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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뮤직맨> 빛나는 스타와 함께 돌아온 추억의 뮤지컬 [No.211]

글 |여태은(뉴욕통신원) 사진 | 2022-09-15 852

<뮤직맨>
빛나는 스타와 함께 돌아온

추억의 뮤지컬

 

 

고전 뮤지컬이 오랜만에 무대로 돌아온 이유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귀가 닳도록 들었을 캐롤 ‘It's Beginning to Look Like Christmas’의 작곡가를 아시는지? 빙 크로스비와 프랭크 시나트라의 명곡 다수를 만들어 낸 이 천재 작곡가의 이름은 메러디스 윌슨. 바로 그 메러디스 윌슨이 작사, 작곡, 극작을 도맡은 뮤지컬이 <뮤직맨>이다. <뮤직맨>은 시골 마을 주민들에게 소년 고적대를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하고 유니폼과 악기 비용만 챙겨 도망치는 사기를 일삼아 온 해롤드 힐이 사랑에 빠져 사기꾼 생활을 청산하는 내용을 담은 로맨틱 뮤지컬 코미디다. 엄밀히 따지면 프랭클린 레이시가 극작을 함께했으나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메러디스 윌슨의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다.


1957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뮤직맨>은 1962년 개봉한 영화로도 잘 알려져 있다. 1950년대부터 유명 브로드웨이 뮤지컬 <오클라호마!> <아가씨와 건달들> <왕과 나> 등이 헐리우드에서 영화화되어 흥행에 성공했는데, <뮤직맨> 역시 영화 OST 앨범이 그래미상을 받고 245주간 빌보드 차트에 머무를 만큼 어마어마한 사랑을 받았다. 2003년에는 <프로듀서스>의 매튜 브로데릭과 <위키드>의 크리스틴 체노웨스 주연의 TV 영화로도 제작되었으나 1962년 영화의 아성을 뛰어넘지 못했다. 이처럼 뮤지컬 황금기를 대표하는 <뮤직맨>이 20여 년 만에 브로드웨이 무대로 돌아왔다. 공연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이 작품은 브로드웨이 최고의 기대작으로 떠올랐는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닌 휴 잭맨이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기 때문이다.

 

순탄치 않았던 출발


<뮤직맨>은 개막 전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당초 이 작품은 2000년 리바이벌 공연 개막 이후 꼬박 20년이 지난 2020년에 브로드웨이로 돌아올 예정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브로드웨이가 셧다운되면서 2021년 5월로 개막을 연기해야 했다. 2021년 봄에는 프로듀서 스캇 루딘의 전 비서가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을 계기로 그의 폭력적 언행에 대한 폭로가 이어져 또다시 개막을 연기했고, 결국 2021년 말에야 프리뷰 공연을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21년 연말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확산으로 확진자가 폭증함에 따라 브로드웨이 셧다운이 끝나고 공연을 재개한 작품들이 줄지어 공연을 취소하거나 잠정 중단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출연진 가운데 확진자가 나와도 공연을 취소하지 않고 진행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는 극 중 여러 역할을 대신할 수 있도록 준비된 배우 ‘스윙’이 나섰기 때문이다. 더블, 트리플, 쿼드러플 캐스팅까지도 존재하는 국내 공연계와 달리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보통 원 캐스트로 진행된다. 배우가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무대에 설 수 없을 경우에는 언더스터디 혹은 스윙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바로 이런 스윙의 활약 덕분에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 속에서도 또 다른 브로드웨이 셧다운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뮤직맨> 또한 프리뷰 공연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연 서튼 포스터와 휴 잭맨이 연이어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다. 공석을 메우기 위해 스윙들이 나섰지만, 출연 배우가 50여 명에 달하는 거대한 프로덕션 안에서 확진자가 속출하자 도저히 공연을 이어 나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루는 14명의 배우가 공연에서 빠지는 바람에 한 명의 스윙 배우가 7개의 역할을 소화해야 했고, 열 살짜리 아역 스윙 배우도 세 곡이나 커버했다. 결국 공연은 열흘간 중단되었고 프리뷰 기간도 연장되었다. 배우들이 빠질 때마다 그때그때 조명, 의상, 음향, 안무, 소품 등을 조정하느라 공연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쓸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여타 브로드웨이 뮤지컬보다 2주가량 긴 6주간의 프리뷰를 거친 <뮤직맨>은 2022년 2월 마침내 윈터가든 시어터에서 정식으로 개막했다.

 

 

뮤직맨이 된 휴 잭맨


이번 브로드웨이 리바이벌 프로덕션에는 <헬로, 돌리!> 리바이벌 프로덕션의 연출가 제리 잭스가 참여했다. <속속들이 모던한 밀리(Thoroughly Modern Millie)>와 <애니띵 고우즈>로 두 번이나 토니 어워즈 여우주연상을 받은 서튼 포스터가 여주인공 메리안 역을 맡고, <젠틀맨스 가이드>에서 천의 얼굴을 보여 준 제퍼슨 메이스, 연극 <휴먼스>로 토니 어워즈 여우조연상을 받은 제인 후디쉘도 감초 역할로 등장한다. 쟁쟁한 이름들 사이에서 단연 이목을 끄는 것은 주인공 해롤드 힐 역을 맡은 휴 잭맨이다. 그가 연극이 아닌 뮤지컬로 브로드웨이 무대에 선 것은 2004년 <더 보이 프롬 오즈>가 마지막이었다. 브로드웨이 관계자들은 <뮤직맨>의 해롤드 힐 말고는 휴 잭맨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컴백을 가능하게 할 다른 카드가 없었을 거라고 말한다. 휴 잭맨 본인이 학창 시절 이 작품에 출연한 이후 오랫동안 해롤드 역을 꿈꿔 왔기 때문이다.


<뮤직맨>의 첫 곡인 ‘Rock Island’는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판매하는 외판원들이 록 아일랜드에서 출발한 기차 안에서 해롤드 힐에 대해 떠드는 내용이다. 기차가 움직이는 소리에 맞춰 랩을 하듯 빠르게 부르는 곡으로, 배우들이 덜컹거리는 기차에 올라탄 것처럼 몸을 흔드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오직 이 한 장면을 위해 <뮤직맨>은 실제 기차와 같은 거대한 세트를 무대에 올려놓았다. 그 안에 노래가 끝날 때까지 신문으로 얼굴을 가린 채 창문을 향해 있는 한 남자가 있으니, 그가 바로 모든 관객이 기대해 마지 않는 휴 잭맨, 즉 해롤드 힐이다. 그의 등장과 동시에 관객들은 꽤나 긴 박수와 함성을 보내는데, 휴 잭맨은 아주 익숙하게 관객의 환호를 잠재우고 공연을 재개한다.


대부분의 뮤지컬 넘버가 주인공 해롤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이 작품에서 휴 잭맨은 한 치의 오차 없이 대규모 앙상블을 거느리는 지휘자 같은 면모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특히 <뮤직맨>의 대표곡 ‘Seventy-Six Trombones’에서 워렌 칼라일의 안무가 빛을 발한다. 해롤드의 지휘와 오케스트라 연주에 맞춰 고적대가 된 것처럼 춤추는 앙상블의 모습은 마치 조명이 비치면 몸이 악기 소리를 내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마법 같은 순간을 선사한다. 놀랍게도 ‘Seventy-Six Trombones’는 앞서 메리안이 부르는 아름다운 발라드 ‘Goodnight, My Someone’과 같은 멜로디지만 빠른 템포에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이 더해져 완전히 다른 노래처럼 들린다.


반면 서튼 포스터는 메리안 역에 최적의 캐스팅 같지 않았다. ‘Good night, My Someone’ ‘My White Knight’ ‘Will I Ever Tell You’ 등 메리안이 부르는 노래는 잔잔한 발라드로 이루어져 있어 서튼 포스터가 <속속들이 모던한 밀리>, <애니띵 고우즈>에서 보여 준 유려한 탭댄스와 시원시원한 춤 선을 기대한 관객이라면 실망할 수밖에 없다. 10명이 넘는 아역 배우가 환상적인 춤을 선보이는 ‘Shipoopi’ 장면에서 메리안과 해롤드가 추는 춤을 통해 조금은 갈증을 해소할 수 있지만, 작품 내내 서튼 포스터가 가진 재능을 십분 활용하지 못한 느낌에 아쉬웠다.

 

보수적인 마을에 등장한 피리 부는 사나이


장면이 바뀔 때마다 무대 배경에는 시골 마을을 섬세하게 그린 커다란 풍경화가 펼쳐진다. 이때 사용되는 그림은 아이오와 출신 화가 그랜트 우드의 작품이다. 이는 <뮤직맨>의 배경이 아이오와주라는 점에서 흥미로운 선택이다. 그랜트 우드의 대표작은 갈퀴를 들고 있는 남자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를 그린 ‘아메리칸 고딕’인데, 많은 이들이 이 작품을 두고 미국 중서부의 금욕적 가치를 비판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뮤직맨> 역시 보수적이고 금욕적인 생활을 추구하지만 결국 사기꾼에게 현혹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이들이 추구해 온 가치에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1막 초반에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 주는 곡은 ‘Iowa Stubborn’과 ‘Ya Got Trouble’이다. 시장이 자신이 소유한 지역 내 당구장에 새로운 포켓볼 테이블을 설치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안 해롤드. 그는 새로운 포켓볼 테이블은 청소년 비행을 부추길 거라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년 고적대를 구성하는 게 어떠냐고 마을 사람들을 설득한다. 열 맞춰 서서 ‘Iowa Stubborn’을 부르던 고집 센 아이오와 사람들은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에게 홀린 듯이 ‘Ya Got Trouble’을 부르며 해롤드를 따라 춤추고 노래한다. 해롤드의 자격증을 확인하려고 따라다니던 학교 이사회원들마저 그의 장단에 맞춰 화음을 넣다가 번번이 해롤드를 놓친다. 이들의 남성 중창은 시장 부인을 포함한 마을 부녀회의 여성 중창 ‘Pickalittle(Talk-a-Little)’과 절묘하게 이어지며 웃음을 준다.


이렇게 시장과 메리안을 제외한 마을 사람 모두가 해롤드의 매력에 빠져 허우적대고, 나중에는 메리안도 ‘Till There Was You’를 부르는 해롤드에게 마음을 연다. 해롤드는 사기꾼이라는 정체가 폭로된 다음에도 이곳에서만큼은 진짜 고적대를 만들어 준 사람으로 환영받게 된다. 고적대의 엉망진창 연주는 해롤드가 1막에서 ‘Seventy-Six Trombones’를 부르며 제시한 청사진과는 거리가 멀지만, 마을 사람들의 눈에는 멋진 유니폼을 입고 악기를 연주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자랑스럽기만 하다. 마지막에는 모든 캐스트가 화려한 유니폼을 맞춰 입고 오케스트라의 멋진 연주가 곁들여진 커튼콜을 선보인다. ‘모든 사람들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맺는 전형적인 뮤지컬 코미디식 마무리다.

 

 

리바이벌의 딜레마


<뮤직맨>은 1957년 브로드웨이 초연 이듬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꺾고 토니상을 차지한 작품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60년이 넘게 지난 2022년, 우리가 이 작품을 다시 봐야 하는 이유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물론 이 작품은 휴 잭맨과 서튼 포스터라는 스타 캐스팅 외에도 리바이벌 공연으로서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미국인이라면 자라면서 익숙하게 들어 왔을 유명 뮤지컬 넘버를 무대에서 접할 수 있는 데다 암울한 현실과 대비되는 희망 가득한 코미디, 복잡하지 않은 갈등 구조, 사기꾼을 포함한 모두가 행복해지는 결말이 흔히들 뮤지컬에서 기대하는 달콤한 판타지를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흥행 요소를 차치하고 작품이 현대의 관객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있는가 생각해 보면 의문이 든다.


동시대적 관점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문제는 이 작품이 메리안을 그리는 방식이다. 마을의 유일한 미혼 여성인 메리안은 도서관 사서라는 번듯한 직업을 가졌고 동네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칠 만큼 음악에도 소질이 있는 아름다운 여성이다. 하지만 작품 속에서 메리안은 까칠한 노처녀로 그려지고, 마을 사람들은 그가 아버지 친구로부터 도서관을 물려받은 것을 두고 나쁜 소문을 퍼트린다. 심지어 메리안의 어머니조차 외부인 해롤드의 정체를 의심하는 메리안에게 어서 그 남자라도 잡아서 결혼하라고 다그친다. 한편 해롤드는 자신에게 관심조차 주지 않는 메리안에게 ‘이런 여자는 니가 처음’이라며 대뜸 사랑에 빠진다. ‘Marian The Librarian’이라는 곡에서 해롤드는 메리안의 관심을 끌기 위해 앙상블과 함께 도서관의 책을 집어 던지고 책상에 올라타는 현란한 춤사위를 선보이는데, 이는 남성이 짓궂은 장난을 통해 좋아하는 여성에게 호감을 표현하는 행위가 용인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긴다. 메리안의 심리도 이해하기 힘들다. 메리안은 ‘My White Knight’에서 내가 원하는 백마 탄 기사는 진실하고 평범한 남자일 뿐이라고 노래하는데, 정작 그가 해롤드에게 마음을 여는 계기는 혀 짧은 소리 때문에 좀처럼 말을 하지 않고 겉도는 동생 윈터럽이 해롤드의 격려에 힘입어 밴드에 참여하고 자신감을 얻기 때문이다. 메리안이 남동생을 마치 아들처럼 대하는 모습, 해롤드의 정체를 알고도 그를 사랑으로 감싸는 모습은 현대 여성인 필자에게는 다소 불편하게 다가왔다.


리바이벌 작품의 창작진은 원작을 현대에 맞게 각색하는 과정에서 이야기와 캐릭터 설정의 필수적인 부분을 유지하되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뮤직맨>은 이번 프로덕션에서 아메리칸 원주민을 ‘인디언’이라 칭한 대목을 삭제해 인종 차별 논란을 피하고, 기존에 백인 위주였던 캐릭터에 흑인 배우들을 캐스팅했다. 그러나 주요 캐릭터가 여전히 백인 위주이기 때문에 다양성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또한 시장의 딸과 연애하는 소년에 대한 설명을 생략해 노동자 가정 출신을 하대하고 노동을 계급화하는 데 따른 비난을 피했지만, 이러한 디테일을 놓침으로써 해롤드와 메리안을 제외한 다른 캐릭터를 평면적으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하는 말마다 잘못된 단어를 써서 웃음을 유발하는 시장이 그나마 입체적인 캐릭터라 할 수 있겠으나, 그가 자신의 부인과 딸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모습은 구시대적이다. 원작이 오래전에 만들어진 만큼 리바이벌 프로덕션이 동시대 관객을 완벽하게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무대 위에서도 여성에 대한 존중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 씁쓸하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11호 2022년 4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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