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피처 | [SPECIAL] 귀로 듣는 무대 [No.211]

글 |이솔희 사진 |민음사, 밀리의 서재 2022-09-14 1,012

귀로 듣는 무대

 

햄릿이 고뇌하고 리어왕이 광기를 내뿜는다. 무대 위가 아닌, 우리 머릿속에서 말이다. 이야기가 지닌 생동감을 귀에 속삭여 주는 오디오북 덕분이다. 2018년 네이버가 오디오 플랫폼인 ‘오디오클립’을 시작하면서 오디오북 시장은 빠르게 성장했다. 초기 단계에는 문자 음성 변환 기술인 ‘TTS(Text To Speech)’를 활용해 콘텐츠를 제작했지만 오디오북을 선보이는 매체가 많아지고, 독자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점점 독립적인 콘텐츠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책이 낯선 젊은 세대에게 다가가기


종이책 독자층이 점차 오디오북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자 종이책을 발간하는 출판사는 물론 전자책을 다루는 이북(e-book) 플랫폼도 오디오북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출판사 가운데는 민음사가 2020년 네이버 오디오클립과 손잡고 100여 종의 세계문학을 오디오북으로 재탄생시키는 등 오디오북 사업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 외에도 열린책들, 커뮤니케이션북스, 다산북스 등의 출판사가 오디오북 시장에 합류했다.


민음사의 대표 오디오북 콘텐츠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다. 민음사는 2021년 12월 『햄릿』 『오셀로』 『맥베스』 『리어왕』의 표지를 리뉴얼하고 스터디 가이드를 첨부한 스페셜 에디션을 출간하며 오디오북도 함께 발매했다. 이 오디오북은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을 어떻게 하면 독자들에게 입체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물이다. 민음사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민음사는 오디오북이 청각적 즐거움을 줄 뿐만 아니라 희곡이 지닌 매력을 전달하기에 효과적인 매개체라고 판단했다. 자연스러운 연기가 곁들여진 낭독이 독자로 하여금 희곡에 편하게 다가가게 하여 작품에 담긴 메시지를 더욱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하기 때문이다. 유명 희곡은 무대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로 여러 차례 재탄생되어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다는 점, 인물 간의 대화를 통해 이야기가 흘러가기에 마치 라디오 드라마를 듣는 듯한 친근감을 줄 수 있다는 점도 희곡을 오디오북화하는 과정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민음사는 오디오북 이용자층에 맞게 고전을 새롭게 재해석하기 위해 특별한 컬래버레이션을 떠올렸다. 2021 백상예술대상 젊은 연극상을 수상한 정진새 연출가가 이끄는 극단 문과 2021 두산연강예술상을 수상한 설유진 연출가의 극단 907에 협업을 제안한 것이다. 민음사가 연극인들과의 작업에서 염두에 둔 점은 두 연출가가 지닌 연출 감각을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었다. 이에 <햄릿>을 맡은 정진새 연출가는 젠더 프리 캐스팅을 시도하고, 등장인물의 다양한 개성을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만으로 표현했다. <맥베스>의 오디오북을 연출한 설유진 연출가는 다섯 배우가 각 장을 맡아 독백처럼 낭독하는 실험적인 형식을 도입했다. 덕분에 독자는 배우가 탄생시킨 인물을 받아들이는 대신, 자유롭게 상상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이처럼 특별한 시도 덕분에 종이책 구매자가 전자책, 오디오북의 체험자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이루어졌고, 스페셜 에디션이 발매된 지 4개월가량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알라딘 오디오북 차트 중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민음사는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고전 콘텐츠를 새롭게 큐레이팅하면 고전을 어렵게 느끼는 젊은 독자들과 호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라고 말했다.

 

 

뮤지컬과 책의 만남, 즐거움은 두 배로


이북 플랫폼 가운데 오디오북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곳은 밀리의 서재다. 국내 최대 이북 플랫폼인 밀리의 서재는 10만 권이 넘는 독서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덕분에 밀리의 서재에서 제작한 오디오북은 ‘텍스트와 함께 듣는 오디오북’이라는 점에서 차별점을 지닌다. 가사를 눈으로 쫓으며 노래를 들으면 음악이 지닌 메시지나 감성이 더욱 깊숙이 다가오듯이, 오디오북을 듣는 동시에 책 내용을 눈으로 읽을 수 있어 독자의 집중력과 이해도를 높인다.


밀리의 서재의 목표는 오디오북을 통해 독서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쉽게 오디오북을 청취함으로써 책이 우리 삶에 조금 더 자연스럽게 녹아들기를 바란다는 것. 그래서 밀리의 서재에서 제작한 오디오북 콘텐츠는 책 내용을 압축해서 들려주는 요약형이 많다. 성우가 줄거리와 등장인물을 간단히 설명하고, 독자가 꼭 들었으면 하는 부분만 발췌해 읽어 주는 형식이다. 밀리의 서재 측에서 발표한 ‘밀리 독서 리포트 2021’에 따르면 밀리의 서재에서 오디오북을 한 번이라도 들어 본 회원 수는 2019년 대비 두 배 성장했고, 회원 수의 사분의 일 이상이 오디오북을 즐기고 있다. 밀리의 서재를 이용하는 누적 회원이 400만 명을 돌파했으니, 약 100만 명이 밀리의 서재를 통해 오디오북을 즐기고 있는 셈이다.


밀리의 서재가 선보인 콘텐츠 중 공연 애호가들이 반가워할 만한 점은 뮤지컬배우들이 직접 낭독자로 나선 오디오북도 있다는 것이다.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의 원작인 도스토옙스키의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은 뮤지컬에 출연했던 안재영, 김준영, 이휘종이 낭독했다. 톨스토이의 3대 걸작 중 하나인 『안나 카레니나』는 동명 뮤지컬에 출연한 민우혁과 유지가 낭독에 참여했다. 이 오디오북은 주인공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입장에서 전개돼 작품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프란츠 카프카의 유작 반환 소송 실화를 모티프로 한 <호프>에 출연했던 차지연과 조형균은 카프카의 소설 『변신』과 『소송』의 오디오북에 참여해 뮤지컬을 아끼는 관객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안겼다. 밀리의 서재는 “뮤지컬에 참여한 배우가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내용을 실감 나게 읽어 줌으로써 독자의 몰입감이 더욱 깊어질 수 있었다”라고 전했다.


밀리의 서재 외에도 2017년 12월 오디오북 시장에 뛰어든 윌라와 2019년 한국 서비스를 시작한 세계 최대 오디오북 기업 스토리텔이 국내 오디오북 시장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 밀리의 서재가 요약본을 주로 소개한다면, 윌라는 전문 성우가 읽어 주는 완독본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윌라에서는 빅토르 위고의 『노트르담의 꼽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등 인기 뮤지컬의 원작이 된 세계문학을 만나 볼 수 있다. 스토리텔은 ‘오디오북계의 넷플릭스’로 불리는 만큼 방대한 양의 콘텐츠가 특징이다. 25개 이상의 언어로 읽힌 34만 종의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는데, 『오만과 편견』 『레 미제라블』 등 무대에서 관람하던 작품들의 원작을 영어로 접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Editor’s Pick
조정석이 읽어 주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심판』
『심판』은 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인간』 이후 두 번째로 발표한 희곡이다. 총 3막으로 이뤄진 이 작품은 주인공 아나톨 피숑이 죽음을 맞은 후 천국에 있는 법정에서 지난 생을 돌아보며 천국에 남을지, 다시 태어날지 심판받는 과정을 그린다. 이 작품은 프랑스에서 세 차례에 걸쳐 무대화된 바 있다. 주인공과 판사, 검사, 변호사 총 네 명이 등장하는데, 네 인물을 능숙하게 오가며 듣는 이를 작품 속으로 이끄는 조정석의 연기가 일품이다.

 

양손프로젝트가 읽어 주는 『변신』 『인간실격』 『나사의 회전』
민음사는 1998년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시작으로 25년간 400권에 달하는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를 발간했다. 그중 100여 권은 오디오북으로도 제작했는데, 손상규, 양종욱, 양조아 그리고 박지혜 연출가가 속한 창작집단 양손프로젝트가 그 여정에 참여했다. 손상규는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양종욱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양조아는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을 읽었다. 세 편 다 배우의 색채를 담백하게 담아낸 낭독이 귀를 사로잡는다.

 

‘RESOUND’ 시리즈
네이버 오디오클립은 한국 근대 소설을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오디오북 프로젝트 ‘RESOUND 한국문학’을 선보였다. 이를 통해 무대에서 활약하는 정운선, 전박찬, 이형훈의 목소리로 『까마귀』 『지팡이 역사』 『인두지주』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 반갑다. <광염 소나타>의 모티브가 된 김동인의 동명 소설은 박혁권이 낭독자로 나섰다. 고상지, 원일 등 국내 유명 뮤지션이 오디오북 오프닝곡을 직접 작곡, 연주했으니 음악에도 귀 기울여 볼 것을 추천한다.

 

>> SPECIAL① 오디오 콘텐츠의 가능성

>> SPECIAL③ <킬롤로지> 오디오북 제작기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11호 2022년 4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