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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OVER STORY(2) <모비딕> 배우들 [No.102]

글 |정세원 사진 |김호근 2012-03-20 5,947

 

 

상반된 이미지의 공존과 대비, 신지호·지현준

 

신지호에게 <모비딕>으로부터의 러브콜은 ‘충격적’인 일이었다. 바쁜 유학 생활 중에도 뮤지컬을 보기 위해 뉴욕을 찾을 정도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살았지만 단 한순간도 무대에 선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SBS 예능프로그램 <스타킹>에 출연해 곱상한 외모와 상반되는 폭풍 연주로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직접 작사, 작곡, 프로듀싱한 데뷔 앨범 「에보니 앤드 아이보리」는 발표되자마자 차트 정상을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었지만, 오래 동경했던 뮤지컬 무대에서, 자신의 장기인 피아노 연주를 함께 선보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뿌리치기에는 그 유혹이 너무 강했다. 의욕적으로 뛰어들었지만 정식 무대에 언제 오를지 모르는 상태로 1년여 동안 연습과 워크숍 공연을 반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부족한 노래 실력과 오랜 외국 생활로 취약해진 발음 등을 지적받으며 자괴감에 빠진 적도 많았다. 하지만 도중에 포기하기에는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 함께 고생하며 술잔을 기울인 배우들과의 정(情)은 본 공연까지 그를 버티게 한 힘이었다. ‘닉쿤 닮은 피아니스트’보다는 ‘짐승 피아니스트’라는 수식어를 좋아한다는 그에게 이스마엘은 자기에게 없는 것을 추구하고 갈망한다는 점에서 많이 닮았다. 상실감과 외로움을 달래준 친구 퀴퀘그와, 오랜 시간 함께한 피쿼드호 사람들과의 추억을 바다에 묻으며 성장하는 이스마엘을 연기하면서 자신도 많이 성장한 것 같다는 신지호. 생각은 긍정적으로 바뀌었고 예민함도 많이 무뎌졌다. 이번 공연은 무대가 커진 데다 전보다 더 객관적인 시선이 요구되어 걱정이지만, 그만큼 성숙해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 기대가 크다.

 

연주자들이 중심이 되어 모인 <모비딕>에서 지현준은 어느새 모두가 의지해마지 않는 퀴퀘그가 되어 있었다. 연극 무대를 통해 차곡차곡 쌓아온 연기 공력과, SBS <기적의 오디션>을 통해 얻은 연기에 대한 새로운 마음가짐 덕분이다. 스튜디오에서도 그는 다른 배우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대본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더 많이 가졌다. ‘항상 과묵하고 낯선 사람들 속에서도 자기만의 완벽한 평정을 유지하는’ 퀴퀘그처럼 말이다. 배우가 되기 전 그는 KBS 다큐멘터리 인턴 피디로 일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부러워할 만한 직업일지 모르겠지만, 지현준은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서 모니터만 바라보는 생활이 너무나 답답했다. 그래서 찾은 곳이 이윤택 연출의 연희단거리패였다. 지갑이 두둑했던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돈벌이는 시원찮았고, 위경련으로 응급실에 실려 간 적도 수차례였지만, ‘자신이 가진 도구가 많을수록 관객들에게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는’ 연기가 너무나 재밌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넣어뒀던 바이올린을 다시 꺼내든 것도 그 즈음이다. 8년간 배운 바이올린을 들고 연극과 무용 무대를 오가던 연기파 배우가 갑자기 SBS <기적의 오디션>에 참가한 까닭이 궁금했다. “어머니의 권유였어요. 지난 9년간 못하셨던 말씀 같았죠. 생판 모르는 관객들을 위해서 그렇게 지하에서 구르며 살았는데 정작 어머니를 위해 연기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더라고요. 충분한 이유가 됐어요.” 그는 공개 오디션을 통해 혼자만이 아닌 모든 사람이 보고 즐거울 수 있는 연기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고 했다. 그리고 이전의 그였다면 고사했을 뮤지컬 <모비딕>에 참여하게 됐다고. “원작보다는 콘서트의 느낌이 강했던 초연은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이번 공연은 드라마가 많이 탄탄해져서 재밌을 것 같다”는 그의 얘기가 무대를 향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퀴퀘그의 옷을 입은 지현준은 자연과 가까운 순수함을 보여주기 위해 고민 중이다. 무대에서 몸 쓰는 것을 좋아해 네 발로 기어 다녀볼 생각도 있다. 프로 연주자들 사이에서 좌절을 맛보고는 있지만, 처음 무대에 섰을 때처럼 마음이 설렌다.

 

 

 

너를 통해 나를 본다 윤한·KON

 

이스마엘 역에 새로 투입된 윤한은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한 두 장의 앨범 전곡을 작사, 작곡, 편곡, 노래, 프로듀싱까지 모두 책임지는 팝 피아니스트다. 신지호가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약한 도시 소년 같다면, 윤한은 시크한 회색 도시 청년의 이미지가 강하다. 오랜 시간 운동으로 다져진 큰 체격과 내 사람이다 싶으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퍼주는 외강내유의 성격은 오히려 퀴퀘그를 닮았다. 초연 때 이미 캐스팅 제의를 받은 적 있지만 음악으로 먼저 실력을 인정받고 싶어 출연을 고사했다는 윤한. ‘연예인 되고 싶어서 이것저것 한다’는 식의 오해를 받기 싫었던 마음도 컸다. 고교 시절 SM엔터테인먼트에 길거리 캐스팅된 적이 있을 정도로 훤칠한 외모 덕에 꽤 많은 오해를 받았던 모양이다. 그가 피아노를 치게 된 것은 가수 김동률 때문이다. 피아노 치면서 노래하는 모습에 반한 윤한은 그를 따라 버클리 음대에 가겠다며 피아노 레슨을 받기 시작했고 단 6개월 만에 합격했다. 재능보다는 노력으로 이룬 성과다. 1~8등급 중 최하위인 1등급으로 학교에 들어간 그는 하루 평균 8~10시간씩 피아노 연습에 매달렸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친구들은 언제나 그를 자극했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남한테 지기도 싫었던 연습벌레는 결국 7등급을 받으며 졸업할 수 있었다. 윤한은 <모비딕> 연습실에서 대학 시절의 자신을 다시 만났다고 했다. 처음 도전하는 뮤지컬이 낯설고 어렵지만 뜨거운 열정이 있기에 두렵지는 않다. 그가 그리는 이스마엘은 연약함보다는 당당함을 지닌, 그래서 무모한 도전에 나설 수 있는 강인한 청년이 될 듯하다. 혼자서 관객을 만나는 독백 장면과 요나서 읽는 장면이 많아 어색하고 힘들지만, 매회 다르게 연주할 퀴퀘그와의 잼 연주를 기대하면서 기분 좋게 설렘을 즐기고 있다.

 

 

일 년 넘게 퀴퀘그로 살았던 콘은 새로 만난 윤한의 이스마엘에게서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자신의 아픔과 외로움이 느껴진다고 했다. 늘 보호해주고 싶었던 신지호와는 달라 낯선 감은 있지만 기분 좋은 경험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일상을 벗어나 바다를 찾고, 돈보다 더 소중한 인생의 친구를 만나고 싶지 않나. 피쿼드호의 선원들도 그랬다. 비록 물거품처럼 부서지지만 그들은 자신의 꿈을 위해 아낌없이 산화했다고 생각한다.” <모비딕>은 ‘소외된 사람들의 꿈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그의 꿈을 실현시킨 무대이기도 했다. 노래하듯 연주하는 것이 꿈이었던 그에게 노래하면서 연기하는 뮤지컬 무대는 언젠가 한번쯤 서보고 싶은 곳이었다. 대학 시절 <아이 러브 유> 등의 뮤지컬에 세션으로 참여했던 것도 그 ‘언젠가’를 위한 준비였다. 지인의 소개로 일찌감치 <모비딕>과 인연을 맺었지만, 바다의 정령 네레이드와 소통하는 자연에 가장 근접해 있는 인물이자, 존재 자체로 이스마엘을 성장시키는 ‘터프하고 강인하고 말 없는’ 코코보코 섬 식인 추장의 아들 퀴퀘그는 지금도 여전히 다가가기 힘든 인물이다. 외형적으로도 다르지만 다정다감하고 웃음이 많은 성격의 영향이 커 보인다. 게다가 이번 공연에서는 대사가 더 줄었고 그만큼 몸으로 표정으로 보여줘야 하는 부분이 더 많아져 걱정이 태산이다. 퀴퀘그 역에 새로 투입된 지현준의 연습을 본 후로는 고민과 걱정이 더 많아졌다. 한눈에 보기에도 퀴퀘그의 강인함이 물씬 풍기는 외모에, 연희단거리패에서만 9년을 보낸 배우와의 연기 대결이라니. 하지만 콘은 그를 통해 전과는 달라진 퀴퀘그를 보여줄 수 있을 거라 했다. 기쁨과 슬픔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화려하고 매혹적인 바이올린 연주는 콘의 퀴퀘그를 더욱 빛나게 할 무기다.

 

 

피쿼드호와 함께라면, 황건·이승현·황정규·조성현

 

두산아트랩부터 <모비딕>에 참여한 에이허브 선장 역의 황건은 “군대에서 들은 바흐의 첼로 무반주 모음곡에 감동받아 배우기 시작한 첼로를 무대에 활용하게 될 줄은 예상치 못했다”며 웃었다. 오랫동안 흠모하던 에이허브 역을 맡게 됐지만 악기와 더불어 오케스트레이션된 캐릭터에 대한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모비딕에 대한 분노와, 자신을 저지하려는 스타벅과의 갈등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그의 노력은 계속될 예정이다. 새로 바뀐 노래가 마음에 든다는 이승현는 ‘에이허브, 당신이 한 짓을 보시오’라는 스타벅의 대사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죽을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에이허브를 말리지 못한 스타벅에 대해 그는 “냉철한 이성으로 자신을 제어했을 뿐 결국 에이허브의 열정에 반해 있었던 것”이라 대변했다. 이번 공연에서 에이허브와의 갈등뿐 아니라 스타벅 개인의 갈등도 좀 더 보여줄 예정이다. 재활 치료를 받던 중에 배우의 꿈에 도전한 더블베이스 황정규에게 <모비딕>은 배우로서 내딛는 진지한 첫 무대다. 탱고 프로젝트 ‘La Ventana’ 멤버이기도 한 그는 낙천주의자인 스텁을 통해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피쿼드호를 삼키는 모비딕을 통해 재즈 뮤지션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려 한다. 스텁과 더불어 작품에 웃음을 주는 플라스크와 여관주인, 난봉꾼호 선장 역을 맡은 조성현은 <아가씨와 건달들>, <드림걸즈> 등에 세션으로 활약해왔다. <모비딕> 출연 이후로는 세션으로 공연에 참여할 때도 알아봐주는 팬들이 생겼다고 한다.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고 박수 받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지만, 강렬한 희열을 맛볼 수 있는 <모비딕>의 무대에 오래 설 수 있기를 바란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2호 2012년 3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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