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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인터뷰] <키사라기 미키짱> 오달수, 연극하는 생활의 기쁨 [No.111]

글 |김영주 사진 |Robin Kim 2012-12-27 4,401

딱 어느 때부터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는 언제부터인가
슬그머니 우리 근처를 서성이기 시작했다.
순박하게 웃을 때도 뭔가 다른 꿍꿍이를 숨기고 있을 것 같고,
악랄하게 이죽거릴 때도 어째선지 밉지만은 않은 이상한 사내는
늘 자기다운 모습으로 태연하게 이 영화에서 저 영화를 건너다녔고,
그런데도 언제나 다른 사람이었다.
봐도 봐도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정체불명 매력의 소유자,
오달수가 오랜만에 고향인 연극 무대로 돌아왔다.
극 중 이름은 ‘기무라 타쿠야’.
지난 20여 년간 일본에서 가장 잘생긴 남자로 통했던
아이돌 스타의 이름으로 불리게 된 오달수를 만나보았다. 

 

 


기가 막힌 캐스팅이기도 하고, 의외의 캐스팅이기도 하다고 생각했어요. 이 작품과는 어떻게 인연이 닿았나요?

제가 초연을 봤습니다. 그런데 그… 작품에 필요한 배우의 에너지나 대사량 같은 부분들 때문에 조금 부담스러웠던 건 사실이거든요. 하고는 싶은데 감히 내가 이걸 진짜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가지고… 작품이 재미있고 좋기는 한데 과연 내가 물리적으로 이 작품의 에너지를 견뎌낼 수 있을까 싶었어요. 그런데 또 배우니까, 어떻게 조절해가면서 하면 되지 않을까 해서 결정하게 됐지요.

 

<키사라기 미키짱>을 봤을 때 참 숨 쉴 틈 없이 진행된다고는 생각했지만 베테랑 배우가 그 정도로 부담을 느낄 만큼 고된 연극인 줄은 몰랐어요.

이 극이 지닌 전형성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그렇지요. 배우의 해석이나 심리 상태, 이런 것들도 중요하겠지만 어쨌든 극의 형식 안에서 움직여야 하거든요. 처음 봤을 때 제가 느꼈던 힘으로 막 몰아가야 하는, 정신없이 쉴 틈 없이 몰아붙여야 하는 앙상블 연기에서 크게 자유로울 수가 없더라고요. 좀만 달리 해버리면 연극이 이상해져버리니까. 그렇기 때문에 아, 힘들겠다 생각했죠.

 

사실 오달수 씨를 생각하면 고유한 템포를 가지고 있는 배우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저는 좀… 릴렉스 된 편이죠. 편하게, 또는 제멋대로 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웃음) 이렇게 틀이 딱 짜여 있는 작품은 쉽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으로는 이렇게 스타일리시한 연극 중에 나쁜 작품이 별로 없는 거 같아요. 옛날에 제가 했던 <남자충동>도 네 명의 건달들이 꽉 짜여 있는 틀 속에서 움직여야 하는 연극이었거든요. 보통 연극은 배우와 관객의 소통이 전부이고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고 하는데 이런 연극들은 마치 감독의 예술인 것처럼 되죠. 그런데 나쁘지 않고 재미있어요. 그런 식으로 작업하면서 실망했던 작품은 없었던 거 같아요.

 

한 해에 출연하는 영화의 수가 상당히 많은 편이세요. 그런 중에도 대학로에서 1년에 몇 번은 공연을 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  같은 게 있으세요?
가능하면 1년에 한 번은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제가 극단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아, 종신제로 극단 대표시죠!
물려줘야죠. 이제…(웃음) 이번에 제일 큰 딜레마가 될 뻔한 게 그거였어요. 우리 극단 작품을 하느냐, 외부 작품을 하느냐. 그런데 다행히도 극단을 만든 지 10년이 넘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물갈이가 되어 가고 있어요. 10년 전부터 밑에서 살림을 어떻게 꾸려가야 하는지 배워온 친구들이 이제 선배가 되었죠. 우리 극단이 내년 초쯤 작품을 할 건데 연출자가 저한테 ‘이번에는 출연 안 하셔도 되겠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전에 했던 작품인데… 이것들 봐라? 그랬죠.(일동 웃음) 우리 식구들이 딜레마를 아예 없애줬어요. 만약 ‘선배님 꼭 하셔야 합니다’ 라고 했다면 제가 선택을 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죠. 당연히 우리 집안을 먼저 돌봐야 하니까. 어쨌든 그런 쪽으로 숨통이 트이면서도 ‘아이고, 내가 이제 연극을 못하면 어떻게 하나’ 했는데 감사하게도 이 작품을 제안해주셔서 합류를 하게 됐죠.

 

배우 입장에서 영화와 연극이라는 장르의 차이를 가장 크게 느끼는 부분은 어떤 점이세요?

두 시간 동안 관객한테 가장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장르가 연극이거든요. 영화 같은 경우는 여러 가지 장치들이 있기 때문에 관객에게 그렇게 미친 듯이 달려들지 않아도 되는데…(웃음) 연극은 오직 관객에게 바쳐야 하는 것이거든요. 저희 배우들이 열심히 준비를 해서 헌사를 하는 거죠. 그렇게 관객과의 소통이 극대화된 지점, 영화와는 다른 그런 지점들을 찾아가는 거죠. 다 불태울 수 있게. 찜찜하면 안 되니까. 연극은 그날, 그 순간밖에 없으니까.

 

빠질 수 없는 바보 같은 질문입니다. 영화와 연극 중에 어느 쪽이 더 애착이 가세요?

생각하기에 따라서 다른데 영화는 기록으로 남지 않습니까? 심지어 메이킹까지! 그런데 연극은 오직 기억 속에 남길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어떤 게 더 가치가 있다 없다 따지기는 뭣하지만 그런 차이가 있죠. 사실 기억 속에만 남는다는 게 허무하고 허탈할 수가 있죠.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값지게 느껴질 때도 있고. 하여간 뭐 다른 것 같아요.

 

 

대학에서 이 일과 전혀 관계없는 전공을 하셨죠?

저는 디자인을 전공했습니다.(웃음) 그런데 중간에 출석 미달로 잘렸습니다. 연극 때문에 학교를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니까요. 학교에서는 이해해주지 않았는데 당연하죠. 미친놈으로 보였겠죠. 디자인한다고 들어와 가지고 학교를 안 나오니까. 과제물도 안 내고. 사실 디자인을 좋아해서 간 것도 아니고 워낙 공부를 못해가지고(웃음) 예체능으로 대학을 간 건데 돈을 많이 들였죠. 입시 미술을 하느라 학원 다니고… 그때는 특별히 뭐가 되고 싶었던 것도 없었고요. 영화, 연극 다 아무런 관심도 없었어요. 어릴 때 친구들은 제가 이렇게 사는 거 아무도 안 믿습니다. 우리 고등학교 때도 연극 보러 다니고 하는 친구들 있었거든요. 저는 이해를 못했습니다. 아니 그걸 왜…  이러느라 한번도 못 봤습니다. 한번이라도 봤으면 좋아했을 수도 있죠.

 

연극을 본 것보다 한 게 먼저였나요?

그렇죠. 재수 때부터 연극을 했으니까요. 연극할 때 워낙 빡세게 했어요. 이윤택 선생님… 제 유일한 은사지요. 인쇄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가맛골에서 이 선생님이 작품을 하시면 포스터 같은 걸 인쇄하곤 했어요. 극단이 우리 거래처였죠. 제가 인쇄물을 가지고 배달을 하러 가면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이 선생님이 그때 진짜 한창 때였죠. 이 선생님을 처음 뵌 게 그분 나이 서른일곱살 때였으니까요. 그 기(氣)라는 것은 이루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하여튼 그분이 꽉! 차있는 상태에서 만났죠. 극단에 배우가 부족하던 차에 만날 왔다 갔다 하는 애가 하나 있으니까 이리 와보라고 하셨죠. ‘너 일루 와봐, 여기 가만 앉아있으면 돼’ 그러셔서… 그렇게 <오구>라는 작품의 문상객 1번 역을 하게 됐죠.

 

첫 무대는 성공적이었어요?

아뇨, 저는 말더듬도 약간 있었고, 진짜 죽는 줄 알았어요. 떨려가지고… <오구>가 그때 대박난 작품이어서 소극장에 관객이 미어터졌는데 관객들이 내 바로 앞까지 앉아있었는데 진짜 떨려가지고… 우리 형님이 보러 왔다가 ‘너는 왜 그렇게 얼굴이 빨갛게 되어가지고 연기를 하냐’고 물을 정도였으니까요.(웃음) 원래 성격이 수줍음도 많고 그랬거든요. 대사도 제대로 못했고 하여튼 그때 생각하면 끔찍하죠.

 

그런데 계속 연극을 하셨네요?

그 작품이 저한테 의미가 있었던 게 무대에 있는 훈련, 처음 이 선생님이 저한테 말씀하셨던 ‘넌 그냥 무대에 가만히 있으면 된다’의  그 가만히 있는 걸 몇 년 동안 훈련을 받은 셈이었어요. 연극의 매력이라는 것은 내가 배우로 연기를 한다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행복이라는 건… 같이 밥 끓여 먹고 같이 밤새고 같이 포스터 붙이고 같이 고생하면서 관객들 만나는 데 있어요. 그렇게 20대를 고스란히 바치고, 30대도 바치고, 그렇게 같이 여기까지 온 거죠. 연극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저한테는 직업이라기보다는 생활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공연 시작하기 전에 연습을 하고, 공연을 마치고 나면 또 며칠 있다가 다른 작품을 올리고, 그렇게 계속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그냥 생활의 거의 다였죠. 극장에서 먹고 살았으니까.

 

그러다가 영화를…

2005년도에… <올드보이>가 저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아버렸죠.

 

찍으면서 그렇게 될 거라는 느낌이 왔어요?

몰랐어요. 저는 영화 쪽은 크게 마니아도 아니고 무슨 키드도 아니고. 박찬욱 감독님을 만났을 때도 <복수는 나의 것>을 찍은 천재기가 있는 감독, 그 정도로만 알았고 그분과 작업을 하면 나한테 앞으로 무슨 일이 어떻게 될 거라는 건 생각도 못했어요. <믿거나 말거나-찬드라의 경우>라는 단편 영화로 박찬욱 감독님과 하루 같이 작업을 했는데 그 후에 2월인가 3월에 전화를 해서 ‘당신으로 정해놓고 쓰는 역이 있으니 7월에 스케줄을 비워달라’고 하시는데 ‘아유. 예…’ 그랬죠. ‘스케줄’ 이런 말만 들어도 오히려 내가 황송해가지고.(일동 웃음) 스케줄이라는 게 없잖아요, 연극 배우들한테는. 그냥 하는 게 중요한 사람들이니까.

 

 

주인공들이 딱 전형적인 오타쿠들이기도 하고, 전반적으로 좀 일본적인 정서의 작품이에요.

그렇죠 좀… 생소하달까 생뚱맞은 것도 있죠. 그런데 이 <키사라기 미키짱>이라는 작품은 그 오타쿠라는 사람들의 삶을 매개로 해서 속에 있는 또다른 사연들을 주로 다루는 것이고 어떻게 보면 짠한 연극이지요. 영화판도 봤는데 아무래도 연극이 감성을 건드리는 부분에서 영화만큼 섬세해지기는 힘들거든요. 최대한 섬세해지려고 하지만 그런 면에서는 당연히 영화보다는 떨어지겠죠. 그런데 연극만이 가지는 강점, 현장에서 같이 풀어나가는 데서 오는 힘이 또 있으니까요.

 

연예계에서 일하는 여자아이에 대한 이야기잖아요. 본인이 직접 겪어본 그 분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보통 스포트라이트를 생각하지만 만드는 과정은 굉장히 혹독합니다. 겉으로 어떻게 보이는지 저는 잘 모르겠는데, 어린 청소년들이 꿈으로 생각할 만한 그 정도의 직업은 아니에요. 정말로 힘들고 육체적인 노동량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가혹하고 힘들어요. 만약 제 아이가 이쪽 일을 하겠다고 하면 저는 말리고 싶어요. 이 바닥이 얼마나 힘든 곳인지 20년 동안 제가 겪었기 때문에요. 어쨌든 여긴 남들 보기에 부러울 만한 그런 곳은 아니에요. 레드카펫에서 사진 좀 찍히고 그런 건 뭐(웃음) 그냥 홍보로 하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이고, 그것 외에 직업인으로 봤을 때는 참 힘든 직업군의 하나에 속할 거라고 저는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모르고 시작하셨어요?

몰랐죠. 몰랐는데 점점 더 나이가 들수록 아 힘들구나, 세상 쉬운 거 하나 없구나 깨닫고 있죠. 처음에는 그야말로 멋모르고 시작했으니 힘든지도 몰랐는데 조금 지나고서는 장난이 아니네 하고 느꼈고요. 요즘에 힘든 이유는 그래요. 어떤 직업이든 하면 할수록 어려워지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게 정상이고요. 하면 할수록 쉬워지고 능숙해지는 건 단순한 기능공이 아닌 이상 없지 않을까 싶어요.

 

처음 시작을 할 때 잘한다는 이야기를 더 많이 들으셨어요?

선생님한테는 제가 애제자였기 때문에… 제 느낌으로는 제가 애제자 같았어요. 잘 챙겨주셨고 비유할 때도 보면 ‘달수 봐라!’이렇게…(웃음) 그런데 워낙에 엄중하신 분이니까 또 제가 뭘 잘못하면 또 확실하게 바로 잡으셨죠. 젊었을 때는… 말하자면 그런 거예요. 자식이 하겠다고 할 때 부모님들이 걱정하실 정도의 일이면 이게 얼마나 고달픈 직업인지, 그런 것도 모르고 있었어요. 그런 것도 모르고 20대를 보내고 30대를 보냈으니 진짜 철없는 거였죠.

 

어떻게 모를 수가 있었죠?

잊어버리려고 애를 썼죠. 자꾸만 생각을 하면 정말 힘들어지니까. 그냥 잊어버리려고 노력을 많이 했죠. 그래도 살아야죠. 어쩔 수 없죠. 현장에서 일하는 배우들뿐만 아니라 스태프들도 그렇고 공연을 보러 오시는 관객들도 요즘은 다들 참 힘들잖아요. 그렇게 다 같이 힘든데 그 속에서 배우들이 기껏 할 수 있는 것은 타인에게 웃음을 주고 눈물을 주고 기쁨을 주는, 그게 그 사람들이 해야 할 의무죠.

 

남한테 나를 보이는 직업이잖아요. ‘연극성 인격장애’라는 병명이 존재할 정도로 어떻게 보면 일반적이지 않은 삶이에요.

그게 매력적이죠. 그런 마인드가 없으면 못하죠. 존재 증명에 관한 아주 큰 의욕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봐주시면 더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서 어느 때에는 또 굉장히 객관적이어야 할 때도 있고요.

 

연습 과정은 즐거우세요?

사실 대본을 아직 제대로 못 외었어요. 왜냐면 그게 대본을 펴기가 싫어서 그래요. 너무 부담스러워서. 징글징글하니까. 꿈에서는 연습을 하다가 도망을 가서 잠수를 타기까지 했어요. (웃음) 작품을 할 때마다 매번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인데, 이번에는 더 그러네요.

 

대본 보기가 힘들 정도면 어떡해요.

매 작품을 할 때마다 사랑니가 부어올라 가지고 공연이 올라갈 때까지 계속 아픈 상태로 보내요. 신경을 너무 많이 쓰니까. 영화는 외려 조금 나아요. 테이크라는 게 있으니까. 영화는 또 영화 나름의 애로 사항이 있긴 하지만 연극만큼 큰 부담은 없죠. 연극은 완성이라는 게 없으니까요. 완성 시켜서 올리는 게 아니라 공연을 하는 동안에도 자꾸 변하잖아요. 100퍼센트 완성이라는 게 없으니 그게 어렵죠.

 

보기도 힘들 정도로 부담스러운 대본이지만 이 장면 참 좋다, 싶은 신이 있으세요?

신을 딱 집어서 말하기는 힘들 거 같은데 그 첨예한 설전! 추리를 해서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는, 중후반쯤부터 쭉 나오는 언쟁, 그게 저한테는 굉장히 매력적이에요. TV 토론 같은 걸 보는 느낌인데 그런 신들이 기대가 돼요. 물론 마지막 반전. 그것도 아주 최고죠!(웃음)

 

연극을 볼 때 보통 관객처럼 보는 편이세요?

가능하면 순수한 관객의 입장에서 보려고 노력하죠. 그리고 분석적으로 봐봤자 시간만 아깝고…(웃음) 공연을 보러 왔으면 가능한 한 관객의 한 사람으로 돌아서 보는 게 좋다고 생각을 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좀 연기나… 그런 부분은 제가 직업이 배우니까, 안 보려고 해도 좀 더 보게 되는 게 있죠. 그렇지만 관객들도 공연 보고 나면 공연평도 쓰고 그러시잖아요? 저도 그래요. 그 비슷한 거니까 저도 그냥 자연스러운 관객인 거겠죠.

 

삶에서 배운 것이 연극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연극에서 배운 게 삶에 반영이 되기도 하나요?

음, 그러네요. 그러고 보니까… 그렇게 뒤집어서는 생각을 안 해봤는데… 공연이 끝나고 난 다음에,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되죠. 공연을 할 때, 공연을 올리기 전 작품을 분석할 때는 오로지 공연에만 몰두해서 관객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 어떻게 보일 것인가, 하는 식으로 오로지 공연 자체에만 몰두해 있어요. 극 중 인물이 어떤 성격의 소유자다 ,어떻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런 것조차도 오로지 공연을 위해서만 보는 경우가 허다하죠. 공연이 끝난 후에는 그때서야 생각을 합니다. ‘아, 이 사람이 그렇게 한 이유가…’ ‘아, 이 관계는 그래서…’ 한 사람으로서는 이렇게 공연이 끝난 후에야 비로소 알맹이를 얻는 것 같아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1호 2012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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