마음속으로 보내 주시는 환호가 느껴져.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도 우리가 공연을 만들고 보려고 하는 이유는 뭘까요?
살아 있음을 느끼니까. 배우와 관객이 같은 순간을 사는 거잖아. 그 순간은 영상물처럼 무한대로 복제해서 나눠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야. 공연은 라이브고 아날로그야. 그러니까 무대에 설 때마다 긴장할 수밖에 없는 거고, 그 긴장이 있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생각해. 시상식에서 내가 90세까지 뮤지컬 할 테니 러브콜 달라고 말했지? 그거 농담 아니거든. 이렇게 멋진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축복이지. 난 축복받은 사람이야.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09호 2022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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